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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독후감

과 목 명

건축설계C1

학 과

건축학부

학 번

1402012

성 명

김준영

담당교수

천용수 교수님

제출일

2018년 4월 10일

건축이 시작된 건 언제부터일까?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 생존에 위협적인 추위나 날씨, 맹수 등을 피하고자 동굴과 같은 피난처를 찾아야 했던 이전과는 달리 알맞은 위치에 인공적인 주거공간을 만듦으로써 정착 생활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획기적인 것이었다. 1학년 2학기, 과제를 준비하면서 이 질문을 여기저기 하고 다녔던 내가 들은 것이라고는 대부분 움집이었는데, 그 중 독특한 답변 하나가 있었다. 바로 고인돌이었다.

그 사람이 말하길, 물론 건축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본다면 건축의 가장 근본적 요소인 주거에 충실한 움집이 맞는 대답이겠지만, 지금 우리가 배우는 건축을 생각하면 단순한 주거를 떠나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고인돌이 더 어울리는 답이다라는 이야기였다. 이 답은 정답 여부를 떠나 당시 건축은 단지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으면 끝이다라는 1학년에 불과한 내 어린 생각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한층 진지한 태도로 건축에 임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복학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시기가 찾아오고, 바로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내게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그 큰 도움이 비록 구체적으로 예를 들기에는 모호한 감이 있지만, 잠시 간의 건축 여행을 떠난 것처럼 뜻깊은 시간을 선사해줬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그 10시간 남짓한 그 뜻깊은 시간에 대해 일기와 같이 있는 그대로 써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책이든 처음 접하게 되면 그 제목으로 만든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습관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고질병인 의지박약을 앓고 있는데, 책을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종의 목표를 만들어 고쳐보려는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건물은 어떻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권력과 욕망은 과연 어떤 형태로 그 안에 녹아 들어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서 책장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제는 미처 1부를 반 이상 읽기도 전에 풀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답변 속에 담겨 있었다.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고인돌.의미와 메시지는 고인돌이 가진 모든 요소에서 직결된다. 우월함을 근본으로 둔 권력의 원리는 다른 권력가들보다 더욱 우월해지기 위해 경쟁적으로 그 크기를 키우도록 부추겼으며, 사후에까지 권력을 떨치기 위해 자신을 기릴 무덤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권력과 욕망으로 고인돌이라는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권력과 욕망이 결합한 이 특성은 마치 수학 공식과 같이 후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 진시황의 묘 등 세계 각지에서 같은 원리로 나타나게 된다. 권력의 또 다른 대표급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저택이나 성 또한 그 맥락을 함께하기는 마찬가지인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편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물음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되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내용과는 너무나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탓에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연관 지어보고자 이번엔 총 2부로 구성된 책의 내용 중 1부를 장식하고 있는 백화점, 학교, 병원 등으로 눈길을 돌렸다. 백화점은 소비자들에게 각종 사치품을 판매, 상업적 이익을 위한 욕망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두 곳의 경우는 어떨까? 학교는 기본적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공간이며, 병원은 질병이나 상해를 당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 두 공간의 성격에는 다른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복지 수준을 향상토록 만드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사치스러운 고인돌이나 백화점 있는가 하면, 학교, 병원 등 이타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공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연스레 아래와 같은 결론으로 이어졌다.

