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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25

VI.  평신도  신학(Theology  of  Laity)

1. 평신도 신학의 배경 

    초대교회  당시에는  오늘과  같이  성직계급과  평신도와의  이원화된  현

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교회에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엡4:11-12),  사도

들,  선지자들,  목사들,  교사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목회를  담당하고  있었

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해  감에  따라서  교회운영과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교회에는  감독들,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이  나타나 

세분화된  목회직을  수행하였다.1)  이와  같은  목회직의  변천과정에서  교

회에는  교권제도가  강화되어  성직자와  평신도를  두  계급으로  구분하게 

되었다.2)  여기에서  초대교회의  공동목회의  유산과  개념이  무산되었고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목회로부터  소외되어,  오히려  목회를  독점한  성직

자들에  의존하여  피동적이고  무기력한  계층으로  전락되었다.3)

    교회에서  교권주의의  영향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양분화된  현상이 

수세기  동안  지속해  오던  중4)  16세기  루터(M.  Luther)의  종교개혁  운

동에  의하여  새로운  교회의  이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교회를 

‘성도의  교제’5)로서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

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로  정의하였다.  동시에  그는  ‘만인사제론’을  주장

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  주교,  교황으로  봉헌되었으며,  실제

로  ‘직무’의  차이를  제외하고서는  성직과  평신도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있을  수  없다”6)는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교회에는  성직자와  평신

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신자들은  신앙  안에서  ‘성도의  교제’

를  통하여  ‘만인사제직’의  동등한  자리를  설정하게  되었다.    신자의  만

인  제사장  직분이  강조되었고  평신도의  지위가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여러  나라에서  종교  개혁이  강화된  이후에는  평신도들이  다시  이

면으로  물러갔고,  비록  다양한  동기와  다양한  형태이긴  하지만  목사들

이  교회를  대표하는  ‘직무’와  일단(一團)으로서  다시금  기반을  잡게  되

었다.”7)  이론상으로는  교회의  전체  회중의  목회가  인정되지만,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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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평신도  신학

는  그  과업을  이행함에  있어서  목사가  떠맡은  강력한  권위에  의해  평

신도는  이면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항상  목사편에서  계획적

이며  의식적인  노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목사에게  너무  기대를  함으로  생기는  자연

스러운  결과였다.  이것은  국교회가  우세한  국가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이었다.8)

    비국교파  그리고  자유로운  교회  그룹들  특히  회중전체  그룹들은  적

어도  이론상으로는  교회  안에  전체  회중의  목회  원리를  계속적으로  유

지해  왔다.  “모든  영미  회중적인  단체들(회중교,  침례교,  제자교,  유니

테리안  등)은  항상  그들  교회의  모임에서  평신도들에게  동등한  특권을 

허용했다.”9)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이론상의  경우라는  사실을  부언해 

두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의  목회자들은  교단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평신도들에게는  적은  직책만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교회  역사에  평신도  활동이  활발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서의  웨슬리 

부흥운동,  유럽대륙의  경건운동,  미국에서의  대각성운동은  평신도  지도

의  실례이다.  모라비안  형제로  알려진  위대한  복음전도  단체는  평신도

인  진젠돌프(Zinzendorf)의  지도하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평신도  운동

은  YMCA,  YWCA,  그리고  세계기독학생연맹  등을  들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교회,  특히  카톨릭  교회

를  중심으로  평신도의  중요성과  그  위치를  재해석하려는  운동이  다시 

태동하기  시작하였다.10)  예를  들면,  독일과  유럽에서의  “복음주의적  아

카데미”  운동은  평신도의  자각  운동이  되었으며,  평신도  신학형성에  중

요한  영향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한국에서는  우원(友

園)  이호빈  목사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6년에  ‘중앙신

학교’를  설립하였다.  195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한  브루너(Emil  Brunner)

