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2.파니카의 불이론적 삼위일체론 평가-박엘몬.hwp
2. 파니카의 불이론적 삼위일체론 평가
그는 삼위일체 혹은 삼위일체적 구조는 모든 종교 속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또한 모든 종교들의 경험이라고 보고 다른 종교들, 특히 힌두교와 불교 속에 나타나는 삼위일체적 경험을 탐구한다. 특히 그는 힌두교의 불이론적인 베단타 경험에서 삼위일체론적인 구조를 발견하고 불교의 열반(니르바나)경험 역시 삼위일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파니카의 주장
-불교, 기독교, 힌두교의 세가지 영성적 형태- 무이미지주의, 인격주의. 신비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삼위일체 개념을 통해 화해와 통합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
-불교의 열반 개념을 아버지 지향적인 영성, 기독교를 아들 지향의 영성, 그리고 힌두교의 아드바이타 전통을 성령 지향적 영성으로 이해함으로 하나님이나 신성이 경험되는 곳에는 어디에나 삼위일체가 경험된다는 것을 주장.
이와 같은 파니카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1)파니카의 삼위일체론의 방법론 평가
파니카는 그의 신학은 그의 실존적 상황, 곧 그의 개인적 상황과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그의 신학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그가 거쳐 온 여러 종교들의 경험이다. (그는 불교의 니르바나(열반)란 사상을 취해 삼위일체의 첫 번째 인격인 아버지의 표현불가능성과 상응시키며 힌두교의 불이론을 취하여 삼위일체의 성령의 내재성과 연관시키고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의 사랑의 경험이 삼위일체론의 중심부에 들어있다고 주장)
그는 힌두교 전통의 불이론적인 실재 경험과 불교의 열반 및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 경험을 하나로 묶는 삼위일체 신학 체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했으며 그의 개인적 종교 순례의 과정에서 만난 각 종교들의 특성을 그의 종교 경험들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경험은 중요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무엇보다 먼저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근거한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야 하며 그 빛으로 개인적, 공동체적 경험을 평가하고 조정해야 한다. 즉 경험은 계시의 빛 아래 조명될 때 가치를 가진다. 그렇지 않고 경험이 주도적이 될 때의 신학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것이 된다.
2)파니카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평가
파니카는 삼위일체의 첫 번째 인격은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기 때문에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알려진다고 한다. 파니카는 아버지 하나님과 불교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아버지의 영원한 불가해적 신비는 불교의 열반과 수니야타의 경험과 상응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서는 이 불가해적인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그 자체의 분명한 인격적 특성을 가진 실재임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삼위일체론에서 성부는 이름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궁극적 신비가 아니라 창조주이자 섭리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낸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역사를 종말론적 완성으로 인도하는 인격적 실재이다. 이 점에서 파니카가 불교와의 만남을 위해 성서과 기독교 전통이 말해 온 ‘알려지는’ 하나님의 모습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불가해성과 신비성만 강조한 것이 아니지 의심하게 된다.
3)예수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파니카의 이해 평가
파니카에게서 예수는 그리스도의 하나의 현현에 불과하다. 파니카에 의하면 예수는 완전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이 점에서 그는 유일의 구원의 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 부분은 파니카의 삼위일체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파니카의 이해는 기독교 전통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신약성서와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은 예수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이며 유일한 구원자임을 밝히 말하고 있다. 예수는 단지 그리스도 현현의 기독교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하며 유일한 현현이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부에 있는 고백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인간 구원에서의 최종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고수되어야 한다.
파니카는 종교간의 대화의 목적은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회심시키는데 있지 않고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데 있지도 않으며 오직 무지와 오해로 생긴 상호간의 거리를 대화를 통해 다리를 놓음으로 함께 성숙해 가는 데 있다고 말한다. 종교간의 대화는 각 종교들의 절대성의 주장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그것을 계속 고수하면서 그 이유를 진지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창조적이고 생산적이 된다. 하지만 파니카는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역시 바로 예수라는 교회의 정통적 고백을 따르지 않음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놓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주장한 종교 간의 대화의 원칙도 위배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세 인격은 영원한 상호 사랑과 친교로 특징 되는 사귐 속에서 그들의 인격적 특성을 발견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인들을 함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존중해야 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근거해 있는 종교간의 대화는 대화 상대자와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 근거한 진리 탐구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