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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39

VII.  선교학(Theology  of  Mission)

1. 선교학의 정의

    교회를  선교공동체로  이해하는  데  이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교에  대한  차이  때문에  갈등과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본다.  고전적, 

전통적  선교를  유일의  선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

가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  나아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이  선교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선교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  것인가?  우선  선교라는  용어가  라틴어  동사  mittere(보

내다  또는  파견하다)에서  유래했으므로,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입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위해  보냄을  받는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선교  또는  선교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신학적인  배

경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서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다  설명

할  수는  없고,  대신에  가장  고전적이고  성서적  근거가  확고한  하나의 

정의를  기초로  선교를  논하고자  한다.  그것은  교회성장학과  복음주의 

선교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교수

가  내린  정의이다.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을  일깨워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와 

구주로  받아들여  그의  교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전도와  정의실현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일

하는  것이다.1)

    결국  선교의  대명령의  유일한  주제는  모든  백성으로  주님의  제자를 

삼는  일이며,  인간의  영혼을  복음에  접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  전역이  복음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  영혼,  전  인격,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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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le  man)적  구원을  의미한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선교학을  그의  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다가  두고  있다.  우선  그는  “신학연구를  위한  소론”(Kürze  Darstel- 

lung  des  Theologischen  Studiums,  1850)에서  선교학을  실천신학의  분

과  아래에다  두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교학의  출현은  구스타프  바르

넥(G.  Warneck)이  “대학에서의  선교연구”(Das  Studium  der  Missi- 

on  auf  der  Universität)를  1877년에  저술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

다.2)  그러므로  선교학(Missionslehre)이란  용어는  선교학의  선구자인 

바르넥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3)  또  한편  카이퍼

(Abraham  Kuyper)가  그의  신학백과사전학에서  선교라는  말로 

"prosthetiek"(증가학,  prosthetics)이란  말을  썼다.  그는  증가학의  목적

을  “그리스도  밖에  있는  지역들과  사람들을  기독교화하는,  하나님의  명

하신  가장  유용한  방법들에  관한  연구”라고  기술한다.4)  그러나  이  말

은  카이퍼  이후의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는  그의  학위  논문  “독일  선교학에  있어서  교회와  민

중”(Kerk  en  Volk  in  de  Duitse  Wendingswetenschap)에서  ‘선교  과학’

이란  용어를  사용하였고,  선교를  ‘선포,  친교,  봉사’라고  정의하였다.5)   

그리고  마굴(H.  J.  Margull)은  1959년에  쓴  “선교의  선포의  신학”이라 

하여  이것이  영문으로  번역될  때에는  “선교신학”(Theology  of  Mission)

으로  되었다.  그러나  mission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8년에  개최된  예루살렘  국제선교회의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6)

2. 선교학의 배경과 흐름7)

    선교신학은  19세기  이후  모토(J.  Motto)가  조직한  학생자원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모토는 

1888년  이  조직의  회장이  되었으며  그의  주선으로  1895년  세계  기독학

생  운동(The  World  Student  Christian  Movement)이  창설되었다.  이 

운동은  청교도주의에서부터  사회  복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면에서  좋

은  점들만  따서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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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41

랑,  잃어버려진  자를  위한  동정,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 

죽어  가는  자들을  향한  불쌍한  마음,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  청지

기  직분에  대한  감사함,  이러한  모든  것들과  다른  동기들이  이  운동에 

섞여  있었다.  바로  이러한  영향이  에큐메니칼  운동을  탄생시키었다.8)

    최근의  선교신학을  대별해  보면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통적인 

선교신학  방향과  사회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선교신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사회복음주의자들의  입장에  서  있는  부류인  세계교회

협의회(WCC)와  복음주의  입장에  서있는  로잔  대회와  관련이  있는  자

들로  양분되어  있는  것이다.9)

1)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20세기  기독교  교회에서  중요한  운동  중의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

이다.  19세기에  서구  교회는  전세계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으나,  분열

로  말미암아  선교지에서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선교에도  장애를  주었

다.  이로  인하여  교회  연합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  에딘버러대회(1910년)

    WCC의  비공식적  시작은  1910년  에딘버러(Edinburgh)  대회로부터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1910년  뉴욕  대회가  있었으나,  보다  구체적이

고  조직적이면서  WCC의  색채가  나타난  것은  에딘버러대회였다.  여기

에서  복음화라는  전체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교신학의  태동

을  예고하는  면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  하나의  위대한  기회가  일반적인  동의를  얻고  있다.  동양의  민족

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두  가지  일을  추구하고  있

다.  하나는  계몽이요  다른  하나는  자유이다.  모든  종교  가운데  오직 

기독교만이  이러한  요구를  최고로  충족시킬  수  있다.10)

    이처럼  복음전도라는  긴박한  사명과  더불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다른  하나의  사명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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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루살렘대회(1928년)

    에딘버러대회  이후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The  International  Missi- 

onary  Council:  IMC)가  발족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선교논의가  계속되

었다.  세속주의가  기독교에  도전해  오고  전세계를  통하여  불안감이  팽

배해  있는  시점에서  예루살렘  대회가  표명한  세상에  대한  기독교  메시

지의  핵심은  ‘우리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였다.11)  그러나,  동

시에  예루살렘대회는  선교와  관련하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광범한 

논의의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기독인은  그들이  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고려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고있는  사

회적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농

촌문제,  인종문제,  산업화문제  등이  그  주된  논의의  내용이었다.  “그리

스도의  복음은  개인의  영혼을  위한  메시지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조직과  경제관계를  위한  메시지도  포함된다”12)는 

것이다.

(3)  마드라스대회(1938년)

    인도  마드라스에서  열린  IMC대회의  주제는  ‘교회의  세계선교’였다.   

복음전도의  책임이  교회에  주어졌으며  지교회나  교인이  이  일의  중심

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그것이  온  세상을  위한  전교회의  사명임을 

강조했다.  선교는  교회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존재목적

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이  사명의  수행에  있으며,  그  책임은  모든  기

독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복음전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교는  복음

전파사업,  교육사업,  의료사업,  이런  것이  수행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환경  조성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마드라스  대회에서도  복음을  총체적

으로  이해하여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간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특히  마드라스  대회에서는  기독교와  타종교  관계문제가  대두된다.   