가  그에게로부터  평신도  신학과  초교파신학에  관하여  많은  것을  듣고 

깊은  관심을  갖고  돌아간  2년  후  평신도  신학을  체계화하였다.11)    이

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중앙신학교의  설립과  건교  이념은  한국

에서  평신도신학의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게  된  새로운  전기를  마련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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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27

    오늘날  평신도신학의  새  기원을  마련한  카톨릭  신학자인  콩가르

(Yves  Congar)는  1957년에  Lay  People  in  the  Church를  저술하여  새

로운  교회론을  전개하여  평신도의  신학적  위치를  재발견하였다.  그는 

교회를  평신도  전원이  소속하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는  ‘인류를  향하

신  하나님의  계획’12)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평신도는  인류와  세계를  향

하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리스도의  목회에  참여하여  영적인  봉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의  봉사는  제사장적 

기능(예배,  성례전  참여),  예언자적  기능(교육),  그리고  왕권적  기능(청

지기직)으로  해석하였다.

    콩가르와  함께  개신교의  평신도  신학을  정립한  크래머(Hendrik 

Kraemer)는  1960년에  ‘만인사제직’의  사상에서  평신도신학의  지혜와 

암시를  받아  A  Theology  of  the  Laity를  저술하여  선교신학적  관점에

서  발전시켰다.  그의  신학은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에서  출발

하여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은  이  세

상과  전  인류가  하나님의  관심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평신도  신학의  새  의미를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

하면,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에서  교회의  방향  설정은  교회는  세

계를  위하여  존재하며,  본질상  ‘선교적’이라는  것이다.14)  따라서,  그의 

평신도신학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역이  교회뿐만이  아니

라,  전세계를  포함한다는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교회는  세계  속에

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고난의  종’으로서  세계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미국학계에서도  평신도의  사명이  점차  고조되더니  1960년대  중

반에  들어와  아이레스(Francis  O.  Ayres)의  「평신도의  사역」(The 

Ministry  of  the  Laity,  A  Biblical  Exposition)과  랍  몰톤의  「동결된 

자산인  하나님의  백성」(God's  Frozen  People)이  출판되었고  한국기독

교서회에  의하여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학적인  발전 

뿐만  아니라  구미  각국에서는  평신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각

국에서  평신도  운동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15)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평신도  신학서들의  번역과  함께  평신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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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평신도  신학

동이  태동하더니,  70년대에  들어와서는  매우  활발하게  되었다.  그  동안 

평신도  운동에  대해서  냉담하던  보수주의  교회들도  점차로  지도자훈련, 

제직수련회,  제직세미나,  평신도강좌  등을  통해서  평신도들의  잠재력을 

일깨워  교회봉사는  물론이고  전도사업에  있어서도  능동적이고  적극적

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2. 평신도의 의미

    평신도란  하나의  직분으로서  헬라어의  λαο (laos)에서  나온  말이다. 

영어의  평신도라는  말의  “lay”는  또한  헬라어의  “λα κο "(laicos)에서 

나온  말이다.  이  어원이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서  오늘

날의  ”평신도“  혹은  ”평신도직“이  나왔다고  본다.16)  초대교회에서  ‘하

나님의  백성’은  ‘이  사람들’(행5:35),  ‘학문이  없는  범인’(행4:13),  그리고 

‘큰  무리’(행11:26)17)로  불려졌으나,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맺어진  영적  친교  코이노니아를  함께  나누었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  전체를  의미했고,  그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진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18)  ‘하나님의  백성’은 

섬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아서  교회의  목적,  선교를  달성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평신도라는  개념은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  전체이며  하나님

의  전  백성’19)이다.  평신도란  역사적으로  성직을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

의  성직과  이원적  분리로  그  기능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강조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성직의  기능을  수행하는  평

신도로서  평신도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가질 

수  있다.20)  따라서  평신도의  개념은  기능에  관한  구별일  뿐이지  그들

이  수행하고  있는  기독교  봉사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구별이  아니

다.21)  평신도와  목회자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목회’를  대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는  자발적인  봉사자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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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29

    실제로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이  다양한  봉사와  조직을  운영하고  있

