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은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이였다
.
사울의 죽음과 함께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를 얻게 됨
본문은 다윗이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 의 왕이 되었음을강조
‘온 이스라엘’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만장일치로 다윗을 지지
,
온 백성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함을 내포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선포한 다윗의 왕권에대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
(3b절)
다윗은 사울과는 달리 처음부터 여호와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줌
역대기 저자는 다윗이 헤브론에서의 통치
,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통치에 대해 기록하지 않음
역대기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을 찾아가 왕으로 추대했다는 사실
역대상
11:1-9
‘온 이스라엘’ 처음부터 다윗과 함께하였다
.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할 때,
다윗이 성전건축을 지시할 때
, 다윗의 인생의 마감 직전 드린감사의 기도
즉 온 이스라엘은 다윗의 전 생애 동안 함께 했던것
, 다윗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통치를 시작하였고
, ‘온 이스라엘’과 함께 인생을 마감함
‘온 이스라엘’ 사상에는 역대기 저자가 살고 있던 포로 후기 시대의 간절한 희망이 투영됨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다윗 왕조의 새로운 메시아적 통치자는 반드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한다는것
‘온 이스라엘’은 다윗 왕국의 통일성과
완전성을 강조하는 단어인 셈
‘온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다윗은 왕이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소유
다윗은 사울 시대에도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권력자
(2a절)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임명된 자
(2b절)
다윗은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음
, 쌍방간에 신실한 의무를 수행하기를 약속 (3절)
다윗은 전 생애 동안 ‘온 이스라엘’의 선한 목자가 되어 그들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림
그가 통치하는 동안 언약을 해지할 어떠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음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었기 때문
다윗은 왕이 된 직후 ‘온 이스라엘’함께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큰 전투 없이 정복
(4-9절)
다윗은 수도 예루살렘의 방비를 강화하는데
, 요압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
요압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첫 돌격을 주도한 인물
(6절)\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성을 쌓다가 남겨놓은 예루살렘의 상당부분을 중수함
(8절)
예루살렘은 개인의 땅이 아닌 ‘온 이스라엘’에게 속한 도시가 됨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
이후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수도
, 제의의 중심지가 됨
다윗은 위대한 왕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제사장이 됨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정치적 통치자이면서
, 동시에 예루살렘의 제의 제도를 만든 창시자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다윗 성이라고 부르기 시작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면서 다윗의 왕국은 점점 강성해짐
다윗은 인간적인 욕심과 계략을 통해 사울을 밀어내고 왕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윗을 왕으로 선택
,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능력과 지혜를 주심
그래서 시간이 거듭될수록 다윗의 나라는 강성해짐
온 이스라엘의 유능한 용사들이
다윗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였다
.
다윗을 도와준 ‘온 이스라엘’의 유능한 용사들의 명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도록 ‘힘껏 도와준 자들’
12장 : 다윗을 도와준 열두 지파 출신 용사들의 명단을 제공
이 명단들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 의 용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가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지도력은 어더한 의심도 받을 수 없던 상황인 것
다윗 왕권의 정통성은 처음부터 확고히 수립되었고
,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용사들로부터 존경과 순종을 한몸에 받는 왕이었던 것
역대상
11:10-47
10절은 다윗을 도와준 전체 용사들의 성격을 소개하는 제목과 같은 역할을 담당
다윗을 도운 용사들은 조금씩 서로의 역할이 달랐던 점을 확인 할수 있음
어떤 용사들은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큰 도움을 주었고
, 어떤 용사들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기 이전뿐만 아니라 왕위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큰 용사로서 사명을 감당함
‘야소브암’은 삼십 명의 용사의 우두머리로 창으로 적
300명을 죽인 용사 (11절)
