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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1부  [라틴어본  번역]

번역:  권진호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기독교의  믿음]을  손쉬운  것[사소

한  것]으로  여기며,  적지  않은  사람들  또한  이  믿음을  일반적인  덕목

들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을  가져보려고  시도

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괴로운  영적인  시련  가운데서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믿음의  영]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은 

믿음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거나  믿음에  관한  적절한  서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믿음에  대해  아무리  많이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듣는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능력에 

비한다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은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살아있

는  샘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내  (믿음의)  부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

려  내  그릇이  빈약하다는  것[영적인  빈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나는  크고  다양한  시련들  가운데서  어느  정도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지금까지  믿음에  관하여  논의했으

면서도  자신의  믿음조차  이해하지  못한  문자주의자이며  총명한  토론

가들[스콜라신학자들]보다  우아하지는  못해도  더  신뢰할  만하게  믿음

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기를  희망한다.

 

이제  배우지  못한  자들(나는  다만  이들을  섬길  뿐이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영적인  자유와  영적인  매임[영의  자유와  속

박]에  관한  두  명제를  미리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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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자유한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자들에  대해  완전히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

게  종속되어  있다.

비록  이  명제들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이  서로  조화된

다는  사실이  일단  드러나기만  하면  이  명제들은  우리의  목적에  잘 

부합된다.  이  두  명제는  바울에게서  발견되는데,  그는  고전  9:19에서 

“나는  자유롭지만  나  자신을  모든  사람의  종으로  만들었다”고  말한

다.  롬  13:8에서는  “너희는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빚을  지

지  말라”고  말한다.  사랑은  본질상  기꺼이  섬기고자  하며,  사랑하는 

대상의  뜻을  잘  따른다.  그리스도가  그러한데,  비록  그는  만물의  주

이셨지만  여인에게서  나셨고  율법에  굴복하셨다(갈  4:4).  그래서  그

는  자유자인  동시에  종이고,  하나님의  형체인  동시에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빌  2:6-7).

이  사실을  좀  더  깊이  근본적으로  파악해  보자.  인간은  두  가지  본

질,  즉  영적  본질과  육적  본질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이  영적  본질에  따라  인간은  영적인,  내적인,  새로운  인간으

로  불리며,  사람들이  육이라고  부르는  육적  본질에  따라,  인간은  육

(신)적,  외적,  옛  인간으로  불린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고후 

4:16에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성경은  인간에  관해  역설

적  진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육이  영에  대항하고  영이  육에  대항

하는  한(갈  5:17),  인간의  두  본질은  동일한  한  인간  안에서  서로  싸

우기  때문이다. 

우선,  내적인  인간이  어떻게  의롭고  자유하게  되며,  참된  그리스도

인,  즉  영적인,  내적,  새로운  인간이  되는지를  보기  위하여,  내적  인

간을  다루고자  한다.  확실한  사실은,  외적인  것은  그것이  어떤  이름

으로  불리든간에,  그리스도인이  의와  자유를  얻거나  또는  그리스도

인이  의를  잃어버리고  종이  되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점이

다.  이  사실은  다음의  증거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육신의  안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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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활기  있음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것이 

영혼에게  무슨  유익이  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모든  죄를  일삼는  매

우  불경건한  종들조차도  그러한  것들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병이나  감금이나  굶주림이나  기갈  혹은  그  외의  어떠한  외적인  손상

이  영혼에  무슨  해를  끼치는가?  왜냐하면  매우  경건한  자들과  매우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유한  자들  조차도  그런  일로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영혼이  자유하거나  노예상태가  되는  것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자들의  본을  따라  육신을  거룩한  옷으로  치장하거나  거

룩한  장소를  거닐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고  금식하며  특정한 

음식을  멀리하고  육신을  통해,  그리고  육신  안에서  실행될  수  있는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영혼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다. 

