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조리실습
교수 고 수 정
목원대학교 외식조리.제과제빵학과 6주차
한국의 음식문화와
스토리텔링
- 음식과 얽힌 이야기
• 1) 주식류
1. 한국음식의 분류
밥
죽·미음·응이
국수
만두와 떡국
1. 밥
밥에 대한 유래
한반도에 살았던 선조들의 최초의 식량은 도토리와 피, 구근류인 마 등
이었고, 최초의 음식은 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가 근처에서는 조
개와 생선 등을 잡아서 먹었을 것이다.
1.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만든 밥
1. 밥에 얽힌 옛날 이야기
< 쌀밥과 이팝나무의 유래에 대한 슬픈 이야기 >
며느리가 묻힌 산소 옆에 나무가 나고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마치 이밥을 실컷 먹고 싶었던 며느리의 소망처럼
하얀 이밥(쌀밥) 같이 생겨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밥나무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이팝나무라 불리고 있다.
◆
최초의 벼농사는 신서기로 추정되며, 밭농사도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밥은 처음엔 떡을 찌는 시루에 조리하였다.
즐문토기
(빗살무늬 토기)
즐문토기
(함경북도 경성 출토)
무늬 없는 토기
(경상남도 진주 출토)
삼국시대
(고구려 그릇2)
삼국시대
(고구려 그릇1)
벼농사의 기능과 조리기구의 발달과정
(고구려시대)
위 그림에는 한 여인이 시루에 밥을 하고 그 옆 또 한 여인은 그릇을 많이 포개 놓은 것을 만지고 있다.
옆에는 고기를 걸어 놓은 육고간이 있다. 아마도 사대부가의 벼슬하던 자나 왕족이 묻힌 고분 속의 그림이다.
이 그림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떡을 쪄 먹었던 시루에 고구려시대에는 밥을 조리해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밥을 조리하려면 한참 동안 불을 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밥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림 3. 고구려 안악고분 3호에 그려진 부엌과 육고간
조리도구
✓ 함북 나진시 초도리 초도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시루.
✓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시루 중 가장 오래된 것임
농경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삼국시대를 전후하여
철기문화의 전파와 함께 농경
기구의 발달로 농업이 본격화되면서 벼농사와 밭농사가
발달되었고 곡식류의 주식문화인 쌀밥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기타 부식재료인 채소류가 함께 발달 보급되어
부식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
농경의 본격화
진정법사 이야기
삼국유사 제 5권 <효선편> 진정법사
진정법사는 신라 사람으로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해 장가도 가지 못했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도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자였다.
또한 모자가 불심이 지극해 어느날 스님이 절을 지을 때 필요한 쇠붙이를
구하러 다니자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솥을 시주로 내놓았는데 이를 본
아들이 부처님과 관련된 일에 시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께 효도를 마치면 머리 깎고 의상법사에게 가서도를
닦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떠나라고 했다 한다.
어머니가 집에 있는 쌀을 모두 털어보니 7홉이 되었는데 주먹밥 7개를
만들어 “한 개는 내가 보는 앞에서 먹고 나머지 여섯 개는 전대에 넣어 갖고
가면서 먹어라. 그리고 빨리 승려가 돼라” 고독촉했다고 한다.
한자로는 전대 ‘탁’자와 밥 ‘반’자를 써서 槖飯이라 적혀 있는데 곧 주먹밥을
뜻한다.
조선 중기를 거쳐 후기에는 정부의 ‘이앙법’(벼농사에서 못자리의 모를
본답(本畓)에 옮겨 재배하는 방법)으로 수확량이 많아져 배고픔에 굶어 죽는
백성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 조선은 두 번의 대기근으로
2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하지만 인구가 바로 500만 명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건 이앙법 때문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인구는 약1,800만 명이
되었다. 잠시 금지되었던 이앙법이 다시 보급되면서 조선은 근대를 거쳐
논에 물을 충분히 댈 수 있는 관계시설과 과학적인 농법을 도입했다.