‘엘르아살’은 세 명의 용사 중 하나로 바스담밈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 침
(12-14절)
‘삼십 명 우두머리 중 세 명’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블레셋 군대를
돌파하면서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들을 길러온 자들
(15-19절)
하지만 다윗은 그 물을 세 용사의 ‘피’로 생각하고 마시는 것을 거절하고
, 여호와께 드림
다윗은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베들레헴의 물을 사람이 받기에는 너무 귀중하고
고귀한 제물과 같이 생각했던 것
베들레헴의 물을 떠온 사건은 다윗을 향한 용사들의 완전한 헌신을 보여주며
,
다윗이 용사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얻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
요압 장군의 동생 ‘아비새’는 세 명의 용사 중 우두머리로 창을 휘둘러
300명을 죽인 능력의 용사 (20-21절)
‘브니야’는 용감한 사람으로 모압 사람 아리엘의 두 아들과 사자 한 마리와
키가 큰 애굽의 용사를 죽임
(22-25절)
막대기로 애굽의 거인 장군을 물리친 브나야는 물맷돌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
다윗은 브나야의 용맹스러움을 인정하고 그를 시위대장으로 임명
아비새와 브나야의 영웅적인 모험은 다윗을 지지한 용사들의 위대함을 극대화시 키는
작용을 함
그 외에 다윗과 함께했던 ‘큰 용사들’이 매우 많았다
(26-47절)
이스라엘 전역으로부터 힘세고 능력 있는 많은 용사가 다윗에게로 모임
사울이 쇠퇴하고 다윗이 부상할 때에 유능한 용사로서의 모습을 발휘하고
,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을 인식하여 그에게 자신들의 삶 전체를 맡긴자들
외국인 용사
암몬 사람 셀렉
(39절), 베롯 사람 나하래 (39절), 이델 사람 이라와 가렙 (40절),
헷 사람 우리아
(41절), 미덴 사람 요사밧 (43절), 아스드랏 사람 웃시야 (44절),
디스 사람 여디아엘과 그의 동생 요하
(45절), 마하위 사람 엘리엘 (46절),
모압 사람 이드마
(46절),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 (47절),
이들 모두 특정 지명과 연결되어 소개되었는데
,
이 지명들은 모두 이스라엘 영토 밖에 있는 외국 지명들
이 명단은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
주변의 여러 외국 사람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음을 말해줌
그들은 고국을 떠나 다윗에게로 와서 다윗 왕국을 빛내는 용사가 된 것
외국인 용사들의 명단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주변 국가들도 다스리는 열방의 통치자임을 나타냄
18-20장에서 다시 한번 세계 열방을 통치하는 다윗의 모습이 소개됨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절대적인지지 가운데 왕이 되었고
, 왕이 된 후 곧바로
‘온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정복함
. 하나님은 다윗을 돕는 유능한 용사들을 보내주셔서
다윗이 왕국의 일을 혼자서 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헌신적인 인물들을 보내주셨다
실력이 출중한 세명의 용사
, 목숨을 걸고 다윗을 위해 헌신하는 삼십 명의 용사,
전국에서 몰려든 실력있는 용사
, 주변의 열방에서 온 용사들마저도 다윗의 지지가 됨
용사들의 도움으로 다윗 왕국은 튼튼한 왕국이 될 수 있었고
,
그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도 정복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은 다윗의 왕국을 강건하도록 만들기 위해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신 것
다윗 왕국은 완전성과 탁월성을 갖춘 완벽한 왕국
다윗에게는 협력자들이 많이 있었다
.
12장은 11:10-47과 같이 다윗을 도와 왕국을 건설한 용사들의 명단을 제시하지만
서로 다른점이 있다
.
11:10-47은 사무엘하 23:8-39를 대본으로 작성된 반면, 12장에 등장하는 용사들의
명단은 사무엘서에는 언급되지 않은 역대기의 특수 자료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다
.
본문은 ‘온 이스라엘’ 한 지파도 빠지지 않은 열두 지파 전체
-이 헤브론에서 열린
다윗의 왕위 등극식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3일 도안 거국적이고 웅대한 축제를 벌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
다윗에게는 협력자들이 많이 있었다
.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까지도 참서하였는데
,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동족들도 다윗을 ‘온 이스라엘’ 의 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적극 지지하였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
베냐민 지파의 민심도 이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로 옮겨 갔다는 뜻
본문이 말하려는 또 다른 내용은 다윗에게는 수많은 협력자 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때문에 탄생했지만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위대한 용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
본문은 크게 두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시글락과 광야 요새에 피신해 있을 때
그를 찾아와 생사를 같이했던 용사들에 대한 소개
(1-22절)
베냐민 지파에서 온 용사들
(1-7절)
갓 지파에서 온 용사들
(8-15절)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에서 온 용사들
(16-18절)
므낫세 지파에서 온 용사들
(19-22절)
두 번째 부분은
,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로 와서
왕위 등극식에 참여 했던 용사들에 관한 소개
(23-40절)
한 지파도 빠지지 않고 열두 자피 전체에서 온 용사들이 언급
다윗의 왕위 등극식을 축하하기 위해 헤브론으로 달려온 전체 용사의 숫자는
34만 822명에 이르고 있다.
