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융엘 (1)-권혁태.hwp
3. 에버하르드 융엘 4112010 권혁태
에버하르드 융엘의 신학은 그의 스승인 바르트와 흡사하다. 융엘은 유신론과 무신론은 철학적이며 인본주의적 신학방법에 의해 도출된 것이라고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무신론은 근대의 인간 중심주의의 출현 즉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만들어 버린 근대정신의 산물로 보았다. 융엘에 따르면 근대 무신론의 문을 처음 연 사람은 데카르트라고 말하는데, 데카르트는 신을 스스로 주체자로 계신 이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확실성을 보장해 주기 위한 술어 곧 하나의 필요한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보았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근대인들은 인간 존재와 그 지식의 확실성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요청된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아닌 절대 군주 같은 유신론의 하나님으로 보았고, 결국 하나님은 ‘필요한 것’에서 ‘불필요한 것’ 즉 유신론에서 무신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융엘은 필요한 존재(유신론)에서 불필요한 존재(무신론)로 전락한 하나님은 인간 중심주의가 만든 것이지 기독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융엘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를 계시하셨고 동일시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한 독특한 주장에 의해 유신론과 무신론의 실패가 있고 또한 극복/거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융엘은 기독교 신학은 십자가에 달린 이의 신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십자가를 통해 자기를 계시하신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융엘에 따르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은 결코 필요한(necessary) 실재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필요한(non necessary)실재도 아닌 ‘필요보다 더한 분’(more than necessary)이다. 이 말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분이 아니라 인간 및 세상에 대해 철저한 우선권을 가진 절대적 자유자이며 초월자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하나님은 필연성(관계성)을 초월한 ‘모든 것의 원천’이고 ‘기원’이며 ‘모든 것보다 앞선 존재’라는 뜻이다.
융엘은 이런 사고를 세 가지 명제로 표현한다. a) 사람과 그의 세계는 그 자체에 관심하고 있다. b) 하나님은 그보다 더욱 그 자체에 관심하고 있다. c) 하나님은 자기에게 관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신다.
여기서 융엘이 주장하는 것은 신적 실재는 인간적 실재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종교 경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격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이 인간이나 인간의 종교 경험을 규정할 우선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말할 수 없고, 신학자는 세상 모든 영역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우선성을 계속 선포해야 하며, 그 신학적 진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구체적 인격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융엘은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며 ‘근본적인 자리’고, 인간 중심주의의 산물인 유신론과 무신론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융엘의 공헌이 무신론에 대해 총체적이고 예리한 분석 제시와 또한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유신론과 무신론이 잘못된 인식론적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를 계시하셨다는 기독교적 인식론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잘 말하고 있지만, 그 신학적 진술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말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