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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1502073함소라

좋은 도시에는 다양한 삶을 수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이 있다. 그러나 모양이 다른 건축이 많다고 해서 좋은 도시가 되지는 않는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아름다운 것은 위용을 자랑하는 성당의 첨탑 뒤에 규칙적인 붉은 집이 있기 때문이며, 서울의 북촌이 매력 있는 것은 그곳에 자리한 한옥들이 질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도시가 되려면 건축의 내부 공간은 다양하되 도시의 외부 공간은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 건축은 정반대다. 저자는 서울은 한국 그 자체이면서 모든 문제와 가능성을 가진 독특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우리 도시 건축의 현상과 조건을 진단하고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는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라는 목차가 있다. 그 안에는 서울의 도시적 특징과 문제점들이 나열 되어있는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심인 도시 서울. 현재의 서울은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성장한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조선 후기만 해도 고작해야 20-30만에 불과했지만 100년도 안되어 1000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성장을 보여주었다. 물론 지금의 서울은 한양에 비하면 도시면적도 전체적으로 넓어졌지만 이렇게 급격한 고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인구의 성장은 주로 1950년 전후부터 70-80년대에 있었는데 이때 우리의 도시계획은 어떻게 하면 이 많은 인구들을 수용하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지 체계적으로 도시를 정비하지 않았고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에 따라 과거 수백 년간 조선의 중심이었던 한양의 모습은 몇 개의 궁을 제외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 서울에서는 과거 서울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 대신 서울은 층수만 높고 특색은 가지고 있는 아파트들과 노후화된 주택들만이 가득 찬 도시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하면 아마도 건물에 무수히 많은 간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 특히 새로 개발한 신생도시일수록 상가건물과 건물에 붙은 간판이 도시 규모를 짐작케 해주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간판은 시각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물의 문제다. 간판에 관한 옥외 광고물법은 행정 안전부의 소관이다. 간판을 허가 신고 단속과 같은 행정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다. 건축 도시법과 제도의 소관 부서인 국토 해양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골치만 아픈 옥외 광고물법과 제도에 관해서 행정 안전부나 국토 해양부는 관심도 의지도 없다. 건축물과 간판은 하나로 보이지만 법 제도상 별개다. 간판은 궁극적으로 도시 공간에 있어서 공공성의 문제다. 사유 영영과 공유영역의 접점이 간판이다. 간판을 개인의 치장으로 보면 사유 영역이고, 공공의 얼굴로 보면 공유 영역이다. 유럽의 도시에서 간판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문화적 성숙도가 우리보다 높아서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친 사회적 규약 때문이다. 건축물 공간과 도시 공간의 접면에 놓인 간판은 공적 얼굴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항상 왜 이렇게 하고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는데 그 해답을 이 책에서 얻었다. 근린생활시설 바로 우리가 도시에서 매일 접하는 상가건물이 이 근린생활시설이고 이 시설은 종교시설에서 단란주점까지 망라하는 잡종이라는 사실 이런 건물을 지으면서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구대로 단순한 도면을 그리고 건물의 전면은 간판이 들어오므로 대충 마무리하는 구조였다는 사실이 참 아쉽다. 요즘 들어 건축을 다시 생각하고 간판을 작게 하는 시도가 있지만 아직도 신생도시는 예전모습을 추구한다. 결국 산업화를 통한 고도성장 사회에서 부가가치를 증대하는 저속성장 사회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건물, 간판의 홍수는 여전히 계속될지 모른다. 우리나라 어딜 가나 비슷한 도시풍경이 지역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얼마 전 신문에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지키는 외국인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한옥이 너무 좋아 아예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옥의 좋은 점을 외국에 알리고 있다. 그런데 종로구청이 추진하는 북촌한옥 사업이 오히려 한옥을 망치고 있다고 한다. 느슨하고 정밀하지 못한 법으로 인해 1층은 양옥으로 하고 2층에만 한옥 식으로 지붕을 얹는 등 한옥을 정말 한옥처럼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파리는 1859년에 정한 건축법에 지붕의 경사각을 정해 도시경관을 지금까지 유지한다는 사실처럼 우리도 엄격하고 제대로 된 법을 통해 전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서양에 경도되어 있다. 의생활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것을 벗어 던졌고 식생활 역시 나날이 서구적인 취향에 길들여지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학문 역시 마찬가지여서 서구 사회, 특히 미국에 발을 디딘 이들이 선구적이라는 평을 받기 싶다. 물론 많은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게 미국이고 유럽이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조화가 돋보이는 유럽 대륙과 높디높은 건물이 뿜어대는 초현대적 분위기에 압도당하기 쉬운 미국의 몇몇 도시들은 우리의 도시들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아니 매력적이다. 어느 누가 빼곡히 들어찬 개성 없는 아파트와 덕지덕지 규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옥외광고물에 열광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서는 물론 안되겠지만 이왕이면 세련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우리의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다. 이미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의 문화를 경험했고 앞선 학문을 공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도시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괜히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건 사실이었다. 책을 읽고 많은 의문점이 남았지만, 이런 의문점은 여기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들이 함께 풀어 나가야할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