으며,  교회가  이  세상을  위해  감당하여야  할  그리스도의  목회에  적극적

으로  참여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할  뿐만  아

니라,  사회와  세계를  위해  섬김으로  현존하며,  평신도는  세상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죄를  하나님께  대변하는  목회를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와 

인류의  실존적  삶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백성

인  것이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다양한  직업을  통하여  세상  안에  그리고  세상  도

처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교회를  가장  잘  대표하는  자들

이다.22)  교회는  평신도를  통하여  세상  속에  직접  개입하여  연속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간의  실제적인  화합은  평신

도를  통하여  구체화되고,  교회의  직접적인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와  목회자는  비록  기능상  구분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그  역할에는  구분이  있을  수  없다.

3. 평신도를 위한 교육

1)  현  교육의  문제점

(1)  그  동안  목회자는  교회강단에서  한결같이  신앙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적  추구와  실천이  없는  감정적  분위기만을  만들어  왔다.  이  결과로 

교회마다  교회의  문을  굳게  닫고  세계와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인  죄

악’으로  방치해  두었다.  교회  안에는  목회자의  권위와  교권중심주의로 

오염되어  사회의  비도덕성과  비인간화의  문제에  무관심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회  자체가  여기에  편승하여  비도덕성과  비인간화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2)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목회자  중심인  ‘닫혀있는  교회’에서  목회자

에  맹종하며  앉아서  듣는  일에  만족하는  심리적  수동성과  타율성에  오

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그  결과  그들은  배움과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

면서  배움이란  신앙과  무관한  세속적  영역으로  방치하여  왔다.  따라서 

그들은  ‘신앙적  문맹’으로  교회와  사회생활과의  이중적  문화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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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평신도  신학

무기력한  기독교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3)  따라서  교회는  사회에  대해  ‘책임있는  공동체’로서의  책임을  상실하

게  되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

상적  문화에  융합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23)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이제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을  새로운  안

목과  비젼을  가지고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평신도교육은  교회교육

의  일반적  범주--교회학교  교육,  청소년  교육,  장년  교육  등--와  구분

되는  ‘평신도’에  관한  그리고  평신도에  의한  교육적  특징을  가지고  있

다.  실제로,  한국교회에서  평신도교육은  그  교육의  신학적  토대와  교육

구조의  연구  및  정립이  없이  다만  성서연구와  평신도신학  강좌  및  직

장  선교  연구의  범주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신도교육은  평신도

들의  일상생활  현장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  성서  및  신학적 

해답에  의하여  응답하게  하고,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선교

적  사명을  위해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는  과정과  연관되어야  한다.  최

근  이러한  종류의  책--현장  경험과  성서를  연결시키는--들이  많이  나

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2)  열린  교육

    이제까지의  교육이  교사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열린  교육을  강조하

며  학습자  우선중심의  교육을  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를  위한  교육도  평신도들이  처한  특수한  시대적  상황,  교

육  수준,  사회적  위치  그리고  개인적  신앙생활의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서  일반교육(pedagogy,  패다

고지24))과  성인교육(andragogy,  안드라고지25))의  차이를  많은  학자들

이  구분하여  설명하면서,  후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을  살

펴볼  필요가  있다.26)

    안드라고지는  첫째,  의존적인  교사  중심이라기보다  자기  지향적인  자

율학습의  특징이  있다.  둘째,  강의  중심의  내용,  주제  중심,  내용  중심

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  상황과  경험을  통하여  체험적  지식을  얻

는다.  셋째,  분위기  창조를  중심으로  하여  개방적이며,  상호  신뢰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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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31

며,  비형식적이며  학습자들의  참여와  존경이  상호  교환되는  학습과정이

다.27)  페터슨은  이  교육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28)

