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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을 읽고나서

1302065 박진원

탁월한 재능과 비전을 가진 현존 건축가에게 주는 프리츠커 상은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89년과 2000년에 상을 받은 프랑크 게리 Frank O. Gehry와 렘 콜하스 Rem Koolhaas는 가장 성공적이며 실험적인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건축에 대한 태도와 작업 방식, 출신배경 등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세계화 시대의 현대 건축 지형도를 가늠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조 대상이다. 미국의 서부 도시 시애틀 도심에 두 사람이 설계한 건축물이 근거리에 있다. 실험 음악 박물관과 시애틀 중앙 도서관이다.

EMP(실험 음악 박물관)는 시애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전위적 대중음악 박물관이다. 건축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알렌이다.

여러 개의 상자를 쌓아 올린 초안은 마침내 기타를 찌그린 네 개의 곡면 덩이로 바뀌었다. 파랑, 빨강, 금색, 은색의 금속으로 덮인 네 개의 덩어리 사이를 시애틀 도심을 연결하는 모노레일이 관통한다.

게리의 최고 관심사는 무미건조한 시애틀의 도시 경관에 충격을 던지는 실험적 형태다. 이국 곡면 외피에 막대한 돈을 쓰기 위해 내부 공간은 일반 사무실 건축물 보다 저렴하게 설계했다. 파격적인 외피에 집중하다 보니 로비 천장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친 노출 마감이다.

비평가들은 형태와 색상은 자극적이지만 정작 보행 공간으로부터 뒤돌아 앉은 폐쇄적 건축이라고 했으나 이러한 비평을 일축하는 사람들도 있다. 19세기 말 에펠 탑이 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기계 덩어리라고 비난 했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오직 긴 역사적 관점으로 혁신 건축의 정당한 평가가 가능 하다는 논리이다. 게리의 건축은 시개를 앞서간 진보였는지는 다름 세대가 평가할 것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거센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문제의 현대 건축이라는 것이다.

매끈한 사무실 건축물과 고풍스런 고전 건축이 도시 경관을 이루는 시애틀에서 렘 쿨하스의 SCL(시애틀 중앙 도서관) 역시 비난과 찬사의 대상이다.

워싱턴 주립 대학교교수들은 도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거대한 건축, 보행로를 압도하는 균형없는 부정형의 유리 외피 건축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개관한 2004년 한 해에만 23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대중문화 비평가 폴 골드버거는 현대도시에서의 공공 공간의 가능성과 절박성을 보여주는 이 시대 최고의 도서관이라고 극판을 했다.

구조 설계의 과감함과 혁신적 해결로 미국 구조 산업회로부터 최고상을 받았다. SCL의 형태를 촉발한 동인은 기존 도서관의 프로그램이이다.

렘 쿨하스의 설계 과정을 보면 서양 건축사에서 관성처럼 붙어 다니는 형태와 공간의 위계를 뒤엎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식과 사조가 바뀌어도 형태는 공간에 선행하는 하나의 규범이었다.

미국 건축가 루이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서양 건축사의 오랜 전통인 형태의 선험성에 반기를 든 모더니스트의 항변이다.

이런 주장은 효용ㆍ기술ㆍ이윤의 논리를 추구하는 대형 설계사무실에서 통용되는 것이지 스타 건축가는 결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쿨하스는 현대 건축의 지형도에서 게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

아시아 건축의 현안은 서양의 건축의 것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스타 건축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리와 쿨하스의 두 작품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첫째 구축ㆍ시각ㆍ공간은 상환에 따라 그 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건축의 삼각 축을 이루고 있다. 형태와 공간 중 어떤 것이 먼저이고 의도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형태와 공간, 기하와 모폴로지의 구조적 현신이 없으면 진정한 창조라고 할 수 없다.

