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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상담 배경과 기본이론들

* 서론: 심리적 건강과 영적 건강과의 관계

I. 목회상담학 이론의 태동 배경

1. 1920년대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목회상담과 목회적 돌봄을 구별하지 않고 교회내 목회활동에 그 초점을 두었다. 개념적으로 목회상담은 목회적 돌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때는 교육현장으로서 주로 일반 병원을 목회실습장으로 이용하였다. 이때에는 물론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 임상목회교육)가 훈련의 주축을 이루었고, 그 훈련과정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psycho-analysis)에 의한 병리심리(psychopathology)의 이론과 개인의 내적 심리 역동(Intrapsychic)에 관한 이론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2. 1946년부터 1962년까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미국의 현대 목회상담학이 잉태해서 태동하기 직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현대 목회상담학계의 이론들이 칼 로저스(Carl Rogers)비지시적 접근(Client-Centered) 이론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을 때이다. 또한 미국의 신학교들이 목회상담학과를 개설하여 전임 목회상담학 교수들을 채용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목회상담학의 학술적 이론 정립을 위해서 CPE 운동의 병원 실습장 영역을 확대해 신학교의 교육장으로까지 옮김으로써 현대 목회상담학의 학문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3. 1963에서 1970년대까지로, 이 시기에 AAPC가 출범하면서 일반 목회상담자들뿐만 아니라 목회 심리치료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그 체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이제 전문적 목회상담자를 훈련하고 양성하기 위해서 기존 신학교들의 교단과정에만 의존하던 양태를 벗어나, 가시적 교회 밖의 영역에 설치된 각종 목회 상담소와 훈련원을 과감히 활용하고 활성화시킨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또한 로저스의 비지시적 상담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시에 클라인벨이 등장, 비지시적 방법론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목회상담학계에 더욱 다양한 상담이론이 전개되고 수용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아담스 교수가 비지시적 이론에 반기를 들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처음으로 목회상담학 강좌를 개설하고서 성서적 상담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풀러 신학교 계통에서도 크리스천 상담을 주창하기 위하여 신학교 안에 심리학과(대학원)를 개설한 때도 이 시기의 전후이다.

4. 70년대 이후의 시기로, 이때의 목회상담학의 관심사는 집단상담과 결혼 및 가정 문제 상담으로 그 강조점이 옮겨졌다. 이때에 부부상담과 가족상담 분야가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대인관계와 가족관계 상담문제 뿐만 아니라 가족과 결혼생활을 교육하고 육성하는 각종 예방 프로그램인 결혼과 가정생활 교육 프로그램 등도 개발되면서 목회활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에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요법에 근거한 대상관계 심리(object-relation theory)와 자아 심리학(self-psychology) 이론의 도입이 실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래에 그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하고 있는 인지요법(cognitive therapy)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심리학의 지나친 영향으로 상담에서 신학의 뿌리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토마스 오든 같은 학자는 상담을 위한 좋은 이론들이 교회의 전통에도 풍부하다고 하며 전통의 회복을 주장한다.

II. 목회상담에 영향을 준 심리학 이론들

1.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 (주요 개념들)

1) 인격의 구조

정신분석 요법의 견해에 따르면 인격의 구조는 세 개의 통일된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본능과 자아와 초자아이다. 이것들은 심리과정을 설명하는 용어이지 인격의 구조 속에 분리된 개체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1) 원본능(id)

원본능은 인격 구조의 근본이다. 태어날 때 인격은 원본능으로만 구성된다. 원본능은 정신적 에너지의 근원이며 본능적인 힘이 여기에서 솟아나온다. 조직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 충동적인 욕구를 가지며 고집스럽다. 마치 끓어오르는 흥분의 도가니 같아서 타협할 줄 모르며 긴장을 견디지 못하며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고 하는 쾌락의 원리(pleasure principle)에 의해 지배받는다. 원본능은 논리를 모르며, 도덕도 모르고 오직 한가지 충동만을 내세운다. 쾌락의 원칙에 따라 본능적 욕구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이다. 원본능은 결코 성숙할 줄 모르며 인격 구조의 썩은 부분으로 항상 남아 있으며 원함과 그것을 위한 행동만 계속한다. 원본능은 무의식 세계에 속한다.

