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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심리학 1주차 / 박노권 교수

1주

강의를 시작하면서

종교심리학이란 종교라고 하는 인간의 마음 깊이에서 용암처럼 뜨겁게 흐르는 종교심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연구는 종교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사고력의 성숙 뿐 아니라, 자칫 이론화되고 도식되어 메마르기 쉬운 종교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재미있게 공부하는 한 학기가 되기를 바라고, 때론 어려운 말도 좀 나오겠지만...쉽게 설명하도록 노력을 할테니 편한 마음으로 같이 수업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강사 소개

저에 대한 소개는 제 홈페이지(http://home.mokwon.ac.kr/~p1316)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간단히 다시 소개한다면, 1979년에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졸, 1984년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졸, 1989년 미국 Drew학에서 M.Div., M.Phil, 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목회상담학 교수로 있고, 학생상담봉사센터소장을 8년 하였고,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학회 전문가이며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Drew도서관 앞에서

연락처 E-mail: p1316@mokwon.ac.kr

연구실 전화: 042-829-7380

핸드폰: 010-9240-4399

앞으로 공부할 내용

2주 프로이드의 종교이해

3주 칼 융의 분석심리학

4주 칼 융의 종교이해와 평가

5주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 돈 브라우닝의 입장

6주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 토마스 오든의 입장

7주 여러 발달심리 이론들

8주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발달이론

9주 종교경험의 심리학적 이해: 회심의 정의, 효과 등

10주 종교경험의 여러 주제들: 윌리암 제임스, 정신질환, 신비주의

11주 종교생활의 심리적 해석: 예배, 기도

12주 종교생활의 심리적 해석: 죄와 용서, 의심, 꿈

13주 연령별 종교심의 발달: 아동기, 청소년기

14주 연령별 종교심의 발달: 청년기, 종교적 성숙

15주 기말고사

종교심리학의 정의

종교심리학은 그 학문의 대상을 종교 감정이나 종교 경험으로 하여 그것들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1) 종교심리학에 대한 부정적 견해

종교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의 논란과 오해가 뒤따를 수 있다. 종교의 고귀한 가치를 단순한 심리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있을 수 있고, 기독교나 불교 등 고등 종교의 고매한 교리를 한낱 무당의 심리와 동일시하여 그 가치의 특수성을 평준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한편 기성 종교의 관습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은 종교 현상의 심리학적 해석에 매료된 나머지, 또 하나의 지적 도그마를 만들어내어 심리학 본래의 의미를 오해하는 위험성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토마스 오든은 종교심리학이 종교적인 정서를 관찰할 수 있으며 그 대상으로 종교성을 다룰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취급할 수 없다고 그 한계를 분명히 말한다. 신앙의 가능성과 발단은 오직 계시 안에서, 계시와 더불어서만 제공될 수 있으며, 계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2) 종교심리학에 대한 긍정적 견해

종교심리학을 긍정적으로 보고자하는 얼 루미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를 대표하는 것은 열매이지만 그 열매에 양분을 공급하여 영글게 하는 것은 뿌리이다. 사람들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격찬하면서, 거름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요소가 없으면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신자들은 종교적 회심, 즉 교회의 업적이라는 꽃과 열매를 찬양한다. 그러나 종교 심리학자들은 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열매를 맛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뿌리에 접근하여 식물의 영양상태를 살핀다. 그들은 더 세밀하고 진지한 관찰을 통해서 건전한 신앙을 재생시키고, 종교적 성장을 저해하는 질병과 해충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얻는다. 이런 점에서, 종교심리학과 목회적 관심이 합해지면 영혼을 적절하게 보살피고 치유하는 일에 개념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3) 박노권 교수의 입장

종교심리학에 대한 일단의 부정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종교란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와 같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과연 종교는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특히 이제까지 배워온 모든 것에 의심을 품으며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신자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누구나 한 번쯤 진지하게 물어 볼만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삶의 가치와 목적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생존하는 생리적 및 동물적 차원에 머물 수만은 없는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첨단 과학이 현존하는 현시점에도 종교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를 해보는 것은 흥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종교심리학의 배경

1) 자연에 대한 소박한 견해

종교를 이해하거나 이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비판적이기보다는 소박한 견해를 보통 가지게 된다. 소박한 경험이란 모든 인간적인 발달의 원천이요, 예술과 과학의 근원이다. 자연에 대한 소박한 관심 그리고 사물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데 대한 호기심에서 처음으로 조잡한 실험이 생기게 되고 여기서부터 과학과 발명의 긴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학문의 분야에 있어서도 세련된 발전은 소박한 시초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진다.

