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hwp
행복의 건축
무언가에 대하여 평을 한다는 것, 특히 누군가의 마음을 담았을 글을 읽고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을 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작가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하고 해당 책의 글감에 대한 사전 지식 등이 있어야만 평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갖추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형편없는 자격미달을 고백한다.
과제가 공지되고 건축이라는 전문 용어를 피하여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본 적이 있는 내용을 담은 서적을 구입하려 하였다. 하지만 목적한 책이 없단다. 구해 놓는다는데 마음이 급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전문적 서평이란 걸 써야 하는데, 그렇다면 대상이 되는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할 터인데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어서 서평 대상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애써 피하려 했던 알랭 드 보통의〈행복의 건축〉과 마주하고 말았다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인 웰빙 건축가? "아니다."
그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1969년에 태어났고,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가족과 함께 런던에서 살면서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다독과 역사와 철학,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통한 그는,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어휘력을 통해 일상의 풍경과 가치들을 새롭게 해석해 내는 젊은 작가다.
작가는 자신이 20대에 가졌을 법한 감정과 열망, 경험들을〈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993〉,〈우리는 사랑일까. 199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1995〉이라는 소설들에 담아 20대 중반에 발표했다. 사랑과 연애를 통한 인간관계에 대한 독특한 해석들을 담은 이 소설들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러브닥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특히〈우리가 사랑일까〉는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행복을 위한 건축에서는 집이란 일상의 증인이며, 우리와 또 다른 생명체들을 위한 삶의 물리적 공간이자, 소유자들의 정체성과 기억을 보듬고 있는 심리적 성소로서 행복에 건축이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행복에 건축이 기여한 만큼이나 건축을 위해 들이는 노력들이 의문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또 아름다운 건축을 통해 우리의 이상을 나타내고자 그것의 창조에 따르는 공포와 불편은 냉담한 외관을 통해 입을 다물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변화하고 소멸해 가는 것임을 릴케의 입장을 통해 밝히며 덧없는 아름다움에 얽매이지 말라한다.
가장 고귀한 건축물이 낮잠이나 아스피린이 주는 위안에도 못 미칠 수 있다며 존 러스킨의 입을 빌어 베네치아에서도 일상의 권태와 나태, 폭력, 범죄와 다툼은 끝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작가는 인생이 놓인 각각의 위치에 따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조롱할 수도 있으며, 무관심할 수도 있다한다.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 겉으로 보여 지는 외관의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 건축(집짓기)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있어 수천 년의 시기 동안 미학의 절대적 표준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합의들이 유사성과 통일성으로 나타났으며, 사회 변혁이 가져온 무제한적인 선택의 가능성이 완전한 혼돈을 야기했음을 이야기 한다. 독창성보다 그리스에서 탄생되어 로마에서 복제되고 발전한 고전주의라는 미학의 절대적 표준에 충실했는지의 여부, 제약에 따른 제한적 요소-기후, 재료, 비용, 여행의 불편, 지식보급의 어려움 등-에 의해 미학적 통일성이 유지되었으나 다양성이라는 변덕스러움으로 인해 매력적인 것, 미를 논하는 것이 유치해졌다한다.
말하는 건물에서는 우리가 사물에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특질을 찾아내는 재능을 가졌음을 이야기하며, 별것 아닌 형태에서도 인간과 유사점을 찾아내는 뛰어난 솜씨를 이용해 건축물을 통한 의사 전달이 역사적으로 계속 되어 왔다고 한다.
스탕달의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스타일도 다양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인간 군상들의 개인적 이상들이 물질적 매체로 변용된 수많은 건축 스타일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단다.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로서 건물(집)은, 무덤, 묘비, 영묘를 세우듯이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잘 빠져나가는 면들을 기억하려고 짓고 장식한다고 한다. 글과는 다른 기록을 통하여 세상에 우리를 알리고 싶은 갈망이 이상화 된 건축물을 짓지만 이상은 항상 같지 않고 변화해 간다. 따라서 미의식도 유행도 윤리의식도 달라지고 우리가 건물에서 발견하는 미의식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건물의 미덕을 질서와 우아, 일치, 균형, 자기인식에서 찾는다. 그는 질서를 노발리스의 “예술 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다. 균형은 우리의 정신건강이나 행복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상태이며 우아란 자신이 넘어선 난관을 강조하지 않고 겸손함을 보여줄 때 드러나며 장소와 시간이 제대로 조화를 이룬 일치감을 가져야 아름답다고 한다.
나쁜 건축이란 잘못된 설계만큼이나 심리파악의 실패이기도 함을 르 코르뷔지에가 인간의 본성을 간과해 파리의 절반이 날아 갈 뻔 했던 계획을 예로 들며 건축이 자기인식을 통한 정체성의 갖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들의 미래에서는, 들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으며, 끝났다고 한다. 인간들의 정착과 불의 사용, 농경의 시작, 도시, 택지개발, 아름답다고 우수한 건축에 대한 선입견(위대한 이들의 작품), 적당한 보상 등은 오래되고 고상한 나무들, 여우의 굴과 울새의 둥지, 냇물과 데이지 들판이 사라짐에 잠깐의 슬픔이 지나갈 뿐이라 한다.