영혼이  의롭게  되고  자유하게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  필요

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들은  모든  불경건한  자들  역시  수행

할  수  있으며  그  종교적  행위들은  그들을  단지  위선자로  만들  뿐이

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육신이  단지  세속적인  옷을  입고,  세속적인  장소에  거

닐고,  평범하게  먹고  마시고,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고,  앞에서  말한 

모든  것,  즉  위선자들도  행할  수  있는  일들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혼에는  아무런  해도  되지  않는다.  영혼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

을  거부하기  위해,  사변과  묵상과  그  외의  영혼의  노력들을  통해  성

취될  수  있는  모든  것  역시  우리의  영혼에  유익하지  않다고  말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의  생명과  의와  자유를  위해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단  하

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말씀,  그리스도의  복

음이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은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8장  36절에

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진정으로  자유하게  될  것

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4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하나하나를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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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야만  한다.  즉,  하나님  말씀을  제외한 

모든  것이  없다할지라도  영혼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어떤  것도  영혼에  도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영혼이  말씀을 

가지면,  영혼은  부유해지며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생명,  진리,  빛,  평

화,  의,  구원,  기쁨,  자유,  지혜,  힘,  은혜,  영광,  그리고  모든  선한 

것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지자(다윗)가  시편  119편  전체를 

포함한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수없이  탄식하며  큰  음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열망하고  부른  이유이다.

반면에,  아모스  8장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을  임하게  하시는  것보다  더  가혹

하고  나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주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는데,  이것은  시편  107편  20절에

서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들을  건강하

게  하시고  그들을  구하시므로  망하지  않도록  하셨다.”  그리스도  역

시  오직  말씀의  임무를  가지고  보내심을  받았다.  사도들,  주교들,  모

든  사제의  직분도  오직  말씀의  봉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임명된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많

은데,  도대체  이  말씀이란  무엇이고,  이  말씀을  어떤  규칙에  따라  사

용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답한다.  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  우

리에게  이것을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아들에  관한  하

나님의  복음인바,  그  아들은  사람이  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

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영화롭게  되신  분이다.  왜냐하

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영혼이  단지  설교를  믿게  되면,  영혼

을  먹이고  칭의하고  자유하게  하고  구원하는  것[건강하게  만드는  것]

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믿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익하고  효

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9절은  “네가  너의 

입으로  예수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들  가

운데서  부활시키셨다는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로마서  10장  4절은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율법의 

마침이시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의로운  자는  그의  믿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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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라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행위에  의해서

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존중되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명백한  사실은,  영혼이  생명과  의롭다함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말씀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

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  만일  영혼이  다른  어떤  것으

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말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믿음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믿음은  행위와  함께  양립할  수  없다.  즉  만일  당신이  잘못  생각

하여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일과  같으며  열왕기상  18장  21절의  말씀처럼  바알을  섬기며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며,  욥이  욥기  31장에서  말하듯  최고의  불의

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믿기  시작할  때,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  받을만하고  죄책과  죄라는  사실을  동시에  배우게  되는  바, 

이것은  로마서  3장  23절의  말씀과  상응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

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고  로마서  3장  10

절  이하  말씀과  일치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

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

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당신이  만일  이  사실을  유념

한다면,  당신은  당신을  위해  고난  받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당신에

게  필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해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데,  왜냐하면  (믿음을  통해) 

당신의  모든  죄가  제거되고,  낯선  공로들,  즉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들을  통해서  당신이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한  것처럼, 

믿음이  오직  내적  인간  안에서  다스리며  믿음만이  의롭게  하기  때문

에,  내적  인간은  결코  외적인  행위나  외적인  경건훈련을  통하여  의

롭게  되거나  자유하게  되거나  구원받을  수  없으며,  모든  종류의  행

위는  이것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 

인간은  또한  믿음  없음과  마음의  불신으로  인한  불신앙에  의해서만 

죄인이  되며  저주받아  마땅한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  외적인  죄

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의  첫  번째  수고는  행위에  관한  잘못된  생각을  벗어버린  후에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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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만을  점점  더  강하게  하며,  그  믿음을  통하여,  행위에  대한  지식