이앙법
밥의 종류
밥은 쌀만으로 조리한 쌀밥, 찹쌀로 조리한 찰밥,
잡곡류와 견과류 등을 섞어 조리한
목맥반(메밀밥), 소맥반(밀밥), 조밥, 기장밥,
율무밥, 현미밥, 보리밥, 잡곡밥, 팥물밥, 팥밥,
콩밥, 별밥,
.
.
.
등 조선시대 고문헌을 분석한 결과 밥은
100종류가 넘게 수록
* 별밥: 찹쌀이나 멥쌀에다가 조, 콩, 팥, 대추, 밤, 무, 고구마 따위를 섞어서 지은 밥.
시대별 변화
이용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
1920년
1937년
중일전쟁 중 일본군 취사법 개발
1955년
미나미 요시타다
‘전기밥솥 개발’
1972년
한일전기가 일본의 산요사와 기술제휴 하여 제품을 생산
1980년대
‘전기밥솥 파동’
쌀밥은 물을 먼저 펄펄 끓인 후 쌀을 넣어 조리했고, 잡곡류는 낱알이 큰 것을
부수거나물에 침지했으며, 견과류, 서류, 구근류, 과일 등도 잘게 썰어 사용했다.
치료식으로 한약재료는 물에 우리거나 삶았고, 육류는 푹 삶아 육수에 밥을 했다.
1. 조선시대 주식류 (밥)의 재료별 조리방법
약선음식의 재료는 평상시 식생활에서 사용하는 식품들의 기능성분과 약이성을 이용하여 만성적인 질병과 급성적인
복통, 설사 등에 재료의 전처리를 통해 죽으로 많이 이용했다. 특히 곡류 등은 갈아 물에 담갔다 사용했으며, 동물성
식품재료를 이용할 때에는 재료를 만화(중간불)로 오랫동안 끓여 된장이나 향신료 등을 함께 사용해 먹기에 수월하게
조리했다.
2. 약선음식 조리 방법
흰쌀콩밥
황국감초약선밥
밥의 종류.
비빔밥
▪ 밥에 나물류와 고기채 등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
음식이다.
▪ 보편적인 일품요리로 골동반(骨董飯) 이라고도 했고,
궁중에서는 비빔밥이라고도 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밥에 여러 가지
반찬들을 섞어서 비벼 먹기를 좋아했다.
겉 속과 화합의 비빔밥
- 비빔밥은 각 지방마다 특산 농산물의 사용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전주, 진주, 해주, 안동 헛제사밥, 평양비빔밥, 통영비빔밥이 유명하다.
비빔밥의 유래
비빔밥은 궁중음식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먹는 밥을 ‘수라’라고 한다.
수라에는 흰수라, 팥수라, 오곡수라, 비빔밥 등이 있다.
✓ 여러 종류의 기본적인 밥이 있는데 임금님이 먹다 남은 밥을 궁녀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 또 한 설은 고려시대 ‘임금몽진음식설’ 로 임금님이 피난을 가면서 먹은 음식으로 피난길이라
한 그릇에 밥과 여러 반찬을 함께 넣어 비벼 올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조선 23대 순종 임금 때>
조선23대 임금인 순조(純祖)때 홍석모(洪錫謨)가 저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동짓달 편에 “骨董之飯
(골동지반)”이란 말이 나온다.
중국이 돌솥비빔밥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니 황당하고 열 뻗쳐
중국 지린성이 지난 2021년 '조선족 돌솥비빔밥 제작
기예'와 '조선족 전통 쌀떡 제작 기예' 등이 포함된 성
급 무형문화유산 목록을 신규 승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비빔밥은 19세기 말엽에 간행되었던 찬자미상의
고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등장한다.
한자로는 ‘골동반(骨董飯)’, 한글로는 ‘부뷤밥’이라
기록되어 있다.
골동반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잘 비빈다고
하여 ‘뒤섞는다’는 뜻의 ‘골동(骨董)’과 밥을 뜻하는
‘반(飯)’이 합쳐진 말이다.
02.
비빔밥
지역별 비빔밥의 유래
임진왜란 중 진주성 전투 때 군인과 백성들이 일본군과 대치하면서 성에 남아 있던 소를 잡아
육회로 만들고 남은 재료를 모두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후 힘을 내어 왜군과 전투에
나섰다고 한다.