(2) 자아(ego)

자아는 외부 세계의 현실과 접촉을 갖는다. 자아는 다스리고 통제하며 조절하는 인격 구조의 집행자이다. 자아는 원본능과 초자아와 외부 환경 사이에 서서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명령과 외부 세계의 제한 사이에서 조정역을 담당한다. 자아는 의식 세계를 통제하며 잠재 의식에 억압을 행사한다. 자아는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에 입각하여 욕구 충족을 위하여 현실적 논리적 계획을 세우며 연구한다. 원본능과 자아의 관계를 보면 자아는 지성과 합리성에 입각하여 원본능의 맹목적 충동을 억제하고 통제하며 욕구 충족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원본능은 주관적인 실재밖에는 모르나 자아는 심리 속에 있는 이미지와 외부 세계에 실존하는 사물을 분간할 줄 안다.

(3) 초자아

초자아는 도덕적이요 법적인 인격의 요소이다. 초자아는 사람의 도덕법으로서 그의 관심사는 오직 그 행동이 선하냐 악하냐 또는 바르냐 틀리냐에 있다. 초자아는 실재보다는 이상을 대변하며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완전을 추구한다.

초자아는 부모를 통하여 유아기에 받은 대로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와 이상을 대변한다. 그의 기능은 원본능의 충동을 억누르며 자아를 설득하여 현실적인 목표로 도덕적인 것을 선택하게 하며 완전을 추구하게 한다. 부모와 사회의 표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 자신의 부분으로 만든 초자아는 심리적 보상과 형벌에도 관계된다. 보상은 자만과 자기 사랑의 감정이요, 형벌은 죄책감과 열등감이다.

2) 의식과 무의식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의식세계란 전체적인 정신구조(psyche)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는 의식보다는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 걸쳐서 커다란 영향을 주는 무의식에 관해 주로 관심을 가졌다.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에부터 언급이 있었으나, 프로이드의 위대한 업적은 그것의 구조와 내용을 연구하고 어떻게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 환상, 신념 그리고 행동에 영향을 주는가를 증명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자기 이해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흔히 프로이드를 심층심리학의 원조로 내세우는 이유는 바로 무의식에 대한 그의 해명 때문이다. 그가 발견했듯이, 초기 아동기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성장부진은 계속하여 현재에서 창조적으로 사는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방해하는데, 이것은 무의식내에 있는 억압된 기억, 소망, 갈등, 충동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이러한 억압된 요소들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치료를 해야한다고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행동과 인격의 문제를 바로 이해하려면 무의식을 바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의식은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다음과 같은 심리 현상들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꿈: 무의식의 필요와 욕망과 갈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현상임

말의 실수와 잘 아는 것을 잊어버림

최면 상태의 암시를 최면이 깨어난 후 무의식중에 행함

자유 연상에 의해 튀어나온 말들

투사(project)의 기술로부터 얻어낸 자료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우리의 모든 경험들, 기억들, 그리고 억압된 욕망과 감정 등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욕망들과 동기들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의 통제의 한계를 벗어나 있는 것들이다. 프로이드는 거의 모든 정신 기능 활동의 원인이 깨닫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심리치료의 목적은 무의식적인 동기를 의식화시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의식화 될 때에만 비로소 바로 알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역할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정신분석 상담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에서는 숨겨져 벼렸을지라도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역동성이 모든 형태의 정신병 증세와 행동의 뿌리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치료는 건강을 저해하는 증세의 의미와 행동의 근본 원인과 억압된 욕망과 감정 등을 찾아낼 때에만 가능하다.