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자라나도록  하는데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베

드로전서  5장  10절에서  가르치는  것처럼(cf.  빌  3:10),  다른  어떤  행

위도  그리스도인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요

한복음  6장  28절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그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거절하시며  다음의  말씀을  통해  단 

한  가지만을  지시하셨다.  “너희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를  인치셨기  때문이다”(요 

6:29,  27b).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는  것은  모든  구원(보편적인  구원)을 

동반하며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인바,  주

님께서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구원을  받

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이  보물에  대해  이사야는  10장 

22절에서  예언하였다.  “하나님이  짧으면서도  성취하는  말씀을  땅에 

보내실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성취의  말씀은  의를  강물같이  흐르

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으로  이사야가  말하고자  원했던  것은  이것

이다.  “믿음은  율법을  간단하면서도  온전하게  성취하는  것으로,  믿는 

자들을  많은  의로써  채워,  믿는  자들이  의를  얻기  위해  더  이상  다

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0절에서  “사

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

아마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성경에는  그렇게  많은  행위와  의

식과  율법들이  우리에게  지시되어  있는데,  어떻게  오직  믿음만이  우

리를  의롭게  할  수  있고,  행위  없이  그렇게  많은  좋은  보화를  가져

다  줄  수  있는가?”  내  답변은,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것,  즉  행위 

없이  오직  믿음만이  의롭게  하고,  자유하게  하고,  구원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는  것인데,  이  사실은  다음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될 

것이다.  그러나  우선  기억에  새겨  두어야  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성

서  전체는  계명들과  약속들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다.  계명은  좋은  것을  가르치지만,  가르쳐진  것이  즉시로  이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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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

여줄  뿐,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계명은  오

히려  인간이  계명을  통해서  선에  대한  무능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에 

절망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정

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계명은  ‘옛  계약’(구약)이며  그렇게  불린

다.  예를  들어,  “너는  탐내지  말라”(출  20:17)라고  주어진  계명을  통

해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데,  왜냐하면  아무리  탐

내지  않으려고  노력할지라도  탐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탐내지  않고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불가피하게  좌절하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이로

부터  도움을  찾아야만  한다.  이는  호세아  13장  9절에  “오  이스라엘

아,  너에게서는  너의  부패한  것만이  나올  뿐이다.  오직  나만이  너를 

도울  수  있다”라고  이르는  것처럼,  그는  자기  자신에서  도움을  발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계명에  해당되는  것은  다른  모든 

계명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계명  역시  우리에게  성취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계명을  통해  자신의  무능함을  알게  되고  자신의  어떤 

노력으로  율법을  성취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고민속에  빠지게  되

는  것은,  일점일획도  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율법을  성취해야  할  필

요  때문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는  어떤  소망도  없이  저주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으로  겸손해지고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볼  때  무가치한  자가  되고  자기  자신  안에  의롭게  하고  구원

받도록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이제  성경

의  다른  부분인  하나님의  약속이  돕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말한다.  “네가  율법을  성취하고  율법이  요구하는대

로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  평화,  자유,  그리고  모든  것이  당신에게  약속되어  있

다.  당신이  믿으면  이  모든  것을  갖게  되지만,  믿지  않으면  당신은 

그것을  갖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믿음을  통하여,  율법의  유익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통해서도  이룰  수  없는  것을  간결하고  짧은  방법

으로  성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믿음 

안에  두셔서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이  모든  것을  갖도록  하시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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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소유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이

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려고,  모든  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의  상황에  가두어두신  것이다”(롬  11:32).  그래서  하

나님의  약속은  계명이  요구하는  것을  선물로  주고,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성취한다.  이것은  계명과  그것의  성취  모두  하나님에게만  속하

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만이  홀로  스스로  명령하시고,  또한  하나

님만이  홀로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신약(새로운  언

약)에  속하며,  그것이야말로  신약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거룩하고  참되고  의롭고  자유하고  평화로