결국 많은 백성들이 죽었지만 그 투혼은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이다. 그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진주의 기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죽은 자들을 제사 지내기 위해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먹었던 비빔밥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 상에 차린 비빔밥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운 꽃처럼 만들어졌는데 5가지 재료를 동황색
그릇에 담아 흰밥 위에 꽃처럼 장식한 것을 ‘화반(花盤)’ 또는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
부르는 데서 진주비빔밥의 또 다른 역사적 유래가 전해진다고 하겠다.
진주
• 진주비빔밥의 유래는 제사에 쓰던 나물과 함께 탕국을 먹었던 방식으로 지금은 그
맛이 약간씩 변형되었지만 독특한 진주만의 비빔밥 음식문화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진주비빔밥의 독특한 맛은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 데 있다. 밥 위에는
숙주·고추·근대나물 등을 얹어 탕국과 같이 내는데,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흰빛의
밥 색깔, 그리고 다섯 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모양을
자랑한다.
경상남도 진주의 향토 음식 중의 하나.
거섶으로 머리 없는 숙주나물, 부드러운 시금치 속잎,
어린 고사리나물과 가늘게 찢은 도라지나물을 쓰고 선짓국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1. 진주비빔밥
전주
• 전주지역에서 유래된 ‘전주비빔밥’은 소머리 고은 국물에 밥을 하는데
임실에서 나는 콩나물을 쌀이 익는 중간쯤에 넣어 비빔밥의 독특한 맛을
살리고 있으며, 쇠고기 회와 생 달걀 노른자를 맨 위에 장식하여
전주비빔밥의 특징적인 조리기법을 표현하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 지방의 전통적인 비빔밥. 뜸을 들일 때 밥솥에 콩나물을 넣어
밥 김으로 데쳐 솥 안에서 밥과 뒤섞은 다음에 육회, 햇김, 녹말묵, 쑥갓 따위를 곁
들인다.
2. 전주비빔밥
3. 통영비빔밥
통영
• 통영비빔밥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멥쌀, 두부, 콩나물, 부추, 시금치, 톳나물,
생미역, 무, 애호박, 오이, 가지, 조갯살이 들어간다.
• 통영비빔밥은 다른 지역의 비빔밥과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나 비빔밥에
두부 탕국을 곁들이고, 이 지역 특산물인 생미역과 톳나물 외에 계절에 따라 콩나물,
오이, 박,가지, 호박, 미나리, 시금치, 파래, 솎음배추, 방풍, 무, 부추, 근대, 쑥갓 등
10가지 이상의 나물을 넣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 1800년대 말에 써진
『시의전서(是議全書)』
✓ 1849년 홍석모
『동국세시기』
✓ 방신영의
『(만가필비)조선요리제법』(1917)
✓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1934)
✓ 방신영의
『(주부의 동무) 조선요리제법』
(1939)
문헌 속 비빔밥 조리방법
우리나라의 비빔밥은 긴급상황이나 전쟁 시
비상음식으로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 전쟁 시에도,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 가던
시절에도 비빔밥으로 수라를 올렸다.
특히 비빔밥은 미국의 세계적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이 전주에 와서 비빔밥을 먹고 그 맛에 반해
미국에서도 찾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비빔밥은 결속과 단합, 화합을 의미한다. 한 그릇 속에
여러 재료를 넣고 비비면 오묘한 맛과 감칠맛이
있으며 영양도 풍부하다.
한식의 세계화
3. 죽
죽에 대한 유래
죽은 구석기시대부터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정착한 선조들이 최초로 조리하여 먹은 음식은
죽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도토리를 가루내서 죽을 끓여 먹었고 잡곡류 등의
가루를 내서 죽을 끓여 먹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죽은 음식을 먹기 시작한 시대부터 최초로 먹었던 음식으로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화로의 흔적과 연석이라는 맷돌로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든 흔적을 발견했는데,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부터 죽이란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나라에서 권장한 음식
도정 용구 발달사
갈판
연자방아
돌확
맷돌
쌀죽은 쌀을 갈아 즙으로 죽을 끓이거나 쌀을 볶아 오랫동안 끓여 즙으로 만든 후 참기름을 넣고
죽을 끓였는데 치료음식은 참기름을 넣지 않았다.