북쪽 지역에서 온 용사들의 숫자는
31만 5,600명(92.6%)
남쪽 지역에서 온 용사들의 숫자는
2만 5,222명(7.4%)
북쪽 지역에서 온 용사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많다는 통계에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북쪽 지역의 자파의 수가 남쪽 지역의 지파수보다 많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
유다 지파 출신인 다윗이 북쪽 지역의 지파들로부터 열광적이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
다윗이 남쪽 지역의 지파들에게 지지를 적게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시글락과 광야의 요새 피난 시절에도
다윗에게는 협력자들이 있었다
.
다윗에 대한 사울의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다윗은 블레셋의
‘시글락’에서
1년 4개월 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 (삼상 27:5-7)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는 자신의 용병대장으로 임명된 다윗에게 시글락을 주었다
.
다윗과 함께 블레셋의 시글락으로 간 자들의 숫자는
600명이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다윗과 함께한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협력자라고 할 수 있다
.
본문은 다윗이 도망을 다닐 때마다 여러 지파의 용사들이 그를 ‘도왔다’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
(1,17,18,21,22)
이것은 다윗의 인격의 위대함과 뛰어난 리더십을 암시하고 있다
.
다윗이 피난 중이지만 이미 대세가 그에게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1-22절)
다윗이 피신해 있을 때 처음 도운 부 류는
‘베냐민 지파 출신의 용사들’이다
.
‘활을 가진 채로 좌우의 손을 놀리며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유능한 자들이다
.
이 용사들이 특별히 주목 받는 이유는
, 사울과 같은 지파 출신이기 때문이다.
다윗을 도운 지파 중 베냐민 지파 출신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사울의 동족 용사들조차 다윗의 협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다윗의 왕위 정통성을 선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
베냐민 지파 출신의 용사들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고국을 떠나
블레셋 땅 시글락에 거주하고 있는 다윗을 찾아간 것이다
.
베냐민 지파 출신의 용사는 우두머리인 아히에 셀을 비롯하여 총 스물세명이다
.
이들은 기브아
, 아나돗, 기브온, 그데라, 하룹, 고라, 그돌에서 온 자들이다.
2-7절
다윗이 피신해 있을 때 두 번째로 도운 부류는 ‘요단 동쪽의 갓 지파 출신의 용사
들’이다
.
이들은 다윗이 광야 요새에 있을 때 찾아와 도운 자들이다
.
사무엘상
22장-24장을 참고해 보면, 광야 요새는 유다 광야에 있는 견고한 곳
(동굴 혹은 요새지)을 의미한다
다윗은 시글락으로 도망가기 전 피난 시절 초기에 유다 광야에 몸을 피신했다
.
갓 지파의 용사들은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은’
(8절) 용맹스러운 자들이다
용사들은 헤르몬 산의 눈 녹은 물과 우기 때 내린 비로 요단 강 물이 넘칠 때
강을 건너 골짜기의 적들을 물리쳤던 용간한 자들이다
.
갓 지파 출신의 용사는 우두머리인 에셀을 비롯하여 총 열한 명이다
.
8-15절
다윗이 피신해 있을 때 도운 세 번째 부류는
‘베냐민과 유다 자손들’이다
.
이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때에 찾아온 자들
(16-18절)
여기서 다윗을 찾아온 자들의 구체적인 이름이 소개되고 있지 않다
.
앞에서 베냐민 지파 출신의 용사들은 다윗이 블레셋의 시글락에 있을 대에 찾아간 자들인 반면
,
이번에 언급된 자들은 다윗이 요새
, 아마도 광야의 요새에 피신해 있을 때 협력한 자들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
한편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요새에 피신해 있던 다윗을 찾아가서 협력했다는 것
,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이 속한 유다지파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
다윗은 자신의 동족으로부터도 사울의 동족으로부터도 열렬한 지지와 협력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
다윗과 아마새의 대화
(17-18절)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고
그를 왕으로 임명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
다윗이 피신해 있을 때 도운 네 번째 부류는
‘므낫세 지파의 용사들’이다
.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찾아온 자들로 총 일곱 명으로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 출신이며 모두가 큰 용사였다
.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용병 대장으로 있을 때 블레셋과 사울의 전쟁에 참여할 뻔 했다
.