우며  모든  선으로  가득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  약속들에  확고한  믿

음을  갖고  매달려  있는  영혼은  이  약속들과  하나가  되며  심지어  약

속들과  완전히  동화된다.  그래서  영혼은  약속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약속의  모든  능력으로  채워지고  적셔지게  된다.  그리스도가  육체적

으로  매만져주시기만  해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는  능력이  그렇게 

많은데,  하물며  영  안에서  지극히  부드럽게  만져주시는  것,  심지어 

말씀  안에서  동화되는  것이라면,  말씀이  가진  모든  것을  영혼에게 

얼마나  많이  나누어  주겠는가!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영혼은  오직 

믿음으로,  행위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의롭고  거룩하고  참되

고  화평하고  자유하게  되며,  모든  선한  것으로  가득  채워진다.  영혼

은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바,  요한복음  1장  12절이  말하는  바

와  같다.  “그는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믿음이  그렇게  많은  일

을  할  수  있는  이유와,  어떤  최고의  행위라도  이  믿음에  필적할  수 

없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행위도  하나님 

말씀에  매달릴  수  없고  영혼  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믿

음과  말씀만이  영혼  안에서  지배한다.  영혼은  말씀의  상태처럼  되는 

바,  마치  그것은  불  안에  있는  쇠가  불과  하나됨으로  불처럼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위해  믿음으

로  충분하며  그가  의롭게  되기  위하여  더  이상  행위가  필요하지  않

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가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율법  역시 

필요하지  않다.  그가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율법

에서  자유하다.  그리고  “의인을  위해  율법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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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옳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며  우리의  믿음이다.  즉, 

이  믿음은  우리가  게으르고  악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

리가  의와  구원을  위해  어떤  행위도  필요로  하지  않도록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이  믿음의  첫  번째  능력이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로  좀  다른  내용을  보고자  한다.  믿음은  믿는  대상을  매우  경건하고 

지극히  큰  존경으로  숭배하며,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분을  진실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그분에

게  진실과  의라는  명성을  돌려드리는  것에  비교할만한  다른  존경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분을  진실,  의,  완전하고  끝없는  선이라고 

존경하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이  있을  수  있는가?  반대로,  누군가에 

대해  거짓과  불의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거나  그를  의심하는  것은  최

고의  수치인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을  때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을  때,  그  분을  참

되고  의로운  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영혼은  이  보다  더  큰  존경을 

하나님에게  보여드릴  수  없다.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예배인바,  하나

님을  진실되고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고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되시

는  분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하는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여

기에서  영혼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따를  준비를  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일어나

게  한다.  영혼은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참되고 

의롭고  지혜로우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최상으로  만드시

고  계획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한  영혼이 

이러한  믿음을  통하여  만사에  있어서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믿음이  더  이상  성취하지  못한  어떤  계명이  아직 

남아있겠는가?  온전한  순종보다  더  완전한  성취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온전한  순종을  성취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  있어,  하나님의  약속과  확언들을  믿지  않는  것

보다  더  심각한  반항과  무시와  수치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거나  그의  진실됨을  의심하는  것과  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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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은  진실하나  하나님은  거짓말하고  망

상에  빠져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당신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당신  가슴속에  스스로  우상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나님을  경멸하는  가운데  행해진  행위가  아무리  천사들의  행위이고 

사도들의  행위인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

땅히  모든  것을  진노나  탐욕  아래에  놓아두지  않으시고  불신앙  아래

에  놓아두심으로(롬  11:32),  어느  누구도  도덕적으로  깨끗하며  평화

를  사랑하는  행위들(세속적이며  단지  인간적인  덕목들)을  통해  하나

님의  계명을  성취한  것으로  망상하지  않도록  하며,  이것을  통해  구

원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도록  하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

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죄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구하거

나  혹은  의를  위하여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신뢰  받으시고,  인간의  진심어린  신뢰