프로이드는 모든 행동에는 무의식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상한 생각, 환상, 꿈, 실언, 교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앉게 되는 자리,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등의 모두는 그 배경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심각한 장애자의 자학적이고 장애적인 행동조차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방어적 욕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중년 남자의 한쪽 팔이 마비된 것은, 심리적으로 볼 때, 그가 수동적으로 의존하던 어떤 사람에 대해 분노를 느껴 싸우고 싶지만 그 후의 보복에 대한 공포와 싸우고 싶은 무의식적인 소망간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갈등이 표출된 경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마비는 결국 오랫동안 억압된 분노가 행동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아마도 분노를 폭발한 이후에 느껴질 죄의식과 상대방에 의한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의미를 알게 되면,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수 있는 것이다.

2. 융(Carl Jung)의 분석심리학(주요 개념들)

1) 인간이해: 환자를 오로지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프로이드의 견해를 비판하며, 융은 인간 성장에서 목적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원인들 때문에 살지만 또한 목적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들에 대한 낙관적이요 창조적인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미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고 본다.

융은 전인성으로 향하여 움직이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자아가 되는 것 또는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화 과정으로는, 페르조나를 벗기는 것, 그림자(shadow)를 직면하는 것,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직면하는 것,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되는 전체 인성을 통합시키는 핵인 진정한 자기를 발달시키는 것이 있다.

2) 무의식: 융은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을 말한다. 개인 무의식은 한 때 의식하고 있었으나 그후 억압해 버렸거나 잊어버린 경험들로 구성된다. 고통스런 느낌이나 생각들은 아직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지만 억압되고 무시당한 채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집단무의식은 과거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무의식 속에 묻혀있는 보고이다. 이것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온 중대한 기억들(원형:Archetype)의 근본적 유산이다. 원형들은 신화나 전설, 만다라나 꿈들의 상징적 해석을 통하여 발견된다. 집단무의식은 오랜동안의 지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성장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프로이드가 말하는 개인무의식이 부정적이며, 열등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서 융의 집단무의식은 창조성의 위대한 저장고로써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 개성화(individuation)

개성화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in-dividual. divide나누다), 즉 분리되고 분할할 수 없는 전체가 되는 과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개성화 과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적 요소들을 통합시켜 주는 인간의 정신 작용이다. 융에 의하면, 인간은 대극적인 존재이다. 즉,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페르조나와 아니마(또는 아니무스) 등 서로 정반대가 되는 관계에 있는 정신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발달하게 될 경우, 인간의 정신적 균형은 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성의 완성으로서의 개성화는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양극들인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통합되어 살아 있는 관계에 있을 때 가능해 진다. 그런데 정신적 성장은 의지의 힘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성취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정신의 성장과 완성을 조절하는 중심이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 실현되는 것임을 융은 강조한다. 정신의 전일성을 지향하는 마음의 중심이 바로 자기 원형이다. 그러므로 개성화는 개성이 강해지거나 성인군자 혹은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은 한 개인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그것은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융이 제시한 성숙한 인간에 대한 이미지가 탈 인습적이며 본질을 중요시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융은 인성의 발달이 경험이나 학습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발달적 관점을 배제하고 개성화 과정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개성화의 과정은 보편적으로 그가 말하는 중년기(대략 35세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전의 시기는 주로 한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기간이어서 외적인 세계에 정신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에 한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조명하고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작업은 아직 관심의 지평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이르는 길

3. 로저스(Carl Rogers)의 내담자 중심 상담(주요 개념들)

1) 인간이해

내담자 중심상담은 프로이드와는 달리 인간 본성 속에 본질적인 부정적 경향이 있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여러 다른 견해들은 인간성을 논하면서 인간본성은 사회화되지 못하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요 자신의 자아나 타인들에 대해 파괴적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로저스는 인간을 깊이 신뢰한다. 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발전하려 하며 자신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적극적인 선을 소유한 존재라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신뢰받을 만하며, 동시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협동성을 가지며 건설적이므로 그들이 갖고 있는 공격적인 충동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인간 개개인은 자아실현을 향하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받아 태어났다고 보는 철학적 견해 때문에, 상담자는 상담과정에서 우선적인 책임을 내담자에게 둔다. 즉 내담자는 상담자의 지시를 단순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수동적인 모습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능력과 결단능력을 능동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인간이 때때로 비정한 살인의 감정, 이상한 충동과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내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인간본성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고, 그 개인의 유기체적 경험들(organismic experience)과 자아(self) 사이의 부조화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2) 상담의 목표