소박한 종교적 경험이란 자발적인 관심이어서 경탄의 감정을 품게 한다. 하늘의 광할함과 꽃잎의 섬세함이 놀라움으로 사람의 숨을 죽이게 한다. 천둥과 폭풍이 자연의 신비스런 힘을 두려워하게 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게 한다. 울창한 산림의 고요함과 저녁 노을을 보면 웬 일인지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생명의 꾸준한 흥망 성쇠가 계절을 따라 반복할 때마다 자연의 질서를 느끼며 삶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소박한 경험을 분석하고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 마음속에는 신비감이 무르익어 간다.

2) 사회적 전통의 해석을 받아들임

이러한 순진 무구한 상태에서 우리는 사회적 전통으로부터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듣고 배우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대상 넘어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는 저들을 나타내는 사상과 상징으로써 표현하기도 한다. 멜라네시아 군도 주민들 사이에서 마나(Mana)라는 것은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힘으로 간주되어 지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족속에서는 마니토(Manito)라는 영을 숭배하는데 이 위대한 영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여러 민족들은 저들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가지 신비한 존재에 대하여 독특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 가운데서 자라난 개인들은 저들이 맞부딪치는 숱한 신비한 존재를 해석하기 위하여 자기 전통 고유의 관념을 받아들이거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3) 비판적인 안목을 갖기 시작함

소박한 심정을 가진 자는 전통에 아무런 물음도 던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의심을 내포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질문을 던진다는 일이 결코 의심을 품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다만 저들이 존중하는 어떤 권위자에게서 해답을 얻기 위한 물음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묻고, 부모는 종교 지도자에게 묻는다. 종교 지도자는 또한 경전에서 그 물음의 해답을 찾게 된다. 이때 그 해답은 한 개인의 해답이 아니라 전통의 소리인 것이다. 그 권위자가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는 아무런 토론도 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한 권위가 다른 권위보다 더 우월하다는 데에 근거를 두면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권위주의는 안정과 확실성을 부여한다는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주의가 치르는 대가도 상당히 비싼 것이다. 안정성이 도리어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으며 확실성이라는 것도 거짓을 바탕으로 하여 유지되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권위자가 오류를 범하는 경우에는 이미 저지른 오류를 수정할 길이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비판적인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4) 종교에 접근하는 두 가지 비판적인 길

종교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비판적인 길--철학적인 방법과 과학적인 방법--이 있다.

(1) 철학적인 방법

철학적 탐구는 종교가 말하는 실재를 해석한다. 철학적인 과제는 종교 경험이 주장하는 바를 고려하여 그 경험이 말하는 실재의 전체적인 체계를 탐구하는 데 있다. 하나님, 그의 존재, 그의 본질, 그의 목적 등 종교가 말하는 진리나 교훈 또는 내세의 실재에 관한 문제는 철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진리와 실재 전체를 연구함에 있어서 철학과 관계가 있다. 신학이나 철학은 다 함께 근원적인 실재를 찾아서 표면에 나타난 것의 바닥을 찾으려고 한다. 양자는 부분적인 견해를 넘어서 더 큰 조망을 추구한다. 신학과 철학은 권위자의 가르침에 의지할 수도 있으나 또한 자유로이 비판적인 분석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학과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신학은 한 종교의 입장에서 전체를 보고 그 역사적인 전통 속에서 보다 깊은 것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종교 철학은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보며 보편적인 견지에서 각 종교를 평가한다.