와  믿음을  통해  받으시기  마땅한  큰  영광으로  존경받으심을  하나님

께서  보실  때,  그  분께서는  우리를  또한  영예롭게  하시며  이  믿음을 

통해  우리를  진실하고  의로운  자로  만드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진실과  의를  이루며,  또한  하나님  편에서도  우리

의  의를  영화롭게  하신다.  하나님께  있어  진실하며  의로우시다는  사

실은  참되고  바른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하나님께  인정해드리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은  참되고  의로운  일이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나도  존귀하게  여기리라.  그러

나  나를  멸시하는  자들은  멸시를  당할  것이다.”  바울도  로마서  4장 

3절에서  아브라함에  대해  “그의  믿음이  의로  여김을  받았다”라고  말

하는바,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

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으면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신다. 

믿음이  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은혜의  세  번째  작용은  다음과  같

다.  즉,  신부를  신랑과  결합시키듯,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와  결합

시킨다(비교.  엡  5:31-32).  사도가  가르치는  것처럼,  성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영혼은  한  몸이  된다.  그들이  한  몸이고  그들  사이에  다

른  어떤  결혼보다  완전한  결혼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결혼은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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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유일무이한  결혼의  희미한  ‘복사[그림자]’일  뿐이다)  다음과  같

은  결과가  나타난다.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은,  그것이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공동의  소유가  되며,  믿는  영혼은  그리스도가  가진  모

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향유하며  자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리

스도께서는  영혼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다. 

우리가  이것을  숙고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귀한  것들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는  은혜와  생명과  구원으로  가득하시며,  영

혼은  죄와  죽음,  그리고  저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둘  사이

를  믿음이  중재하여  죄,  죽음,  지옥은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고,  반

대로  은혜,  생명,  구원은  영혼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신랑이라면,  신부가  가진  것을  동시에  취해야  하며,  신부로  하여금 

신랑  자신의  것에  참여하도록  하셔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신부에게  자신의  몸과  자신을  선사했다면,  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어떻게  선사하지  않겠는가?  또한  신부의  몸을 

취한  자가  어떻게  신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취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매우  사랑스러운  장면이  나타난다.  이는  하나됨의  장면이며, 

동시에  구원을  가져오는  싸움과  승리와  구원과  구속의  장면이다.  그

리스도는  죄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지도  않고  저주받지도  않는 

인격  안에서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에,  이  인격은  전혀  죄 

지을  수  없고,  죽을  수도,  정죄  받을  수도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과  구원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정복당하지  않으며  영원

하고  전능하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인격은  믿음의  결혼반지  때문에 

신부의  죄와  죽음과  지옥을  신부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심지어  이러

한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죄와  죽

음과  지옥이  그를  삼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애쓰시고  죽으시고  지

옥에  내려가시면서  마치  이것들이  자신의  것인  양,  그리고  그  자신

이  죄를  지은  것처럼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놀랄만한  싸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삼켜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의  의는  모

든  사람들의  죄보다도  뛰어나며,  그의  생명은  모든  사람의  죽음보다

도  강력하며,  그의  구원은  지옥  전체보다도  더  정복하기  힘들기  때

문이다.  그래서  믿는  영혼은  그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보증을  통하여  모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죽음  앞에서  안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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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부터  보호받게  되는데,  이는  그의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영

원한  의,  생명,  구원이  영혼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  안에서  신부를  씻기심으로  (즉  말씀,  생명, 

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그녀를  정결하게  하여(엡  5:26-27) 

신부로  하여금  영광스럽고  흠과  주름살  없이  신랑  앞으로  나오게  하

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호세아  2:19-20에서  말하듯이,  믿음  안에서, 

자비와  연민  그리고  의와  공정함  가운데  신부와  약혼한다.  누가  이

러한  왕  같은  결혼식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  결혼식

의  영광과  은혜의  부요함을  이해하겠는가?  부유하고  사랑이  풍성하

신  신랑  그리스도가  불쌍하고  사악한  창녀를  신부로  삼으시고,  그녀

를  모든  악으로부터  구속하시며  모든  좋은  것으로  그녀를  치장해주

시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죄가  그녀를  타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