발제자인  크래머(Hendrik  Kraemer)는  모든  자연신학을  거부하고,  기독

교  계시만이  유일한  것이므로  복음과  세상의  다른  종교와는  어떤  관계

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회에  참석한  많은  신생  교회대표들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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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43

를  수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결과적으로  마드라스  대회는  예루살렘대

회가  채택한  것과  비슷한  입장,  곧  다른  종교에도  깊은  종교적  경험과 

위대한  도덕적  성취라는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  왔다는  입장을  채택하였다.13)

(4)  휫트비대회(1947년)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뒤  캐나다의  휫트비에서  열린  대회의  중심논

의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복음전도를  선교운동의  핵심

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정이다.  “지금의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복음은 

세상의  모든  거민들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옛  교회와 

신생  교회  사이의  하나됨,  곧  동등성의  인정이다.  양자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동역자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됨이

다.  6년간의  전쟁을  경험하며  서로간의  거리가  멀어져  있던  기독인들

이  믿음으로  하나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14)

    동시에  그들은  교회의  복음전도의  책임과  더불어  사회참여의  필요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전쟁을  경험한  세계에서  교회가  당면하고  있던 

커다란  필요를  의식한  것이다.15)  그러나  휫트비  대회에서까지는  이것

을  선교의  최우선  과제로  삼지는  않았다.  선교의  사명을  지닌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슬픔의  근원이  영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  치유도  영적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

문이다.

(5)  제1차  암스테르담총회(1948년)

    1948년에  그  전에  국제적인  교회협력기구로  활동하던  ‘생활과  봉사’

와  ‘신앙과  직제’가  합하여  세계교회협의회(WCC)로  44개국  147개교회 

대표들이  모여  정식  출범한다.  IMC는  여기에  흡수되지  않았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협력하였다.

    암스테르담총회  보고서는  4권으로  되어  있고  그  중  선교문제를  다른 

것은  제2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교회의  증언’이다.  여기에서  크래머

는  우리의  가장  큰  과업은  복음전도라고  말한다.16)  그러나  뉴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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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lie  Newbigin)이  쓴  그  다음  장은  교회의  임무가  단순히  복음전

도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한다.17)

    복음전도는  교회가  하나님께  신실하고  그의  피조물들에게  봉사하라

는  이중의  부르심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온전해진다.  복음전도는  그  결

과가  남아  있어야만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은  교회에  들어가야  하며,  사회  안에서도  그  구속적  영향을  끼칠  수  있

어야  하고,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은  성도들  간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

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복음전도의  내용이다.  특별

히  선교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제  2분과의  보고서는  복음증거를  위한 

평신도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증거생활을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장

은  가정이며  그들이  일하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암스테르

담총회는  새로운  신학을  천명한  것이  아니라  종래의  에큐메니칼대회들

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6)  윌링겐대회(1952년)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이정표가  된  것은  윌링겐에서  열린  IMC대회

였다.  새로운  선교신학의  태동에  결정적  역할을  미친  사람은  호켄다이

크(J.  C.  Hoekendijk)이다.  그는  종래의  선교관을  교회중심의  선교관이

라고  비판하고,  교회는  “이  세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의  도

구”이며,  “이  세상에  평화(shalom)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수단”에  불과하다고  한다.  선교(evagelism)의  주체는  교회가  아

니라  메시야이고,  “그  메시야는  바로  선교사”라는  것이다.18)  여기에서 

샬롬은  개인의  구원보다  휠씬  많은  것을  의미하는  데,  평화,  온전함,  공

동체,  조화,  정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선교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그리고  디아코니아가  그것이다.  케리그마는  샬롬의  선포요,  코이노니아

는  그  샬롬에  동참한  사람들이  상호  교제와  친교  가운데  사는  것이며, 

디아코니아는  겸손한  봉사로써  그  샬롬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  세  측

면이  우리의  선교에서  통합될  때  우리의  선교방법도  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기초로  윌링겐  대회는  ‘교회를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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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한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고,  그  교회의  주님은 

인류에게  전적으로  헌신하셨으므로  교회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그

리고  ‘세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독인은  그  안에서  하나

님의  주권적  통치의  표징을  식별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받아

들여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개념,  곧  선교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는  이해는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형성의  방향을  결정지어  주었다.

(7)  에반스톤총회(1954년)

    시카고의  에반스톤에서  모인  제  2차  WCC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

리스도-세상의  희망’이었다.  여기  보고서(제  2분과  보고서)에서  사용

되는  ‘복음전도’라는  개념은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는  휠씬  폭

넓은  개념이다.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복음전도(evangelism)와  선

교(mission)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복음전도는  ‘교회의  전체  활동

의  차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모든  삶의  국면들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선교에  동참하게  된다.  곧  사회적  불의

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라도  그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8)  뉴델리총회(1961년)

    WCC와  IMC가  뉴델리에서  열린  WCC  제  3차  총회에서  통합되면서, 

윌링겐대회에서  채택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WCC의  선교신학을  규

정하는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사회참여는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

    뉴델리의  분과보고서는  3부로  되어있다:  증거,  봉사,  하나됨(일치).   

이  세  주제가  모두  선교적인  면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  증거라는  개념

은  선교  또는  복음전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여기에서  말하

는  선교론을  살피고자한다.  먼저  그것은  오늘의  상황이  변화되었으므

로  따라서  선교도  새로운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함을  전제한다.19)    그

러나  방법이  변해야  한다고  해서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변하거나 

그의  구원하는  사랑의  복음이  변하지는  않는다.  선교를  논할  때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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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선교학

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서  보

여주신  하나님의  활동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

지  못하게  막는  세속적인  원인들을  심각하게  취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별과  억압,  착취와  가난  등  인간적인  짐들을  지고  있는  자들은 

복음을  외면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에  동

참하여  복음에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20)  이것이  바로  말로 

전하는  복음보다  사회참여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근거를  제공한다.

(9)  멕시코  시티대회(1963년)

    IMC가  WCC에  통합된  이후  첫  선교대회는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복음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CWME)이다.  이  대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선교와  우리의 

과제’로서  하나님의  선교개념이  전면에  부상되고,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주가  되실  뿐  아니라  역사의  주가  되시기도  하다’는  명제를  긍정하고, 

교회를  부르셔서  구속사업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이  교회  밖에서도  일

하고  계심을  확인하였다.

    타종교와의  대화문제도  좀  더  진지하게  다루어졌다.  기독인들이  다

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련을  맺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관심이다.  물론  상대주의나  혼합주의에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중요한  문제

로  부각된  것이다.21)

(10)  제  4차  웁살라총회(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열린  WCC  제  4차총회에서  보여진  선교신학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영적  필요  뿐  아니라  육체적,  사회적,  물

질적  필요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시기  때문에  오늘의  선교가  새로워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을  만나려면  반드시  대화를  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유

일성을  부인하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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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47

히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기독인의  태도가  인간적이고  인격적이며  겸

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화와  선포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복음증거에 

있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진다.

