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설교 신학
권진호 (목원대, 교회사)
1. 들어가는 말
1) 1544년 10월 5일 토르가우(Torgau)에서는 ‘첫 번째 개신교 교회건축물’로 알려진 성(城)교
회 봉헌예배가 드려졌다. 이 예배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봉헌설교를 시작한다.
이 새로운 성전의 목적은 성전에서 다음과 같은 일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는 우리의 주님께서 스스로 거룩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이에 우리
는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께 대답하는 일입니다.1)
교회와 예배의 본질에 대한 루터의 신학이 분명하게 엿보이는 대목이다. 교회 혹은 예배에서
이루어져야 할 핵심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선포 그리고 이에 대한 교인들의 응답인 기도와 찬
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는 루터에 의해 교회의 본질적인 중심요소로 만들어
졌다.2)
설교의 의미를 높이 평가한 루터는 심지어 설교를 ‘최고로 최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예배]’로 존중하였다. 루터는 1532년 8월 18일 작센의 선제후 요한의 장례식 설교 처음부분
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가장 위대한 예배[하나님 섬기는 일]는 설교입니다. 설교는 가
장 위대한 예배일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모든 경우에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예배입니
다. 더군다나 이러한 엄숙한 슬픔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설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3)
1) WA 49, 588, 15-18.
2) 루터가 중세 가톨릭교회의 예배와 다르게 강조한 것은, 교회에서 설교 없는 예배란 있을 수 없다는 사
실이었다. 루터는 1523년과 1526년에 쓴 예배개혁에 관한 글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고 기
도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예배로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 ... 말
씀 이외에 모든 것은 중지되어야하고, 말씀보다 더 잘 추구되어야 할 것은 없다”(WA 12, 37, 26이하).
또한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미사를 임의로 선택된 인간행위로 간주하면서 이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하
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수한 설교가 예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예배란 인간의 행
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를 인간의 행위로 생각하지 않도록 설교가 예배에서 중심을 이루어야 하는
데,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시며 말씀의 설교에서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예배가 하나님의 일이며 설교가 이 예배의 중심인 것은 그리스도 스스로가 설교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설교를 통해 청중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 그런데 루터는 예배의 진행가운데 설
교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고정된 의견을 갖지는 않았다. “미사의 규정”(Formula Missae. 1523)에서
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관례였듯이 설교를 예배의 도입송(Introitus) 앞에 위치시켰는데, 여기서 설교
는 “사막에서 외치는 소리”의 사명, 즉 믿음을 갖으라고 호소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설교에
담긴 “선교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설교는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사도신경 다음에도 가능하
다. 루터는 이 위치를 “독일 미사”(Deutsche Messe. 1526)에서도 추천한다. Cf. A. Niebergall,
“Luther”, in: Leiturgia. Handbuch des evangelischen Gottesdienstes, hg. von K. F. Müller
u.a., Bd. 2/I (Kassel: Stauda, 1955), 257-275 (268-270).
3)
WA 36, 237, 29-32. - 루터의 장례 설교 및 죽음에 관한 이해에 대해서는 졸고, “루터의 장례설교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관한 고찰”, 「한국교회사학회지」 28 (2011), 165-195 참조.
2) 아래 그림은 루터가 평생 설교했던 비텐베르크 시립교회의 강단에 있는 것으로서, 1547년
크라나흐(Lucas Cranach d. Ä. 1472-1553)가 설치한 소위 크라나흐 제단이다. 여기에 있는
네 개의 그림은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기독교 교회의 본질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
한 의미가 있다. 세례가 이루어지는 곳에, 공동체가 성만찬을 위해 모이는 곳에, 회개와 죄 사
함이 약속되는 곳에 교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루터가 인정한 성례!).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을 설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 중 가운데 밑에 있는 그림은 강단에 서서 모인 회중에게 ‘십자가의 말씀’을 선포하는 루
터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한 손은 성경위에, 다른 한 손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가리
키고 있다. 루터는 설교란 예수를 선포하는 것, 특히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으로서 그리스도
의 십자가를 전하는 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십자가는 맨 중앙에 놓여 있다. 이것
은 교회란 무엇이고,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 가에 대한 내용과 근거가 된다. 하지
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마지막이 아니다. 예수님 허리에 두르신 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은, 그 분이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제단 그림을 통해
서 예배와 교회의 중심은 설교이며, 종교개혁자 루터의 삶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설
교임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역사에서 루터만큼 설교의 중요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없다. 종교개혁과
루터의 열정은 설교를 새로이 살리고 부흥시키는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종교
개혁자들 가운데에서도 루터만큼 설교의 중요성과 의미를 깨닫고 강조한 자는 없었다.4) 루터
는 셀 수 없이 많은 설교를 하였고, 또한 이를 통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다(“종교개혁은 설교
부흥운동이었다”). 하지만 설교자 루터와 그의 신학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소홀히 연구되어 왔
다. 본 글에서는 설교자로서의 루터의 행적(2)과 루터의 설교신학(3/4)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설교자 루터
1) 루터는 생애에서 두 개의 주요 직무를 맡고 있었는데, 바로 교수직과 설교직이다. 이 두
가지 직무는 루터의 삶과 행적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두 가지 직무
로부터 루터는 종교개혁을 결정적으로 구성하는 추진력과 자극을 얻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2년 10월 신학박사가 된 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슈타우피츠(Staupitz)의 후임
자로 성서학교수(lectura in biblia)가 되었다.5) 루터의 대표적인 성서강의로는 시편
(1513-1515년, 1518/19-1521년, 1532-1535년), 로마서(1515/16년), 갈라디아서(1516/17년,
1531년), 이사야(1528-1530년), 창세기(1535-1545년)등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33
년간의 교수 생활 중, 그는 대략 4년 반 동안만 신약, 특히 서신서에 대해서 강의를 했을 뿐,
대부분은 구약에 대해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교수의 임무에는 강의 외에 ‘토론’이 포함된
다. 당시 교수는 토론에서 논제를 통해 강의에서보다 더 자세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전
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수직보다 루터의 삶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임무는 바로 설교직이었다. 루터는
1509/10년 또는 1512년부터 설교 강단에 서기 시작하여 죽기 바로 전까지 설교를 하였다.
설교가 루터에게 가장 본질적이며 중심적인 일이고, 루터의 생애에서 최고의 과제였다. 설교
자로서 루터는 자신의 학문적인 성경 연구로부터 얻은 신학적인 통찰들을 비텐베르크의 일반
시민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루터는 연구실로부
터 깨달은 복음의 가르침을 강단을 통해 시민들의 삶에 적용시켰다. 이렇게 성경연구로부터
얻은 종교개혁적인 사상의 전파는 설교를 통해 가능했던 동시에, 설교를 위해서는 성경연구로
부터의 신학적 통찰이 필요한 일이었다.
루터는 그의 첫 설교를 수도원의 식당에서 행했다. 1512년(슈타우피츠의 설교에 대한 요구
에 따라 빠르면 1511년, 그러나 늦어도 1512년 박사학위이후)부터 루터는 수도원의 예배당에
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고, 이곳이 루터의 최초 설교 장소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시립교회에서 설교자로 활동했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루터가
시립교회에서 설교직을 위탁받게 되었는가는 확실치 않다. 루터가 후에 바르트부르크
4) 뮐하우프트는 루터와 칼빈을 비교하여 말하기를, 칼빈이 개신교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최초로 요구한
것이 신조와 규칙의 승인이었다면,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개혁 전체를 위해 분명하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설교(그리고 바른 성서적인 설교를 위한 입문(포스틸레[Postille. 설교집]))였다. Cf. Erwin Mülhaupt,
“Martin Luther, der Prediger”, in: Luther im 20. Jahrhundert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82), 247.