(2) 과학적인 방법

그렇다면, 우리의 보다 관심 있는 과학적 탐구는 어떻게 종교를 해석하는가? 한때 신학을 가리켜 학문의 여왕이라고 칭한 적이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지식을 가장 궁극적인 존재를 위해 바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서 신학이나 교의학 신학자는 초자연적인 계시에만 주의를 집중하면서 자연과학은 인간적인 것이라 하여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며 등한히 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학이 인간과 그 운명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그것은 한편에만 치우치면 아니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에 대해 말하는 자연 과학도 말할 무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리학은 인간 삶의 생리학적, 사회학적인 의의와 관련하여 하나의 경쟁적인 상대자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신학과 심리학은 서로 대화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져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가 주께서 돌보시는 사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이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놀랄만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 심리학을 통해서 일 것이다. 그렇다고 심리학자들이 신학자들이 묻는 물음에 대하여 모든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 심리의 심오한 깊이를 깨닫고 있으므로, 신학자들은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과학적 연구에는 종교사, 종교 사회학, 그리고 종교 심리학 등이 있다. 종교사는 원시 문화나 매몰되어 있는 고적을 파헤쳐 가지고 원시적인 모습을 찾아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여 온 각 종교의 흔적을 되찾으려고 한다. 종교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요소가 종교적인 가치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탐구한다. 종교 심리학에서는 종교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함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 경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종교 심리학은 원시 종교나 역사적 신앙을 찾아서 거기서 연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도 한다. 사회 제도나 관습, 생활 기준 같은 것도 종교의 심리적인 의미를 캐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종교심리학 역사에 대한 고찰

이전에 인류학자나 철학자 등이 이미 종교의 기원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양 문화권에서는 심리학과 철학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채 본질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어 왔지만, 종교심리학은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되어 왔다. 특히 미국의 종교심리학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현대 종교심리학은 미국의 윌리암 제임스, 스탠리 홀, 류바, 스타벅, 제임스 코 등의 연구물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1890년경에 현대 종교심리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그전에는 종교 심리학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코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학에서 유사 심리학적인 요소들을 해부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리를 대략 흝을 필요가 있다. 자연인?창조설?이분설?영감?중생?자유의지 등은 신학자들 자신이 믿은 대로 인간 정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여러 가지 각도들이다.그렇지만 현대 종교심리학이라고 하면 그것이 처음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종교연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종교심리학 초창기의 대표적인 몇 사람만 잠깐 소개해 본다.

1) 스탠리 홀(Stanley Hall) 하버드 대학의 토요아침 강좌(1881년 2월 5일)에서 청소년기가 종교적인 영향과 회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연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후 40년 동안 번성했던 전통적인 종교심리학의 원동력이었으며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홀은 종교심리학 잡지”(The Journal of Religious Psychology)를 창간했으며 스타벅과 류바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심리학자를 배출하였다. 회심의 연령(보통 사춘기), 회심에 영향을 미치는 유형과 변수, 아동의 종교적 지식, 종교의식과 기도의 구성요소,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주제들이 연구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연구들이 질문지법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고전적인 시기에는 회심과 사춘기의 관계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론의 발전이 거의 없었다.

2) 스타벅(Edwin D. Starbuck) 그가 1889년에 저술한 종교심리학은 광범위하게 배부한 질문지에 근거하여 종교적 발달에 관한 외면적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 최초의 중요한 시도였다. 그가 질문지에 의하여 얻은 결과는 오늘날까지 인용이 잘되고 있는데, 특히 회개와 청년기와의 밀접한 관계라든지 또한 그 점에 있어서 소년과 소녀와의 차이등이 어떠한 지를 논할 때에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스타벅의 결론에는 방법 자체에 내재된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질문지를 발송한 대상이 종교적 인물의 대상으로서 혹은 일반 불신자로서 그 대상이 정당한지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정확성을 보증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답해 온 그 회답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난점이 있다고 하더라고 스타벅이 얻은 성과는 참으로 과학적인 종교심리학의 유력한 출발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 그의 책 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1902)에서는 매우 폭넓은 연구 방법과 설명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당시의 수많은 관심거리를 반영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종교심리학에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아직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임스는 해박한 지식이 있는 전문적 심리학자였다. 그는 스타벅이 수집한 자료와 종교적 자서전들을 기초로 하여 그 출발점을 삼는데, 이례적이고 극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각 개인의 종교적 경험이 다르고 비정상적으로 예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이 인격적이며 참된 것인가를 발견하고자 하였으며, 예외적인 정신 상태에 놓인 정신병자라도 종교적인 잠재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종교심리학에 있어서 제임스의 영향은 너무 크므로 본 강의에서 자주 인용될 것이다.