(11)  방콕대회(1973년)

    멕시코  시티대회  이후  10년만에  CWME  제  2차총회가  방콕에서  열

렸다.  주제는  ‘오늘의  구원’으로  구원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촉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의  죄와  그  결과들로부터의  구원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모든  형태의  압제로부

터  자유롭게  하신  그런  과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22)

*  문화와  정체성에  관해: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곳에서의  선

교는  완전한  구원의  복음일  수  없다.  그리고  문화의  독자성도  인정해

야  한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도  특정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마찬가지

로  오늘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각기  처한  그  역사적  상황  안으로 

들어오신다.  다른  종교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

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대화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

원이다.  그러나,  그  구원은  용서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불의와  압제

로부터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이해된다.  그리고  우리의  태도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려

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즉  그들의  경험을  듣고  그들의  통찰력에  귀

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그들의  신(the  ultimate)과  온전

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구원과  사회정의에  관해:  구원을  새로운  삶,  곧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서  보이는  참된  인간성의  회복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영혼과  육체의 

구원이며,  개인과  사회의  구원이며,  인류와  ‘신음하는  피조물’(롬8:19)의 

구원이다.  따라서  경제적  정의와  정치적  자유,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

쟁을  하나님의  선교를  통한  세상의  해방에  이르는  일들로  본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포괄적  개념에는  네  가지  사회적  차원이  포함

된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항의하는  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  사람이  사람에게서  소외되는  데  반대하는  연대의식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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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선교학

절망적인  개인의  삶을  거부하는  희망의  투쟁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베

트남에서는  평화가  구원이요,  앙골라에서는  독립이,  북아일랜드에서는 

정의와  화해가  구원인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사회참여

는  불가피한  수단이다.  참여  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정의도  문

화적  소외에서의  해방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압제하는 

폭력에  항거하는  해방을  위한  폭력의  사용도  논의되어야  한다.

(12)  제  5차  나이로비총회이후(1975-  )

    이어서  WCC총회는  8년  간격으로  열렸는데,  1975년의  나이로비총회, 

1983년의  밴쿠버총회,  1991년의  캔버라총회,  1998년의  짐바브웨이(아프

리카)총회,  그리고  2006년  포르터  알레그레(브라질)에서  제  9차  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CWME대회는  멜버른(1980)과  산안토니어(1989)에서  각

기  열렸다.

    이  시기는  교회협의회  선교신학의  새로운  발전의  시기이기보다는  수

정보완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이로비  총회는  ‘온  교회가 

전복음을  온  세상의  전인에게  전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확인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전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선

포나  은혜와  죄의  용서,  회개에의  촉구나  그에  대한  믿음을  포함함과 

더불어  정의와  인간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책임까지도  포함한다

는  것이다.  전인이란  개념은  복음이  ‘모든  인간적인  필요’에  부응해야 

함을  의미하고,  온  세상이란  교회의  관심이  모든  사람들  곧  계층이나 

인종,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울여져야  함을  의미하며,  온 

교회란  특별한  은사나  재능을  받은  교회나  개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몸인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이  전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

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23)  한  마디로  나이로비의  관심

은  통전적  선교였다고  할  수  있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활동이  통합적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벤쿠버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이었다.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과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현실에서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다.  선교적  사명의  갱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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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49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24)  임

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

라  누구나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종교외의  대화에  일보  전진

한다.  우리는  종교적․이념적으로  다원화된  세계  안에  살고  있음을  전

제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진

리를  찾는  일에  창조적으로  일하고  계심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  정의와  평화,  경제적  재건, 

기아와  질병의  퇴치을  위해  우리는  그들과  협력해야  하며,  그것도  상호

존경과  동등한  권리,  그리고  동등한  의무라는  기초  위에서  행해져야  한

다.25)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WCC  제7차  총회는  선교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  대회의  주제나  분과별  소주제까지  모두  성령론으로  일관되

며26)  종래처럼  선교와  관련된  주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제  강

연자로  나온  한국의  정현경  교수의  강의는  한국적  초혼제(?)를  연출함

으로  많은  파장을  남겼다.  제  8차  총회는  1998년  12월  아프리카  짐바

브웨이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라-소망  중에  기뻐하자”는  주제로  열렸

다.27) 

    제  9차  총회는  2006년  2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렸으며,  문

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하면서,  4가지  영역에  중심을  두기로 

하였는데,  그것은  “일치,  영성,  선교,”  “청년참여에  초점을  둔  에큐메니

칼  형성,”  “지구정의,”  “세상  속에서  신뢰할만한  목소리와  예언자적  증

언하기,”였다.  또한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문제들,  ‘취약집단에 

대한  보호,’  ‘테러리즘,  반테러리즘,  인권,’  ‘핵군축,’  ‘라틴아메리카,’  ‘생

명을  위한  물,’  ‘UN개혁’에  대한  성명서를  채택했고,  종교간  갈등이  증

폭된  것에  대한  해결로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상호존중,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이때  WCC에는  349개  교단

(약  5억  6천만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제  10차  총회는  2013년  한국의  부산  Bexco에서  개최하기  하기로  결

정되었는데  예장합동(1965년  탈퇴)과  같은  보수교단에서는  WCC의  신

학적  입장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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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선교학

WCC  선교신학의  주장들과  그  비판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주장하는  선교의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의  선

교’  개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실  1952년  윌링겐에서  열린  IMC  대

회  이전까지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이나  선교사들은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며,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유일한  선교라

고  믿고  그런  일에  종사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개념이  제창되

고,  호켄다이크의  주장들이  발표되면서  선교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

었다.

