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문서제 4장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이수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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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2086 이수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먼저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 신론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한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은 가장 기독교적인 신 이해로서 기독교 신앙을 다른 유일신 신앙과 구분시키려는 교리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삼위일체론의 주요 쟁점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학이 하나님 안의 일(一)과 다(多)의 관계, 곧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삼위일체론의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해한 것에 반하여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 신학의 진정한 질문은 하나님의 영원성과 시간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 곧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세계와 관계를 맺는가 하는 질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삼위일체론을 세계와 관계 맺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탐구로 이해한다. 그는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는 이 하나님의 복수성에서 출발하여 이것을 먼저 논의한 다음 이 세 신적 인격들의 하나 됨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삼위일체 신학은 서로 구분되는 세 신적 인격의 존재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말한 다음 판넨베르크는 이제 신약성서는 신적 인격들 사이의 구별 성을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세 신적 인격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곧 신약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의 삶과 선포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의 확립, 곧 성부 하나님의 주권의 회복이었다.

성부는 그의 신성의 확립, 곧 그의 신적 신원(divine identity)의 확보를 위해서 성자에게 의존해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오직 이 땅의 주권자 되심을 확보함으로 그의 신성을 되찾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신원(self-identity)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요, 통치자가 되실 때 다시 확보하시는데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철저히 의지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언제나 온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세계 창조라는 모험을 감행한 다음에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세계와의 관계에 의존하게 되었다.

성자 예수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 회복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으며 그 가운데 자신을 철두철미 피조물의 자리에 둠으로서 스스로를 성부와 구별하였다. 곧 예수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종의 모습으로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그 주권의 회복만을 위하여 일생을 살아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철두철미한 섬김과 순종의 삶을 통해 예수는 그 자신을 아버지와 구별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삼위일체의 두 번째 하나님임을 보였다. 예수는 이처럼 자신을 성부와 구별시키는 행위를 통해 그의 신성을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으며 이 점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이다.

성부 및 성자와 구별되는 성령의 독특한 인격성은 성부와 성자를 영화스럽게 하는 그의 사역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약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성령은 그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철두철미 예수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통해 역사함으로 성부와 성자에게 영광을 돌렸다. 즉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영화롭게 하는 사역을 하셨으며 그것을 통해 그 자신을 단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사랑의 사귐 정도만이 아닌 이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적 실재임을 보이셨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사역 속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 역시 성령에 의지해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성령이 신적 공동체를 영화롭게 하고 또한 성부에서 기인하고 성자에 의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현실화시키신다면 그때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의 신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성령에 의지해 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신적 신원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온전히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결코 성부나 성자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의존하면서 하나의 신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달성 곧 하나님의 주권 확립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들(성부, 성자, 성령)이 어떻게 서로 온전한 일치 내지 연합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이 일치가 이중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우선 그에 의하면 서로 구분되는 세 신적 인격의 일치는 세 인격의 통교(the perichoresis of the three persons), 세 신적 인격의 상호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선 아들의 분명한 인격성은 그의 신성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역시 그의 인격적 구별을 그가 아들과 성령과 맺는 관계에서 확립한다. 성령 역시 그의 분명한 인격성을 그가 아버지와 아들과 맺는 관계, 곧 그들을 영화롭게 하는 관계 속에서 얻게 된다. 곧 세 신적 인격들은 그들의 상호 구분되는 관계들 때문에 그들의 연합내지 일치를 이루게 된다. 간다하게 말해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삼위일체적인 관계들, 곧 상호간의 자기 구별이야말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신성 및 연합의 진정한 기초와 근거가 된다.

느낀점

왜 신학자들은 항상 신학을 어려운 단어로 복잡하게 서술을 할까? 그렇게 설명을 하면 뭔가 있어 보이고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면 공부 안한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것일까? 진정한 실력자는 이렇게 어려운 것을 대중적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요약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말 일차적이고 단순하게만 알고 있는 나였는데 그리고 설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알고있는 비유 하나가지고 설명만 했는데 발표를 준비하면서 어느정도 삼위일체에 대해서 그 기초와 근본적인 이해를 할 수가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교수님께 질문입니다. 이렇게 현대에도 삼위일체론의 연구가 되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감리교에서 추구하는(?) 교리로 고백하는 것은 어떤 신학자와 가까운지 알고 싶고요,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삼위일체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을때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답변해 주시는지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