5)
교수로서의 루터에 대해서는 우선 강치원, “루터의 직업과 종교개혁”, 『설교를 위한 신학. 신학있는
설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123-166 (여기서 135-158) 참조. 또한 U. Köpf, “Martin Luthers
theologischer Lehrstuhl”, Die Theologische Fakultät Wittenberg 1502 bis 1602. Beiträge zur
500. Wiederkehr des Gründungsjahres der Leucorea, ed. Irene Dingel/G. Wartenberg (Leipzig
: Evang. Verl.-Angs., 2002), 71-87 참조.
(Wartburg)성에서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후 행한 사순절 첫 주간 설교에서 언급한 것에 따르
면, 루터 스스로 이 직무를 떠맡은 것이 아니라, 루터의 의사와는 반대로 시의회로부터 설교
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6) 이렇게 정식으로 설교자로 부름을 받게 된 것은 후에 루터의 행적
에 커다란 기여를 하는 조건이 되었다. 루터는 이 설교직무를 1513년(적어도 1514년)부터 맡
았고, 설교자로서의 의무를 시립교회에서 행했다. 이때부터 루터는 평생 시립교회에서 설교했
다. 그러므로 루터의 본래 회중은 비텐베르크 교회였고, 루터 역시 이를 “나의 교회”라고 불
렀다.7) 우리는 또한 1516년 10월 26일 랑(Lang)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터가 수도원과 시립교
회에서 설교했음을 알 수 있다.8) 루터는 1521년에도 여전히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설교했
는데, 예를 들어 3월 24일 종려주일에 설교를 했다.9)
이외에도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에서 영주를 위한 설교가로서도 활동을 했다. 만약
영주가 성에 거하거나 선제후의 각료가 비텐베르크에 거할 때면, 루터는 성교회에서의 설교를
부탁 받았다.10) 사실 루터는 1517년 95개 논제를 성교회 문에 붙이기 전부터 이미 여기서 설
교를 했으나, 영주설교가로서는 1525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11)
그밖에도 루터는 잦은 여행가운데 설교를 했는데, 특히 토르가우(Torgau)에서 자주 했으
며, 여행 중에 거하는 곳마다 설교를 했다. 예를 든다면, 루터는 보름스(Worms)국회에서 심
문받기 위해 오가는 도중(1521년 4월 2일-16일/4월 26일-5월 5일) 바이마르(Weimar), 에어
푸르트(Erfurt), 고타(Gotha) 등의 도시들에서 설교를 하였다. 루터는 4월 6일 토요일 에어푸
르트에 도착했고, 주일 낮에 요한복음 20장 19-23절12)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를 하였다. 그날
그곳 예배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루터가 설교하
는 동안 회중들로 가득 찬 교회는 공포에 빠질 뻔 했는데, 강단에서 설교하던 루터가 2층에
있는 무서움에 사로잡힌 회중들을 진정시킴으로써 그 공포는 가까스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다.13) 이 일과 관련하여 후에 드레스덴(Dresden)의 감리사가 된 목격자 그라이저(Daniel
Greiser)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나는 에어푸르트에서 수도사 복을 입은 루터가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 교회는 매
우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의 2층석에서 우지직 소리가 났다. 모
6) Cf. WA 10III, 10, 12 (1522년 3월 9일 설교).
7)
Cf. WA 49, 318, 2-14.
8) Cf. WA Br 1, 72 (Nr. 28): “나는 수도원의 설교자이고 식당에서도 설교하고, 매일 교구의 설교자로
요청되어진다.”
9) WA 9, 637-640. 루터는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날에 시립교회와
수도원에서 설교를 해야 했다.
10)
Cf. H. Junghans, “Wittenberg und Luther - Luther und Wittenberg”, Freiburger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und Theologie 25 (1978), 104-119. “영주의 손님들이 비텐베르크성에 거할 때, 일반
적으로 루터는 설교를 부탁받았다. 그 당시의 회계 자료로부터 우리는 누가 손님으로 비텐베르크성에 거
했는가를 알 수 있고, 루터가 누구 앞에서 어떤 설교를 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108). 성교회에서의 루
터 설교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다음을 참조. G. Buchwald, “Lutheriana. Notizen aus
Rechnungsbüchern des Thüringischen Staatsarchivs zu Weimar”, ARG 25 (1928), 1-98 (여기서
4장(71-83쪽)이 1522년부터 1545년까지 성교회에서 행한 루터의 설교를 다룸).
11) 루터는 이미 1523년에도 성교회에서 영주들 앞에서 설교를 했으나(G. Buchwald, “Lutheriana”,
71-72 참조), 1525년 10월 16일 영주의 손님들이 있을 경우에는 비텐베르크의 시립교회 예배는 성교회
에서 갖는다는 규정이 세워졌다. Cf. WA 17I, XII; T. Muther, “Drei Urkunden zur
Reformationsgeschichte”, ZHTh 30 (1860), 452-466.
12) WA 7, 808-813.
13) J. Köstlin, Martin Luther. Sein Leben und seine Schriften, Bd. 1, 405-6.
두들 2층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루터가 그들에게 위로하지 않았다면
몇몇 사람들은 창문을 부수고 교회 뜰로 뛰어 내렸을 것이다. “잠잠히 머무르시오, 사
단이 유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잠히 있으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날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14)
또한 루터는 집에서 설교했다. 그가 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공적인 강단에서 설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1532년 5월부터 1533년 12월까지 대부분, 또한 1534년에는 자주 집에서
설교를 하였다.15)
루터와 1523년 시립교회의 교구목사로 부름 받은 부겐하겐(Johannes Bugenhagen)16)은
오전 설교와 오후 설교를 서로 돌려가며 행했다. 특히 루터의 많은 오후 설교들은 “오늘 우리
는 들었습니다(Hodie audivimus)” 또는 “오늘 여러분은 들었습니다(Hodie audistis)”라는 말
로 시작됨을 볼 수 있다. 루터는 이 말들로써 일반적으로 부겐하겐이 행한 오전 설교를 기억
케 하곤 했다. 이것은 오후설교를 행하는 루터가 오전 예배에도 참석했다는 것을 암시해 준
다.17)
우리는 몇 개의 필사본을 통해 그 당시의 설교관습을 알 수 있는데, 가령 설교가 행해진
시간에 대해서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오전 7시18) 또는 8시19), 오후에는 2시 또는 3시20), 주중
에는 오후 5시21) 또는 3시22), 축제일에는 오후 1시23) 또는 2시24)에 설교(예배)가 행해졌다.
그리고 부겐하겐이 교회를 비운 기간25)에는 루터가 대부분의 설교를 맡았다. 1528/1529년 루
터는 수요일마다 마태복음 11장-15장을, 토요일마다 요한복음 16장-20장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였다. 1528년에 행한 루터의 설교는 모두 195개인데, 대략 145일에 걸쳐 행한 것이고, 49
일간은 매일 두 번의 설교를 했다.26) 1529년에는 121개의 설교를 하였는데, 81일간 설교했고
40번의 주일예배에서는 두 번씩 설교하였다.27)
루터의 삶은 중단 없는 설교자의 삶이었다. 루터는 평균적으로 매주 2번 또는 세 번, 경우
14) WA 7,803-4; P. Tschackert, “Daniel Greisers Bericht über die von ihm gehörte Predigt
Luthers zu Erfurt am 7. April 1521”, ZKG 21 (1901), 137-138 (138).