    이  개념은  선교가  하나님께  속한  활동이며,  선교의  주도권이  하나님

께  속한다는  지극히  성서적이고  구속사적인  기반을  가진  개념이다.  하

나님이  선교의  주역이시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  또는  ‘우리들의  선교’

라는  말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  된다.28)  하나님의  선교의  장은  교회

가  아니라  세상이며,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된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WCC가  이런  개념을  그  선교신학의  기본이념으

로  삼게  됨으로  결국  그들의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

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국제간의,  그리고  인종간

의  관계를  개선시키며,  불의에  항거하는’  등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샬롬과  더불어  선교의  목표로  받아들여진  개념은  인간화이다.  사

회적  구조를  인간화하는  것을  선교의  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화와  교회개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일과  사회구

조의  근본적  변화를  선교의  목표로  삼고,  선교의  방향은  인종문제,  사회

변혁,  학생  항거운동  등에로  바꾸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29)

    선교에  대한  이해가  이와  같이  달라짐에  따라  그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에도  변화가  온다.  전통적으로  구원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새롭고  영원한  신분이라고  이해하여  온  데 

반하여  새로운  선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문자적으로  이용

하면서  ‘오늘의  구원’을  강조한다.  그들이  말하는  오늘의  구원은  다른 

말로  바꾸면  일련의  이  세상에서의  개선이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가난

과  압제와  질병과  비인간적인  노동과  인종차별과  기아  등으로부터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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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51

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의  구원을  강조하면  자연히  회개에  대한  이해도  달라

지게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구원은  죄에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  개념은  어느  하나

로부터  더  나은  다른  것에로  돌아서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인간경시에

서  인간존중에로,  히틀러에  대한  신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계급사회로부터  계급  없는  사회에로  돌아서고  개선되기만  하면  회개로 

이해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회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30)

    선교,  구원,  회개에  관한  이해의  변화에  따라  선교는  복음의  선포로

부터  다른  대등한  것들과의  대화로  바뀐다.  1961년의  WCC뉴델리총회 

때에  “대화는  흔히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도의  한  형태이다”라고  한  것

에서  출발하여  타종교나  이념들과의  대화에로  발전하는  것이다.  신구

교  간의  대화는  물론  불교나  회교,  힌두교와의  대화  등이  여기에  포함

된다.  세계  도처에서  이런  대화의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31)

    그러나  이런  새로운  선교신학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맨  먼저  제기되는  문제이다.  그렇게  볼  때 

WCC의  선교신학은  선한  사업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  곧  “모든  족

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열정을  가

진  것은  좋으나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열정은  없다’는  것이다.  전혀  복

음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고,  아직도  선교사

들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

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WCC  선교신학은  이미  복음이  전해진  지역의  문제들을  중심으

로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서방세계나  제  3세계  교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의를  하면서  실제로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공산권  사

회나  회교권  선교를  위한  구체적  제안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  선교를  지향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WCC  선교신학을  이해하

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능력과  태도를  갖추는  것은  앞으로의  선교

정책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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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선교학

2)  복음주의  선교신학

    교회  밖에  있는  잃어버린  자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관심은  복음사

업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  결과  복음은  거의  땅  끝까지  전

파되었다.  적어도  지리적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거

의  성취되어  간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복음화  사업은 

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대한  사명으로  남는다.  세계  인구가  50억을  넘

고  있지만  지금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수는  18억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사업을  선교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고  믿는  사람들의  선교관을  우리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이라고  부른다.

    그  역사적  배경을  보면,  19세기의  기독교는  영국의  시몬(Charles 

Simeon)이나  미국의  휘니(Charles 

G. 

Finny)와  무디(Dwight 

L. 

Moody)  같은  복음전도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

오고  헌신하는  경험을  가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대에는  큰  도전이 

있었다:  ①역사  비판적  성서연구를  통하여  제기된  성경의  권위와  영감

에  관한  문제  ②지질학,  생물학,  물리학  특히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과

학적  연구가  안겨준  성서의  진실성에  관한  의문  ③사회복음운동이  제

기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영적  변화에  의해서보다는  사회적  행

동에  의해서  건설될  수  있다는  신학적  제안,  비교종교학이나  심리학의 

연구결과로  일어난  기독교의  진리와  유일성에  관한  의문이  그것이었

다.32)  이런  도전의  와중에서  근본주의  신학이  형성되고,  20세기  초반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첨예화되었었다.

    이런  신학적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선교를  위한  활동은  계

속되었다.  첫째로는  학생들을  중심한  선교운동이다.  19세기  후반의  해

외선교를  위한  자발적인  학생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  SVM)은  선교사  지망생들을  계속  훈련시켜  보냈다. 

그래서  1945년까지  SVM을  통해  나간  선교사수가  20,500명이었고  그중 

3/4이  북미로부터  배출되었다고  한다.33)  또  중요한  다른  학생선교운동

은  범기독대학생회(Intervasity  Christian  Fellowship:  IVF)운동이었다.   

1946년에  시작하여,  1979년  대회에는  18,000명이  참석한  것으로  보고되

었다.34)  이  운동들은  초기부터  세계복음화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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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53

1961년에는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SVM의  표어  ‘이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를  ‘10년내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로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

고  그  이후로  인종문제,  개발,  전쟁,  사회정의,  정치적  개혁  등을  기독

교인으로서  져야  할  책임으로  논하기도  했다.35)

    둘째로는  복음주의적  선교협력기구들의  활동이다.  1917년에  결성된 

초교파해외선교협회(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 

tion:  IFMA)는  모든  선교회원들이  “복음적  교리와  역사적  기독교의  표

준을  고수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전해지지  아니한  지역에  복음

을  전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6)  그리고  1960년  시카

고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The  Congress  on  World  Mission)에서도  초

교파해외선교협회  선교신학의  기본이  되는  신념을  ‘지상명령에  대한  순

종과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라고  표명하였다.  이  협회

는  1976년  현재  47개  회원  선교회와  9,483명의  선교사와  간사들로  되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37)  1943년에  결성된  복음주의자연맹(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은  선교분야의  관심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복음주의해외선교협회(the  Evangelic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  EFMA)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복음주의  신앙고백을  엄격

히  고수하면서도  현재에도  기독인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복음전도임을  강조한다.  현재  이  연맹은  IFMA와  더불어  가

장  큰  선교협력기구에  속한다.