종교의 근원에 대한 일반적 견해

인간이 종교를 갖는 이유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종교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진화론적 종교관

사회 진화론자들은 종교가 현대인의 심층 깊이 존재하고 있는 원시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인 동시에 미숙한 정신 상태라고 단정하면서, 그것은 점진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종교를 필연적이고 영구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프레이져(J. Frazer)는 인간의 지식이 개발되고 과학이 발전하게 되면, 기존의 종교에 관한 인식이 변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과거의 미개한 주술의 단계에서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단계로 넘어서면, 인생의 중요한 지표로 생각했던 종교가 매우 유치하고 가소롭게 생각됨으로 자연히 생활의 영역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말하자면, 원시적 사회에서 미개인은 생존의 위협과 스스로의 무기력에 대응해서 절대적인 힘과 전능한 대상을 구함으로써 삶의 안위를 구했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능력이 확대되면서, 스스로가 의지했던 종교의 힘과 능력이 별로 효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점진적으로 종교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사회가 진화를 하는 과정에 따라, 조만간에 종교는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 해석학적 종교관

종교에 관한 해석학적 관점은 사회 진화론적 접근이 현상학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현대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고도의 첨단 기술사회로 발전하고 인간의 지적 능력이 무한대로 개발되는 상황에서도, 종교는 현실적 및 현상적으로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고 그것은 반문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엄연한 사회적인 제 현상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삶이 풍요해진다 해도, 인간은 심한 질병, 절망적인 고독, 죽음의 문제 등 인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것은 사회학적으로 한계상황이라 불려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왜 인간은 고난을 당하는가?”,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며, 악인이 흥하는가?”, “왜 나에게 죽음이 오는가?라는 인생과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 등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웨버(M. Weber)는 이와 같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해결하려는 인간의 강한 욕구가 곧 종교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인류는 그 동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를 종교를 통해서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시도해 왔다.

우리가 경험하는 또 다른 한계상황들을 말하자면, 자연적인 재해와 정치적인 변동, 그리고 사업의 실패와 가정의 파탄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와 같은 불행한 상황에 직면할 때, 어느 누구도 태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왜 지진이... 해일이 찾아오는가?”,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해온 사업이 왜 실패해야 하는가?”, “왜 우리 관계가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할 수 있을지라도, 인간은 왜?라는 의미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 고난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어떤 답을 찾지 못하다면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내면 구조는 완전히 혼돈에 빠지게 되며 삶의 현장에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난해한 문제를 종교를 통해 그 답을 찾으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3) 사회학적 종교관

사회학적 관점도 진화론자의 접근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즉, 종교는 미숙과 무지에서 비롯된 인식의 체계라는 진화론적 견해는 종교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적인 관점은 종교를 전체적인 사회의 구조에서 그 역할과 기능을 분석함으로 보다 넓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듀르껭(Durkheim)은 종교의 기본이 되는 형태를 사회의 기능과 역할에 초점을 두고 조명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인류는 함께 떼를 지어 사는 군서 동물의 특징을 지니므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연 환경 속에서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무리를 지어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어 있다. 이러한 공동의 삶의 틀과 공동체의 응집성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종교를 통한 동질의 가치체계 유지가 필요했다. 물론 종교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사람은 어떤 종교이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종교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현상에 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종교 사회학자들은 개인의 종교적 경험보다는 집단적인 종교의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종교의 사회적인 기능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종교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고 사회체제 안에 다른 조직체--가족이나 부족, 국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작용을 했다. 이것은 종교가 단순한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가족이나 부족 및 국가에 영향을 주고 받아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종교적 의식 이외에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적용되는 계명--십계명--이 있다. 이것은 조직의 응집성을 저해하지 않고 공동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계명을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어서,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것은 불의와 폭력, 착취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오늘날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한다.