15) Cf. WA 36, VLLL 이하; 37, XVI 이하. 디트리히(Veit Dietrich)는 루터가 1532년부터 1534년까지
집에서 행한 대부분의 설교들을 편집하여 1544년 가정설교집(Hauspostille. WA 52)을 출판했다 (Cf.
WA 52, VII-XXVIII).
16) 부겐하겐은 루터, 멜랑히톤과 함께 소위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자 3인에 속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
적으로는 교수, 목사, 신학자, 저술가로서의 많은 활동 외에도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교회규칙을 만든
것인데, 특히 북독일, 예를 들어 함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익에서 만들었다. 또한 그의 종교개혁 활동은 덴
마크와 노르웨이까지 영향을 주었다.
17)
Cf. G. Buchwald, “Georg Helt's Wittenberger Predigttagebuch”, ARG 17 (1920), 183-208,
241-276 (191).
18) 1525년. WA 17I, 347.
19) 1525년. WA 17I, XVI.
20) 1526년. WA 20, 207.
21)
1523년 성목요일(고난주간의 목요일). WA 11, LI.
22) 1529년 성목요일. WA 29, 219.
23)
1524년 부활절후 월요일.
24) 1524년 성금요일.
25) 부겐하겐은 1528년 5월-10월 브라운슈바익(Braunschweig), 1528년 10월-1529년 6월 함부르크
(Hamburg), 1530년 10월-1532년 4월 뤼벡(Lübeck), 1534년 11월-1535년 8월 포메른(Pommern),
1537년-1539년 덴마크에 체류하였다.
26) WA 27, XXIV.
27) WA 29, XXX.
에 따라서는 4번까지 설교를 했다. 루터 스스로 자신이 쉬지 않고 설교했음을 다음과 같이 고
백하고 있다.
1000년의 역사상 나보다 지독한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설교를 30
년 동안 해왔고, 그중 하루에 3번 설교를 한 날도 많고 사순절에는 매일 설교를 했고
심지어 하루에 4번 설교를 한 날도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암브로시우스나 어거스
틴보다 내가 더 많이 설교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8)
그래서 루터는 자신을 ‘매일의 설교자’29)라고 불렀다.
2) 루터의 설교가 갖는 신학적인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언급은 접어두고라도, 설교는 양적으
로도 그의 행적에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바이마르판 전집(WA)30)중에 37권이 루터
의 설교를 포함하고 있고, 그 중 18권은 설교만을 담고 있다(*). WA 1, 2, 4, 6, 7, 8, 9,
10III*, 11, 12, 14, 15, 16*, 17I*, 20, 23, 24*, 25, 27*, 28*, 29*, 30I, 32*, 33*, 34I*,
34II*, 36*, 37*, 41*, 45*, 46*, 47*, 48, 49*, 51, 59, 60. 루터가 평생 행한 설교는 3,000
편 이상으로 추정되고, 그 중 2,000여 편이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31)
루터의 설교행적과 행해진 설교들을 알기 위해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우선, 설
교목록으로,32) 특히 이것은 전승되지 않은 루터 설교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
다. 설교목록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설교들을 행한 날들(축제일), 교회력 성구와 주제들을 엿
볼 수 있다.33) 또한 설교자 루터의 행적에 대한 정보는 헬트(G. Helt)의 설교일지,34) 강의나
편지에 루터 자신이 한 언급들35)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설교를 들은 사람이 쓴 목격의 글
을 통해서도 설교자 루터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당시 비텐베르크의 학생이었던 부러(Albert
Burer)가 설교강단의 루터를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28) WA TR 5, 659, 24-29. Nr. 6434.
29)
WA 7, 162, 9.
30) WA (루터 바이마르판 전집)은 루터의 탄생 400년 기념해인 1883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하여 2005년
에 완결되었다. 총 120여권으로 이것은 대략 80,000페이지가 넘는다. WA TR (탁상담화) 6권; WA DB
(독일어 성서) 15권; WA Br (편지) 18권; WA (저서) 80권 (이중 몇 권은 색인집).
31) 전승된 루터 설교의 목록은 WA 22, XLI-LXXXIX에 있다. Cf. G. Ebeling, Evangelische
Evangelienauslegung. Eine Untersuchung zu Luthers Hermeneutik, Tabelle I; Kurt Aland,
Hilfsbuch zum Lutherstudium, Nr. 577 Predigten.
32) 설교목록은 3가지가 있다. A(츠빅카우에 소재), B(츠빅카우), C(바이마르). 이것들은 서로 베껴 쓴 것
이 아니라, 각각 전승된 필사본에 따라 독립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설교목록은 설교를 포함하
고 있는 WA의 각 권의 서론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루터 설교를 개략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설교목록에 대해서는 WA 10III, IX-XIII 참조.
33)
“이 목록의 가치는 설교자로서의 루터의 행적에 대한 적절한 개관을 가능케 해준다는 사실에 있다
...... 이런 개관은 설교와 관련된 뢰러(Rörer)의 필사본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1527
년도의 설교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WA 10III, XIII).
34) 현재 헬트(Georg Helt)의 설교일지가 남아 있다. 이것은 헬트가 비텐베르크에 체류하는 동안 들은 설
교에 대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1533년 5월 25일부터 1535년 6월 27일, 1541년 12월 17
일부터 1542년 3월 19일, 1543년 6월 1일부터 1545년 2월 2일까지의 기록이 작성 되어있다. 여기서 우
리는 비텐베르크 시립교회에서 행해진 설교들에 대한 유일하고도 포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음을 참조. G. Buchwald, “Georg Helt's Wittenberger Predigttagebuch”, ARG 17 (1920),
183-208, 241-276; WA 59,242-255.
35) Cf. 졸저 Christus pro nobis, 11.
그[루터]의 얼굴표정은 친절하고 온화하고 쾌활하다. 그의 음성은 감미롭고 낭랑하여 나
는 그의 감미로운 능변에 감탄했다. 그의 무신앙의 적대자들이 아무리 반대론을 필지라
도, 그가 말하고 가르치고 행동하는 것은 아주 경건해 보인다. 그의 설교를 한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돌같이 굳은 사람이 아니라면 루터의 설교를 계속해서 듣기를 갈망할 정도
로, 루터는 설교를 듣는 자들의 영혼에 뗄 수 없는 인상을 새긴다. 요컨대 기독교의 완
전한 경건에 속하는 어떤 것도 그는 결여하고 있지 않다.36)
또한 마태시우스(J. Mathesius)는 루터의 생애에 대한 일련의 설교들에서 루터의 설교들과 설
교행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37)
루터가 행한 설교들은 크게 두 가지, 즉 개별설교와 연속설교로 분류된다. 에벨링(Ebeling)
의 연구를 근거로 하여 루터의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38)
개별설교
연속설교
총계
합계
구약 복음서
복음서
외
본문
없음
합계
구약
복음서
복음서
외
본문
없음
1978
1280
39
940
239
62
698
249
264
82
103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개별설교가 연속설교보다 대략 두 배 정도 많이 행해졌다. 또한
루터는 설교에서 복음서의 교회력성구를 설교하는 것을 선호한 것을 알 수 있다. 개별적인 설
교에 해당되는 것은 우선 교회력에 따른 주일 및 축제일 설교들, 가령 고난주간과 부활절기간
의 설교들이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계기가 되어 행해지는 설교들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
어, 라이프지히(Leipzig) 토론을 계기로 그곳에서 체류하는 중에 행한 설교,39)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돌아온 후 1522년 3월 9일부터 16일까지 매일 행한 사순절설교,40) 작센의 선제후 요
36) Adalbert H. Horawitz/ Karl Hartfelder, eds., Briefwechsel des Beatus Rhenanus (Leipzig :
Teubner, 1886), 303.