진부한 내부 공간을 아무리 현란하게 감싸더라도 아무리 혁신적 내부 공간을 만들더라도 이를 기하학적으로 조율하지 못하면 잡종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화 건축 스타 시스템에서 한국 건축이 얻어야 하는 것은 이들의 개인적 건축 어휘가 아니라 변화와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조건과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생존과 자리매김의 방식이다.

근대 건축이 추구하고자 한 것은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혁신적 내부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에 깊은 영향을 받은 한국의 도시 건축은 역설적으로 잡종적 형태와 진부한 내부 공간으로 도치되었다.

전통 건축에 내재하는 수평적 이원성도 수직적 건축 유형으로 전환하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도시와 건축은 분리된 채 질주해 왔다.

집짓기에 급급하여 꼼꼼히 계획을 먼저 세울 수 없었다. 고시를 형성하는 원리와 건축을 만드는 원리가 교육에 따로따로 투입되어 건축과 도시를 단절하는 데 일조했다.

서양의 도시처럼 단일의 건축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한국도시에서 대안은 점의 모델일 수 밖에 없다.

거대한 면과 도시를 가르는 도로의 선, 거대 건축과 소형 건축, 상업 건축과 아파트의 양극 사이에는 좁고 위태롭지만 중간 지대가 있다.

도시의 일상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중간 지대가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있다.

공공 기관은 몇 개의 큰 기념비적 건축물을 짓는 것 보다 도시 전역에 작은 건축물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 한 필지에 공간을 집약해 공룡 건축을 짓는 것보다 여러 필지가 모인 블록에 밀도를 분산하는 것이 좋다.

막대한 돈을 들여 잠자는 문화 복합 건물이나 컨벤션 센터를 건설하는 대신 이를 쪼개어 지역과 마을 단위의 살아 있는 생활공간을 만들 수 있다.

좋은 건축은 도시에 작은 파장을 형성해 나가는 진앙이다.

이들이 연결망을 형성할 때 도시문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건축은 도시 문화를 잇는 전략적 하부 마딧점이 되고 이 점들의 연결망이 조밀할수록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도시 전체를 공공장소로 잇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근거지의 건축은 도시를 향해 닫힌 겉껍질과 울타리를 열 수 있다. 건축이 커지고 높아지고 내부 공간이 복작해지면서 제도화한 유형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내부 공간이 분화하고 수직화 할수록 건축의 외파와 구체적 기능할 가진 방들 사이에서는 전이 공간이 생겨난다. 이질적 모폴로지가 충돌하는 접점이다.

프로그램이 경직될수록 단순한 모폴로지의 결합을 할 수 밖에 없고 선축가의 선택 폭은 줄어든다.

혁신 적인 건축일수록 접점은 내부 공간 깊숙이 침투한다.

내ㆍ외부를 꿰뚫어 들기도 하고 수직적으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접점은 과일의 씨와 껍질의 중간인 육질부와 같다. 육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듯이 접점이 많을수록 건축공간은 풍부해진다.

근ㆍ현대 건축의 역작들은 대부분 진부한 틀을 깨는 새로운 접점 공간을 만들어 냈다. 파격적 실내장식이나 기이한 형태로 매체의 주목을 받았던 긴작들은 금방 시들어 갔다.

기술 혁신은 공간이 주도한다는 것을 근ㆍ현대 건축의 역사가 증명한다.

새로운 공간 창출의 의지는 기술 진보를 자극하여 새로운 구조와 공법, 설비와 시공의 혁신으로 이어진다.

건축물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확정적 영역은 된 정보를 활용하여 표준화하고 그 대신 불확정적 접점은 과감한 실험과 형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경제적ㆍ기술적부담은 확정적 영역을 표준화ㆍ정보화 하여 상쇄할 수 있다.

디자인의 혁신은 이를 뒷받침하는 한계와 가능성을 충분히 파악할 때 감행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기존의 기술을 활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도시를 향한 한국 건축의 상상력은 진부한 내부 공간을 혁신하고 잡종적 외피를 걷어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