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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의 공간론과 나의 건축]

저자 : 박영욱 . 출판사 : 향연

1802019 남벼리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항상 생각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은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건축은 예술이기에 아름다워야 하지만, 동시에 예술이기에 그것이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나갈 건축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건축되길 바랐고, 그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해오고 있었던 중 이 책에서 소개해 준 메를로퐁티의 현상적 공간론에 감명을 받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메를로퐁티는 공간은 기하학적 공간 이전에 체험된 공간이 선행한다.고 말했다. 기하학적 공간 창출에만 주목하지 않고 근원적인 공간인 일상적 체험의 공간 창출에도 주목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메를로퐁티는 객관적 세계보다 체험의 세계가 더 근본적이라고 서술했다.이는 메를로퐁티가 체험을 얼마나 중요시하였는지 보여주는 문장이다.

또한 메를로퐁티는 지각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 아닌. 개인들에게 내재된 집단적이고 간주간적인 체험이다. 말하자면 자신과 함께하는 존재들 혹은 같은 상황을 이루고 있는 이웃 사람들과의 공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공간은 시각적 경험이 아닌 몸을 바탕으로 한 지각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고정된 공간이 아닌 의미 있는 공간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둔다. 인간의 지각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개 되어야 한다.’-

메를로퐁티가 우리나라의 도시 주거문화를 보게 된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우리나라의 주된 도시 주거공간은 아파트이다. 아파트는 원근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고층 아파트는 천상의 시선,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공간을 일상생활의 경험, 몸의 체험으로부터 분리시켰다.또한 아파트는 내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에 대해 관심을 끄게 만들고 외부환경과의 접촉을 단절시킨다. 이는 지각으로 향하게 하는 몸의 경험을 개인적인 체험, 혹은 자신과 가족의 체험으로 한정시킨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이것은 좋은 건축이 아니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좋은 건축은 지각으로 향하는 몸의 경험이 긍정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나는 어릴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시골에선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어르신들은 나와 나의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마을에 경사가 있으면 같이 음식을 나누었고, 마을에 슬픈 일이 있으면 모두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건넸었다. 시골의 경험은 나에게 아름다운 몸의 경험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시골에서의 지각은 나눔이었고, 도시에서의 지각은 이익이었다.

하지만 시골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인프라가 한없이 부족하고,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 특히 서울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예술적, 문화적인 몸의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골의 예술적 공간은 전멸에 가깝고, 시골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예술적 경험은 간접적인 방법 위주의 경험밖에 할 수 없다.

4년 전 홍성에서 1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의 집들을 살펴보았다. 새롭게 지어진 몇 개의 집들을 제외하고는 그 형상이 해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통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적인 요소를 함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심한 경우 지붕이 뚫려있으면 플라스틱을 덧대어서 재료의 통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해두었다. 그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집은 생존을 위한 공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고 그 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또한 집을 생존을 위한 공간으로만 지각할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집은 빈 공간이 아니라 요리, 독서, 수면, 놀이 등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신체와 외부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라고 서술하며 건물 자체가 건축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은 수많은 몸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이러한 몸의 경험은 다시 지각의 형성에 관여하게 된다. 좋은 집에 산다는 것은 긍정적인 몸의 경험을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골의 건축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이고, 도시의 건축이 아파트에서 탈피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일상적 체험을 느낄 수 있는 곳, 그 체험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웃과 공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마을 재개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내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지각의 공간이었던 마을을 동시에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그 집에서 거주하는 주거인의 체험을 변화시키고, 그 집에서 자라날 아이들의 체험을 변화시킬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체험의 변화는 지각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밝혔고. 이러한 지각의 변화는 그 공간 속에서 거주하는 주거인들의 삶을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그 변화가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건축가가 되고 싶다.

이 책은 나에게 공간의 중요성과 공간을 둘러싼 체험이 어떤 식의 지각의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건축의 세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배워야할 분야가 많다.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하고 인식(지각)의 범위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