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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44번 원죄 (Original Sin) [1759년] 유장환교수 요약
창 6: 5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1. 이 말씀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이 묘사해온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들과 얼마나 크게 다른가! 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저술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화려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이 모든 도덕과 행복을 그의 구조 안에 본질적으로, 또는 적어도 그의 능력 안에 완전하게 그래서 다른 어떤 존재에게 신세지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족하며, 그 자신의 능력으로 살 수 있으며,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별로 열등하지 않은 존재처럼 묘사한다.
2. 비기독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인간의 본질에 관해 말할 때 마치도 그 본질이 무죄순결하며 완전한 것처럼 장엄하게 말했다.
3. 그래서, 이제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다르게 말하는 것, 즉 몇 가지 한계에 속하는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순진무구하며 현명하며 덕스럽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인간의 본질 에 대하여 불명예가 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이 되었다.
4.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런 설명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의 말씀은 이렇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었다.’(롬 5 : 19), ‘아담 안에서 모두 죽었다’(고전 15 :22), 영적으로 죽었다. 하나님의 생명과 형상을 상실했다. 타락하고 죄인이 된 아담이 그자신과 같은 모양의 아들을 낳았다.(창 5:3)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 즉 그가 원래 그 안에서 피조 되었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롬 3 : 22- 23) 하나님이 전에 하늘에서 내려다 보셨을 때,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이 땅에 관영함을 보셨다’ 얼마나 관영했던지 ‘인간의 마음의 생각 속에 모든 계획이 오직 악할 뿐이요, 지속적으로 악했다’(창 6 : 5)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이 설명이다. 나는 이것에 근거하여 첫째로 노아홍수 이전에 인간들은 어떠했나 하는 것을 보여줄 것이며, 둘째로 그들은 지금도 동일한가 아닌가를 탐구하겠고, 셋째로 몇 가지 추론을 덧붙일 것이다.
Ⅰ.1. 첫째로, 나는 이 설교의 본문을 설명함으로써 홍수 전에 인간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셨다’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의 죄악이 아니다. 또는 일부 사람들의 죄악이 아니다. 또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의 죄악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일반,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들의 죄악을 말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의 생각 속에 모든 계획을 보셨다’ 여기서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 인간의 내적 사람, 인간 속에 있는 영, 그의 내적 및 외적 움직임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계획이라는 단어는 영혼 안에 있는 또는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모든 경향성, 정서, 정열, 욕구; 모든 기질, 의도, 생각을 포함한다.
3. 그런데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이 악하다는 것을 보셨다’ 즉 그 전체가 다 도덕적 정직에 반대되고, 모든 선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하나님의 본질에 반대되고, 선과 악의 영원한 기준인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반대되고, 그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에 반대되고, 인간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하여 가져야할 본질적인 관계에 대하여 반대되고 악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셨다.
4. 그러나 이 악에 선이 섞여 있지 않았겠는가? 어둠에 빛이 섞여 있지 않았겠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인간 마음의 모든 계획이 오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고 되어있다. 여전히 인간의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거하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본질은 모두 순전히 악할 뿐이었다.
5. 그러나 ‘이 악한 상태의 휴지기간은 없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때때로 인간의 영혼안에 역사하여 일으키는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그 악한 상태의 휴지지간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으리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왜나햐면 그의 마음 속의 생각의 계획 전부가 오직 악할 뿐임을 보신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이 상태가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을, 즉 계속해서 오직 악할 뿐임을, 매년,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악할 뿐임을 보셨던 것이다. 인간은 결코 선한 상태로 이탈해 본 바가 없다.
Ⅱ. 이것이 바로 인간 속에 있는 것을 아시며, 마음을 감찰하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에 남겨 놓으신 전 인류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다. 이제 두 번째로 우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러한지를 탐구하겠다.
1. 우선 이것은 분명하다. 성경은 사람들에 대하여 다르게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도들도, 아니 하나님의 말씀의 어조 전체가 ‘그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여전히 ‘악하되 오직 악하며’, 그것도 계속하여 악하다고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2. 인간의 현재의 상태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매일의 경험에 의하여 확증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계속해서 이해력의 눈이 먼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그들의 영적인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이해력의 눈을 열어 주시자마자 곧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처해 있었던 그 상태를 보게 된다.