4) 현상학적 종교관

듀르껭은 종교에 대하여 현상학적이거나 실제적인 방법으로도 접근하였다. 그는 오토(Rudolf Otto)가 말한 것처럼, 성스러운 것또는 전적인 타자에 대한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종교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종교인은 특정한 물체나 장소 및 상황에 대하여 숭배하는 마음과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이것들을 다른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성스러운 것에 관한 존경심을 종교의 기본 요소로 보았다. 인간은 누구에게 이론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영성이 있어 보다 고차적인 대상을 찾아 신앙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어떤 대상을 숭배하려는 심령적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대한 삶의 현장과 스스로의 제한된 능력의 사이에서 통합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과 허무, 그리고 좌절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파손하지 않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즉, 인생은 질식할 것 같은 삶의 현실에서 스스로를 좌초시키느냐, 아니면 이를 초월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의 경지로 도전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의 지점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는 사람이 성과 속을 가름하는 중요한 종교적 계기가 된다고 한다. 인간은 불안과 절망의 덫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동물적인 존재도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차원에 머물 수 없는 고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욕구도 또한 갖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가 종교심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종교의 심리적 근원들

인간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적 관심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좀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분석은 다음 장에서 프로이드와 융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폭넓게 여러 견해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종교는 본능이다.

종교를 인간의 본능으로 보는 견해는 모리스 제스트로우 같은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증거가 있기만 하다면 인간이 종교적 본능을 타고난다는 사실은 종교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분류하는 데에 충분히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논문들이 발표된 이래, 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정의할 때에는, 거의 모든 경우 인간에게 종교적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 왔다.

괴테 베르그스텐은 종교적 본능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고 해서 인간이 종교적 욕구들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적 성향은 타고난 종교적 감수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향은 영적 자극을 받을 때 드러나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잠들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그 본질상 생리학적인 근거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인간이 자의식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생활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종교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도, 인간은 종교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고, 이 필요성에 응할 때에 어떤 모양의 종교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2) 종교는 발전의 부산물이다.

종교는 어떤 한 가지 본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충동이 체계화되고, 통합되고, 조정되고, 순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종교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장과 발달에의 욕구에 따라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종교심리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드윈 스타벅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종교가 단 하나의 뿌리에서 영양을 받아 자라나지 않으며, 많은 원천을 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성적 본능 이외에도 많은 뿌리 깊은 본능이 종교의 발생과 관계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자기보존의 본능과 생을 완성하려는 심리적 차원의 욕구가 발전적으로 순화되고 계발될 때, 영적인 자기확대를 지향하는 종교적 충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종교는 본능과 저차원의 신경중추에서 흘러나와 고차원적인 정신중추를 지나 그것을 고도로 통합시키는 데까지 발전한다.