죽류의 재료별 손질 방법
1. 쌀죽
2. 잡곡류
좁쌀은 오랫동안 푹 삶아 죽을 쑤었고, 보리, 율무, 콩, 녹두는 갈아서 물에 담가 앙금가루로
죽을 쑤다가 쌀가루로 새알크기 완자를 만들어 넣었고. 팥은 중탕하여 으깨 가루로 만들거나
삶아 체에 내려 생강즙에 쌀가루를 반죽하여 새알을 만들어 넣었다.
볶거나 쌀 앙금과 함께 갈아 죽을 쑤었고, 상수리는 물에 우려 수비한 후 죽을 쑤었다.
대추는 삶아 체에 밭치거나 쌀과 섞어 죽을 쑤었으며, 깨는 볶아 거피한 뒤 즙을 내어 수비한 쌀가루와
함께 죽을 쑤었다. 연자(연꽃 씨)는 껍질을 벗겨 가루로 만든 뒤 쌀가루와 함께 죽을 쑤었다.
죽류의 재료별 손질 방법
3. 견과류
4. 우유죽
우유에 물을 넣고 푹 끓여 치료식으로 먹었으며, 우유와 쌀가루를 섞어 죽을 쑤거나 쌀가루를
볶다가 우유를 넣고 죽을 끓였다.
돼지간과 콩팥 등을 잘게 썰어 된장국에 넣고 통쌀로 죽을 끓였으며, 쇠고기를 다져 양념한 뒤
장국물을 끓여 통쌀로 죽을 끓이기도 했다. 녹각죽은 녹각가루와 쌀로 죽을 끓였다.
죽류의 재료별 손질 방법
5. 육류죽
6. 조류죽
오골계, 구관조, 청둥오리, 암탉 등을 푹 삶아 된장을 풀어 통쌀을 넣고 죽을 끓였다.
쌀로 죽을 끓이다가 굴을 넣어 끓였고, 홍합은 말려 가루로 만들거나 즙을 내 쌀가루와 함께 죽을
쑤었으며, 붕어는 잘게 썰어 끓이다 쌀을 넣고 죽을 끓였다.
죽류의 재료별 손질 방법
7. 어패류죽
8. 채소죽
고기를 삶아 육수에 아욱과 통 쌀을 넣고 오래도록 죽을 끓이거나 고기를 다져 끓인 후 우거지에
된장을 풀고 쌀을 넣어 죽을 끓였는데, 김치 콩나물죽도 같은 방법으로 조리했다.
3. 죽 ( 타락죽 )
죽에 대한 유래
타락죽
우유가 매우 귀했던 조선시대에 타락죽은 왕의 보양식이자
치료식으로 많이 애용되었다. 또한 왕이 왕족이나 궁중의 나
이 많은 대신들에게 내려주는 귀한 하사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 명종 때 외척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문이 올라온 것인데,
윤원형은 타락죽 만드는 사람과 기구를 자기의 집에 사사로이
배치하여 타락죽을 만들어 자녀와 첩까지 배불리 먹였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는 충분한 탄핵감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타락죽은 왕실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미암일기』에는 여러관원들이 전라감사인 유희춘에게 상납하기 위한 것으로 타락죽을 바쳤으며, 본
인 또한 선물용으로 타락죽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일반 사대부들도 타락죽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 타락죽이 임금께 사랑을 얻는 ‘승은’의 죽이기도 했다.
임금이 시녀와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입이 깔끄러울 것에 대비해 궁에서 그날은 어김없이 우유와 쌀
을 가루내 조리한 타락죽을 올렸다고 한다.
특별음식 선물용 타락죽
허균의 방풍죽
• 재료의 향기와 인간과 유수(流水)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함께 조리하여 먹었던 죽 음식으로 옛
선인들의 여유를 함께 느낄 수 있다.