욕망은 선함과 악함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의 감정이며, 건축에서는 공간의 목적, 성격이 곧 건축주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러한 결론을 얻은 이후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각각의 공간이 어떻게 그런 형태를 가졌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내가 다행히 옳은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도 독자가 이렇게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가길 바랐던 것인지 다시 펼쳐 본 1부는 인간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건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앞서 언급한 백화점, 박물관, 아파트 모델하우스 등을 이루고 있는 각 요소에 대해 일목 조연하게 해설하고 있었다. 그 중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첫 번째 부분인 감시와 훈육의 건축인데, 감시라는 키워드 아래 학교와 병원, 감옥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세 공간이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다는 신선한 내용이었다. 교사와 학생, 의사, 간호사와 환자, 교도관과 죄수는 모두 감시(훈육)과 피 감시(피 훈육)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관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파놉티콘의 원리를 애용하게 된다. 여기서 파놉티콘의 원 란, 피 감시자가 현재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아닌지 모호할 때 피 감시자는 타율을 스스로 내재화해 자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며 공간이나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에서 파생되어 나온 합리적인 결과물이며 건축가의 일은 그 요소를 조율해 누군가의 욕망을 건축물로 고스란히 표현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느덧 1부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즈음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130여 페이지의 1부를 모두 읽고서 잠시 휴식을 가지는 동안 문득 1학년 때 교수님께서 내가 제출한 모형의 벽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일일이 이유를 물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부여했던 의미들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모두 부정당하며 칼질까지 당했는데, 당시 이틀 밤을 새워가며 온갖 애착을 쏟았던 모형이었던 탓에 교수님께 반항하며 대들기까지 했다. 결국, 스스로 잘못된 것을 깨닫고 사과를 드리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 일이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매몰찼던 그 크리틱이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건물을 전부 책임져야 할 건축가로서 의미와 이유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엄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하고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달콤한 휴식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1부가 흔히 알고 있는 공간을 예시로 들어가며 설명하는 내용이라면 2부는 공간과 건축에서 전해져 오는 메시지 그 자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음, 오감, 권력, 빛, 불이라는 5가지 요소와 관련된 건축적 메시지 중 특히나 눈길이 가는 것은 오감이었다. 오감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5가지 감각인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을 말하는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공간과 건축을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느낀다? 4D 영화관이 아닌 이상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으로 공간을 느낀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려 할 때 즈음 주변의 풍경이 곧바로 답을 알려주었다. 온갖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공간 속에 우드락 접착제 냄새가 코끝을 찌르며 어디선가 날카로운 무언가 스티로폼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설계 때문에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 건축학도라면 어딘지에 생각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이곳이 설계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는 매체는 시각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오감으로 접하는 공간은 더욱 친근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한편 반대로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비에 젖은 운동장, 시끄러운 도서관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모두 평소엔 사람들로 붐비는 공간이지만 위와 같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끊기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예시들로 알 수 있듯 음식과 같이 공간도 그에 맞는 풍경, 소리, 냄새, 촉감이 존재하며 인간은 그 모든 요소를 보고 들으며 맡고 손발로 만지고 느끼며 공간과 교감한다. 이 교감을 통해 공간의 이해도나 편안함을 증대시키기도,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만큼 항상 공간의 성격에 맞도록 이를 올바르게 구성,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책에는 처음 접할 때 만나게 되는 여는 글(Prologue), 그리고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마중을 나오는 닫는 글(Epilogue)이 있다. 이 책도 역시 여는 글과 닫는 글이 있으며 모두 작가가 직접 겪은 일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을 덮고서야 여는 글의 길 잃은 아주머니 일화에 담긴 건축적 메시지가 닫는 글의 것에 못지않은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였을 땐 보이지 않던 메시지의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내는 나를 보며 새삼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중 특히나 마음에 든 메시지를 뽑아보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깨닫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가장 잘 쓰인 건축 책은 바로 내가 지금 앉아있는 건물이며, 가장 훌륭한 스승은 그 건물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건축은 미적 감흥을 주기 위한 오브제가 아니라, 기능과 구조를 통해 인간에게 실용성을 주기 위한 도구이다. 그 기능과 구조가 충일할 때 나오는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길고도 짧았던 10시간의 여행이 막을 내렸다.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책을 읽는 데에 벽을 쌓고 살아온 내가 중간의 휴식시간 이외에 쉽사리 지루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2부 중반부인 빛과 건축 부분부터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꽤 애를 먹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건축의 새로운 면을 배워가는 나로서는 그 시간마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4가지의 개념과 위 2개의 작가의 메시지는 건축가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간직하리라. 아마 작가는 나처럼 건축이라는 방대하고도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위해 작은 이정표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금요일 건축설계 수업을 마치고 맞는 꿀맛과 같은 이번 주말, 여는 글에서 작가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것처럼 늘어지는 이불 속 대신 줄곧 설계실에만 눌러 앉아있던 몸을 끌고 카메라와 함께 거리로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