상담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내담자로 하여금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fully functioning person)이 되도록 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준비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담자의 현재 쓰고 있는 가면 뒤에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위협에 대항하기 위하여 위장수단을 개발하여 가면처럼 표면을 가리워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난이나 농담을 하면서 타인들에게 진실한 자기를 숨기려하며,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애쓰는 동안에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어, 본래 타고난 자기와 다른 가면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

상담과정에서 가면적인 자신의 겉사람이 벗겨져버리면 가면 뒤에 숨겨진 참인간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로저스는 점차 자기 완성을 지향하여 성장해나가는 인격의 특성을 다음 네 가지로 기술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에 열려짐, 자신의 독특한 능력을 신뢰함, 자신의 독특성에 근거하여 자신을 평가함, 성장하려고 즐겨 자신을 헌신함. 바로 이 네 가지 특성이 내담자중심상담의 기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3) 상담관계의 핵심으로서 상담자의 자세

(1) 조화 (Congruence, 또는 진실성, 순수성)

세 가지 상담자의 자세의 태도 가운데 조화는 가장 중요하다. 조화는 상담자가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내적 갈등의 모습을 이해하고(반드시 극복했다는 뜻은 아님) 그리하여 내적 통일을 이루고 진실하다는 말이다. 상담자는 거짓된 가면을 결코 쓰지 않으며, 그의 내면에서 경험하는 체험과 그 체험의 외적인 표현이 일치하며,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들과 마음자세들을 있는 그대로 개방하여 표현한다. 진실성 있는 상담자는 자발적이요, 자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들과 마음자세들에--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것이든--개방적이다.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들일지라도 표현함으로서(그리고 받아들임으로서)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사이에 솔직한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인간 대 인간관계를 통하여 상담자는 내담자의 성장뿐만 아니라, 상담자 자신의 자기완성을 수행해 나간다.

순수성을 지닌다는 것은 상담하는 동안에 상담자의 분노, 좌절감, 좋아함, 매력, 관심, 권태, 귀찮음 등 모든 감정을 쏟아놓아야 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담자는 모든 감정들을 충동적으로 털어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노출 역시 합당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내담자를 대하는 행동을 다르게 할 때 상담은 장애를 받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상담자가 내담자를 싫어하거나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용납하는 체 한다면 상담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상담자의 조화 또는 순수성은 완전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부냐 무냐의 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과정에 속한 것이다.

(2) 무조건적 적극적 배려(또는 긍정적 존중,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상담자의 돌봄은 무조건적이어서 내담자의 감정, 사상, 그리고 선악간의 행동의 가치 평가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용납하는데 어떤 조건들을 부가함이 없이 존중하고 온정미 있는 수용을 하여야 한다. 이것은 네가...한다면 너를 수용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너를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이다. 그리고 내담자가 자기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소유하고 표현하더라도 상담자의 용납이나 존중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상담자는 내담자를 가르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내담자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조건적 적극적 배려의 개념도 역시 전부냐 무냐의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니다. 조화에서와 같이 이것은 계속적인 과정에 속하는 것이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수용하는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담자의 인격변화는 가속될 수 있는 것이다.

(3)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

공감적 이해의 목표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자기의 감정들을 더 깊이 그리고 더 강열하게 체험하게 하고, 내담자 내부에 잠재해 있는 부조화와 부조리를 인식하여 해소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감정에 몰입되어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내담자의 감정을 상담자 자신의 감정처럼 감지하는 것을 말한다. 내담자가 경험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이미 깨닫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있음을 내담자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내담자가 아직 희미하게 감지하고 있는 경험의 의미를 분명히 해 줄 수도 있다. 정확한 공감은 명백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덜 분명하고, 덜 명백한 내담자의 내적 경험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도와서 현재 그가 부분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그의 감정영역에까지 도달하게 해준다.