37) 마테시우스(1504-1565)는 루터의 생애에 대한 설교를 하였는데, 이것들은 본질적으로는 단지 루터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설교들은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어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몇몇 전해지지 않은 루터의 설교행적에 대해 알려주는 것들이 있다. Cf.
Hans Volz, Die Lutherpredigten des Johannes Mathesius. Kritische Untersuchung zur
Geschichtsschreibung im Zeitalter der Reformation (Leipzig : Heinsius, 1930).
38)
Cf. G. Ebeling, Evangelische Evangelienauslegung. Eine Untersuchung zu Luthers
Hermeneutik, 456 Tabelle I.
39) WA 2,244-249 (1519년 6월 29일). 이 설교는 1519년 6월 27일부터 7월 19일까지 라이프치히에서
루터와 칼스타트가 잉골스타트대학의 교수인 에크(Johannes Eck)와 벌였던 라이프치히토론을 역사적 배
경으로 하고 있다. 루터와 에크가 토론을 시작하기 며칠 전인 6월 29일 (베드로와 바울의 날) 루터는 바
님 공작 (Herzog Barnim von Pommern/ 이 당시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총장)의 요청으로 처음에는 시
립교회에서 설교하려고 했으나, 청중이 너무 많아서 토론장에서 설교했다. 설교는 마태복음 16장 13-19
절의 베드로의 고백을 본문으로 하여, 라이프치히 토론 내용을 포괄하는 칭의론과 교회론(하나님의 은혜
와 인간의 자유의지, 베드로의 사면권)을 다루었다. 루터는 후에 이 설교를 스스로 출판했고, 표지에는
저자의 그림, 즉 박사 학위모를 쓰고 설교하는 수도사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루터의 모
습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참고. Martin Luther und die Reformation in
Deutschland, ed. G. Bott (Frankfurt a.M. : Insel, 1983), Nr. 213.
40) WA 10III, 1-64[번역: 『루터선집 제 10권: 설교자 루터』(서울 : 컨콜디아사, 1987), 429-464]. 이 설
교들은 성경본문 없이 행해졌고, 비텐베르크 교회의 잘못된 개혁들에 관한 내용(수도원 탈퇴, 화상파괴,
금식폐기, 고해성사금지 등)을 담고 있다. 루터는 여기서 개혁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종교
성에 사로잡혀 있는 ‘약한 양심’을 고려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고 있다. 루터는 믿음과 복음의 자유 외에
한(Johann von Sachsen)의 장례설교,41) 토르가우(Torgau)의 성(城)교회 봉헌설교42)등이다.
연속설교는 오늘날 연속강해설교와 같은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본문을 다루었다. 창세
기(1519-1521년), 베드로전서(1523년), 베드로후서와 유다서(1523/24년), 창세기(1523/24년),
출애굽기(1524-1527년), 창세기(1527년), 레위기와 민수기(1527/28년), 신명기(1529년), 고린
도전서 15장(1534년), 몇몇 시편들과 이사야 등이다. 연속설교에는 또한 특히 ‘독일미
사’(1526)의 규정에 따라 주중에 행해진 설교들이 포함되는데, 이 작품에서 루터는 수요일 오
전에는 마태복음을, 토요일 저녁에는 요한복음에 대한 설교를 권한다.43) 우리는 그 당시 교회
시찰기록을 통해 비텐베르크의 시립교회가 실제 그런 규정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사는 수요일 오전에는 마태복음을 계속 이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까지 설교를
해야 한다 ...... 토요일 저녁에는 요한복음을 계속 이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까지
설교해야 한다.44)
또한 루터는 1529년 고난주간설교에서 이 관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한 해 동안 여러분은 수요일과 토요일에 두 복음서 저자에 시간을 할애했습니
다.45)
세 번의 부겐하겐의 부재 기간 동안, 루터는 수요일에 마태복음(5-7장; 11-15장; 18-24장),
토요일에 요한복음(1-4장; 6-8장; 16-20장)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연속설교에는 또한 교리문
답에 대한 설교들이 포함되는데,46) 1528년의 설교가 대표적인 것이다.47) 또한 1528년의 교회
시찰을 통해 매년 4차례 교리문답에 대한 일련의 설교를 하도록 정해졌다.48)
3. 루터의 설교신학 I : 설교의 본질과 의미
1)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Christus pro nobis)
루터 신학의 핵심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많은 학자들이 루터 신학에 대한
핵심주제를 각자의 관점에서 찾아내어 루터 신학의 중심을 서술하여왔다. 예를 들면, 뢰베니
또한 ‘사랑’을 강조한다.
41) WA 36, 237-254 (1532년 8월 18일).
42) WA 49, 588-615. 1544년 10월 5일.
43) Cf. WA 19, 79, 20-27. 여기에서 마태복음은 교회공동체를 가르치는데 유익하고, 요한복음은 특별
히 강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언급된다.
44)
Die Registraturen der Kirchenvisitationen im ehemals sächsischen Kurkreise. 2 Abt. 1.
Teil: Die Ephorien Wittenberg, Kemberg und Zahna, bearb. von Karl Pallas, 3.
45) WA 29, 219, 5-6 (1529년 3월 25일 오후설교).
46)
루터는 이미 1516/17년에 10계명에 대해 설교했고, 1523년과 1528년에 교리 설교를 하였다.
47) 이 설교는 세 부분의 연속설교들(1528년 5월 18일-30일; 9월 14일-25일; 11월 30일-12월 19일(번
역: 루터 선집 제 10권, 469-535))로 되어있는데, 이것들은 루터의 소교리문답의 기초가 되었다. 이 설
교들과 1529년 종려주일과 성목요일설교들로부터 루터의 대교리문답이 만들어졌다. Cf. G. Buchwald,
Die Entstehung der Katechismen Luthers und die Grundlage des Grossen Katechismus
(Leipzig : Wigand, 1894).
48) Die Registraturen der Kirchenvisitationen im ehemals sächsischen Kurkreise, 2I,4. Cf. WA
27, 444, 3-5(뉘른베르크 사본): “지금까지 관례이었고 우리의 규정이었던 것은 일 년에 네 차례씩 그리
스도인의 지식과 생활의 근본과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고, 4분기마다 두 주간씩, 매주 4일간 오후 2시에
설교되는 것이었습니다”(1528년 강림절 첫째 주일 설교).