• 조선시대 사학자이며 정승이었던 허균이 향기로운
죽을 먹으며 혼자서 중얼거린 일화를 소개한다.
• 허균은 『도문대작』(1611)에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었을 적에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언제나 지난날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어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4. 역신을 몰아내는 민간신앙 속 팥죽
팥죽에 대한 유래
처용가에 나오는 역신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역신은 호구별성’이라 되어 있다.
호구별성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퍼뜨리는
여성신’이라 되어 있다.
역신은 조왕신이나 삼신과 같은 여자이다.
처용의 아내가 천연두에 걸려 병치레하는 것을 본 처용은 아내
옆에서 귀신을 쫓는 춤을 추었다. 다행히도 처용의 아내는 병이
나았고 사람들은 처용이 신비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처용의 얼굴을 그려 대문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정초나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팥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귀신을 쫓기 위해 죽 뿐만 아니라 팥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권 나라에서는
귀신(역신)을 쫓기 위해 붉은색의 음식이나 천, 기구 등을
사용했고 붉은색 식품인 팥을 뿌리기도 했다.
그 기원은 처용가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팥죽의 유래
우리나라는 민간신앙을 믿은 지 오래되었으며 처용가에서도 천
연두(귀신)를 쫓는 굿이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삼
국시대 이전부터 붉은색의 팥은 식사 대용으로도 이용했을 것이
며 농경 문화권인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기원적인 문화
였고,
또한 구국기복의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퍼져 생활해 왔던 민족으
로 벽사의 의미가 담긴 붉은색의 팥은 민간신앙에 활용된 중요한
식품이자 음식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용가
* 처용가(處容歌)는
통일신라 시기 처용이라는 사람이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후 지었다고 전해지는 8구체 향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2권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 편에 수록되어 있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 1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며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고,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동지
• 동지팥죽이 절식이고,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 축사
(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이용
• 양(陽)’을 상징함으로써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인식
중국의 팥죽에 대한 유래
우리나라는 농경문화로 식생활은 곡류를 중심
곡물에는 전분이 대부분으로 소화와 맛을 위해서는 짠 음식의 반찬과 함께 먹어야 좋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산과 들에 싱싱한 채소들이 많고 삼면이 바다였던 탓에 발효식품인
젓갈과 김치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김장문화
5.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치
김치에 대한 유래
조선 정조 시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정조의 딸 홍현주
부인은 수라간을 매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 종친 회식에 한 가지씩 요리를 만들어 올리기로 했고
홍현주 부인은 고민에 빠졌다. 오랜 고민 끝에 홍현주 부인은
무를 대충대충 썰고 양념을 버무려 상에 올렸다.
수라상의 고급스러운 음식들 사이에 대충 썰어 아무렇게
버무려진 빨간 무를 본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깍두기의 맛을 본 임금은 아삭한 맛에 깜짝 놀라
공주에게 음식에 대해 물었다.
공주는 음식의 이름은 없지만 무를 깍둑깍둑 썰어 버무린
것이라 하여 이 음식의 이름을 ‘
각독기(刻毒氣)’라 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김장문화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문왕이 683년에 왕비를 맞이하면서 내린 폐백품목 가운데 간장, 된장, 젓갈무리가 들어 있어
발효식품이 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유사』
✓ 소금에 절인 김치와 젓갈이 나오지만 양념이 가미된 담금 형태의 김치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에 산출된 채소는 순무, 외, 가지, 박, 부추, 고비, 죽순, 더덕, 도라지, 배추, 고비 등으로
소금에만 절인 것이 주된 김치무리였을 것이다.
고려시대
✓ ‘가포육영’이라는 시에 “순무를 장에 넣으면 삼하에 더욱 좋고 청염에 절여 구동지에 대비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무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는 시로 보아
고려시대의 김치로 무장아찌와 무 소금절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고려
✓ 『고려사 예지』에 미나리김치, 죽순김치, 무김치, 부추김치 등이 나오지만 짜게 담근 짠지류에 속하는
김치이다. 고려시대의 채소재배를 알 수 있는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의 기록을 보면 무, 오이,동과,
순무, 배추, 큰 마늘, 부추, 아욱, 상추, 파, 박 등을 재배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와 유사하다.