공감은 나는 너의 문제가 무엇임을 이해한다는 식의 단순한 객관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내담자를 평가하여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은 내담자와 함께 내담자를 깊이에서부터 그의 주관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담자와 인격적으로 일체감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담자는 자신의 독특성을 상실해서는 안된다. 로저스는 믿기를 상담자가 내담자의 사사로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재의 체험을 내담자 자신이 보고 느끼듯이 파악할 때, 상담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건설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4. 클라인벨(Howard Clinebell, 목회상담학자)의 전인건강 이론

오늘날 상담학 분야에서 클레어몬트 신학교의 클라인벨만큼 큰 영향을 미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목회 초년기에는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했던 로저스식, 신프로이드 학파의 접근방식을 그대로 활용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가 배운 비교적 수동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심리요법이 목회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을 깨닫고, 목회전통으로부터의 통찰력과 새로운 심리요법 분야(예를 들어 TA, 현실요법, 역할 관계 중심의 결혼상담 등)의 방법론을 통합시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목회상담신론은 보다 전인적(holistic)이고 분명하게 해방-성장중심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성장을 목회적인 모든 보살핌과 상담의 중심적이고 통합적인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목회상담에서 보여지던 개인과 인간관계에의 초점에서 교회공동체에로의 관심의 변화를 보여준다. 영성을 중심으로 한 전인건강’(wholeness)에 목회와 상담의 목표를 두고, 목회자 중심에서 교회 공동체로 그 모델들을 재조정한 셈이다. 개인 중심의 노출지향적 병리학적 접근방식에서 인간관계의 갈등 해소와 성장으로 수정했던 상담모델이 이젠 그 두 차원(개인, 관계)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몸과 정신과 영혼의 통전적인 전인건강을 강화하는 것이 곧 목회와 상담이라고 재수정하고 나온 것이다. 즉 이전의 모델보다 기독교신앙과 신학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했고 강조했다고 보여진다.

목회와 상담은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상호 의존적인 여섯 분야를 통틀어 전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성장을 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여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몸에 생기를 회복시키는 일

2) 인간의 마음을 북돋아 주는 일

3) 다른 사람과의 친밀 관계를 갱신하고 강화하는 일

4) 자연과 생물권과의 관계를 심화하는 일

5) 개인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직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성장(일과 놀이)

6)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일.

* 인지요법: 사고의 왜곡에 대한 도전

자기 패배적인 신념과 왜곡된 사고들이 어떻게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내담자에게 설득하여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이므로 좀 길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사고의 왜곡이란 무엇인가? 에론 백에 의하면, 사람들이 우울해진다거나 불안해지는 것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고의 왜곡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하게 화를 내는 것도, 누구를 치가 떨리게 미워하는 것도 모든 생각이 어떤 극단으로, 혹은 비현실적으로, 혹은 비논리적으로 왜곡되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흔히 우울하니까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에론 백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니까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가 가장 잘 빠질 수 있는 생각의 오류(왜곡)는 무엇이 있을까?

이분법적 사고(흑백논리)

사물을 흑과 백의 두 가지 부류로만 보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줄곧 A학점만 받던 학생이 단 한번 B학점을 받고 나서 나는 이제 완전히 실패자야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같은 사고방식의 결과는 완벽성 추구이며, 실수나 불완전 상태에 대한 공포를 유발함으로써 어떤 일도 쉽게 착수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이 사고방식은 자신에게 부적절감과 무가치감을 느끼게 하고, 사소한 실패에도 자신을 완전한 패배자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되며,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고 스스로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완벽하기를 요구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화를 내고 공격하며, 대인관계를 원만치 못하게 만든다. 때로는 결벽증이나 강박증을 보이기도 하며 노이로제 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과잉일반화

단 한번의 부정적 사건을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의 본보기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줍음을 잘타는 어느 남자가 힘껏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그 여자가 선약이 있다며 공손히 거절했다고 하자. 그는 나 같은 놈은 평생 데이트 한번 못해보고 말거야. 이 세상에서 나와 데이트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한 사람도 없어. 나는 평생 고독하고 비참하게 살게 될거야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고방식은 그 여자가 이번에 거절한 것으로 보아 다음에도 계속 거절할 것이며, 이 세상 여자들은 모두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여자들도 모두 나를 계속 거부할 것이다라고 결론 짓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로 항상 실패의 선례를 내놓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점점 현실참여를 회피하려 한다.