히는 “십자가 신학은 루터의 신학 전체의 원리이다”라고 하였고,49) 율법과 복음을 루터 신학
의 구조로 본 페쉬는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에 관한 가르침을 루터 신학의 중심으로 간주하였
다.50)
그렇다면, 루터의 선포(설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필자는 루터의 1530년까지의 고난주간
및 부활절 절기에 행해진 설교를 근거로 하여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가 루터 설교의 중심임
을 발견하였다.51) 루터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직접 또는 내용상 간접적으로 수없
이 설교하였으며, 또한 이와 관련된 많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였다.52)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루터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것도 설교되어서는 안 된
다”(Nihil nisi Christus praedicandus)고 말하였다.53) 그리스도가 모든 설교의 총주제라는
것이다.54) 그리스도만을 설교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단지 역사와 연대기로 설
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설교는 충분치도, 아니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못하
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설교하지만, 이들은 그리스도의 의미와 우리에게 베푼 그의
자비를 이해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대다수 설교자들은 기껏해야 그리스도에 대한 역
사를 말할 뿐이며 더 이상은 설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만을 설교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설교가 아니다. 그것은 (시편 19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역사가 이
를 믿는 우리를 도와 의와 구원을 얻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고 왜 그런지를 설명할 때
에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55)
결국, 루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 즉 십자가와 부활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 ̇ ̇
위한
̇ ̇ 그리스도”(Christus pro nobis)56), 우리를 위한
̇ ̇ ̇
̇ ̇ 십자가와 부활이다. 2000년 전의 사건
49) Walter von Loewenich, Luthers Theologia crucis (Witten: Luther-Verlag, 1967), 14.
50) Otto Hermann Pesch, Theologie der Rechtfertigung bei Martin Luther und Thmas von
Aquin. Versuch eines systematisch-theologischen Dialogs (Mainz: Matthias-Grünewald-Verlag,
1967).
51) 이에 대해서는 졸저, Christus pro nobis. Eine Untersuchung zu Luthers Passions- und
Osterpredigten bis zum Jahr 1530 (Münster: LIT, 2008), 148-149 참조.
52) 예를 들어, 행 8:32이하, 롬 4:25, 사 53:8-12, 벧전 1:19, 요 20: 17, 눅 23:34, 히 5:1이하 등이다.
53)
WA 16, 113, 7-8.
54) 그리스도 설교란 루터에게 있어 다름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에 관한 설교이다. 루터는 성서 전체와 신
학 전체의 인식은 율법과 복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로 율법과 복음의 바른
구분을 강조하였다. 또한 설교에서도 율법과 복음은 바르게 구분되어야 하며 바른 역할과 순서로 선포되
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Cf. WA 39I, 430, 1-11 [반(反)율법론자들에 반대하는 두 번째 논쟁]: “설교직은
우리가 율법과 복음 두 가지 모두 가르치도록 제정된 것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이는 유익이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단지 해롭게 설교될 수 있을 뿐이다. - 의사가 항상 병의 진단만 하고 치료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두 가지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 그처럼 우리는 설교에서도 바르게
나누어야 한다. 공동체 설교에서 한 부분(죄에 대한 놀람과 참회 또는 위로와 기쁨)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절망만 있게 되면, 그 절망은 나쁘며 심지
어 치명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이 거기에 더해지면, 이로부터 ‘복음적인 절망’이 되는데, 이 절
망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마 11:5에 쓰여 있는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즉
가난한 자, 다시 말해 놀라고 불안해하는 마음에게 복음이 설교되기 때문이다.”
55) WA 5, 543, 14-19 [두 번째 시편강의(Operationes in Psalmos)].
56)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우선 졸고, “루터의 고난주간과 부활주간 설교의 핵심주제 ‘우리
를 위한 그리스도’”, 「신학사상」 148 (2010), 201-235 (220-228) 참조.
자체,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더 이상 죽지 않을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
실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의미가 없거나 매우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죄와 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57)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라는 맥락에서 루터는 역사적 사건(historia)과 유익, 사실(factum)과
사실의 유용성을 구분하면서, 역사적인 신앙(fides historica)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다. 루터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신
앙은 유익함이 없는데, 마귀와 불신앙인들 조차도 그러한 신앙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58) 중
요한 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이다. 즉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
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해당되며 심지어 우리에
게 속한 것이며 우리의 것이라는 말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선물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
는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구분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며 왕이다”라는 고백과 “그리스도는 나의
̇ ̇ 구세주이며 나의
̇ ̇ 왕이
다”라는 고백은 큰 차이가 있다.59) 결국, 바른 믿음이란 “오직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60)
이러한 바른 믿음, 즉 역사적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가 되도록 하는, 다시 말
해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실제가 되도록 하는 것은, 루터에 따르면 오
직 말씀을 들음으로, 즉 설교를 통하여 일어난다(fides ex auditu).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 설
교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우리 인간의 구원의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61) 루터는 심지어
그리스도가 십만 번 죽으셨어도, 이것은 설교되지 않는 한 아무 유익이 없다고까지 말하였
다.62)
우리는 설교의 의미 및 믿음과 설교(말씀)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다.63) 루터나 열광주의자들이나 모두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
함은 믿음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64)는 사실에 동의한다. 죄는 믿음을 통하여 용서되는 것이
다. 그런데 루터의 눈에 열광주의자들의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고 그것에만 머
물러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들이 그리스도의 육은 죄를 위하여 주어지되, 오직 십자가에서
주어졌음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루터는 믿음이 오직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장소에만 머물러야 하는지 냉소적으로 질문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에 주의를 집중시킨다(롬 10:14에 근거하여). 또한 “만일 (죄)사함이 십자가에서 더 멀리 미치
57)
그렇다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들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부인한다거나 폐지시킨다는 말은 아니
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과거 역사적 행위들과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유용함의 맥락을 분명
하게 밝히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지난 행위들은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행위가 오늘날 이 자리에서 계
속 되도록 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Cf. Vilmos Vajta, Die Theologie des Gottesdienstes bei
Luth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59), 125.
58) WA 10I2, 214, 12-14.
59) WA 29, 262, 7-8.
60) WA 29, 197, 5-7.
61)
이에 대해서는 먼저 Florian Schneider, Christus praedicatus et creditus: die reformatorische
Christologie Luthers in den “Operationes in Psalmos(1519-1521)”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2004), 63-101 참조.
62)
WA 16, 332, 6-7. Cf. WA 29, 200, 3-4: “만일 그리스도가 하루에 백번 십자가에서 죽으셨어도 아
무도 그것을 우리에게 설교하지 않았다면, 죄 사함은 잃어버린바 되었을 것이다.”
63) Cf. Christus pro nobis, 180.
64) WA 29, 199, 15-16.
지 못한다면, 죄사함은 한 날에 이루어진 일에 불과하며, 그의 고난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없다”65)는 확신과 함께 루터는 설교하기를,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속 사역은 우리의 믿음(물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며 우리에게 유익하게 되는데,
이러한 믿음은 오직 말씀을 들음으로, 설교를 통하여 생긴다는 것이다.
루터에 따르면, 열광주의자들은 믿음과 말씀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했다. 이들은 오직 그리
스도의 구원역사 자체만 구원의 실제라고 여긴 반면, 루터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대한 설
교가 구원의 실제라고 보았다. 여기서 결정적인 원칙은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자체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설교로부터 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이다. 다시 말해, 과거 2000년 전에 일회
적으로 있었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것에 대한 말씀과 선포를 통해 인
간의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이 실제적인 구원사건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역사적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오로지 설교와 관련되어 있다.
결국, 루터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실제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설교는 동일
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설교에서 실제가 된다는 것이다.66) 설교가 전하는 내용은
바로 설교에서 유효하게 되고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의 역사적인
유일회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설교를 통해 우리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이루어
진다. 그리스도 사건이 구원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에 정해져 있
는 것이다.67) 또한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건은 우리를 위한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행위
의 유익은 우리의 것으로 선포되고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은
바로 설교사건에서 살아 역사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진리는 구술의 말씀을 통해 현재, 이곳에
현재화되는 것이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는 설교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이다.68)
2) “생생한 음성”(viva vox)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말씀”(solum verbum)이라는 종교개혁적인 모토에서 알 수 있듯이 루
터 신학의 중심개념이다. 그런데 루터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성서와 설교이
다. 즉 쓰인 말씀과 선포된 말씀이다.