페다고지

안드라고지

학습자

              의존적

                  상호의존적

목    적

          지식을  얻는  일

                  문제해결

교    육
과    정

  교사  중심적,  권위  지향적
  교사가  요구를  결정
  형식적

  자기  지향적,  상호  존중
  학생이  요구를  결정
  비  형식적

    평신도  교육은  이와  같은  특징으로  현재적  삶의  현장에서  교회를  대

변하는  선교적  주체가  되도록  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평신도  교육은 

일반교육의  교사,  학습자의  정형적인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전  교회가 

교육을  담당하며  또한  교회는  현실적인  모든  문제들과  상황을  교육내용

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교육은  전  교인이  교사  혹은  학

습자가  되며  전체  교회가  참여하는  선교교육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3)  그룹역학의  활용29)

    효과적인  평신도  교육을  위하여  교회  안에  소그룹  조직을  구성하여 

평신도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평신도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과  사회적  역할을  진지하고  심층적으로 

이해하며  탐구할  수  있는  일정한  그룹을  통하여  신앙  공동체의  모델을 

재연할  수  있다.  평신도교육과  훈련은  이러한  그룹활용  과정인  그룹역

학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를  둘러싼  삶의 

공간과  사회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방향을  찾을  수  있기”30)  때

문에,  그룹역학은  신앙공동체의  본질과  기능인  코이노니아,  화해  그리

고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새로운  교육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첫째,  그룹역학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참여를  통하여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영적  성장과  화해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이  방법은  평신도  각자의  독특한  경험을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어  함께  공유하게  한다.  이  관계는  나눔과  대화와  참여를  통하

여  비인격화된  관계를  함께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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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평신도  신학

고,  기독교  사랑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룹역학은  영적  교제의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인격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게  한다.  한  개인의  인격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형성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새로운  생의  변화는  특히 

자신과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만남에서  가장 

신속하게  초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경험에  의하여  동일한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며  효과적인  감정이입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인격과  인격과의  만남에서  변화와  성장의  원리를  ‘개성역학’ 

(personality  dynamics)31)이라  하며,  이  원리에  근거하여  평신도와  평

신도,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인격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

는  구속적  인간  관계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셋째,  그룹역학을  통하여  ‘종교적  사회화’(religious  socialization)  혹

은  ‘신앙의  문화화’  (faith-enculturation)32)가  발생한다.  그룹의  구성원 

사이에서  “인격적이고  창조적인  만남과  돌봄의  관계에서  기독교  신앙

이  성장되고  공동의  기억,  공동의  전통이해,  그리고  공동의  삶과  목적

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33)  신앙의  문화화의  장인  교회와  소그룹을 

통하여  발생하는  신앙의  성장과  경험이  다른  그룹이나  사회,  가정,  학

교,  직장에까지  전이되어  확대될  수  있고,  그  자리에서도  또  다른  ‘신앙

의  문화화’의  영향을  줄  수  있다.  곧  한  그룹에서의  경험과  영향은  의

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다른  집단의  행동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

을  줄  수  있다.

    목회자는  이러한  그룹역학의  중요성을  알고,  평신도들로  하여금  다양

한  그룹에  참여하며  그룹역학에  의한  개인의  변화와  성장에  깊은  관심

을  기울여야  한다.

4)  열린  교회34)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회가  평신도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신학적  해

석을  소홀히  한  채  목회자  중심의  교회로  성장해  왔다.  이와  같은  교

회를  닫힌  교회라  한다면,  열린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동일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  동참하며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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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33

새로운  기독교적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열린  교회는  성직자  중심보다  하나님  중심적  교회이다.  교회가 

신학적  개념으로  국한되어  있지  않고  항상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성 

속에서  존속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우리  시대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

도  정신의  상징적  표현이  되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를 

부단히  계승하고  있다.  교회의  중요한  관심은  주변  문화를  이해하고 

동시에  지역  공동체에  두어야  한다.

    둘째,  열린  교회의  목회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하는  사역이다.   