『수운잡방』에는 17종류의 김치가 나온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김치재료와담금법
김치 재료
✓ 순무, 무, 가지, 오이, 늙은 오이 등이 있고 특별하게 머윗대와 토란대
로담근 김치도 있다.
담금법
✓ 담금법은 소금과 물을 이용한 침채법으로 하였다. 또한 술지게미를
사용한 장아찌 형식의 김치 담금법이었다. 『수운잡방』에 ‘향과 저’라는
김치가 있는데 지금의 오이소박이 김치 담금법과 유사하다.
목이버섯기름으로 생강, 마늘, 후추를 볶고 오이를 세 가닥으로 쪼갠 후
위의 볶은 것을 켜켜이 넣고 기름 부어 하루 지나 먹는다고 하였다.
『요록(要錄)』
✓ 9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김치류에도 고추를 재료로 쓰는 것이
하나도 없고, 무·배추·동아·고사리· 청태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冬沈]가 설명되어 있다. 또 무염 침재라 하여 무에 맑은 물을 넣고 4일쯤
두어 거품이 일면 즙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선(治膳)편」
✓ 배추김치 담그는 법, 오이소박이 담그는 법, 순무김치 담그는 법이 나오는데
‘오이소박이’에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 담그기가 처음 나온다. “오이삼면에 칼집을
내고 속에다 고춧가루, 소금, 마늘 3~4조각을 집어넣어 오이를 항아리에 먼저 넣고
끓인 물을 부어 밀봉했다가 다음날 먹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배추김치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백김치 수준으로 담갔다.
✓ 김치의 기록으로 ‘동치미’ ‘막김치’ ‘장김치’가 등장한다. 비교적 작은
무 뿌리로 담근 김치를 ‘동치미’라 한다고 했다.
✓ 방신영의 『만가필비 조선요리제법』(1917)에도 결구배추에 젓갈과
고춧가루를 버무린 현재의 김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 김치류 로는 나박김치, 동침이, 동치미 별법, 배추김치, 섞박지,
오이김치, 오이지, 오이 찬국, 장김치, 짠지 등을 소금에 절이거나
젓갈과 무, 배추 등을 섞어 고추를 썰어 넣은 섞박지 등으로 담근
김치였다.
동치미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
우리나라의 김치문화
•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아 각 지방의 고유한 김치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김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일본·미국·영국 등 외국에 7,900만
달러어치의 김치를 수출했다. 또한 2001년 7월 5일에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를 ‘국제식품’으로 공인하여
수출 전망이 밝아졌다.
• 또 한국의 `김장문화`가 2013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장문화`는 한국 사회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고, 한국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유산이라는 게 등재 이유다.
6·25전쟁
매스컴의
영향
도로시설
교통수단의
발달
우리나라
김치문화에
영향
“
”
우리나라의 김치문화
① 서울 : 궁중음식으로 고춧잎깍두기·오이소박이·장김치 등이 독특하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② 경기도 : 풍요롭고 모양이 화려하다
③ 강원도 : 바위와 산이 많아 산물이 많지 않으므로 다음해 봄까지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해야 한다.
④ 충청도 : 일반적으로 젓국을 쓰지 않고 소금만 사용한다.
⑤ 전라도 : 조기젓·밴댕이젓·병어젓을 사용하고, 참깨와 찹쌀풀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낸다.
⑥ 경상도 : 멸치젓을 사용하며, 기후관계로 간이 세고 국물이 없으며
양념이 비교적 적다.
지역별김치의종류와특성
⑦ 제주도 : 복김치·동지김치·해물김치·나박김치 등이 있다.
⑧ 황해도 : 동치미·호박김치·갓김치·고수김치 등이 있다.
⑨ 함경도 : 생선이 흔하여 김치에도 생태·대구 등 기름기 없는
것을 넣어서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⑩ 평안도 : 양념이 간단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육수를
사용해서 단맛을 낸다. 가지 김치·영변김장김치 등이
있다.
지역별김치의종류와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