판단력의 색안경

한 가지 잘못된 일에만 계속 집착함으로써 나머지 잘 된 일은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학기말 시험에서 백 문제 중 일곱 문제를 못 맞춘 학생이, 그 틀린 문제에만 계속 집착한 나머지 자기는 이번 학기에 분명 낙제할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결과는 93문제나 맞추었으므로 A학점을 받게 된 경우와 같다. 혹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래, 인간이란 저렇게 잔인하고 인정 없는 동물이야라고 단정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그렇다. 특히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마치 긍정적인 것은 통과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만 통과하는 색안경을 낀 것과 같아서, 자기 자신에게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게 되고 긍정적인 측면은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혹은 자기의 모든 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긍정적 측면의 부정

어떠한 이유라도 찾아서 자신의 긍정적 측면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인정하기 거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객관적(현실적) 사실과는 어긋나는 부정적 생각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이런 사람은 누가 얼굴이 예쁘다거나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면 그건 괜히 인사치레로 하는 소리라거나 혹은 놀리는 소리로 받아들이며, 상습적으로 칭찬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잘못되면 계속 그 일만 생각하면서 그것은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 잘되면 그건 어쩌다 잘 된 것일 뿐이야, 그 일은 나와 상관이 없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좋아할 줄 모르며, 때로는 이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자초하기도 한다. 얼굴이 매우 예쁜 여자가 사람들이 자기의 미모를 칭찬하면 그건 나의 진짜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내 진짜 모습은 아주 형편없어서 이 세상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은 없다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기 거부함으로써 분명히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체험과도 맞지 않는 부정적 사고를 고집하는 것이다. 이것은 겸손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음속 깊이 자기사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급한 결론

자신의 결론(혹은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도 없이 어떤 일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는 잘못된 심리추측과 지레짐작의 과오가 있다.

* 잘못된 심리추측: 그 진위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마음(태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수가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앞줄에서 졸고 있었다. 그는 전날 밤에 친구들과 밤샘을 하느라고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것도 모르고 교수는 학생들이 나를 별볼일 없는 교수로 취급하는군. 그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무시하고 있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너무나 기분이 상했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 아내가 건네는 인사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금방 풀이 죽어 남편이 또 나에게 화가 나있어. 나는 왜 그것도 미쳐 몰랐을까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침묵을 자기에게 화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와 같은 잘못된 심리추측으로 인하여 자기도 말을 하지 않게 되거나 혹은 공격을 가함으로써 처음에는 없었던 불편한 관계를 새로이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지레짐작의 과오: 일이 잘못될 것으로 지레짐작한 나머지 자신의 잘못된 예측을 마치 확실한 기정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여학생이 남학생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학생은 내가 전화하면 그 여학생은 틀림없이 거절할거야. 그녀는 원래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노력해보아도 소용없어라고 혼자 결론짓고 전화도 걸지 않았다. 실은 여학생도 그 남학생을 마음속으로 좋아해서 그의 전화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없길래 싫어하는 줄로 알고 다른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 여기에서 여학생도 잘못된 심리추측의 과오를 범한 셈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도 그렇게 해서 헤어지고는 밤마다 달을 보면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심리추측은 현재의 상황에 관한 것이지만 지레짐작의 과오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성질의 추측을 의미한다. 어쨌든 두 가지 모두가 객관적 근거 없이 어떤 결론을 내린다는 의미에서는 유사하다.

과잉확대 혹은 과잉축소

어떤 일(자신의 실수나, 불완전성, 불안감 혹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재능)의 중요성을 과장하거나, 다른 일(자신의 장점이나,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들은 불공평하게 극단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면서 자기는 수영선수 못지 않게 수영을 잘 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거짓말임이 탄로났다. 큰일 났어, 이제 다 끝장이야! 그녀와의 관계도 완전히 끝났을 뿐만 아니라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하면서 그 남학생은 마치 자기의 인생이 완전히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탄한다. 이것을 과잉확대라고 한다.