그  동안  평신도들은  항상  목회자가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며  목회자의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보다  항상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영향으로 

모든  평신도들의  생활이  목회자의  태도와  행위에  입각하여  자발적이며 

자율적이  아닌  듣고  모방하는  것으로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열린  교

회의  평신도는  목회자와  동일한  동역자가  되어  함께  봉사하며  동시에 

목회를  비판할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의  목회는  목회를  받는  대상이

면서,  목회를  감시하며  비판하는  위치에  있으며,  또한  목회에  적극  참

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셋째,  열린  교회는  평신도의  직업과  사회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평신도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어떻

게  행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교훈이나  훈련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신앙이  사회생활과  상관이  없다는  확신으로  양육되어  왔기  때

문에  교회에서  듣고  배운  모든  것이  그들의  실제적  생활과  직업과  무

관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열린  교회는  세상의  사회생활이  속되고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생활  속에서  수행하여야  할  봉사와  선교의  사명

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도록  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평신도의  목회는  구

체적인  직업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평신도는  세상에  흩어진  하나

님의  백성이며  흩어져  있는  교회이다.

    마지막으로,  열린  교회는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단지  선택받은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부름을  받았다.  지금까지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구

별지으려는  의도적인  생각  때문에  그  이웃과  단절되어  초연했었다.   

그리고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돌봄과  애정이  결핍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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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평신도  신학

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배타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주어  왔

다.  열린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고백하고  실천함에  의하여  세상 

사람들과  화해하고  구원  받아가는  사람들로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  문명과  퇴폐문화에  의한  도덕성  파괴로  오염되어  가는 

이  세상을  구원하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오늘  시대의  사명에도  동참하

는  일을  하는  것이다.

   

4. 평신도의 사명

    위에서  살펴본  평신도신학을  바탕으로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는  평신도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요구하기  때문에,  모든  평신도가  함께  참여해야  할  평신도  목회의  중요

성이  대두되고  있다.  평신도  목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

하여  희생과  봉사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선교적인  사역이다.  그러

므로  평신도가  감당해야  할  일은  본질적으로  교회에서의  일  뿐만  아니

라  동시에  교회  밖  세상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숙종  교수는  이

를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사역과  세계  속에서  ‘흩

어지는  교회’로서의  사역으로  표현한다.35)

1)  모이는  교회로서의  목회

    모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평신도의  응답의  사건으로서 

평신도는  교회에서  제사장적  기능,  예언자적  기능,  그리고  왕권적  기능

을  수행하고  있다.  첫째,  평신도의  제사장적  기능은  공동예배와  성례전

을  통하여  구현된다.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

님의  백성의  계시에  대한  응답하는  만남이다.  평신도는  초대교회의  전승

에  따라서,  말씀을  가르치며,  듣고,  교제를  나누고,  함께  떡을  떼며,  그리

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감격으로  표현하는36)  찬양과  기도에  참여한다.  평

신도는  이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변화의  경험을  하게  되며,  세계와  화해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참여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예배는  평신도의 

선교적  의식과  증언을  실천하는  결단의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다.

    둘째,  평신도의  예언적  기능은  목회자와의  분담된  지도력으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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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35

선교기관에서  교육과  증언의  사명을  의미한다.  각  교회마다  전  교인을 

신앙으로  지도하여  훈련해야  할  평신도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평신도  지도자들은  목회자와  함께  교회의  속회,  교회학교,  성가대  등을 

담당하여  성서연구와  교리  및  신학적  이해를  도와주고  일을  분담하고 

있다.  능력이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은  다른  평신도들에게  함께  참여하

여  일할  수  있도록  자극하며  목회자가  할  수  없는  돌봄과  섬김으로  신

앙적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셋째,  평신도의  왕권적  기능은  교회의  ‘청지기직’으로서  교회의  조직

과  행정  및  관리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다양한  행

정조직에  자발적인  봉사로  참여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교회의 

청지기직은  목회상담,  심방,  탁아소,  양로원  봉사,  특히  교회의  재산관

리를  목회자와  협력하여  하는  일이다.  교회의  청지기직은  자발적인  참

여와  봉사를  통해서  평신도  개인의  신앙성장과  변화뿐만  아니라  전  신

앙공동체의  부흥과  함께  선교적  사명을  함께  공유하는  일이다.