    세  번째로는  교회성장운동이다.  이  운동은  맥거브란을  중심해서  발

전했다.  그는  오랫동안  인도  선교사  생활을  한  후에  미국으로  와서  교

회성장연구소를  설립했고,  1965년  이후로는  플러신학교(Fuller  Theo- 

logical  Seminary)가  활동의  중심무대였다.  그는  기독교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제자와  그의  교회

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

로  이런  목표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면  교회성장이  된다.  그의  교회성장

신학의  중심은  결국  복음전도이다.  이제  그  신학적  발전이  어떻게  이

루어져  갔는지  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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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선교학

(1)  휘튼대회(1966년)

    WCC  총회와  선교대회들을  지켜보면서  복음주의자들도  일치된  방향

과  신학확립의  필요성을  긴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적인 

복음주의자들의  협의체들이  회집되었다.  첫  대회는  IFMA와  EFMA가 

후원을  하여  1966년에  일리노이주의  휘튼(Wheaton)에서  열린  세계선

교대회(the  Congress  on  the  Churches  Worldwide  Mission)였다.  이 

대회  선언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복음적  사명’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복음은  우리  시대의  모든 

종족과  언어와  국가에  전해져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오늘날  교회

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천명한다.  첫째로,  종교적  혼합주의는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과  궁극성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신앙을 

전파할  때  기독교  진리를  모호하게  할  수  있는  비성서적인  문화적  부

가물이나  강조점들을  피해야  한다.

    둘째로,  새로이  대두되는  신(新)만인구원설--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며,  그리스도를  만

난  사람만이  아니라  만나지  못한  사람까지도  ‘화해’된다는  이론--을  배

격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죄의  용서가  주어진다

는  복음을  선포함과  더불어  교회는  가난한  자,  병든  자,  궁핍에  처한 

자,  억눌림을  당한  자들에  대한  봉사를  동반해야  한다.

    로마  교회에  대해서는  구원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이

루어지며  성서가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칙이라는  개혁자들의  가르침

을  들어  그들이  ‘우리들의  훌륭한  자매  교회’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위

험하다고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데

는  만족하지만  기본적인  교리들이  수정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자들도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

냐하면  주님께서  그러한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개인구원

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약화되면  안된다.    그러므로 

이  선언은  인종간의  평등,  인간의  자유,  모든  형태의  사회적  정의,  인류의 

복지  등을  위하여  복음주의자들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낭비적이

고  불필요한  경쟁은  피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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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55

(2)  로잔  대회(1974년)

    복음주의자들은  전도의  포용성보다는  교리의  집착성으로  인해  복음

전파에  있어서는  실패하고  있었다.  이때에  빌리  그래함이  나타나서  ‘신

앙과  행위’의  일치적인  생활을  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다.  이  운

동은  대단한  힘을  나타내었고,  휘튼  대회가  열리던  1966년의  베를린대회

와  1974년의  로잔  대회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  선교신학

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회는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

음화국제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이다. 

대회의  규모(150개국  2700여명  참석)도  컸지만,  이  대회에서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분명히  천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신학적으로는  복음적인  입장에  굳게  섰고,  성서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복음전도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스토트(John 

R.  Stott)는  선교를  ‘하나님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활동’으로 

규정하면서38),  선교를  복음전도와  사회적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사회적  활동을  복음선교의  동역자로  이해하는  것이

지,  대치할  수  있는  것으로나  우선  순위를  바꾼다는  뜻은  아니다.  로잔

대회에서  만들어진  15개항의  언약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하나님은  그가  부른  백성을  통하여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

의  건설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종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신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유일한  기록된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

의  유일한  무오한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한  구주,  한  복음만  있

으며,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하여  약간의  신지식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

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믿는  자

에게  용서와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는  복된  소식을  전함이다.  복음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모든  기독교인의  의무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선택된  수단이며,  이것은  하나의  기구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

체며,  어느  특정  문화나  사회,  정치적  제도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

시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선교촉진과  선교정책  수립,  자료와  경험의  교

환을  위해서  협력함이  필요하다.  세계의  흩어진  모든  교회가  세계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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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선교학

의  책임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복음화  사역은  긴급하다.  흔히  선교를  한

다고  하면서  복음과  더불어  자기네  문화를  수출해  왔는데,  교회는  문화의 

종이  되어서는  안되고  언제라도  성서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  효과적

인  복음전도를  위해  교회지도자를  위한  신학교육을  증진시켜야  한다.  진

리와  기도로써  세상과  싸우는  영적  투쟁을  계속한다.  박해가  있다  할지라

도  불의에  항거하고  복음에  충실한다.  선교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을  믿는

다.  그의  구원과  심판을  이루시기  위해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3)  마닐라  대회(1989년)

    이  대회는  세계선교가  위축된다고  생각했던  제1차  대회  이후로  오히려 

선교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하고,  찬양하는  대회였으며39) 

로잔  운동의  신학과  정신을  확인해  준  대회였다.  170개국  3,000여명이  참

석했던  이  2차  대회에서  선언된  마닐라선언문의  요지를  정리해본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으나  죄로  인해  자기  힘으로는  죄

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살길을  주신  것이다.  혼합종교를  배격하고,  타종교와의  대화

에서도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적극  증거  한다.  좋은  소식과  선한  사업

은  분리될  수  없다.  복음전도는  영적  전투이며,  영적  무기는  기도를  동

반한  말씀과  성령일  뿐이다.  하나님은  온  교회를  부르시어(선교사나  목

사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그의  일을  하게  하신다.  변화된  삶보다  복

음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모든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

의  부분으로  선교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복음전도를  위해서  협력은  불

가결하다.  현대  세계의  어떤  상황  하에서도(세속주의,  산업화,  비인간화

현상  등)  복음전도는  이루어진다.  선교사중  7%만이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일을  하고  93%는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 

일을  하는  데,  앞으로는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자들을  위해  헌신을  해

야  한다.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복음은  계속적으로  증거  되야  한다.

    이후  3차  로잔  대회는  2010년에  남아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약  2

백여  국가에서  온  4천여명의  교인들이  참여했다.  3차  대회의  주제는 

“세상과  자신을  화목케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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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57

스도는  유일한  화목자시며,  그리스도만이  진리이시며,  그리스도만이  복

음의  안전성이  되신다는  사실을  재확인하였다.  이  세상은  끊임없는  기

독교  박해와  탄압,  주변  국가  간의  전쟁,  내전,  자연  재해,  AIDS,  생태

계  파괴,  도시화에  따른  빈부  극차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고,  죄

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졌

듯이  그리스도  역시  세상과  화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3차  로잔 

대회의  메시지이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주장들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소위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신학을  그  전제로 

한다.  그들이  강조하는  교리들이란  보통  축자영감과  성경의  무오성,  예

수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  등이다.40)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복음전도,  또는  세계  복음화를  교회의  최고의 

사명이라고  고백한다.  아직도  복음의  빛을  받지  못한  그들의  영혼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방법--인쇄물,  언어,  그림,  봉사,  변

화된  삶의  모습  등--에  구애되지  않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반드시  성

서적으로  타당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며,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와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41)

    이때  복음전도의  형태를  윈터(Ralph  Winter)는  E-1  전도로부터  E-3

전도까지로  분류한다.  E-1  전도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문화권

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E-2는  유사언어를  사용하는  타종

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며,  E-3란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곧  타문화권  전도를  말한다.42)

    종교다원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복음주의자들은  타종교나  이데올로기

를  대할  때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척도로  삼아  진리를  판별한다.   

