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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추천 도서 독후감
-‘나는 건축가다’를 읽고서
1502029 박지현
건축학과 추천 책 목록에는 좋은 책이 많아보였고 읽어보고 싶은 책도 여럿 있었지만, 두껍고 깊이 있는 내용이고 두께를 봐서 단기간에 읽기 쉽지 않아보였다. 따라서 가장 흥미를 끄는 거장이라는 키워드에다 그들과의 대화라는 주제까지 더해 20인의 거장을 인터뷰 형식으로 써내려간 책인 ‘나는 건축가다’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러 건축가가 나와있었기에 취사선택하여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그랬기에 더욱 집중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장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과 범접할 수 없는 느낌에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줄곧하는 생각들과 외국인 건축가가 줄곧 하는 생각, 즉 포커스가 태생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특히 많이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합리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하나로 모아지는 정답은 불변하다는 것도 느꼈다. 아직 건축에 대해 말하기엔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많이 없기에 나의 생각들이 마냥 틀렸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있었다. 한국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아직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건축의 포커스가 틀렸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문화상 그들과 같은 생각이 받아들여져 그러한 건축을 하게끔 복돋아주기엔 역부족인 것인가 하는 생각들도 들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랐고 책도 많이 읽지 않았던 탓에 교육과정 속의 건축을 위주로 접해왔다. 아버지는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같은 건물을 주로 설계하시는 건축가이시기에 건축에 대한 내 생각은 자유롭기보다는 최소한의 돈과 작은 땅에 효율에 효율을 더해야하는 빡빡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대부분 건축학과를 졸업하여 박봉을 받아가며 힘들게 노력하는 삶이라고 느껴왔는데 책을 읽었을 때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랐기때문인지 굉장히 여유로운 생각, 넓은 시야를 갖고 있어 놀라웠다. 마치 나는 그들에게서 본받고자 했는데 이질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구조의 아파트에 살며 단지 문화 속에서 학원을 다니거나 놀이터에서나 놀던 나의 삶은 그 시절 분명히 재밌고 많은 배울 점이 있었을지라도 재미없게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질감 이외에도 멋있고 부럽기까지 하고, 본받고자 하는 생각과 희망을 얻기도 했다. 우선 노먼포스터의 장에서는 노먼포스터가 비행기 조종하여 설계할 도시를 내려다보는게 취미라는 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이기도 했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영국 출신의 노먼 포스터는 스위스에서 자신의 손자들이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이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삶이 좋다고 했다. 내게 그의 이러한 이야기들은 내가 세상이라고 생각한 나의 세상이 얼마나 비좁았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또, 작가가 러시아나 중동같이 비민주정권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때, 비민주정권의 급진성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서양이나 유럽이 10년 걸릴 결정을 그들은 10개월 만에 한다는 것이다. 지인의 성향을 말하듯 어떤 정권을 경험하고 그들에 대한 평을 내놓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세계를 무대로 하는 모습이 멋졌다. 물론 그의 이런 면들이 내게 이질감이나 선망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노먼포스터는 결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단순 노동자였고, 노먼포스터는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절 도서관에서 건축도서를 무척 사랑했는데 그 애정이 마치 비밀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의 넓은 시야와 현재의 위치는 모두 책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자극했고 동시에 희망 같은 걸 얻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그의 사고방식은 지구를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석유 없는 세상과 친환경적인 건축을 몹시 추구하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했지만 어쨌든 대단한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프랑크 게리와의 대화에서는 그의 조심스럽고 사려 깊지만 양보 없는 고집 같은 것을 느꼈다. 프랑크 게리는 다소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고 남들이 자신을 괴짜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동시에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했다. 이런 그의 성향을 그의 건물도 쏙 빼닮았다. 그의 건축은 아주 강렬하고 개성적이지만 주변에 피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주변 건물과 함께 누리려 한다. 뒤셀도르프 프로젝트에서 라인강 뷰를 확보할 때, 주변 건물에서도 라인강이 잘 보이도록 커다란 하나의 타워가 아닌 작은 3개의 타워로 계획했던 것이 그 예라고 했다.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건축물은 한 인간의 창작물이기에 그 인간의 자손과 같이 성격, 모습, 가치관을 닮는 것 같다. 각 나라와 각 지역에도 문화가 있듯이 건물이라는 구역도 하나의 세계이고, 그 건물이라는 세계가 품고 있는 문화는 건축가의 가치관의 확장이라고 느꼈다. 또 인상 깊었던 점은 프랑크 게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는데,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의 낮은 가격의 관람석도 똑같이 보고 느끼고 즐길 권리가 보장되어야한다며 자신의 건물은 민주주의적이라고 했다. 단순히 이용자의 편리함을 향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신념과 같은 고차원적인 단계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대단했다. 반면에 프랑크 게리에게서 어떤 오만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건축물들은 개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조화로움을 대규모의 평범함이라고 칭하면서 똑같이 수준을 낮추는 것이라고 했고, 보잘것없는 건물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세상은 다원주의를 추구해야한다면서 본인의 독특한 건물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것 같아 그 자신이 다원주의에 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고집이 지금의 그의 멋진 건물들을 낳았고, 우리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주었다. 