2)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목회

    평신도가  세상  속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세계  속으로  활동하시는  하

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교회는  평신도의  선

교적  자원을  동원하고  발굴하여야  한다.  동시에  교회가  평신도로  하여

금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게  하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잘  수행

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할  때에  복음의  세계화가  달성될  수  있다.

    둘째,  평신도의  흩어짐은  교회가  세상의  각  영역에  침투하는  사건이

다.  평신도는  목회자가  직접  관계를  맺고  활동할  수  없는  사회  각  분

야의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그  현장의  복음의  증거자가  될  수  있다.   

평신도는  그의  전문  직업을  통하여  세계를  변화시키는  독특한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을  감당하고  있다.37)

    이러한  의미에서  평신도는  실제적으로,  목회자와  달리  개인  구원을 

통하여  사회  구원을  성취하여야  할  또  다른  목회적  사명을  가지고  있

다.  평신도는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아,  동시에  세상에 

부름을  받는  즉  모임의  차원과  흩어지는  양면적  신앙활동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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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평신도  신학

주(End  Note)

1)  루이스  쉐릴은  전자를  은사적  목회(charismatic  ministry)로,  후자를  제도
적  목회(institutional  ministry)로  구분하고  있다.  Lewis  Sherrill,  The  Rise 

of  Christian  Education  (New  York:  MacMillan  Co.,  1944)  143.

2)  Hendrik  Kraemer,  A  Theology  of  the  Lait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8)  51.

3)  은준관,  「기독교교육  현장론」(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239.
4)  중세기에는  모든  의식의  기능은  목사에  의해서  수행되었고,  평신도는  대
성당을  건축하거나  색  유리창을  만드는  등  다른  직업상의  활동과  같은  문
제들을  도왔다.  교회의  영적이며  제사장적인  목회는  전혀  행하지  않았다.   
평신도는  개교회의  목사를  선출하거나  변직시키는  권리까지도  상실했다.   
Samuel  Macauley  Jackson,  ed.,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VI  (New  York:  Funk  &  Wagnalls  Co.,  1910)  398.   
Franklin  M.  Segler,  「목회학개론」,  이정희역(서울:  요단출판사,  1996)  110-111 

에서  인용.

5)  Wilhelm  Pauck,  "The  Ministry  in  the  Time  of  the  Continental 
Reformation,"  The  Ministry  in  Historical  Perspective,  ed.,  H.  Richard 
Niebuhr  &  D.  D.  Williams,  110.  이숙종,  “평신도를  위한  목회와  교육,”  「한

국교회의  미래와  평신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4)  356에서  인용.

6)  H.  Kraemer,  앞의  책,  61.
7)  Kraemer,  위의  책,  25.
8)  F.  M.  Segler,  앞의  책,  111.
9)  A.  H.  Newman,  "Laity,"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VI,  399.

10)  이  운동을  주도한  신학자는  J.  H.  Oldham,  W.  A.  Vissert  그리고 
Hendrik  Kraemer  등  이었다.  은준관,  위의  책,  243.
11)  우원기념사업회편,  「끝날의  창조와  사는  길:  우원  이호빈  목사의  생애와 
사상」(1992)  68-69.  이숙종,  “평신도를  위한  목회와  교육,”  위의  책,  357에서 
인용.
12)  Yves  Congar,  Lay  People  in  the  Church  (London:  Geottey  Capman, 

1957)  68-69.