스타벅과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스탠리 홀은 회심을, 청소년들이 그들 특유의 질풍노도를 겪을 때 나타나는 사춘기적 현상으로 보았다. 또한 고든 올포트는 인간은 사춘기를 통과하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개념화하거나 구체화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종교는 인간발달의 파생물이다. 인간은 자신의 충동을 고도로 통합할 때 종교적이 된다. 성장의 필요성이 무르익고 성장의 방향이 정해질 때 종교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프로이드는 종교가 성숙에 대한 유아적 추구와 퇴행에서 시작된다는 견해를 상술하였다. 프로이드를 위시한 여러 학자는 스타벅 및 여타 학자와 똑같이 발달이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지만, 그들과는 다른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프로이드는 종교가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발달의 유아적 단계를 나타내며, 인간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종교는 환영, 즉 인간의 유아적 희망을 혼합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프로이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자신은 영원히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으며 보호받지 않고서는 미지의 막대한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그러한 힘에다 아버지상의 특성을 부여한다. 그는 스스로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신을 두려워하고 비위 맞추려 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를 보호해줄 임무를 그 신에게 맡긴다. 이 같은 부성(父性)에 대한 열망은 달리 말해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욕구이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나타내는 방어적 반응은 성인이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나타내는 반응, 즉 종교의 형성 과정에서 특성적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싹트고 성장하는 것을 발달의 과정과 관련지어 말하는 심리학자중에서, 고든 올포트는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와 연결지어 감지하는 일이 사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심리학자들이 대부분 사춘기와 청년기 이전의 시기를 연구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가족주의?의존성?권위?희망적인 생각?마술적 의식 등으로 설명하는 식의 편파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주장한다. 올포트의 견해에 따른다면, 성인기 이후의 시기에서도 종교적 감정의 근원과 관계되는 자료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3) 종교는 생명에 대한 경외이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종교를 생명에 대한 경외요, 살고자 하는 의지로 보았다. 생명에 대해 경외감을 품는 것은 나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동시에 가장 심원하게 실현하는 것이며 행위 규범 역시 생명에 대한 경외 그 자체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종교적 세계관은 모든 존재의 근거인 살려는 의지를 가지는 데서 생긴다. 종교는 적극적인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생기며 어떤 사람의 신학은 그의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가장 고귀한 지식은 살고자 하는 의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의 본질적 특성은 철저하게 살겠다는 결의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에는 그것 자체를 가능한 한 완전하게 실현시키도록 추진하는 힘이 내포되어 있다. 꽃이 피는 나무, 메두사의 기이한 형태들, 풀잎, 수정 등 어디에서든지 살고자 하는 의지는 본래 그것 자체에 부여된 완전성에 도달하려고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상상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상력은 이상에 의해 결정된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미리 생각하고 목표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해지고 싶은 충동이 있어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최고의 물적, 영적 가치를 지니도록 끌어올리려고 한다. 이러한 충동이 어떻게 우리 내부에서 생기며, 어떻게 진전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존재와 더불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내부에 신비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살려는 의지에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종교는 무한자와의 만남이다.

길버트 머레이는 종교를 무한자와의 만남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것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영역과 관계되어 있다. 인간의 삶의 대부분은 철저히 조사되고 파헤쳐졌다. 우리는 사태의 원인을 이해하고 있어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확한 지식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미지의 영역이 있으며, 그 일단이 불완전하게 탐사되고 있다. 종교는 바로 이러한 영역을 다룬다.

막스 뮐러도 종교는 무한자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적 인식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하나는 감각적으로도, 이성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감각과 이성에 담긴 통상적 의미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실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의식이 무한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제3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기능이 감각과 이성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아니다.

17세기의 수학자요 물리학자인 파스칼은 자신의 저서에서 무한자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독자들의 종교적 감정을 자극한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다른 모든 존재와 비교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라. 자신이 자연의 이 외딴 구석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자신이 내던져진 작은 방 곧 우주에서, 지구, 국가, 도시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 보라. 무한자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5) 종교는 유한과의 만남이다.

폴 틸리히는 인간의 종교적 차원을 궁극적 관심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면서 인간의 유한성의 배경과 대조하여 이러한 관심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유한적인 범주에서 무한한 것을 파악하려 하고, 경험의 범주에서 참으로 실재하는 것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틸리히는 유한의 개념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한성이 이러한 역할을 할 때 종교적 경험은 뿌리내린다. 틸리히가 지적하듯이, 인간은 시간성(죽을 수밖에 없는 것), 공간성(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거나 차지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인과율(누군가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 실체(자기, 즉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 등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인간은 유한성을 넘어 영원하고자 할 때 종교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심리학에 대한 여러 개론적인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다음 주에는 프로이드가 이해하는 종교와 그 한계에 대해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