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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향하여

1402062 건축공학과 정민종

르 코르뷔지에를 이해하는 것은 근대주의 건축을 이해하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가 현대의 메마른 도시와 그 속의 건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기에 그가 한편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부작용 속에서도 그가 근대 건축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건축가임과 동시에 현대건축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가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엔지니어의 미학과 건축은 함께 병진하는 것이지만 건축은 퇴보의 일로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휴식을 위한 장소인 주거는 인간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귀중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점점 가축화 되어가고 있다.`는 극단적인 표현과 함께 가치 없는 주택에 살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라고 사람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대에 뒤떨어진 도구는 팽개쳐 버리고 새로운 도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초 사회 문화의 급속한 발전과 변화 속에서 건축분야는 고전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건축가들이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혁명적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건축은 진보의 행진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볼륨, 표면, 평면이라는 세 가지의 경각 요소를 건축가에게 제시하고 있다. 볼륨에서 그는 엔지니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데 우선 건축은 빛 속에 있는 볼륨들의 유희이고 우리의 시각은 그러한 볼륨의 형태를 지각하도록 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순수한 기하학적인 형태가 아름다운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창조력이 고갈되어 기본 볼륨들에 대한 개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엔지니어들이 그들의 수리적 계산을 통해서 쇠퇴해가는 건축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경각 요소인 표면 역시 볼륨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건축가는 볼륨을 감싸는 표면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오히려 표면이 볼륨을 장식하고 흡수해버리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하학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경각 요소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평면인데 그의 말대로 볼륨과 표면은 평면에 의해 결정된다. 평면은 건축의 기본으로 평면이 없이는 어떠한 표현도 감정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고 적극적인 상상력과 엄격한 훈련을 요하는 것이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이요, 건축은 공간이며, 폭이며, 깊이이며, 높이이며, 체적이며, 동선인 것이다.

그는 기선, 비행기, 자동차를 보이지 않는 눈이라는 제목으로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수 십 년간의 장식적 예술이 득세하는 시대 상황에서 장식의 부활보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간 활동의 새로운 요소로서의 기계에서 사고 체계의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책을 쓴 그때는 그 당시 기존 질서와 신기술 사이에서의 심한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건물이 얇은 유리와 벽돌을 통해서 지어 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법령에 의해서 이전 시대의 방식대로 두꺼운 벽으로 지어지고 있었고 그는 이를 관습에 의해 건축이 질식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옛날의 생각에서 벗어나 기선이 운송을 위한 기계라는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택은 그 속에 삶이 영위되는 기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핵심이 되는 것은 주택 문제이고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비행기가 날기 위해 설계되고, 배가 물을 건너 화물을 나르기 위해 설계되듯이, 주택도 특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기계처럼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대 건축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다른 분야는 끝없는 진보를 거듭하며 미래에 대하여 열성적으로 생각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 반면에 건축 분야만이 유일하게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를 참고하고 또한 그러한 것이 대접받고 있다고 말하며 서글프다는 표현으로 건축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말은 근대 건축에 있어서 건축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상징적 의미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가 말하고 있는 기계는 건축의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 그리고 형태와 정신적인 측면 모두를 포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정신주의적 상태 속에서 기술과 건축 그리고 엔지니어와 건축가가 은유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을 만드는 정신은 그 시대 과학 기술의 집성체인 비행기, 기선,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계를 만드는 정신과도 일치하며, 나아가 파르테논을 만든 정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비행기와 같은 기계만이 기계인 것이 아니라 놀라울 만큼 정확한 기하학적 정신의 산물인 파르테논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기계라고 볼 수도 있다 것이다. 건축가는 과거의 진부한 의미의 건축가가 아니라 사물을 기하학적 정신에 입각하여 새로운 엔지니어의 눈으로 새로운 시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그의 건축적 미학기계미학이라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미학은 단순한 뜻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당시의 새로운 근대건축의 중요한 측면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정신이라는 핵심적인 사상, 대량생산형 주택이 인간의 생활을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에게 새로운 정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계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새로운 기술은 주택 그리고 새로운 정신과 하나로 이루어 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주택은 단순히 물리적인 주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 정신을 생산하는 기계였고 그래서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한 것에는 당연히 그 시대의 상황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건축을 포함한 모든 산업에 있어서 새로운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 철, 유리, 콘크리트와 같은 신소재가 등장하였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방식의 원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구조방식을 가능케 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나타난 것이고 정체된 건축가의 상상력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아가 건축을 예술로 보기보다는 과학 혹은 기술로 인식하게 되었고 건축에 있어서 기능성, 그리고 경제성과 상반되는 장식은 당연히 배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양식이란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건축물에 있어서 디자인 원리들을 퇴보시키고 기능 또한 도구적인 의미로 바뀌어 나가게 되었고 결국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란 개인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생물체와 같아서 각 개개인의 삶의 질이 그 사회의 질을 결정한다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대량생산형 주택에서 각각의 독립주택의 공간요소가 반영되어서 여가 생활을 위한 공간이 모두 마련되었다. 그의 집합주택 개념은 각각의 가족생활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동시에 외부에는 충분한 위락시설이 있는 집합 주택이다. 이러한 생각은 근대건축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개념이었고 개인의 공간이 강조된 집합주택은 도시주택의 기본형으로 정착되어서 20세기 집합주택의 특징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