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문서제 4장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성장과 확대-박윤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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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2036 박윤호

2. 현대의 대표적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

1) 위르겐 몰트만

(1) 몰트만의 바르트와 라너 비판

몰트만은 그의 사회적 삼위일체 신학을 칼 바르트와 칼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을 비판하는 가운데 전개하고 있다. 그는 바르트와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은 다같이 신의 단일성에서 출발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삼위일체론적이지 않다고 본다. 바르트는 구약과 신약의 중심적 가르침이라고 본 하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명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위일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바르트는 성부, 성자, 성령을 단지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 양태 정도로 만들었고 신약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 서로 구분되는 온전한 세 신적 인격이 있음을 말하는 데 실패해 버렸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칼 라너 역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대전제에 근거하여 성부 안에서 세 인격의 통일성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충분히 삼위일체론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몰트만은 삼위일체 신학의 출발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를 기독교적이게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신학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발견되어 져야 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천상의 한 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구속을 위해 역사 속에서 연하여 함께 일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의 하나님, 곧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몰트만은 진정한 삼위일체적 질문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서로 명확히 구분되는 세 신적 인격이 어떻게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복음서가 세 명의 살아 있는 인격들이 하나님 안에 있음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연합과 일치를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페리코레시스적인 연합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

몰트만은 삼위 사이의 일치를 삼위 사이의 사랑의 통교에서 찾는다. 곧 삼위 사이의 연합은 하나의 동일한 신적 본일이나 하나의 신적 주체가, 혹은 모든 신성의 원천으로서의 아버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구분된 온전한 인격성을 갖춘 세 신적 인격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이루는 통교적 연합(perichoretic union)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이런 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라고 보는 인격성, 관계성 그리고 통교적 연합이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 가지 개념들을 분석한다. 먼저 관계성과 인격성의 관계를 분석한다. 어거스틴이 처음 사용한 이 개념은 세 신적 인격은 그들이 맺는 관계들에 의해 각자의 구별성과 독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신적 인격의 존재는 그들이 서로 간에 맺는 관계에 의해 규정되고 또한 입증된다는 이런 전통적인 이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관계성만으로는 세 신적 인격의 온전한 인격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인격을 개인적인 실체로 본 보에티우스의 이해에 따라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각자의 독특한 인격성을 확보하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신적 인격들이 존재함을 말하려면 인격을 관계적이기에 앞서 존재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인격과 관계는 상호적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관계적이 인격은 없다. 하지만 인격 없이는 관계 역시 없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몰트만은 인격을 말할 때, 행위와 관계의 주체자로서의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인격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안에 세 신적 인격이 있다는 말은 단지 그들의 관계에서 구별될 뿐만 아니라 존재에서도 서로 구별되는 세 신적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신적인 주체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고, 또 그렇게 불려야 한다. 그들 각자는 행위자’, 혹은 행위의 중심으로서 서로 다르고 서로 구별된다. 몰트만에 의하면 서적으로 볼때 아버지, 아들, 성령은 실상 의지와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이며 서로를 향해 대화하며 서로 사랑으로 화답하며 서로 하나가 되는 존재들이다.

몰트만은 페리코레시스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앞에서 말한 인격과 관계라는 두 가지 주요 개념을 통합하면서 삼위의 온전한 연합을 말하려고 한다. 페리코레시스적인 연합은 단순히 관계성 속에 있는 세 신적 인격이라는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뜻한다. 페리코레시스적 연합 가운데 있는 세 신적 인격들은 삼신론의 경우처럼 먼저 세 명의 서로 다른 개인들로 있다가 그 다음 서로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며또한 양태론의 경우처럼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 양태 혹은 세 번의 반복들도 아니다. 오히려 페리코레시스란 교리는 세 분 되심을 일치됨으로 축소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치됨을 세 분 되심으로 해소시키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세 분 되심과 온전한 연합을 이룸을 놀라운 방식으로 통합시킨다. 몰트만에 의하면 삼위의 일체됨은 결코 단자적 일치가 아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연합이다. 삼위 사이의 연합은 숫자적인 하나란 의미의 일치가 아니라 그들의 교제에서 발견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