다.  왜냐하면  그녀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놓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삼

켜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랑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가지게  되

었으므로  이  의에  대해  자신의  것으로  찬양할  수  있고,  자신의  모든 

죄,  죽음,  그리고  지옥에  맞서서,  신뢰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내가  믿는  나의  그리스도는  죄를  짓

지  않았고,  그의  모든  소유물은  내게,  그리고  내  소유물은  그에게  속

해  있다.”  아가서  2:16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애인은  나의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라.”  이것은  또한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

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  15:57)  이  이김은  바로  바울이  그  구절 

앞에서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라”(고전 

15:56)라고  말하는  것처럼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이다.

 

앞선  사실로부터  이제  당신은  다시  한번  믿음에  부여되는  커다란  의

미의  이유를  알게된  것이다.  즉,  믿음만이  율법을  성취하며  어떠한 

행위도  없이  의롭게  하는  것이다.  “너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출 

20:12)라고  말하는  첫  번째  계명이  오직  믿음만으로  성취된다는  사

실을  당신이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신이  제아무리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선행만으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고 

첫  계명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의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하나

님을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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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지극히  자비로우시다”는  영예를  돌려드리지  못하기  때문이

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예를  돌려드리는  일은  행위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의  믿음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진실

한  분으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만이  그리스도인

의  의이며  모든  계명의  성취이다.  첫째  계명을  성취하는  사람은  다

른  모든  계명을  쉽게  성취한다.  그러나  행위는  생명  없는  것이기  때

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존경할  수  없다.  물론  믿음이  있는  경우, 

행위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높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  우리는  무엇이  행해지며  그  행위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위를  하는  자,  하나님께  영예를  드리고 

행위들을  만들어내는  주체에  대해  묻는  것이다.  그  주체는  우리의 

전체  의의  핵심이며  본질인  바로  마음의  믿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행위  이전에  계명들은  (믿음을  통해)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며,  행위

를  통해  계명들을  성취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눈멀고  위험한  가르침

이다.  이  성취  이후에  행위들이  뒤따른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내적인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은혜를  보다  자세히  관

찰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처음  난  수컷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장자(처음  난  것)는  다른  것들보다 

이중적인  영예,  즉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부여받기  때문에  매

우  귀한  것으로  여겨졌다(창  49:3;  민  3:12).  맏형은  다른  모든  형제

들의  제사장이고  주인이었다.  이미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

가  지시되었는데,  그리스도는  참되고  유일한  방식으로  하나님  아버

지와  동정녀  마리아의  처음  난  자이며  참으로  왕이며  제사장이지만, 

육과  세상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왕권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요  18:36). 

그는  의,  진리,  지혜,  평화,  구원  등과  같은  하늘에  속하고  영적인 

것들에  있어서  다스리며  거룩한  직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땅과  지옥의  모든  것  역시  그에게  굴복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떻게  이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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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할  수  있겠는가?),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에  있거나  이  세상

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제사장직  역시  아론의  인간적인  제사장직과  오늘날  우

리  교회의  제사장직처럼,  의복이나  거동의  외적인  화려함에  있지  않

고,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있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이  영적인  것

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직무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

며(롬  8:34),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시며  제

사장의  모든  직무를  행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히브리서(6-7장)에서 

멜기세덱의  모습을  빌어  그에  대해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변호할  뿐만  아니라,  그의  영의  살아있는  가르침을 

통해  영  안에서  우리를  내적으로  가르치신다.  이것이  제사장의  두 

가지  본질적인  임무인바,  이것은  육에  속한  제사장들에게  있어  가시

적인  기도와  설교에  비유된다.   