성서는 분명 루터에게 있어 하나님 말씀으로서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오직 성서”[sola
scriptura]).69) 성서는 “(비록 열광주의자들에 의해 죽은 문자라고 불릴지라도) 그리스도에 대
한 증언”70)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나타나심 그 자체보다도 더 확실한 증언이고 증거이
다.”71) 그리고 기독교의 믿음은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루터는 “거룩
한 성서를 존경하라”72)고 권고한다.
65) WA 29, 199, 4-6.
66)
이에 대해서는 우선 Hans-Martin Barth, “Historie und Identification. Über Luthers Passions-
und Osterpredigten”, in: PTh 55 (1966), 70-80 참조.
67) Cf. Florian Schneider, Christus praedicatus et creditus, 77-78.
68) Cf. H.-U. Gehring, Schriftprinzip und Rezeptionsästhetik. Rezeption in Martin Luthers
Predigt und bei Hans Robert Jauß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1999), 22.
69)
Cf. A. Niebergall, “Luther”, 258. - “성서의 유일한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서는 그리
스도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권위, 더 자세히 말하면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 ... 구약과 신약이라는 성서는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소식을 담고 있고 예언하고 약속하고 선
포한다는 점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70) WA 32, 56, 14-16.
71) WA 32, 60, 10-12.
72) WA 29, 274, 5.
하지만 루터는 또한 선포된 말씀을 중심된 위치에 갖다 놓는다. 다시 말해, 쓰인 말씀보다
선포된 말씀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문서로 고정된 성서본문보다 구술로의 선
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로제는 말한다.73) 루터에 있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이다. 그래서 우리가 루터의 작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구절을 만나게 되
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구술로 선포되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74)
그럼, 루터가 주장한 이러한 설교의 우위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루터는 먼저 복음이란
본질적으로 “생생한 음성”이며 구술로 된 말씀이라고 자주 강조했다. 복음은 근본에 있어 “그
리스도에 관한 좋은 명성, 말, 외침”이다.75) 복음의 구술적인 성격에 대한 루터의 이해는76)
무엇보다도 복음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 말씀으로서 오직 구술의 형태로만 말해질 수 있다
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상 자신의 방식으로 들려지고 믿어지도록 하고자 하기
때문에, 복음은 본질적으로 오직 구술 형태인 것이다. 루터는 복음의 이러한 형태를 그리스도
와 사도들의 사역에서 발견한다. “그리스도 자신은 어떤 것도 쓰시지 않았고, 모든 것을 음성
으로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소수의 책을 썼을 뿐이고, 대부분은 말을 하였다.”77)
루터는 또한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여 설명한다. 율법은 “아름다운 문자”로 된 문서로서 홀
로 머무를 뿐 결코 인간의 마음에 오지 않지만, 복음은 인간의 마음에 써짐으로써 자기 본분
을 다한다는 것이다. “보라, 그리스도가 하신 행위들과 함께 그를 사람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것은 율법이나 사람의 힘과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하늘의 힘인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사람의 마음으로 올바른 책자를 만들어 내는데, 이 책자는 문자나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참된
생명이요 행위이다.”78) 교회의 표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데, 즉 교회는 “입의 집이지 펜의
집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전에 책들에 감춰있는 복음을 구술로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복음은 이미 사도시대에 문서의 전달로도 시도되었는데, 루터는 이를 위급상황으
로 인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복음의 정경화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이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하였다. 사도들의 설교는 모든 이단과 오류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로써 기독교 대중이 동요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양들을 성서라는 책으로
인도해서 당황한 양심에게 믿을 만한 원칙을 주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79)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 모든 책과 서술은 단지 비상수단이었고 결손의 형태였
다. 본질적인 의미의 말씀은 결코 쓰인 것이 아니다. 성서는 루터에게는 읽을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듣는 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오직 그리스도에 관한 구술의 설교만이 복음의 본질
에 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루터의 언급들에는 “본질적으로”라는 말이 첨가되
73)
Bernhard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h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5), 207.
74) Cf. Jaroslav Pelikan, “The Bible and the Word of God”, in: Luther the Expositor (St.
Louis, 1959), 48-70 (64).
75) WA 17II, 73, 35.
76)
이에 대해서는 A. Beutel, In dem Anfang war das Wort. Studien zu Luthers
Sprachverständnis (Tübingen: Mohr Siebeck, 1991), 238-243; P. Schempp, Luthers Stellung
zur Heiligen Schrift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29), 32-48 참조.
77)
WA 7, 526, 16-17. Cf. WA 10I2, 48, 9-10: “그리스도 자신은 어떤 것도 쓰시지 않았고 또한 쓰라
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구술로 설교하라고 명하셨다.”
78) WA 22, 223, 8-11.
79) A. Beutel, In dem Anfang war das Wort, 241
어 있음을 볼 수 있다.80)
설교란 곧 구술로 된 말씀이다. 루터는 인간의 음성은 사소한 피조물이지만, 어떤 내용을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하며 마음에 와 닿게 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것이
설교에도 작용하는데, 설교의 말은 그리스도를 귀와 마음에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연
약한 육적인 음성이 그리스도를 인간의 귀에 들리게 한 후에야 비로소, 듣고 믿는 자들의 마
음에 그를 데려다 준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는 설교자의 음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
에 와 닿게 되며, 설교를 듣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완전히 붙잡게 된
다.81)
또한 루터가 설교, 즉 살아 있는 소리, 생생한 음성을 강조한 것은 말씀에 대한 루터의 이
해에 근거한다. 말씀, 그리고 성서에 고정된 말씀은 구술로 선포될 때만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고, 성취하고 영향력 있는 말씀이 된다. 또한 창조의 말씀이 되며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그
리고 오직 설교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현재의 말씀이 된다. 설교는 복음의 계시수단이기에,
어떤 기쁜 소식도 살아있는 소리로, 설교로 선포되지 않는다면, 복음의 모든 것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교 없이는 복음은 현재의 복음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성서는 스스로,
항상 새롭게 계속적으로 “복음의 생생한 음성”이 되는 것을 요구한다. 성서는 가르쳐지고 선
포되고자 하기에, 본질적인 의미에서 성서는 오직 강단 위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심지어
말할 수 있다.
3) “인식하게 하는 수레와 매개체”
루터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하여 설교의 의미와 역할을 구체화하였다. 루터의 출발점은 그
리스도의 부활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에는 감춰져 있어서,
계시되어야만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
야기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느 누구도 본 사람이 없으며, 또 만일 천사가 하늘에
서 내려와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리스도의 부활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에 대한 계시와 깨달음에 있어서 천사의 선포는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강조한다. “만일 천사들에 의해 선포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은밀하게 머물러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82)
루터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진 본질을 고려한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
은 계시되어야 하는 것, 즉 계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
의 부활을 심지어 “부활에 대해 선포하고 말하는 것”으로 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의 부활 사건과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한 설교는 루터에게 있어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그 자체가 이미 설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83)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단지 사건으로 머무르지 말고 말씀으로도 표현되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의 부
활은 설교를 목표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교란 그리스도의 사역을 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부활은 설교를 통하여
계시된다.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는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계시되지 못한다.”84) 하나님께서
80)
Cf. A. Beutel, In dem Anfang war das Wort, 242.
81) Cf. Christus pro nobis, 182-183.
82) WA 29, 272, 16-17.
83) Cf. Christus pro nobis, 177-178.
