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간에게 말을 걸다 13학번 김x각.hwp
공간에게 말을 걸다 – 조재현 지음
공간이라고 하면 수많은 단어와 표현들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오직 사람이 인식하고 느끼는 공간에 대해서 말하고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들었던 설계수업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어떠한 공간을 마주했을 때 무슨 느낌이 들 것인가, 벽을 마주했을 때, 비껴섰을 때 ,높은 벽을 봤을 때, 낮은 벽을 봤을 때, 기둥을 볼 때, 기둥이 여러 개일 때, 내가 그 안에 서 있을 때 등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에 대한 강의였다. 당시 그러한 요소들을 이용해서 공원을 만들어오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에버랜드 놀이기구를 닮은 거대한 민들레 모양으로 모형을 만들어 갔다가 그걸 보고 당황하신 교수님의 표정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이따금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책을 지은 작자도 과거의 나와 같은 실패 경험이나 공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어떠한 공간을 볼 때 마다 그 공간에 내가 있다면 무슨 느낌을 받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하고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본래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생각이나 망상을 즐겨 하는 편인 내가, 허구가 아닌 실제 공간을 마주 하게 됐을 때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느낌을 받을 것이며 어떠한 감정을 느낄까 하고 그 공간에 나를 투영해 보고는 했다. 그러나 잠시간 생각에 빠져 드는 것만으로 공간을 전부 이해하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 실감할 재주가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간이라는 건 무조건 어려운 것이고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이라는 어떤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그런 편견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장 먼저 느꼈다. 내가 과연 공간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진실 되게 공부해본 기억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을 가지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공간에 대해서 모르면 공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했다. 공간을 자신이 느낄 수 있도록 수없이 많은 모형을 만들고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그러한 경험과 자료들이 자신으로 하여금 이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공간의 유형을 분류하고 기둥의 지름과 높이에 따른 변화, 기둥과 벽의 거리에 따른 입면의 변화, 정사각형 슬라브 아래에서 기둥 하나가 만드는 공간의 유형 등등. 그가 공간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할수록 느꼈던 건 공간의 근본이 결국 ‘사람’ 이라는 확신 이었다. 공간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고 공간을 만드는 목적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을 이해하면 공간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리학, 심리학, 철학 등 취향에 맞지 않는 분야의 책도 무리하게 읽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열정이 내 가슴을 두드리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그와 같은 노력을 해보지 않고서 공간은 무작정 어렵고 골치 아픈 것이라고 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부끄러움 반 다시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 공간에 대한 흥미 반으로 책을 끝까지 읽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공간에 접붙여 설명 하다 보니 약간 낯부끄럽게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고 공감이 가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작자가 공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보편적으로 설명할 것인지 에 대한 고민이 한 문장 한 문장 마다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공간 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그 공간이 실제 건축물에, 영화에, 그림들에 어떻게 적용 되었는지도 사진과 함께 잘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여타 공간에 대해 설명한 책들에 비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공간들과 그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내게 다시 말을 건네는 듯 했다. ‘이건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니 이 공간은 내 의도와는 맞지 않는 공간이었어.’ 와 같은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올라 책을 읽다 말고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끄적이기를 반복하는 통에 책을 다 읽는 데만 5시간정도 걸렸던 것 같다. 동시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왜 옛날에는 공간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떠올렸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서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공간에 대해 막연하게만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제로 분석해서 글로 적어내자 그동안 답이 안보였던 공간이 나에게 조그마하게 대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내게 가장 부족했던 점도 확실 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공간을 해석해 내는 훈련이다. 그동안 나는 공간을 보면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물리적으로만 해석해내고 분석을 그만두었다. 공간 자체에 대한 해석은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공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실감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떠한 공간을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면서 할 생각과 그저 상상만 했을 때 의 감각이 상당히 어긋나 있었기에 공간이 그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내내 책을 읽고서 대오각성 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기는 했으나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서 여기까지 생각이 이를 수 있었던 건 작자의 열정에 동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매고 고민하던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내 문제에 대해서 무의식 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그것을 의식의 영역까지 끌고 오기에 경험치가 부족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설계 아이디어가 잘 나오고 점점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곧잘 하게 되고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시간이 흐르고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면서 무의식의영역에 있던 것이 의식의 영역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와 나를 변하도록 이끈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입학하고 본 첫 교수님, 첫 설계, 내가 겪으면서 느낀 점들이 계속해서 살아나는 느낌을 받으며 단순히 향수감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진지하게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과제로서 제출하기 위해 시작된 독서였지만 오랜만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돼서 좋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