만일 다윗이 인 전쟁에 참여했다면 다윗은 사울을 죽인 원흉으로 지목되고
영영 왕권찬탈의 죄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피할 길을 얻었는데
,
블레셋의 방백들이 아기스를 설득하여 다윗을 전쟁터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
다윗이 피신해 있을 때 도운 네 번째 부류는
‘므낫세 지파의 용사들’이다
.
므낫세 지파 출신의 일곱 용사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 |시글락으로 돌아와 다윗과 함께 도둑떼를
공격하였다
.
이 도둑떼는 다윗이 없을 때 시글락을 공격하여 다윗의 두 아내와
여인들을 잡아간 아말렉 족송이다
.(삼상 30:7-15)
므낫세 지파의 용사들은 다윗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여
다윗의 부인들과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시 찾았다
.
피신해 있던 다윗을 도와준 여러 부류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
.(22절)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도운 모든 용사와 함께하셨다는 뜻이다
.
하나님의 군대는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하여 다윗의 왕국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
열두 지파의 용사들이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나아왔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하나님은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갈 것을 말씀하셨다
.(삼하 2:1)
다윗은 헤브론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그 때 열두 지파의 큰 용사들이 다윗을 찾아와 전열을 갖추고 성심을 다해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38절)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23절)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
다윗의 왕권은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다윗은 왕위에 오르고
, 사울은 버림을 당한 것이다.
다윗의 왕권은 인간적인 술수를 통해서 이전의 왕권을 물리치고 탄생된 것이 결코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왕위에 오른 것이다
.
23-40절
본문이 말하려는 또 다른 강조점은 열두 지파의 용사들이 자발적으로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나아왔다’는 것이다
.
그들은 결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다윗에게 온 것이 아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음을 깨닫고 헤브론으로 모여든 자들이다
.
본문은 헤브론의 다윗에게 찾아온 대규모의 용사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
유다 자손의 용사
6,800명
시므온 자손의 용사
7,10명
레위 자손의 용사
4,600명
아론의 집에 속한 용사
3,700명
사독 가문에 속한 용사
22명
역대기는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제의를 중요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레위 자손의 용사를 계산하면서
예루살렘의 제의를 책임지고 있는 아론과 사독의 가문을 별도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
28절은 다윗이 왕위에오를 때에 사독은 아직 젊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베냐민 지파의 용사 중에서 아직 ‘태반은 사울을 추종하고 있지만
3,000명이나 되는 용사가 다윗에게로’ 나아왔다(29절)
3,000명이나 되는 용사가 혈연과 동족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다윗의 왕위 등극식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
에브라임 지파에서
2만 800명
므낫세 반지파에서
1만 8,000명
잇사갈 지파는 우두머리만 참석하였는데 그 숫자가
200명이다.
스불론 지파에서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다윗만을 주군으로 모시려는 자가
5만 명이었다.
납달리 지파에서는 지휘관
1,000명과 용사 3만 7,000명
단 지파 용사
2만 8,600명
아셀 지파의 용사
4만 명
요단 건너편에 사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는 합해서
12만명
정리하면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두가 다윗의 왕위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헤브론으로 모였다
.
북쪽 지역에 속한 지파로 에브라임
, 므낫세 반,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단
, 아셀 지파와 요단 동편의 세 지파 전체가 왕위 등극식에 참여하였다.
왕위 등극식에 참여한 숫자를 비교할때 북쪽 지역에서 온 자들이 많은 것은
북쪽 지역 전체가 다윗의 왕권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헤브론에서 왕위 등극식은 모든 백성이 성심을 다해 진행되었다
(38-40절)
본문은 모든 백성이 ‘한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였음을 강조한다
.
‘일심과 성심’은 다윗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
이스라엘 백성 어느 누구도 왕 등극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은 다윗은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상황에서 왕이 되었다
.
헤브론에 모인 열두 지파의 용사들은
3일 동안 먹고 마시며 다윗의 왕 등극을 축하하였다.