그리스도가  장자권,  즉  이러한  두  가지  직분을  가지고  계시는  것처

럼,  그는  믿는  자  모두와  이  직분을  공유하고  앞서  언급한  결혼의 

법에  따라  이  직분을  공동의  소유가  되게  하는  바,  이  결혼법에  따

라  신랑의  모든  재산은  신부에게도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이요  왕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2:9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다.  “너희는  택하신  족

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제사장  같은  왕들이다.  이는  너희를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

름다운  덕을  이야기하게  하려  함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왕의  직분에  관하여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만물  위로  높여지고,  영

적인  능력을  통해  만물의  주가  된다.  따라서  어떤  것도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이  굴복되어  있으며  그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28절)에서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했고,  또한  고전  3:21-2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이나  사

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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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적인  힘의  관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만물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물  위에  앉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그러한  것은  이  땅  위에서의  왕,  제후,  인간들의  것이다)  그런

데  그와  같은  망상에  빠진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표자들이  곳곳에 

있다.  우리가  삶의  경험에서  깨닫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외적

인  것들에  굴복되어  있으며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하고  결국  죽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처음  난  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골1:8)과 

그의  거룩한  모든  형제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

도인이  되어갈수록  더  많은  악,  고난,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권세는  영적인  것이다.  이  힘은  궁핍함  중에 

강력하며  적들  가운데서  승리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이  아

니라  “내  능력이  약함  안에서  온전하여진다”(고후  12:9)는  것,  내가 

모든  것에서  구원을  위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바,  십자가와 

죽음이  나를  섬기며  나의  구원을  위해  돕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

이다.  이것이야말로  높고도  탁월한  직분이며  참되고  강력한  권세이

고,  영적인  지배인바,  이  안에서는  내가  단지  믿기만  하면,  내가  선

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만큼  그렇게  선한  것도,  나쁜  것도 

있을  수  없다.  믿음만이  구원에  충분하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그[적들과  궁핍함]  가운데서  힘과  자유로운  권력를  행사하는 

것이다.  보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예측할  수  없는  권세이자  자유이

다.

우리는  지극히  자유로운  왕일뿐만  아니라  또한  영원히  제사장이다. 

이  직분은  본질적으로  왕의  직분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제사장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이

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것을  서로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제사장  직무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전혀 

맡겨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는  우리를  소유하여,  우리는  마치  그와  동등한  형제,  상속자,  통치

자이며  제사장이  되는바,  우리는  믿음의  영  안에서  하나님  앞에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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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  가운데  감히  나아갈  수  있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

고,  서로  중보  기도할  수  있고,  제사장의  가시적이고  육체적인  섬김 

안에  수행되고  표현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것도  봉사하지  않으며  선을  이루는  것을  돕지  않는

다.  오히려  그는  만물의  노예가  되며  그에게는  모든  일이  나쁜  일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닌  자

기의  유익을  위해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제사장이 

아닌,  오히려  신앙심이  없는  세상  사람이며,  그의  기도는  죄가  되고 

하나님  앞에  결코  상달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은  죄인을  듣지 

않으시기  때문”(요  9:31)이다.  누가  그리스도인의  직분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직분은  왕의  권세를  가지고  모든  것,  즉  죽

음,  생명,  죄  등을  지배한다.  반면,  그것은  제사장의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저들이 

기도하고  원하는  것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저희  기도를  들으사  구원하시리라”(시 

145:19-20)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직분이  이

러한  영광에  이르는  것은  분명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다. 

앞선  사실로부터,  누구나  분명하게  다음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곧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에  대해  자유하게 

되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  받기  위해  행위를  필

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직  믿음만이  그에게  이  모든  것을  충만

하게  선사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그가  어리석어서  어떤 

선한  행위를  통하여  의롭고  자유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감히  생각한다면,  그는  즉시로  믿음과  모든  좋은  것들을  잃게  될  것

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다음  우화에  매우  잘  묘사되어  있다.  한  마

리의  개가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하천을  건넜다.  개는  물에  비

친  자신의  모습에  속아,  그것을  덥석  물으려고  입을  열었고,  실제  입

에  있는  고기  조각  및  물에  비친  모습도  동시에  잃었다. 