3.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우리가 전에 즉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 없이 산 자들’, 아니 차라리 ‘이 세상 안에서 무신론자들’이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본래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하나님과의 사귐도 없었다.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이해력으로 그를 감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들이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 수 없고,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고자 하시는 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아버지 이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 수 없고, 아버지가 아들을 계시하고자 하시는 그 사람 이외에는 아들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전통적인 종교를 제거한, 하나님의 영의 영향을 제거한 자연종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5.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다. 자연적 상태 안에서 과연 누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6. 우리는 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눈 앞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7.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세상 안에서 무신론자들‘이다. 그러나 무신론 그 자체가 우상숭배를 하지 않도록 지켜주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본래의 상태에서는 철저한 우상숭배자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우상숭배인가?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우리의 우상들을 세워 놓았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마땅히 드려야 할 명예를 우리 자신에게 돌릴 때, 우리 자신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만이 우상숭배다.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것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8. 그러나, 교만만이 우리 모두가 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그에 대하여 죄책이 있는 바의 유일한 우상숭배가 아니다. 사단은 또한 자기의지라는 형태로 우리 마음에 그 자신의 형상을 인쳐 놓았다. 나의 창조자의 의지로부터 독립하여 나 자신의 의지를 행하고 내가 기뻐하는 대로 행하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생각 속에 없으며 조금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9. 우리가 마귀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마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러나 다음 발걸음에서 우리는 사단을 뒤로하고, 사단에게 그 책임이 없는 또 하나의 우상숭배로 달려 들어간다. 세상 사랑을 나는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의지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적인 것이다.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에게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 보다 더 우리에게 나면서부터 본래적인 것이 있겠는가? 먼저, 육신의 욕망, 즉 모든 종류의 감각의 즐거움 보다 더 나면서부터 본래적인 것이 있는가?
10. 안목의 정욕, 즉 상상의 즐거움을 욕망하는 것도 그러하다. 즉 상상의 즐거움을 욕망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런 즐거움들은 굉장하거나 아름다운 대상물들로부터 또는 보기 드문 대상물로부터 유발된다.
11. 우리의 본성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세상 사랑이라는 이 불치병의 세 번째 증세는 이생의 자랑, 즉 칭찬을 바라는 것, 사람으로부터 오는 명예를 바라는 것이다.
Ⅲ. 1.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내겠다.
첫째로, 위에서 말한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일정한 교리들의 체계로 이해된 범위 내에서의 기독교와 가장 세련된 다른 종교들 사이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차이점을 하나 배울 수 있다. 이교도들의 종교들 중에서는 개개인들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일부는 어떤 인간도 악을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 법이 없다고 말한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인간의 전적인 부패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모든 선을 결하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악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의 인간 본질 전체가, 그의 영혼의 모든 기능에 있어서, 특정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저러한 악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신론과 우상숭배와 교만과 자기의지와 세상사랑의 전체적인 홍수에 의하여 완벽하게 부패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무지했다. 그러므로 이것이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 사이의 첫 번째의 가장 큰 구별점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은 인간들이 악으로 향하는 경향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난 선이 그 악을 압도한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서 잉태되고‘ ’죄악 가운데서 조성 된다‘고 선언한다. 그의 안에는 그의 육신 안에는 그의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상태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하되 오로지 악할 뿐이며, 계속적으로 악할 뿐이라고 기독교는 선언한다.
2. 이 두 번째로, 이것을 원죄로 부르든지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지 간에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종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이 근본적인 주제에 있어서 여전히 이교도라고 하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본래 모든 종류의 악으로 가득 차 있는가? 그는 모든 선을 결여하고 있는가? 그는 전적으로 타락하였는가? 그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는가? 또는 이 설교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지속적으로 악한가? 이 질문들에 대하여 그렇다고 대답하면 너는 그런 만큼 기독교인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너는 여전히 이교도에 지나지 않는다.