타종교와의  대화도  인정하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전해야  하며,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하나의  방편이어야  한다.  또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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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선교학

독교  선교에서  교육,  의료,  농업,  개발,  상호  화해  등의  일을  소홀히  하

지  않으면서도  이것들은  늘  부수적인  것이고  우선적인  것은  전도였다.

3. 선교 전략론

1)  선교전략의  요소

(1)  하나님과  사람

    선교는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절

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나  하나님은  사람의  활동과  참여  없이  자신의 

뜻을  이루시지  않는다.  그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하여 

일하셨으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  하셨다.  그

는  사람을  그의  종으로  쓰시며,  자기  뜻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

신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통하여  선교는 

이루어진다.

(2)  사  람

    선교의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

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영위

하며  위로부터  권능을  받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신학적인  훈련을  받아서  성경과  신학에  올바

른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선교전략은  피선교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사람들  중심이어야  한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사는,  그리고 

아직  복음에  접해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한  그들  중심의  전략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를  책으로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고,  관찰과  참여,  경

험과  시행착오를  통하여  배워지는데,  이처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하여  적어도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 

지방의  생활형편,  주거환경,  지리적  여건,  기후  등을  연구하고  거기에 

최대한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현지  도

착  이후의  활동  계획을  바르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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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59

(3)  목  표

    사람들만  있다고  선교전략이  바르게  수립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올바른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교회가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하고,  많은  봉사를  행하며,  잘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열매를  거두지  못

한다면  그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리를  그대로  선교에

도  적용할  수  있다.  열매가  없는  선교를  선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선교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

치며,  가난한  자를  볼보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며,  국제관계를  증진시키

고  인종간의  갈등을  개선하며,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

어  가는  등’의  여러  가지가  교회의  선교라는  말을  포함된다.43)  그러나 

선교의  지상과제는  무엇보다도  죽어  가는  영혼의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지상명령에  잘  드러나  있다.44) 

다른  모든  것은  이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부차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이점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45)

    최근에  에큐메니칼운동이  활발히  전개됨에  따라  교회일치운동이  매

우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으나,  이것도  역시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일치운동은  선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치운동  자

체를  위해서  있다”46)라는  비판은  이런  의미에서  받아질  수  있다.  결국 

이런  일치운동은  선교라는  지상의  과제를  희생물로  삼아  성취되어  왔

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의  중심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데  있다.   

마태복음  28:19-20에는  4개의  동사가  나온다:  제자를  삼으라,  가라,  세

례를  주라,  가르치라.  와그너  교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설교나  증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활동들(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

는)은  하나님의  계획의  본질적인  요소들이기는  하나  결코  본래적인 

목표일  수는  없다.  그  모두는  제자로  삼아  가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이용되어야  할뿐이다.  설교는  구원  이전의  활동이요,  세례는  구원과 

더불어  행하는  활동이며,  가르침은  구원  이후의  활동이다.  이  모두는 

제자로  삼아  가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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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선교학

    제자로  삼는다는  것이  복음전도와  선교의  바른  목표라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신약에  나타난  제자라는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참되고  중생한  기독교인’이라는  말과  상응한다.   

그러므로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아직  참기독교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

에게로  가야한다.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일단  제자가  되면  제자의 

길을  일생동안  걷게  된다.  그렇게  일생을  살도록  돕는  것이  구원  이후

의  교회의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웨슬리  목사가  말하는  구원론

과  일치가  된다.  즉  칭의와  신생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은  평생  성

화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4)  건전한  전략수립

    전하는  사람이  준비되고  대상이  파악되었으며  바른  목표가  설정되었

다면,  이제는  구체적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단계이다.  목표가  하나님으

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전략은  인간이  그  목표성취를  위하여  취하는 

수단이다.  목표는  타협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나  전략은  상황에  따라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전략은  지혜롭게  세워져야하고  성

실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로,  효율성의  원리이다.  인

적  자원이나  돈이나  시간에  모두가  제약을  받고  있으므로  최선의  방식

을  늘  생각해야  한다.  둘째로,  선교전략의  적합성이다.  선교현장은  시대

의  흐름과  장소에  따라  늘  맞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도덕성의  원리이

다.  아무리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고,  현실적으로  적절하다  하더라도,  그 

수단이  비도덕적이라면  용납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성서적,  신학적으

로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선교전략이  인간적  측면을  대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을  배제하면  안되는  것이다.

2)  선교의  성서적  원리들

    성경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오늘  현대인이  적용할  수  있는  궁극

적인  선교의  원리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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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61

(1)  구심적  선교와  원심적  선교48)

    성경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선교원리를  보여주는데,  하나는  구심적

(centripetal)  선교이고,  다른  하나는  원심적(centrifugal)  선교이다.  이것

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로  끌어들이는  선

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되어  이방인을  끌어들이게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축복권  안

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들을  개종자라  부를  수  있는데,  아람  왕

의  군대장관  나아만(왕하5장)  기사나  스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왕상

10:1-13)  등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니느웨까지  찾아갔

던  요나의  경우는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적극적인  선교사역자들이기보다는  단지  ‘이방의  빛’으로서의  구심적  역

할을  했을  뿐이다.49)

    이와  반대로  신약의  선교원리는  원심적이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  적

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령이  너희에

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에  가장  잘  표현된다.  예수께서도  그

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라고  말했으며,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에게  다시  같은  말씀(요20:21)을  하셨

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선교전략은  원심적  선교라  할  수  있다.  바울 

이후의  모든  전도자  또는  선교사는  바로  이런  선교전략을  사용하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2)  예언자와  제사장

    구약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두가지의  종교  지도자  형태--예언자와 

제사장--를  발견한다.  제사장들은  야웨  신앙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고,  특히  종교의식을  전수하는  주역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에  충실하였고,  보수적이었다.  반대로  예언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직접적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통의  구

속을  받지  않았고,  대를  이어주는  계속성도  없었다.  제사장의  권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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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선교학

혈통과  하는  일과  기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인  반면,  예언자의  권위는 

영적  카리스마적  능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

님께  직접  나아갔고  직접  음성을  듣고자  하였다.  제사장들이  사람  편

의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로  나아갔다면,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갖고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불러  파송하신  선교사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에서도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지도자들--감독  또는  장로라 

불리는  목사들과,  사도와  복음전도자--을  볼  수  있다.  목사들은  교회 

안에서  양육하고  돌보며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고,  사도나 

복음전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

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선교지향적인  사람들과 

교회지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를  위해  따로  세우고  그들을  파송하였다.   