대관식을 위한 모든 음식은 형제가 준비하였는데 ‘형제’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축제에 필요한 모든 음식을 자발적으로 준비하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 같이 멀리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음식물을 가지고 왔는데
,
이 음식물은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가 실어 와야 할 정도로 많았고
음식물의 종류가 방대했다
.
밀가루 과자
, 무화과 과자, 건포도, 포도주, 기름, 소와 양 등이 마련했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는’ 일을
날마다 행했습니다
.
하나님의 궤는 예루살렘으로 성공적인 운반을 마쳤고
, 다윗의 장막 가운데 소중하게 안치되었다.
다윗은 안치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축하하는 잔치를 마련하며
,
하나님의 궤가 지금까지 걸어온 ‘거룩한 행진’을 마무리하는 의식을 하였다
.
다윗은 크게 세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향한 믿음의 의식을 행했다
.
다윗은 법궤의 예루살렘 안치를 축하하는 거국적인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오벧에돔 집에 머물러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 장막에 안치하는데 성공하였다
.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은 백성이 동원되었고
, 웃사가 죽었고, 3개월 정도 운반이 중단되는 아픔도 겪었다.
다윗은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과 안치를 축하하는 거국적인 제의 축제를 드리고 싶었다
.
다윗은 이 조처들을 통해 법궤의 운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
법궤의 운반을 위해 수고한 백성들에게 왕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
이와 관련하여 다윗은 네 가지의 조처를 취했다
.
.(1-6절)
첫째
,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번제’는 짐승 전체를 불로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기에 ‘완전제’라고도 불렸다
.
번제는 의무감 없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과 기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제사이다
.(레1:1-17)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화평과 친교를 위한 목적을 갖고 있으며
,
자발적으로 드리는 감사제사에 속한다
(레3:1-16)
짐승을 잡아 드리는 희생 제사라는 점에서 번제와 유사하지만
, 화목제는 기름만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고기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점이 다르다
.
법궤를 예루살렘 장막에 안치한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은
다윗이 기쁨의 자발적인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 백성들과 화목과 친교를 나누었음을 뜻한다.
다윗은 법궤의 성공적인 운반에 대해 먼저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
백성들과 그 기쁨의 감격을 나누었던 것이다
.
둘째
,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일반적으로 제사가 끝나면 제사장은 복을 선포한다
.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지만
, 제사장적인 왕의 위치에서 백성들에게 복을 선포했다.
다윗은 스스로 제사장의 의식을 수행한 것이다
.
왕은 백성을 사랑하고
, 그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줄 것을 간절히 기원한 것이다
.
축복은 반드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 6:24)
여호와만이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
(2절)
셋째
, 다윗은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백성에게 선물을 증정했다
.
백성들을 사랑하는 다윗 왕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백성들에게 ‘떡 한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
(3절) 주었다.
이 선물들은 하나님께 드려졌던 일종의 화목제물의 음식들이다
(출 29:23, 레 7:12)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거기서 바쳐진 음식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
원래 화목제물은 제사가 끝난 후에 참여자들끼리 나누어 먹는 것이다
.
다윗은 화목제물의 제사 규정에 충실함으로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원했던 것이다
.
넷째 다윗은 법궤 앞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레위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에게는 법궤를 ‘보살피는 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부여되었습니다
.
법궤와 관련된 축제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
레위 사람 중 열명의 찬양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삽이 그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했다
.
여기에 언급된 열 명의 이름들 모두 역대상
15:19-20의 노래하는 자들의 명단 열일곱 명에 포함되어 있다.
아삽은 제금을 쳤고 나머지 레위 사람들은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는 자들이었다
.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항상 나팔을 부는 자로 임명을 받았다
.
이 나팔은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이다
(민 10:1-8)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일종의 정신 ‘찬양대’를 상설 조직한 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
그는 이스라엘 제의 예배의 눈부신 성작과 발전을 이룩한 자이다
.
(4-6절)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선택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
그들의 사명은 여호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
‘먼저’라는 단어는 다윗의 믿음의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운반되고 잘 안치된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
여기서 다윗의 신실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일할 수 있다
.
법궤가 예루살렘에 안치되는 날 드린 찬송은 시편의 여러 구절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
8-22절은 시편 105:1-15와 상당히 유사하다.
23-33절은 시편 96:1-13과 비슷하다
34-36절은 시편 106:1, 47-48과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다.
