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라이문도 피니카후반부-홍야리.hwp
신학대학원 홍야리
2) 삼위일체의 세 인격에 대한 파니카의 이해
(1) 아버지 하나님
파니카에 따르면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절대적인 존재, 곧 신적인 초월이란 점이다. 이 점에서 그는 “아버지는 절대적이며 유일한 하나님, 곧 그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며, 아버지 하나님은 “존재의 원천,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나’”라고 말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무한하며, 보이지 않으며, 그 어떤 차원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무엇이라 이름 지어 부를 수도 없다. 그는 모든 이름을 초월해 있는 이름, 무이름의 이름이며 하나의 인격일 수 없고, 그 자신을 다른 존재와 구별시키는 어떤 인격적 특징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간다는 것은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을 뜻하며 우리의 진술은 철저히 무이미지의 방법 혹은 부정신학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왜 아버지 하나님은 전적으로 표현 불가능하고 접근 불가능하며 또 아무런 개체 인격으로서의 신원이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파니카는 그것은 아버지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서 아들에게 주기 때문이며, 자기를 비우기 때문에 그는 실존이 없으며 심지어 존재도 없다. 아버지 안에서의 이 비움은 완전하며 전체적이며 또 영원하다. 파니카는 아버지 하나님과 불교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아버지의 본질적인 무이미지성은 불교의 니르바나나 수니야타와 서로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즉 요약해서 말하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한 인격적 존재로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무한하며 불가시적이며 알려지지 않고 어떤 형태나 이름이나 모습도 인격적 정체성도 없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파니카에 의하면 아버지는 ‘무’이며 이름 없는 절대로서 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오직 무이미지의 방법 혹은 부정의 방법뿐이다. 여기에서 그는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의 불교의 열반이나 공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말함으로써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은 비록 용어와 그 의미하는 바는 다르나 내용은 똑같은 실제를 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 아들 하나님
파니카에게서 성부는 형체도 신원도 없는 궁극적 실재였다면 아들은 분명한 형체와 특성을 갖춘 궁극적 실재이다. 아들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형상이며 구체적 특성을 갖춘 한 인격체이며 역사적 존재이므로 파니카는 아들 하나님은 불이론적인 힌두교와 상응하다고 본다.
그런데 파니카는 그리스도를 인간, 신, 그리고 우주의 실재 모두를 포괄하는 실재 전체에 대한 살아 있는 상징으로 이해한다. 파니카에 의하면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타남 곧 그리스도 현현과 다르지 않으며, 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신비 전체를 뜻한다. 그는 궁극적인 중보적 신비이다.
파니카는 그리스도는 여러 종교들을 통해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었다고 주장한다. 힌두교에서는 라마, 크리슈나, 이스바라, 푸루샤란 이름으로 현존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배타적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가 기독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을 소유하고 있다. 파티카는 종교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하나님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하며,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가 기독교와 힌두교 사이의 만남의 자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본다. 즉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들 상호간의 만남과 상호 용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파니카에 의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완전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보이는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 인간과 세계 그리고 하나님을 모두 하나로 통일시키는 신비, 곧 우주신인적 신비이다. 또한 그는 여러 종교들을 통하여 여러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났으며, 예수는 단지 그리스도의 한 역사적 현현이며 결코 그리스도를 독점할 수 없고 이 점에서 기독교도 구원에 대한 독점적 주장을 할 수 없다. 파니카는 예수가 유일한 그리스도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도교적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종교들은 모두 영원한 신비인 하나님께로 가는 서로 다른, 그러나 정당한 길들이며 그 속에는 그리스도가 역사하고 있다고 본다.
(3) 성령으로서의 하나님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성령에 대한 논의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논의 중 가장 모호하고 또 어려운 부분이었다. 파니카에 의하면 성령은 신적인 깊은 내재인데 이런 내재는 드러내고 계시할 수가 업기 때문에 결코 명확히 인식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파니카는 이렇게 규정하기 어려운 성령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성령의 본성을 말하는데서 아버지는 모든 신성의 원천이자 기원으로, 아들은 이 원천에서 흘러나온 강으로, 그리고 성령은 이 강물이 끝나는 바다로 유비한 톨레도 공의회의 정의를 따른다. 파니카는 성령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이해될 수 없다고 보며 성령의 현존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길은 침묵의 길이라고 말한다. 파니카는 아버지에게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성령에게 가는 길도 무이미지적이라고 한다.
성령의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파니카는 성령은 우파니샤드 철학이 말하는 아트만과 동일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아트만과 브라만, 곧 신적 초월은 신적 내재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3) 파니카의 예수 이해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한 신학자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그것은 다른 종교와의 만남과 대화를 위한 기도교적 접근을 정리하는 데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파니카는 한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첫째로, 구원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기독교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이런 주장은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현현이라는 확신에 근거해 있으며 이런 확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파니카는 구원은 언제나 구원하는 이름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름 없이는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파니카는 구원자로 고백된 모든 고유한 이름들, 곧 초이름은 모두 특별한 세계관으로 무장한 특별한 문화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떤 고유한 이름이 인간 구원에 대해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은 그 이름이 포함된 문화가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을 은연중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파니카는 특정한 이름을 아는 특정한 종교 집단만이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종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며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이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파니카는 여기에서 이런 이름들은 말해진 로고스이자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인 그리스도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구원은 신적 신비의 근거인 그리스도에게 의존해 있다.
둘째로, 파니카는 인간 구원의 보편적이며 영원한 근거인 그리스도는 자신을 나라야나, 크리슈나 그리고 예수 등의 여러 이름으로 제시하였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름들을 부르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파니카에 의하면 예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현현이 아니며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하나의 현현에 불과하다. 다른 종교 속의 사람들이 반드시 예수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날 필요는 없으며 그들 자신의 종교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다른 현현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 편이 자연스럽다.
셋째로, 파니카는 각각의 구원자들은 모두 독특한 방식으로 다른 구원자에게 없거나 혹은 분명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 또 역사를 궁극적 규범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자인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인격주의적, 윤리적, 역사 변혁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과학 기술의 발전과 정의 및 정치, 사회적 평등이란 정신을 인류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지금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다른 종교들에게 도움과 도전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인격주의적이며, 윤리적이고 역사 변혁적인 것 외에 인간에게는 신화적이고 심미적이며 또한 명상적인 부분의 필요한데 이것은 힌두교와 불교가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본다. 아울러 그는 특정한 문화 속에 성장한 한 종교가 다른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꼭 적절하지는 않음을 주장한다. 기도교인들에게는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힌두교인을 비롯한 다른 종교인들은 그들 종교 속에 각각 다르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현현을 통해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그리스도는 예수보다 더 크기 때문이며, 파니카는 예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이런 이해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명제로 정리하고 있다.
1.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2. 구원에의 길들은 사람들의 종교성에 의해 주어졌으며 통상 세계의 종교들 속에서 발견된다.
3.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 그러나 믿음은 기독교인이나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4. 그리스도는 주님이다. 그러나 그 주님은 단지 예수만은 아니다.
5.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이나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실상 그 이름이나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진정한 종교들 속에 현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