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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1402077 황찬웅
인간은 오랫동안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과 더불어 살았다. 문명의 발달 이후에는 울창한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도시계획현황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5,132만 명의 91.66%인 4,705만여 명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용도지역 상 전국토의 면적의 16.5%가 도시지역에 해당된다. 이처럼 출생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우리의 삶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 도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다. 그는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을 부제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도시와 그 속에 자리 잡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문명 이전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 속에서 생존했던 인간이,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흥미롭게 그려냈다.
도시라는 공간은 그 속의 건축물과 그 여백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가 합쳐진 것 같다. 사실 역세권에 살게 되면 오래 걸은 일은 없다. 그나마 걷는 그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전까지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역세권이 아니라면 자가용으로 출퇴근 하니 더욱 걸을 일은 적어진다. 그래서 거리는 건축물에 딸린 액세서리 같은 부차적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이상, 이왕이면 나의 생활 반경에 있는 거리가, 걷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면 두 손 들고 반길 일이다. 개성 없는 도심 속 거리에서는 그런 거리가 드문 것 같다. 저자는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에는 이벤트, 물건들, 자연환경, 사람들 등이 있다고 말한다. 즉, 거리에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고, 구경할 물건들이 많으며, 자연환경이 있고, 끝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핫한 동학사나 공주, 둔산동 등의 유명 거리는 주말 놀러 가기 좋은 곳이긴 하지만, 걷고 싶다는 욕구는 그리 생기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의 가로수 길은 걷고 싶지만, 도시의 가로수 길은 내키지 않는다. 도심의 길보다는 오히려 어린 시절 걷던 골목길이 더 정겹고 그립기까지 하다. 꼬불꼬불한 그 길에서는 사람 사는 정이 느껴졌지만, 도시의 길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욕망만이 강렬하다.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여가 문화를 바라본 내용이 참 흥미롭다. 저자는 개인의 욕망과 공간의 부족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는 노래방, 비디오방, 피시방, 룸살롱 같은 방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우리의 밀폐적인 방 문화는 우리나라 사람이 방을 좋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욕망과 공간적 제약이 합쳐서 만들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분석이 재미는 있지만 인과관계에 부합하는 과학적인 추론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난 50년 간 미국 중산층 집 크기가 두 배 가까이 커졌다는 사실을 두고 그 이유를 설명한 대목도 재미있었다. 이 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지만, 크진 집의 공간은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면, 언론 매체는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져야 더 행복해진다고 선동하고,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당연히 그 물건을 넣을 공간이 필요하기에 더 큰 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인간의 삶과 자연을 수탈하는 악순환이라고 비판한다.
왜 서양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갈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쟁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 적이 침략할지 모르니, 평소 신발을 신고 항상 적과 싸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생활한 것으로 이해했다. 침대의 사용도 이런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강수량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즉, 동아시아 사람은 쌀을 주식으로 한다. 상대적으로 밀보다 강수량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또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는 주로 집중호우가 내리는 지역이다. 따라서 우기에는 신발에 진흙이 많이 묻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신을 벗고 생활하는 건축 공간이 발전했고, 서양은 그러지 못했다고 상상한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는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도 없고,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든, 도심 속에서 살든, 우리의 생활공간이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앞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보았듯이,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시 본다면, 그 속에서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한 도시의 어느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도시를 만끽해도 좋겠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도시에 살면서 우리 도시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습관처럼 걸었던 그 길들에서 길 이상의,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도시에는 철학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움이 없다. 오직 간판만 있는 것 같다.
끝으로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가진다면, 우리에게 도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