(7-36절)
다윗의 감사 찬양시는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
,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시는 분임에 감사하라는 것이다.(7-18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행하신 약속은 헛됨이 없고
, 영원히 유효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땅과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창 22:16-18, 26:2-5, 28:13-15),
그 언약의 약속을 이루셨다
. (18절)
하나님이 족장들과 맺은 약속에 대한 신실함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
법궤의 예루살렘 운반과 안치 사건 역시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
.
다윗은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보여주셨던 확실한 은혜의 합법적인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
다윗의 감사 찬양시는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둘째
, 이스라엘 역사 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라는 것이다.(19-22절)
하나님은 보잘 것 없던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애굽 노예 생활에서 탈출시켜주시고
광야를 거쳐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역사의 주가 되시기에
그분을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인자하심은 역사 속에서 이미 증명이 되었기에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
이스라엘의 과거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정의를 보여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다윗의 감사 찬양시는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셋째
, 여호와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지닌 분이기에 감사하라는 것이다.(23-36절)
하나님은 권능 있는 위대하신 분이기에 극진히 찬양을 받아야 한다
.
세상의 모든 신은 전부 무능한 ‘헛것’
(26절)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왕적인 통치자이며
유일한 창조주가 되십니다
.
여기서 다른 신들을 ‘헛것’이라고 칭한 것은 이방 신들은
어떠한 능력도 소유하지 못한 무가치한 존재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이방신들은 인간들이 돌과 나무 등으로 만든 우상들일 뿐이다
.(사 2:20, 10:10)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기에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
.
감사 찬양시의 핵심 단어는 ‘기억하라’는 것이다
(12-13, 15절)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
.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다
.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은 감사와 찬양의 필수 조건이다
.
현재의 복을 가져오는 열쇠이며
,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이다.
반대로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행위는 배반과 배신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
그래서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여 감사의 찬송을 올리게 한 것이다
.
다윗의 감사 찬송시를 들은 백성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했다
.(36절)
‘아멘’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
‘참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로 번역 할 수 있다.
백성들의 ‘아멘’은 억지스러운 복종이 아니라
, 자발적인 감사와 찬양의 응답인 것이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는’일을 날마다 행했다
.
다윗은 법궤 앞에서의 축제적 예배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
다윗은 축제의 날들이 꾸준히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
그래서 다윗은 법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는’일을 날마다 행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조처들을 취했다
.
(37-43절)
첫째
,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37절) 하였다.
여기서 ‘항상’과 ‘날마다’는 하나님께 묻는 거룩한 행위가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축제의 날이 계속되도록 한 것이다
.
둘째
, 다윗은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육십팔 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
(38절)를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로 삼고 법궤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했다.
셋째
,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에게는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39절) 모시게 하였다.
특이하게 이들의 제의 봉사는 예루살렘의 성막에서가 아니라
, 기브온 산당에서 이루어졌다.
기브온에도 성막과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
다윗은 이 기브온 성막에서 “항상 아침 저녁으로”
(40절) 율법에 따라(출29:38)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도록 했다
.
그리고 혜만과 여두둔은 나팔과 제금들과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였고
,
여두둔의 아들에게는 성막의 문을 지키도록 했다
.
법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는’일을 날마다 행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모든 백성과 다윗은 집으로 돌아갔다
모든 백성이 법궤와 관련된 축제 제의의 증인으로 참여하였다는 점은
역대기의 중요한 메시지에 속한다
.
역대기에서 예배와 제의 참여는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의 일이다
.
이렇게 법궤의 운반
, 안치는 온 이스라엘이 참여한 큰 행사였고, 풍부한 제물,
찬양대와 악기가 동원된 성대하고 웅장한 거룩한 제의였다
.
역대기가 강조하려는 것은 법궤 앞에서의 올바른 여호와 경외 여부가 이스라엘의 생사와
부흥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
(43절)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셨습니다
.
법궤가 예루살렘의 장막에 안치된 이후 다윗은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16:43) 왕궁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이제 그의 집에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였다
.
본문은 하나님이 다윗의 집에 복을 주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
마지막
27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집에 복을 주셨음을 세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고백한다.
16장과 17장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이런 의도적인 편집 작업을 통해
역대기 저자가 말하는 바가 분명하다
.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집에 복을 주신 이유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정성 스럽게 섬긴 그의 진실한 믿음의 모습 때문이라는 것이다
.