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보물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시는데, 이를 위해 설교직을 제정하
시고 성령을 주신 것이라고 루터는 설교한다.85)
이러한 설교의 역할에 근거해, 루터는 말씀 없이 그리스도를 찾는 자는 “빈 무덤”만을 발
견하게 될 것이라며 설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부활한 그리스도는 오직
말로 전해진 말씀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으며, 설교(선포) 없이는 어느 누구도 부활한 그리
스도를 인식할 수도, 발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86) 만일 천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구술로
전해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어떤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오히려
이성에 유혹되어 “그리스도의 시신을 도둑맞았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루터는 말한다.87)
설교란 루터에게 있어 “인식하게 하는 수레이며 매개체”인 것이다.88) 설교란 “하나님의 인
식에 이르는 수레”이다.89) 루터의 관심과 강조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사건은 설교되어져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설교 없이 이런 사건 자체만으로는 아무도 깨닫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루터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자체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에 관한 설교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은 사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
라, (그 사건에 관하여) 선포된 말씀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은 말씀을 통해
깨달아지는 것이다. “설교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그의 보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없다”고
루터는 거듭 강조한다.90)
그럼, 이러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루터에 따르면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인식은 다름이 아니라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91) 결
국 설교란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92)
정리해서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설교 없이는 감
춰져 있고 따라서 아무 효력도 없으며 우리에게 어떤 유익도 없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문
자 그대로 말해지는 곳에서, 말로 표현되는 곳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영향력이
있게 되며, 또한 인식되고 이해되고 믿어질 수 있는 것이다.93)
4) “말씀이 설교되는 곳에 주님은 곧 뒤따라오신다”
84) WA 29, 292, 8-9.
85)
WA 27, 121, 2-4.
86) Cf. WA 29, 275, 10-12; 29, 273, 20-274, 17.
87) WA 29, 273, 6.
88) WA 29, 272, 8-9.
89) WA 29, 273, 19-20.
90)
WA 29, 274, 13-14.
91) WA 9, 666, 24-25.
92) 루터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성령님 홀로 역사하시는 것임은 분명하
다. 그러나 루터가 외적으로 구술로 선포된 말씀, 설교를 통하여 믿음이 온다고 강조한 것은, 본질적으로
는 성령과 외적인 말씀의 밀접한 맥락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직통 계시를 주장한 열광주의자들
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열광주의자들은 성서를 “죽은 문자로 된 책”으로 간주하면서 외적인 말씀보다
내적인 말씀(성령)의 우위 내지는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대하여 루터는 성령과 설교의 밀접한 관
련을 주장한다. 즉 성령님은 외적인 말씀인 설교를 통하지 않고는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먼저 말씀이 선행하지 않으면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
에 대한 깨달음 역시 먼저 설교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루터는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인식하
고 믿음이 불러일으켜진다고 설교하며 강조한 것이다.
93)
K.-H. Bieritz, “Verbum facit fidem. Homiletische Anmerkungen zu einer Lutherpredigt”,
in: ThLZ 109 (1984), 481-494 (485).
루터는 설교가 주는 유익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에 대한 설교를 근거로 하여 자세하게 설
명해 주고 있다.94)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무덤 앞에는 여전히 큰 바위가 놓여 있었
다. 하늘로부터 천사들이 내려와서야 비로소 그 바위를 굴려 옮겨놓았다. 루터는 이것을 알레
고리적으로 해석하는데, 천사(-> 설교자)가 옴으로 바위(-> 양심을 짓누르는 율법)가 옮겨진
것처럼 비로소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설
교 없이는 (이미 앞에서 본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감춰져 있고 우리에게 어떤 유
익도 주지 못하게 된다.
루터는 유익을 가져다주는 설교에 대해 “선포된 것과 똑같이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다”
라는 모티브로 설명한다. 도마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20:25)를 근거로 하여, 루
터는 선포된 말씀의 실제성 및 실재를 주목한다. 만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지 않았
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선포한 말씀은 공허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루터는 설교된
말씀의 실제성을 강조하는데, 즉 설교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주님은 곧 뒤따라오신다. 왜냐하면 말씀은 헛된 것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95) 말씀은
열매 없이 물러나는 법이 없으며 또한 실제이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루터의 확신이었다.
그리스도가 설교되는 곳에 분명 그리스도는 지체하지 않고 함께 하신다고 루터는 말한
다.96) 다시 말하면, 설교는 그리스도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마음에 오시는데, 무엇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을 통해서”이다.97)
설교되는 언제나, 설교되는 어디에나, 그리스도는 함께 하신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오는 말씀을 성경의 예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
한 말씀을 들었지만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리스도는 선포된 말씀 때문에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98) 루터에게 있어 설교의 유익, 설교의 의미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그
리스도가 나타나신다”는 사실에 있다.99) 결국 설교는 그리스도를 중재하며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모셔오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설교한다. 그리
고 나는 육적인 음성으로 그리스도를 당신의 마음에 모시고 간다.”100) 결국, 설교되어질 때
그리스도 자신이 설교하는 것이요, 설교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4. 루터의 설교신학 II : 설교자의 의미와 중요성
1) “하나님의 입의 전령”
루터는 탁상담화(卓上談話)에서 훌륭한 설교자의 자질 10가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설교자
는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두뇌를 가져야 하고, 말을 잘 할 수 있어야 하고, 목소리
가 좋아야 하고, 기억력이 좋아야 하고, 너무 오래 말하지 말아야 하고[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하고], 신념이 있고 부지런해야 하고, 육체와 생명, 재물과 명예를 바칠 각오를 해야 하고, 모
든 사람으로부터 조롱받을 수 있어야 하고,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101)
94) Cf. Christus pro nobis, 181-182.
95)
WA 29, 293, 16-17.
96) WA 29, 293, 11-12.
97)
WA 19, 500, 39-40.
98) WA 29, 294, 2-4.
99) WA 29, 293, 14 (여백주기).
100) WA 19, 489, 9-10.
101) WATR 2, 531 Nr. 2580. - 또한 루터는 1530-32년 비텐베르크 시립교회에서 수요일에 행한 마태
복음 5-7장에 관한 연속강해설교에서, 마 5:1-2을 본문으로 하여 좋은 설교자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하여
언급했다. 첫째,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신 것처럼, 설교자는 공개적으로 설교해야하며 아무도 두려워
하지만 루터는 설교에서는 이런 자질과 능력보다는 대부분 설교자의 정체성에 대해 설교했
다. 즉 설교자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로 미루어, 루터의 설교에서 루터가
강조하고 있는 설교자상 가운데 으뜸 되는 것은 설교자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즉 하
나님은 설교자를 통하여 설교하시는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 설교자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
에 근거하고 있다. 자주 언급되듯이, 설교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deus loquens)이
다.102) 결국 설교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일인 것이다.103) 하나님 홀로 설교자
이며, 따라서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단인 혀를 통한” 도구인 것이다.104)
루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렸던 천사들을 설교자로 간주한다. 루터에게 있어 천사들은
설교자들의 모범이었다. 루터는 4복음서의 부활절 기사의 차이점들에 주목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한 천사가 언급되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두 천사 이상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본문이 옳다고 본다. 그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한
천사만 언급된 이유는 무엇일까? 루터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입의 전령”105)이라는 유일무이한
임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교한다. 천사들은 모두 “입으로 전해주는 하나님 전령”으로
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였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천사들의 선포가 없었다면, 그
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계시는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도 부활한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감추어 머무르게 되었을 것이다.