알랭은 〈행복의 건축〉이란 여섯 개의 방을 가진 집을 지어 2006년에 집들이를 시작했다. 하얀 선이 예쁘게 장식된 아크릴 덧문을 열고 자신이 꾸며 놓은 집안의 디테일한 장식들을 봐주기를 원하고 있다.
초록빛 잔디와 어울리는 목재 벽체를 한 현대적인 2층 주택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보여주는 일상 속의 남녀에 모습에 이끌리어 세계적인 대가의 초대에 최소한의 예복도 갖추지도 못한 어리 버리함을 앞세우며 낯선 집안으로 들어섰다.
낯선 이의 초대, 건축이라는 세계를 어찌 파악해야 하나 하는 염려가 작가가 그려놓은 일상의 관찰로 풀리려는 순간 이건축가 왜 이리 머리가 뛰어난 거야?로, 어휘력은 왜 이렇게 좋지? 전문 건축서가 가져올 읽기의 어려움과는 다른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그제야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며 본인의 무식함에 부끄러움이 얼굴이 붉어졌다.
제목에서 섣부르게 짐작했던 단순한 웰빙 하우스 짓기의 전략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관찰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녹아 있는 철학서였다. 작가는 순간순간 소멸되어져 가는 인간이, 자신의 주변의 것들을 붙들어 놓기 위해 수많은 의미들을 담아 이상적인 집짓기를 하려하지만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건축물 또한 소멸되어져가는 창조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건축은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 되었을 때 각자가 갖는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에 따라 좋거나 나쁘거나 생활에 편리하거나 불편하거나 차이로 나타날 뿐이지 아름답다는 것의 절대적 표준이 있을 수 없다한다.
행복으로의 입성과 과시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어려움을, 집짓기의 어려움을 통해 밝히고 있다. 집짓기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회적 합의도 혼돈도 있었고, 인간들의 수만큼이나 드러내려는 이상과 읽어내려는 것의 다양성을 때문에 정확한 자기인식을 통한 정체성확립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공간과 희망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는 부분은 보통의 〈행복의 건축〉책을 읽으며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집의 개념이 일치하는 부분이라 몇 번을 곱씹어 읽으며 떠오른 내 유년의 추억 한 자락을 이야기하며 초대의 답인사를 해야겠다.
초등학교 시절 수선화와 넝쿨 장미를 좋아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곳에 봄이 오면 사랑채 지붕 위에 늘어져 흐드러지던 넝쿨장미와 넓은 뒷마당에 지천이었던 수선화를 볼 수 있었다. 큰 한옥이었던 그 곳엔 여러 종류의 수목과 화초들이 사계절 내내 꽃과 과일을 피어내고 맺어내고 있었다.
그 곳의 큰고모님네 가족들은 아빠의 재혼으로 외톨이된 내게 든든한 가족이었고 꽤나 멋진 집을 우리 집이라고 큰소리 낼 수도 있게 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곳을 집이라 여기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아빠와 살던 내 집이 있던 곳으로 달아났지만, 어렵게 도착한 서울의 집은 이미 내 집이 아니었다.
다시 돌아 온 그 한옥도 내 집이 아니긴 마찬 가지였다. 꼭 닫힌 아홉 살 가시내의 마음에 집이 되어준 건 작은 꽃밭 하나. 앞마당의 화단 한 구석의 땅을 파고 수선화와 넝쿨장미를 옮겨 심고 돌들을 주워다 다른 화단과 내 꽃밭의 경계를 세우고 누군가를 졸라 철근 파이프를 세워 넝쿨장미의 길을 만들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몇 해의 봄과 여름을 보내며 정성을 들였다. 학교만 끝나면 내 꽃밭에서 '아빠하고'로 시작되는 동요(꽃밭에서)도 부르고 동시도 지으며 마음의 내 집에 숨어 지냈던 나의 유년이 생각나는 초대였다.
다시 생각해도 당시의 내 집은 내 마음의 바램이 심어져 있던 작은 꽃밭이었고, 지금도 가끔 꿈 속에서 내 어릴적 그 꽃밭으로 달려가 아빠하고 나하고를 부고 있다.
일상에 대한 소묘와 역사와 문학적 지식과 철학적 성찰을 녹이고 흑백사진을 곁들인 매력적인 에세이 한 편을 세 번을 읽어 냈다. 처음에 산책처럼 흥미롭게 접근 하려했지만 어렵다. 딴에는 다시 한 번 꼼꼼히 뜯어 읽어 보지만, 철학적 소양의 부족과 질 얕은 사유 능력이 내린 결론 또 어렵다.
비평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으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