역대기 저자는 동일한 사건을 보도하는 사무엘하
6-7장 보다 훨씬 강하게
다윗이 영원한 왕조의 약속을 얻게 된 인과관계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
다윗은 성전건축을 희망했습니다
.
다윗은 백향목 궁에 거주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
자신은 화려한 궁에서 살고 있지만 여호와의 언약궤는
아직 초라한 휘장 아래에 보관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여호와의 궤는 임시 처소인 ‘휘장 아래’
(1절) 보관되어 있는데, 휘장은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은 열 폭
(출 26:1)의 성막을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보다 자신이 더 좋은 집에 살고 있다는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
자신이 궁에서 누리는 평안은 다윗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거주지
,
하나님의 궤가 보관되어 있는 장막의 누추함을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
하나님을 향한 이런 지극한 겸손함과 관심은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
.
(1-6절)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거룩한 처소를 건축하겠다는 의도를 나단에게 전달했다
.
당시에 나단은 왕궁 예언자로 활동하며 다윗의 신앙적인 자문 역할을 담당
.
나단은 솔로몬의 왕위 등극 때 중요한 역을 감당하였다
.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4절)고 말씀하셨다.
후에 밝혀지지만 하나님의 반대는 성전 건축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
성전 건축의 시점과 인물에 대한 반대였다
.
하나님은 다윗의 아둘 중 한명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겠다며 약속하셨다
.(12절)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
(대상22:8)을 행했기에
성전건축을 다윗의 아들에게로 미루신 것이다
.
본문 이외에 두가지 거절의 이유가 더 제시되어 있다
.
첫째
, 출애굽 이후 다윗 시대 때까지 하나님의 궤는 영구적인 건축물에 거주하지 않고,
이 성막에서 저 성막으로 옮겨 다니며 이동용 거처에 머물렀다
.(5절)
둘째
, 사사 시대에도 여전히 성전을 건축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6절)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영원히 거절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
역사적 상황과 여건이 되면 허락하실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
다윗의 성전건축 의도를 거절하신 것도 다윗의 불신앙이나 불성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하나님의 궤가 이동용 구조물에 보관되었던 것은 다윗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초라함의 모습은 아니었다
.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다윗의 아름다운 겸손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
역대기 전체에서 다윗은 가장 이상적인 신앙의 인물이다
. 하나님의 궤가 거주하는 휘장보다
자신의 거처가 더 화려하다고 생각하여 견디지 못하는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신앙적 제사이다
.
다윗은 자기만족의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지만
, 나태하지 않는 정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
-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집(왕조)’을
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싶다는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의 집
(왕조)’을 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10절)
하나님이 세우실 ‘다윗의 집’의 특징이 있다
.
첫째 다윗의 집은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
(8절)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목동이었던 다윗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였다
.
세상의 모든 대적이 다윗에게 무릎을 꿇게 하셨고
,
앞으로도 다윗의 집이 세상에 우뚝 서는 존귀함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 왕조의 견고성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하나님이 과거에는 ‘목장 곧 양 떼를 따라다니던’
(7절)
다윗을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해주셨다
.
(10절)
미래에는 세상의 존귀한 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항상 다윗을 이상적인 지도자로 소개하고 있는 역대기에서 그를 목동 출신으로 소개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
여기서 ‘주권자’는 히브리어로 ‘나기드’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통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된 경우를 의미한다
.
즉
, 다윗은 혼자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받아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
앞으로 열방들이 다윗과 그의 집에 복종하게 될 것이고
,
‘다윗의 집’은 세계에 존귀한 이름이 될 것이다.
다윗의 후손들은 더는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 정착된 거주지에서 살게 될 것이다(9절)
그들이 정착된 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궤도
더 이상 옮겨 다닐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전건축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
둘째
, 하나님이 세우실 ‘다윗의 집’은 다윗의 한 아들에 의해 계승될
일종의 다윗 왕조를 의미한다
.
하나님은 다윗의 ‘씨’중에 하나를 세워 왕국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하셨다
(11절)
여기서 ‘씨’는 자손이나 혈통
, 혹은 가문을 뜻한다(창3;5; 삼하 4:8)
본문은 다윗의 아들의 왕국을 두가지로 설명한다
.