선교  지향적인  교회  안에도  보내는  자와  보냄을  받는  자가  따로  생기

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선교명령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계명들을  주셨다.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

하라(창1:28)고  하셨고,  땀흘려  일하라(창3:17)고  하셨으며,  다스리며  질

서를  지키게(창  3:16)  하셨다.  이러한  문화적  명령들은  타락  이전부터 

주어지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명령들이며,  의무들이

다.  십계명  가운데도  다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는  바로  이

런  문화적  명령들이었다.  지금도  교회는  세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의무를  지고  있다.

    신구약성서  전체를  통하여  도처에서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는  명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

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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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63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

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따라서  초대교회도  이런  사역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진  것을 

서로  통용하고(행2:44),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들이(행6:1)  그것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선교  여행  중  구제를  위한  연보들을  거두어  전하고  있

다.  이와  같이  선교적  사명은  이런  문화적  명령들을  지키지  않고는  이

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위임  명령들은  선교의  원래  목적을  성취하기  위

한  보조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복음전도의  사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첫  선포내용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15)이었다.  예수는  그  나라를  위해  오셨으며,  부활  이후에는  세계 

만방에  이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4)  맥가브란의  선교전략

    맥가브란은  WCC회원  교단에  속해있지만,  복음주의  선교신학자이다.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근본주의자도  아니다.  근본

주의자들과  많은  교리적인  신조들을  같이  하지만  태도에  있어서는  다

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의  글  “Wrong  Strategy:  the  Real  Crisis  in 

Mission"(잘못된  전략:  선교의  위기)에서  그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50)

    그는  기존  선교전략이  지닌  문제들을  우선  다섯  가지로  지적을  한다.

①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50년대의  방대한 

과업은  오히려  비효율적이  되었다.

②  교회개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파벌의식을  조장한다  하여  거부하

고,  여러  강조점  가운데  하나로  함으로  교회설립이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③  다른  종교와  공존해야  한다고  양보한  것을  제외하면,  인구  폭발  문

제나  자라는  교회들의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

④  방대한  기존  선교구조로  인하여(전인적인  복음을  위해),  교회를  세

운다는  실제적인  기독교  전파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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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선교학

⑤  인간의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신학적,  성서적  문제가 

있다.

    이와  같은  비판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름대로  전략을  제시

한다.   

①  인종적,  문화적  다양한  집단  안에서  먼저  기독인을  만들고  그리고나

서  서로가  형제됨을  목표로  나가야  한다. 

②  교회성장은  여러  가지  선한  일들을  통해  좋은  교회가  됨으로써  자

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에  대한  전략적  수립을  해야한다.   

교회성장신학이  약할  때에는  교회성장에서의  인간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요인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성령만이  교회성장을  이루어  주신다고  고

집스레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성령께서  교회성장을  이루어  주신다.  그

러나  이  토대  위에서  성령께서  어떻게  사회질서를  이용하는지  깨달아

야  한다.  교회성장에  대한  바른  신학,  곧  철저히  성서적이면서  철저히 

과학적인  신학을  가져야  한다.

③  교회개척을  위한  확고하고  대담한  계획을  세우야  한다.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의  제자가  되게  하며  그의  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려는  확고한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에  선한  활

동들을  함께  계획할  수  있다.

④  세계를  문화  단위로  나눠야  한다.  일정  문화  속에서  거기에  맞는 

복음의  씨를  뿌릴  때  거기에  적절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바른  전략

은  주민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교회가  거기에  적절한  선교적  노력을 

하는  방법을  계속  노력한다.

⑤  교회성장이  매우  복합적인  과정이며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

님을  인정한다.  교회성장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며  하나님과  성령의  역

사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결코  기계적  결과로  나오지  않

는  법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르는  지름길도  없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에 

관한  모든  판단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판단은 

잘못일  수  있고,  다음  세대에는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있다.

⑥  교회는  선교에  있어서의  바른  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다.  교회(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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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65

면  교단)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선교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진  곳,  그것이  성장한  곳,  성장을  멈춘 

곳,  교회가  전혀  세워지지  않은  곳  등  모든  사례의  증거를  모으고  지식

을  축적시키며  선교부와  교회들의  공동  경험들을  수렴함으로써  바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때  교회를  세워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수단에다  많은  돈과  훌륭한  인재들을  투입할  것이다.

    요즈음  선교라는  말이  범람한다.  교회마다  선교를  강조하고  선교회

들을  조직하고  선교비를  보낸다.  또  교단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많

은  개교회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계획도  하고  실천도  한다.  그러나 

이런  활발한  선교의  긍정적인  측면뒤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선교

사들은  돌아가라”는  운동이  20세기  후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선교에  대한  상반되는  이해  때문에  교회내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이제  보다  성숙한  선교를  위하여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

로  올바른  선교에  대한  토의가  지속되도록  이  개론적인  선교신학  이야

기가  그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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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선교학

주(End  Notes)

1)  Arthur  F.  Glasser  and  Donald  A.  McGavran,  Contemporary  Theologies 
on  Mission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3)  16.

2)  여기서  바르넥은  선교가  학문적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를  묻고,  선교가 
학문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  두  가지  요건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 
요건은  선교가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타민
족에  대한  전도가  역사적  사실임을  고려해야  하고,  둘째  요인은  선교의  개
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계획에  중요한  몫이라는  신학적인  원
리가  세워져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정성구,  위의  책,  193.

3)  Gustav  Warneck,  Evangelische  Missionslehre  (1897).  이  책은  전  3권으
로  되어있는데  1권은  1897년에  처음으로  “선교학”이라  이름하고  II권은  1902에 

III권은  1903에  각각  출판했다.  정성구,「실천신학개론」,  189에서  인용.

4)  이  말의  뜻은  사도행전  2:41,  5:14,  11:24에서  사용된  헬라어  προστ θησα
ν에서  나온  말로서  “점점  많아지다”  “점점  증가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Abraham  Kuyper,  Encyclopaedie  der  heilige  Godgeleerdheld  (Kampen: 

Kok,  1909)  deel  III,  518.    정성구,  「실천신학개론」,  189에서  재인용.