13)  Kraemer,  앞의  책,  127.
14)  Kraemer,  위의  책,  126-131.
15)  독일에는  수많은  아카데미  운동으로  말미암은  평신도  운동,  영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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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37

위대한  평신도  대감독을  기념하여  세워진  윌리암  템플  대학에  평신도  사업
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평신도  훈련을  위한  기관이  세워지고,  스코틀랜
드에서는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를  세워  평신도  훈련에  임하였
고,  스위스에서는  교육학자  린더크히트  박사(Dr.  H.  J.  Rinderknecht)가  이
끄는  ‘보데른  멘네도르프’  평신도  센터,  화란에는  ‘교회와  세계’  평신도  센터 
등  세계  각처에는  온통  평신도운동의  새  바람이  일고  있다.  정성구,  「실천신
학개론」(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80)  239.  참고.  Margaret  Frakes,  "Europe's 
Lay  Academy,"  The  Christian  Century  LXXVI,  No.10  (March  11,  1959) 

288ff.

16)  그러나  심일섭  교수는  laos와  laicos를  분리해서  설명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laos는  나오지만  laicos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laicos라는  말이  피지배  계급을  지칭하는  멸시의  뜻이  내
포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래  laicos는  “무지한  백성”  “속된  물건”의 
뜻이었고,  이  말을  기독교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로마의  클레멘트  였고, 
오리겐  때  와서는  성직자에  상대되는  범주의  사람들이  곧  평신도라고  언급
되었다고  한다.  심일섭,  “현대의  평신도신학과  한국교회,”  「한국교회의  미래
와  평신도」,  330-331.

17)  Mark  Gibbs  &  Ralph  Morton,  「오늘의  평신도와  교회」,  김성한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39.
18)  은준관,  위의  책,  234.
19)  Mark  Gibbs,  위의  책,  26.
20)  심일섭  교수도  역사적으로는  laicos가  목회자와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했
지만,  신약성서에서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훨씬  이전에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의  실재를  더욱  중대시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은사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목회자와  평신도의  위치는  동등하다는  것이다.  심일섭,  “현대의 
평신도  신학과  한국교회,”  위의  책,  331-2.
21)  Alvin  J.  Rindgren,「교회개발론」,  박근원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188. 
22)  H.  Kraemer,  위의  책,  170.
23)  참고.  Robert  Rains,  New  Life  in  the  Church(New  York:  Harper  & 

Row,  1961)  17.

24)  pedagogy는  희랍어의  paidagogos에서  파생된  말로서  paidos(어린이)와 
agogos(인도자)의  합성어로서  ‘어린이를  이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희
랍  사회에서  노예나  교사들이  어린이를  학교나  기타  공공장소에  데리고  다
니는  것을  뜻한다.  장종철,  “기독교교육이란  무엇인가?”,  한국기독교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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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평신도  신학

회편,  「기독교교육」(서울:  대한기독교  교육협회,  1992)  14.
25)  andragogy는  희랍어  aner(성인)와  agogos(인도자)의  합성어로서  ‘성인을 
이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육자들은  andragogy를  성인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기술이자  학문으로  이해한다.  Gilbert  A.  Peterson,  The  Christian 

Education  of  Adults  (Chicago:  Moody  Press,  1984)  73.

26)  참고.  은준관,  앞의  책,  285.
27)  은준관,  위의  책,  285.
28)  G.  A.  Peterson,  앞의  책,  74.
29)  Alvin  Lindgren,  앞의  책,  153-181,  “교회  안에서의  창의적  소집단  개발”
을  참고.  이  그룹역학에  관해서는  이숙종  교수의  글,  “평신도를  위한  목회와 
교육”에서  정리를  했다.
30)  은준관,  앞의  책,  275.
31)  Alvin  Lindgren,  앞의  책,  134.
32)  John  H.  Westerhoff  III,  「기독교신앙과  자녀양육」,  이숙종역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92)  118-119.
33)  J.  H.  Westerhoff  III,  위의  책,  52.
34)  이숙종,  “평신도를  위한  목회와  교육,”  앞의  책,  380-83에서의  내용을  정리.
35)  이숙종,  “평신도를  위한  목회와  교육,”  위의  책,  359.   
36)  사도행전  2:42.  참고.  Letty  M.  Russell,  Christian  Education  in  Mission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7)  116.

37)  은준관,  앞의  책,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