하나는 이 왕국이 ‘견고하다’는 것이다
.(11,12절)
다윗의 아들의 왕국은 흔들림이 없고
,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사울과 달리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하나님과 왕위에 오르는 다윗의 아들의 관계는 부
-자 관계가 될 정도로 서로 긴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윗의 아들은 다윗이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것이다
(12절)
‘하나님의 집’은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허락하지 않은 성전 건축을 다윗의 아들에게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여기서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을 지칭하는데
,
역사적으로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후
7년의 대공사 끝에 화려한 성전을 완공한다(왕상 6:38)
성전은 하나님이 거주하는 공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전의 완성은
다윗 왕조의 흔들림 없는 견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
셋째
, ‘다윗의 집’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14절은 두 번에 걸쳐 ‘다윗의 집’의 영원성을 강조한다.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 왕조는 무너지지 않고 영원토록 지솔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
다윗 왕조는 한 두 세대 동안만 지속될 것이 아니라
, 다윗의 자손들에 의해
영원히 계속해서 계승될 것이라는 뜻이다
.
여기서 ‘영원한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적이 아닌
, 무조건적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의 후손들 중에서 개개인이 범죄하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
다윗 왕조 자체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범죄하는 왕들 개개인에게는 철저하게 인과응보하시는 분이지만
,
다윗 왕조 자체의 폐함은 없다는 것이다
.
그런 의미로
14절의 무조건적인 ‘영원한 다윗 왕조’의 약속은 메시아 사상과 관련된
역대기 최초의 본문이며
, 다윗의 후손들에 의해 토치되는 신정 왕국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윗 왕조는 기원전
587년에 종말하였다.
이로써 ‘영원한 다윗 왕조’는 정치적인 의미의 영속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
이 ‘영원한 다윗 왕조’는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사건으로 성취되었고
,
하나님의 왕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드린 감사의 기도이다
.
다윗은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
다윗은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대해 감격하며 기도를 올렸다
.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영원한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감사했다
.
다윗은 모범적인 신앙이이며 기도하는 용사로 역대기는 꾸준히 다윗의 신앙적인 모습을 강조하였다
.
다윗은 왕이었지만 한번도 교만하거나 거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
(16-17절)
다윗의 기도는 모든 신앙인이 드려야 하는 기도의 모델과 같다
.
다윗의 기도는 의미 있는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신학적인 기도문이다
.
다윗이 드린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다윗은 철저히 겸손하게 기도했다
.
다윗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16a절) 기도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한 기도의 자세를 보여준다
.
이 표현은 다윗이 법궤를 위해 새로 지은 성소를 찾아가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6b절)라고 외쳤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대한 놀라움을 고백하고 있다
.
다윗은 왕이라는 인생의 최고 저점에서 자신의 초라했던 목동으로서의
과거를 돌아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
다윗은 자신의 현존재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
다윗은 기도를 통해 결코 자신의 의를 나타내지 않았다
.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면서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아홉 번에 걸쳐 고백하였다
(18a, 18b, 19, 23, 24, 25a, 25b, 26, 27절)
‘종’은 히브리어로 ‘에베드’인데 주인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신분이 낮은 자를 지칭한다
.
다윗은 ‘주의 종’이라는 고백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언제나 철저히 복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다
.
둘째
, 다윗은 ‘감사하며’ 기도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기도했다
.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출애굽 시켜 주신 것과 가나안 땅의
모든 민족을 쫓아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다
.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21절)
다윗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기도만을 드리지 않았다
.
다윗은 우선적으로 왕으로서 민족과 국가를 생각했다
.
그래서 다윗은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
(22절)로 삼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이다.
그 다음에 다윗은 자기 집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 주신 것에 대해 감사 기도를 했다
(23-27절)
23절의 ‘이제’는 다윗의 기도의 순서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제’는 먼저 국가적인 기도를 마친 후에 주제를 바꿔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임을 잘 가리키고 있다
.
다윗은 기도의 우선순위를 잘 정한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
셋째
, 다윗은 ‘믿음으로’ 기도했다.
다윗은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조금도 의심 없이 기도했다
.
그래서 다윗은
24절에서 ‘견고하게’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24a, 24b절)
‘견고하게’는 히브리어로 ‘아만’인데
, 하나님의 약속은 완전하여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다윗은 영원한 왕조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였다
.
다윗에게 기도는 미래의 희망이며 견고한 반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