당신은  이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제사장

이라면,  우리가  지금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자들과  평신도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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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제사장,  사제,  성직자, 

설교자라는  호칭을  오늘날  ‘성직자’라고  잘못  일컬어지는  소수의  사

람들에게  사용하고,  그  외  다른  이들에게  이  호칭의  사용을  배제시

킨다면  이  호칭은  잘못  사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이것에  대

해  어떤  차이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현재  교황,  주교,  지배자들(성직자들)로  칭송되는  자들,  즉  그리스도

에  대한  믿음과  신자들의  자유를  가르치기  위하여  그  외의  사람들을 

말씀의  봉사로  섬기는  자들을  성경은  봉사자,  종,  집사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사제라는  사실이  참

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모두  공적으로  섬기고  가르칠  수는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모두  공적으로  섬기고  가르

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4:1에서  “사람이  마

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청지기직은  비기독교의  통치나  세상의  어떤  왕국과도  비

교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권력으로,  끔직한  폭군의  한  유형으로 

발전했다.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무엇이기라도  한  것

처럼  보인다.  이러한  역전상황  가운데,  기독교의  은혜와  믿음과  자

유,  그리스도  전체에  대한  지식은  철저히  몰락  되었다.  그  자리에는 

인간적인  행위와  율법들에  갇혀버린  참을  수  없는  노예  상태가  대신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  예레미야애가에서처럼  –  지상에서 

가장  비열한  인간들의  노예가  되었는바,  이  인간들은  우리의  비참함

을  그들  자의대로  모든  악한  일과  치욕스런  일들에  악용한다.

우리가  시작했던  부분으로  되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말한  내용으로 

명백해진  사실은,  만일  오늘날  최고의  설교가들의  설교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행위들과  삶과  말씀을  순전히  역사적인  것으로,  또한  삶

의  계획을  위한  모범으로  배워야  하는  특정한  행위인  것으로  설교한

다면  이것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또한  그리

스도의  행위와  삶과  말씀에  대해  우리가  완전히  침묵하고,  대신  인

간의  율법과  교부들의  교리를  가르친다면,  그것은  훨씬  더  좋지  않

은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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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해  연민을  갖도록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며,  유대인에 

대해  분노하도록  하며,  그와  유사한  유치하고  어리석은  감정을  갖도

록  자극하는  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설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을  불러  일으키고  굳건하게  하는데  있으며,  그  믿음의  내용에  있어

서  그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당신과  나에게  그리스

도가  되신다는  사실과,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해지는  것과  그의  이름

이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  안에  생기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러한  믿음은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와  그가  무엇을  가져오시고  주셨

는지,  어떤  사용과  유익을  위해  그를  영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교

를  통해  생겨나고  유지된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갖

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바르게  가르쳐지는  곳에서  일어나는바,  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근거로  하여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왕이고  제사장이며  만물의  주이고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하나님  마음에  들고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이  사실을  듣고  큰  위로를  받는다면,  그의  내면

에  이르기까지  기뻐하고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율법이나  행위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누가  그런  마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손상을  가하거나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죄의식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에  엄습하게  되면,  그런 

마음은  이미  주님께  소망을  둘  준비가  되어  있고,  이러한  좋지  않은 

것을  들어도  두렵지  않으며,  자신의  적들을  무시하고  내려다  볼  때

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참조.  시  54:9).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런  마음은  그리스도의  의가  자신의  것이며  죄가  더  이상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모든  죄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삼켜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도바울과  더불어  죽음과  죄를  조롱하며 

말할  것이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다.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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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받으시옵소서”(고전  15:55-57).  왜냐하면  죽음은  그리스도의  승리

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승리에  의해서도  삼켜진  바  되

었기  때문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승리가  믿음을  통해  우리의  것이 

되고,  믿음을  통해  우리도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