3. 세 번째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종교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그 본질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방식으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 위대한 의사는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약을 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주심으로써 우리의 무신론을 고치신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자명성과 확신 곧 믿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무신론을 고치신다. 회개와 마음의 겸손으로써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치유된다. 자기의지라는 병은 순종 즉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유하고 감사하는 복종으로써 치유된다. 그리고 세상사랑을 고치는 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약이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진정한 종교는 이렇게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갈6:5), 즉 하나님의 뜻과 말씀 전체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 속에서 순종하고 일치함으로써(수정), 온유하고 진정한 겸손을 이루어내고,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4. 그렇다. 만약 인간이 그런 형태로 타락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내면이 악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내면이 이미 깨끗하다면, 잔의 바깥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만약 그들의 전체가 옳다면 실로 외적 개혁만이 필요한 유일의 것이다.
5.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인간에 있는 것을 보시는 그분은 자연과 은혜에 대하여, 우리의 타락과 회복에 대하여 전혀 다른 설명을 하신다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다. 종교의 위대한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요, 우리의 첫 부모의 죄로 인하여 입은 의와 진정한 거룩의 전적인 상실을 복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목적에 답을 주지 못하는 모든 종교,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닮은 모양을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이 목적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종교는 불쌍한 광대극이요 단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너희 병을 알라! 너희 치료 방법을 알라! 너희들은 죄가운데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너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너희는 나면서부터 본래 전적으로 부패하여 있다. 은혜에 의하여 너희는 전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다. ‘아담 안에서 너희는 모두 죽었다’ 두 번째,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모두 다시 살아났다’ ‘죄들 가운데서 죽어 있던’ 너희를 ‘그가 살려냈다’ 그는 너희에게 이미 생명의 원리 즉 ‘너를 사랑하사 너를 위해 그 자신을 주신 그 분을 믿는 믿음’(갈2:20)을 주셨다. 이제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속 나가라’ ‘너의 모든 병이 치유될 때까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그 마음이 너희 안에도 있게 되는 그 때까지‘
4주차 원죄(Original Sin) [1759년] 2023-1 유장환교수
창 6:5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1. 원죄
원죄라는 개념 논하지 않고 원죄 하의 인간 현실 조명함
자연적 인간 하나님 형상 상실, 악으로 가득차 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간 죄인되었다.”
ㅡㅡ>하나님의 형상 상실, 영적으로 죽음, 타락한 아담 자신의 모양으로 아들 낳음
2. 원죄 하의 인간 (홍수 전, 홍수 이후, 현재 상태)
ㅡㅡ> 하나님의 형상파괴, 의와 진정한 거룩 상실
홍수 전, 홍수 이후, 현재 상태
ㅡㅡ>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 악함
3. 하나님 형상 파괴된 인간
이해력 --->불신앙 ==>무신론, 우상숭배
의지 --->교만 ==>교만, 자기의지
정서 --->세상사랑 ==>육신의 정욕(감각의 즐거움), 안목의 정욕(새로운 것), 이생의 자랑(칭찬, 명예)
4. 결론
1) 기독교와 타종교의 근본적인 차이점 : 인간의 전적인 부패
인간의 본질 전체, 영혼의 모든 기능부패
--무신론, 우상숭배, 교만, 자기의지, 세상사랑
2) 원죄 불인정 : 여전히 이교도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는가? 그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는가? (totally corrupted)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하다
3) 종교의 본질 : 병든 영혼의 치유
하나님--- 영혼의 의사
믿음--->무신론 치유 회개와 마음의 겸손--->교만 치유
순종--->자기의지 치유 하나님 사랑 --->세상사랑 치유
진정한 종교는 이렇게 ‘사랑으로써 일하는 믿음’(갈5:6), 즉 하나님의 뜻과 말씀 전체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 속에서 순종하고 일치함으로써(수정), 온유하고 진정한 겸손을 이루어내고,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p.43)
종교의 위대한 목적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의와 진정한 거룩의 전적인 상실을 회복하는 것(타락과 회복)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그 마음이 너희 안에도 있게 되는 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