루터는 설교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설교의 중요성도 계속하여 강조한다.
루터에 따르면, 설교자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부활의 일을 그들의 입과 손에 주신”106) 존재
이다. 설교자의 혀는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시는 도구이다. 따라서 설교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으로서(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모든 설교자들은 “소명에
관하여” 확신해야 한다고 루터는 권고한다.107) 설교자들의 확신에 대한 루터의 신념은 다음에
서도 잘 나타난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속에 계심[자신의 입으로 말씀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
설교자는 마치 하나님 자신이 설교하시는 것처럼 자신이 설교하는 것임을 확신해야 한
다.108)
이런 점에서 설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동일시는 설교에 최고의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입은 곧 그리스도의 입이 되는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가면으로서 사도들과 동등한 위치와 권위를 갖고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의 말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예수님이 입을 여신 것처럼, 설교자는 힘 있게 그리고 확신에 차서 설교해야 하며
설교의 대상이 누구이든, 설교의 내용이 무엇이든 솔직하게 설교해야 한다. 셋째, 예수님이 부름 받은 대
로 행하셨듯이, 설교자는 자신의 배와 세상적인 삶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설교의 직무가 수립되고 제정
된 목적에 따라 어떤 고통이 와도 진리를 설교해야 한다. Cf. WA 32, 302-305.
10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서의 설교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H. S. Wilson, “Luther on
Preaching as God Speaking”, in: Lutheran Quarterly 19 (2005), 63-76.
103) 이에 대해서는 E. Herms, “Das Evangelium für das Volk”, in: LuJ 57 (1990), 19-56 (50-52)
참조.
104) WA 27, 94, 15.
105)
WA 15, 520, 39 [한스 보르스트에 반대하여(Wider Hans Worst)].
106) WA 29, 308, 12-13.
107) WA 29, 308, 10.
108) WA 15, 521, 7-9.
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위와 존엄이 적용된다. “주님이 이것들을 말씀하셨다”.109) 더 나아
가, 설교자는 “귀중하며, 설교자에게는 어떤 부족함도 없으며, 설교자는 사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천사인 것이다. 천사가 지혜와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처럼 설교자
에게는 결점이 없다.”110)
2) 설교자의 소명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루터는 설교자에 대한 소명을 강조한다. 우선, 루터는 천사가 “땅으로부
터 온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에서 설교자의 소명의 근거를 찾는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처럼,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루터는 소명뿐만 아니라 정식으로(제도적으로) 설교자로 부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
한다. 물론 원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설교할 자격이 부여된다. 설교 자격은 특별한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재능이나 필요성에 따라
설교직을 떠맡아서는 안 되고, 오직 설교에 부름을 받은 자들만이 설교직을 떠맡아야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바른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111)
루터는 설교직에 부름 받는 것의 중요성을 특히 당시의 열광주의자들과 논쟁하는 맥락에서
강조하고, 공동체에게 계속적으로 “부름 받지 않은” (무허가)골방설교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
를 하였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요 20:21)라는 말씀을 가지고 루터는 공적으로, 직
무를 부여받고 보내진 설교자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가 부름 받은 설교자의 모델이
다. 루터는 당시 설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들(거짓 사도들, 골방설교자들, 열광주의자들)이
설교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여 요구하였다. 루터는 심지어 골방설교자들은 사단
이 보낸 자들이라고까지 혹평하였다. 골방설교자들에게 요구된 것은 침묵하든지, 아니면 정식
으로 설교자로 부름을 받는 일이었다. 또한 루터는 자신이 공적으로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고
공적으로 설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112)
결국 루터에게 있어 설교는 근본적으로 성령 받은 자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직에
로 부름을 받은 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설교직에 부름을 받는 것인데, 이것은
성령으로부터 직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직무가 있는 곳에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역시 골방에서가 아니라 공적으로 말씀하신다.113)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설교직의 불가분의 관계를 알 수 있다.114)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는 성령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처럼
말이다. 만일 설교자의 인격과 경건에 근거하여 성령이 주어지고 설교직의 권위가 성령에 근
거한다면, 그 설교직은 일정하기 보다는 동요되고 흔들릴 것이다. 설교자의 인격과 경건은 항
상 동일한 것이 아니라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설교자의 인격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설교직에 근거하여 성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설교직은 동요하거나 변덕스럽지 않다.
109) WA 51, 517, 9.
110) WA 29, 275, 18-276, 2.
111)
A. Niebergall, “Luther”, 267.
112) Cf. WA 29, 307, 23-308, 3. - Cf. WA 29, 307, 16-20: “만일 성령님이 나를 라이프치히로 가서
거기서 설교하도록 부추기신다면, 나는 거기서 어떤 집에 들어가는 대신 시의회나 목사에게 말할 것이
다. ‘당신들은 내게 설교하는 것을 허락하고자 하는가?’ ... 만일 그들이 내게 허락지 않는다면, 나는 골
방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113) WA 29, 308, 8-9.
114) Cf. Christus pro nobis, 196-197.
설교직은 죄사함과 성령에 대한 보증이 된다. 물론 루터는 개인에 따라 성령이 주어짐을 부인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최상이라고 하였다.115) 하지만 비록
나쁜 목사, 악한 설교자라도 성령이 주어진다고 보았다. 목사직이나 설교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부여하신 직무이기 때문인데, 성령은 개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부여된 직무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루터는 강조하였다.
루터가 이렇게 성령을 설교직과 관련시키고 설교직을 강조한 근거는 무엇보다도 믿음의 확
신에 있다. 개인의 무엇인가에 근거한 확신은 불확실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직무상 성령을 갖고 있지 않으면, 죄를 사할 수 없
다. 왜냐하면 직무는 우리의 것이 아니며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성령과 그리스도
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 설교자가 그 자신에 관련해서는[개인의 인격과 경건에
있어서] 성령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그는 직무를 갖고 있는 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성령을 기독교와 모든 설교자와 목사들에게 주셨는데, 이들이 가르치고 위
로하고 권면하도록 하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은 분명 불확실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내일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베푸는 자가 신실한 믿음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감고, 설교자가 경건한지 아닌지,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닌지, 설교자 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세례하고 설교하고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직무
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직무이며, 바로 그리스도가 그에게 직무를 주신 것이기 때문이
다.116)
결국, 설교직은 성령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며, 또한 여기서 도나투스주의
적인 신학과 사상은 서 있을 곳이 없게 된다. 루터의 강조는 당시 재세례파와 같은 열광주의
자들과의 논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루터는 설교직을 강조하고 또한 설교직과 성령
의 밀접한 연관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공적인 설교를 강조한 반면, 무허가 혹은 골방 설교자들
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공격을 가했다. 이러한 설교직에 대한 중요성과 의미는 설교를 듣는 청
중뿐만 아니라, 오히려 설교자가 가져야 할 의식이며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설교를 듣는 자들 또한 분명한 확신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의 설교가 하나
님의 설교임을! 루터 역시 만일 오늘날 유다가 살아서 설교한다면, 자신은 그 설교를 배척하
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면, 그것은 베드로가 하던, 유다가
하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17) 설교를 듣는 사람은 설교자의 입과 말씀이 “설교
자의 것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이고 설교”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하며, 이 설교자의 설교를 통
해 성령께서 내적으로 믿음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118)
115)
WA 29, 304, 4-7.
116) WA 29, 305, 4-14.
117) WA 34I, 198, 6-7.
118) WA 45, 616, 32-34.
5. 나가는 말 대신에: ‘보여진’ 루터의 칭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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