이런 날선 모습은 힘든 경쟁사회인 건축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버리지 않기 위한 필연적 산물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프랑크 게리는 노먼 포스터보다도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가난이 그에게 건축의 쿰을 키워준 것이라 했다. 젊은 시절 만났던 건축가가 큰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사령관같은 모습을 보며 건축은 ‘힘’이라고 생각했으며, 가난했던 그 시절의 프랑크 게리에게는 힘이 가장 중요했다고 했다. 생각보다 프랑크 게리에게 건축은 노먼 포스터만큼 애정 어린 출발이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노먼포스터가 즐기면서 연애하듯 건축을 한다면, 프랑크 게리는 비교적 괴로운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건축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프랑크 게리의 몇 가지도 고백에서 느껴졌는데, 건축을 권력으로 보고 자신의 직관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지독한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악몽과 지독한 불안감 속에서 지내게 되지만, 그는 이것이 건전한 기분이라고 하였다. 자세히 건물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려고 집착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집착으로 건축주에게 수백 개의 디자인까지 제안해봤다고 했다. 또 프로젝트를 다 끝내고 나서는 성취감에 젖어있거나 해방감을 느낄 만도 한데, 그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온다고 하였고 이를 산후우울증이라고 표현했다. 창작의 고통을 정통으로 맞는 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하얗게 불태운다는 표현이 그에게는 딱 맞는 듯 했다. 그의 오만은 당연한 거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설계 프로젝트에 열심히 임했던 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면, 그의 고통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는데, 아마 프랑크 게리는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으나, 그가 느끼는 성취감과 행복은 더욱 클 것이라고 느껴졌다. 어떤 것에 미쳐있는 삶은 가히 숭고하고 행복한 삶이리라 생각한다.
또 자하 하디드의 장을 관심 있게 읽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자하 하디드는 세계를 무대로 한 유일한 여성 거장이라는 것이고, 또 프랑크 게리와 추구하는 건축형태가 비슷하다고 느껴져 흥미로웠다. 그녀는 프랑크 게리의 젊은 시절과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 자신의 건축물이 깨진 도자기 같다고 혹평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그들에게 건축을 의뢰하는 고객은 적었고, 게리의 예술가 친구들이 게리를 위로해줬다는 것을 아직도 마음에 새기고 있듯이 그녀 역시 당시의 받았던 몇몇의 위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평범치 않은 자신의 창작물을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때, 남의 평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기다린 것이고, 그 길을 부단히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 격려와 위로에 매달리기도 하고 오기로 마음을 다잡기도 하며 여러 방면으로 스스로를 응원했을 것이 느껴졌다. 거장이 처음부터 거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자하 하디드가 프랑크 게리와 공통적인 것은 또 있었다. 프랑크 게리는 동료들에게 소외당하기도 하고 현대 건축가들에게 비판 받는다고 했는데, 하디드 또한 타임즈에서 영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건축가로 선정될 정도라고 했다. 하디드의 기상천외한 건축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탓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마루와 벽체, 천장이 분명히 나뉘는 것에는 지금까지도 거의 관심이 없다고 하니 그 고집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프랑크 게리가 건축에서 객관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자신의 직관에 의지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고 했는데, 자하 하디드에게서도 비슷한 면이 느껴졌다.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직관과 논리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었다. 둘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 큰 틀로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남들의 시선 즉 객관성은,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지금껏 그래왔기에 괜찮다는 예측 가능함, 안전함이다. 하지만 그들은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참신함과 아이디어에 끊임없이 다가서려 했던 것이고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자하 하디드는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평범함이나 역사를 얕보진 않았다. 역사는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옛날의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우리에게 유익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자하 하디드 자신의 건축물의 자유로운 흐름은 아랍의 글씨체를 닮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딱딱한 한글이 우리 건축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선시대의 한옥은 당시 쓰던 한문과 닮은 느낌을 받았다. 객관성은 어찌보면 그저 우리가 중요치 않게 생각했던 삶의 일부에서 전이되는 것뿐이라고 생각됐다. 프랑크 게리가 말했던 디자인에서 적용할만한 객관성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도 어느정도 받아들여졌다. 나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면과 내가 추구하는 생각들이 아이디어를 낳고 건축물이 되어 또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은 참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에서 희망을 얻고, 대응 능력을 알게 되고, 건축에 대한 태도를 알게 되었다. 안다는 것 그 이상으로 내가 이들에게 배우고 더 나은 건축물이 태어나게 하려면 책을 더 많이 읽고 내 삶의 일부가 되게 해야겠다고 느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