반면에,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장점에 대해서는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처럼 축소 왜곡시켜 보려 한다. 자신의 장점은 축소시키고 단점은 확대시킬 때, 열등감이나 불안증 혹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감정적 판단

자신의 (감정적)느낌이 사실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걸 보니까 사실임에 틀림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현상이다. 희망이 없게 느끼는 걸 보니까, 그 일은 전혀 가망 없는 게 분명하다.”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얼핏 보면 그럴듯한 논리 같지만 사실은 잘못된 논리이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대개의 경우 생각이나 신념에서 생겨나는 것에 불과하며, 생각이 왜곡되어 있으면 그때 느끼는 감정이란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가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근거가 혹시 틀리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느낌이란 편파적(왜곡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고, 특히 우울증과 같은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더욱 그렇다.

⑧ ‘하지 않으면 안돼의 과용

항상 자기 자신에게 하지 않으면 안돼’, 혹은 해서는 안돼와 같은 엄한 규율을 지나치게 적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태도를 자신에게 과잉 적용할 때는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수치심 그리고 자기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는 분노나 실망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무감동해지고 의욕을 상실하며, 심하면 허탈상태에 빠지게도 된다. 그는 하루도 인생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없으며, 항상 불만과 분노와 실망의 연속 속에서 살게될 뿐이다.

예를 들어, 데이트 약속시간에 상대방이 10분 늦게 도착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이렇게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면서 돌아서 나가버리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엄격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기분이 상하고, 심지어는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끼게까지 된다. 그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의 기대를 수정하던가, 아니면 항상 사람들의 불완전한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한 상태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사람들은 바람직하다하지 않으면 안돼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요구하는 기준이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당위성으로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모른다. 데이트 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적인 당위성으로 강요할 때는 오히려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⑨ ‘부정적인 이름붙이기

이것은 극단적인 과잉 일반화의 한 가지 형태로서, 자신의 과오를 그대로 말하지 않고 는 실패자다와 같은 부정적인 이름을 자신에게 붙여주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놈은 인간 쓰레기 같은 자식이야라는 식으로 쉽게 부정적인 이름을 붙여준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름을 붙여 주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성격특성들이 그 영향을 받아 그 이름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지각되고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이름 붙여진 사람 자신도 그 이름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에게 실패자혹은 변변치 못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붙이면 그것이 비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게 됨으로, 그것은 자기 패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인생이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위들이 다양성 있게 계속 변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순간의 행위로 인하여 그 전체에 어떤 낙인을 붙인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면 대개는 그 사람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것은 또 상대방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므로 결국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될 뿐이다. 아버지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아들에게 너는 돌대가리야”, 또는 넌 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불러 대면, 그 아들은 또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는 공부만 아는 폭군이야라고 반격함으로써 서로간에 불필요한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키고 서로의 단점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름 붙이기를 정당화하려 한다.

행위와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며,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 할 수 있다.

⑩ ‘모두 내 탓이오라는 사고방식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어떤 불행한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왜곡된 사고로 인하여 그 사람은 부당하고도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모두 내 탓이라고 자신을 학대한다. 예를 들어, 학교성적이 안 좋은 학생의 어머니가 성적표에서 특별관심이 필요하다는 담임교사의 의견을 보고 내가 몹쓸 엄마야, 이게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 엄마인지를 말해주는 증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숙제를 잘 해오지 않는 학생에 대하여 선생님이 오히려 내가 잘 지도하지 못한 탓으로 학생들이 숙제도 해오지 않아. 나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 이와 같은 사고 왜곡의 실례이다.

모두 내 탓이오라는 사고방식은 비현실적이며 병적인 죄책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서, 온 세상 걱정을 모두 자기가 도맡아 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과 책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행동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부모나 선생에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선생님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잘못 설정한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부당한 죄책감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