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교회역사속에서의 사회적 삼위일체론 145 (1)-박상덕.hwp
4092042 박상덕
1.교회 역사 속에서의 사회적 삼위일체론
우리는 교회 역사속의 대표적인 사회적 삼위일체론으로 동방 교회의 갑바도기아 세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의 사회적 유비, 그리고 중세기의 리처드 성 빅터의 사랑의 유비를 살펴보려고 한다.
1)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들: 바질, 니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갑바도기아의 교부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서방 교회 신학자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이 한신적 본질에서 삼위일체 논의를 시작하는데 반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서로 구별되는 세 인격의 존재로부터 삼위일체 논의를 시작한 다음 이들 세 신적 인격 사이의 일치를 성부에게서 찾음으로 사회적 삼위일체의 한 초기적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갑보도기아 신학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서로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은 완전히 서로 다른 인격들이지만 이들은 서로 간의 온전한 사귐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으니 이것이 삼위일체의 신비라고 보았다.
그들에 따른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으로 연합으로 계신다. 이 사랑의 연합은 영원부터 있었으며 그 위격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 또 통일된다.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은 성부, 성자, 성령은 온전히 서로 구별되는 인격체들이나 영원부터 사랑의 연합 안에 있으며 이 연합 속에서 서로 구별되고 또 통일된다고 함으로써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말하고 있다.
2)어거스틴의 사회적 유비
사회적 삼위일체 신학의 두 번째는 예는 성 어거스틴이 사용한 사회적 유비이다.
어거스틴은 주로 심리적 유비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는 삼위 하나님의 세 신적 위격들을 한 인격적 존재 안의 다양한 측면들 혹은 모습들로 이해하는 한 인격 모형을 많이 사용했다. 가령 그는 한 인격 안에 기억, 이해, 그리고 의지라는 서로 구별되는 요소들이 있으나 이들이 한 인격의 통일된 정신의 세 측면에 불과하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나 이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함으로 하나님의 삼위성보다 통일성을 더 강조한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함에서 이런 심리적 유비, 혹은 인격 내재적 유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적 혹은 대인 관계적인 유비도 함께 사용한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서의 증언을 중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언제나 세 요소, 곧 사랑하는 이, 사랑 받는 이, 또 이들의 사랑의 연합으로 존재할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로서의 성부, 사랑받는 이로서의 성자 그리고 그들 사이의 사랑의 연합 혹은 띠로서 성령으로 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리처드 성 빅터의 사랑의 유비
리처드 성 빅터는 어거스틴을 따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성서의 증언에 근거하여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사랑은 신적 본성의 완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이란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성서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자기에게만 향한 사랑 곧 자기 사랑은 그 성격상 참된 사랑이라고 불릴 수 없다. 이는 사랑은 다름 아닌 선물이며 함께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이 온전해지려면 사랑은 언제나 사랑의 주체로서의 나 뿐만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너를 포함한다. 즉 사랑은 언제나 복수의 인격적인 존재들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하나님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신적 사랑은 반드시 서로 다른 인격들 사이의 나눔과 교제라는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랑이신 하나님은 결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한 인격체로 존재할 수 없고 적어도 두 인격, 곧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처드 성 빅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된 사랑에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보다 더한 무엇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두 인격 사이에 국한된 사랑은 아직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인격 사이의 사랑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은 제3의 인격을 향해 열려 있고 또 그를 받아들여 그와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사랑이 온전해지려면 사랑하는 이가 사랑 받는 이를 그의 두 번째 자기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들 사이의 사랑을 제3의 인격에게 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사랑은 적어도 세 인격 사이에서 가능해진다. 여기에서 리처드 성 빅터는 하나님의 경우 이 세 번째 인격, 곧 서로 다른 두 인격이 그들 사이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인격이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곧 성령은 같이 사랑받는 자이며 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 사이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