  

5)  이광순,  이용원,  「선교학개론」(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19.

6)  정성구,  앞의  책,  191.

7)  선교학의  배경적  흐름에  대해서는,  이광순,  이용원,  「선교학개론」의  도움
을  많이  받았음을  밝힌다.

8)  D.  J.  Bosch,  「선교신학」,  전재옥역  (서울:  두란노서원,  1991)  187-188.

9)  신동우,  「선교학:  이론과  실제」(서울:  도서출판  예루살렘,  1996)  17.

10)  Rodger  C.  Bassham,  Mission  Theology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1979)  17.

11)  그  문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없이  살  수  없고,  그  분없이  사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도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동인이요  목적이시다”라고  기록한
다.  Bassham,  위의  책,  20.

12)  William  Richey  Hogg,  Ecumenical  Foundations  (New  York:  Harpr  & 

Brothers  Publishers,  1952)  249-251.

13)  Hogg,  위의  책,  294-302.

14)  Hogg,  위의  책,  339-342.  C.  W.  Ranson,  ed.,  Renewal  and  Advance. 
Christian  Witness  in  a  Revolutionay  World
  (London:  Edinburgh  House 

Press,  1949)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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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67

15)  “기독인으로서  우리는  굶주리거나  빈궁한  이들,  곤궁에  처한  모든  이들
을  섬길  의무가  있다.  우리는  불의와  압제를  제거하려는  모든  운동을  지지
할  의무가  있다.”  Bassham,  위의  책,  26.

16) 

Lesslie 

Newbigin,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The 

Amsterdam  Assembly  Series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948),  Vol.II.,  14.

17)  Newbigin,  위의  책,  19.

18)  Johannes  C.  Hoekendijk,  "The  Call  to  Evangelism,"  The  Conciliar 
Evangelical  Debate:  The  Crucial  Documents  1964-1976,  
ed.  by  Donald 
A.  McGavran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1977)  46-49.    이광

순,  이용원,  앞의  책,  167-168에서  재인용.

19)  The  New  Delhi  Report,  ed.by  W.  A.  Visser't  Hooft  (New  York: 
Association  Press,  1962)  78.

20)  위의  책,  87.

21)  이광순,  이용원,  앞의  책,  172-173.

22)  Bangkok  Assembly  1973  (New  York:  WCC  Publications  Service,  1973)  102.

23)  Breaking  Barriers:  Nairobi  1975,  ed.  by  David  M.  Paton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76)  52,  53. 

24)  Gathered  for  Life,  ed.  by  David  Gill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3)  3.

25)  위의  책,  40-41.

26)  총회주제:  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제  1분과:  생명의  수
여자-당신의  피조계를  보전하소서.  제  2분과:  진리의  영-우리를  자유케  하
소서.  제  3분과:  일치의  영-당신의  백성을  화해케  하소서.  제  4분과:  성령-
우리를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하소서.  박근원,  “제  7차  WCC  캔버라총회  리
포트  2,  캔버라의  오순절  체험,”  「기독교사상」  통권  388호  (1991년  4월호) 
84-92.

27)  WCC  제  8차  총회는  아프리카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1998.12.  3~14사이
에  열리게  되며,  주체는  “하나님께  돌아오라-소망중에  기뻐하자!”  (Turn  to 
God-Rejoice  in  Hope)  이다.  자세한  내용은「기독교  사상」1998.  8월호에서 
P.203~216을  참고하고,  이번  총회에  관한  자료는  인터넷에서도  볼수  있다.
(  주소:  http://www.wcc-coe.org/  )

28)  Georg  F.  Vicedom,  「하나님의  선교」,  박근원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
사,  1980)  16.

29)  Peter  Beyerhaus,  "Mission  and  Humanization,"  Mission  Trends,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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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선교학

(New  York:  Paulist  Press,  1974)  234.

30)  Glasser  &  McGavran,  앞의  책,  54,  55.

31)  S.  J.  Samartha,  "Dialogue  as  a  Continuing  Christian  Concern," 
Mission  Trends,  No.1,  248-254.  한국에서도  이미  종교간의  대화가  진행되
어  왔다.  특히  1986년에는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
었다.  감신대의  변선환  교수등이  이  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한국교회의  반응

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32)  Roger  C.  Bassham,  Mission  Theology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1979)  175.

33)  위의  책,  185.

34)  위의  책,  204  주를  참고.

35)  Bassham,  앞의  책,  186-187.

36)  Glasser  &  McGavran,  앞의  책,  115-116.

37)  Bassham,  앞의  책,  178.

38)  Bassham,  위의  책,  232.

39)  조종남,  “로잔의  역사와  정신,”  「목회와  신학」(1989년  10월호)  37.

40)  Bassham,  앞의  책,  174.

41)  John  R.  W.  Stott,  "The  Biblical  Basis  of  Evangelism,"  Mission 

Trends,  Vol.II,  Evangelism(New  York:  Paulist  Press,  1975)  10-13.

42)  Ralph  D.  Winter,  "Cross-Cultural  Evangelism,"  Mission  Trends,  Vol. 

II,  111-112.

43)  Lseelie  Newbigin,  "Mission  and  Missions,"  Christian  Today  (1960, 

August),  23.

44)  마  28:16-20,  막  16:15-16,  눅  24:27,  요2):21,  행1:8.

45)  “사회적  활동이  복음전도의  자리를  차지해  버릴  때  교회는  자신의  혈구
를  만드는  일를  멈추고  백혈병으로  죽어간다.    사회적  활동이  복음전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교회는  이미  그  호흡을  멈추고  심장마비로  죽은  것
이  된다.”  Sherwood  Eliot  Writ,  The  Social  Conscience  of  the  Evangelical 

(New  York:  Harper  &  Row,  1968)  129.

46)  John  A.  Mackay,  Christian  Reality  and  Appearance  (Richmond:  John 

Knox  Press,  1969)  54.

47)  Wagner,  Frontiers  in  Missionary  Strategy  (Chicago:  Moody  Press,  1971)  22.

48)  이광순,  이용원의  「선교학개론」에서  이  부분을  정리  요약했음을  밝힌다.

49)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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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신학  개론    269

되게  하리니”  (사42:6),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50)  Donald  McGavran,  "Wrong  Strategy:  the  Real  Crisis  in  Mission,"  Eye  of 
the  Storm
  (Texas:  Waco,  1972).  이광순,  이용원,  앞의  책,  313-327  번역  내용

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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