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실천 신학 방법론
Ⅰ. 여러 학자들의 견해
투르나이젠
힐트너
틸리히
그 밖의
여러 학자들
I . 다원주의 하에서의 방법론 : 브라우닝과 오든
브라우닝과 오든의 공동기반
오든의 접근 : 고전적 기독교 신앙의 회복
오든과의 비교를 통한 브라우닝의 방법
평가
실천 신학 개론 23
어떤 방법으로 신학을 하는 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상상외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학문으로써의 신학을 생각해 볼 때
방법론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실천
신학의 학문적 연구에는 소홀했고14), 실제적인 문제들만을 생각하고
신학적이고 주석적인 문제들은 그냥 지나쳐 버릴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실천신학이 프락시스를 문제시하는 학문이라고 해서 그저 하나의 프락
시스로 끝난다면 교회에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그렇다고해서 사회과학분야에서 연구 개발되어진 프락시스의 방
법론을 전혀 비판 없이 교회의 프락시스 또는 실천신학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그룹 다이나믹스15)를 목회
현장에 사용하거나,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
의 유형과 이론이나, 현대 심리학의 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 너무나 깊숙이 들여오는 것도 문제이다. 또한 ‘잘 먹혀 들어가는
방법’의 실용주의와 ‘목적이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반기독교적 사고방식
까지도 교회성장을 이유로 하여 정당화 되어 가는 이 때이고 보면, 올
바른 실천신학의 방법론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방법론에는 보통 세 가지의 요소가 전제된다. 첫째는 인간 경험(세속
적 문화와 가치체계), 둘째는 기독교 전통에서 오는 진리, 그리고 마지
막으로 이 둘을 연결하는 개인의 경험(또는 교회)이다. 이것을 어떻게
상호 관련시키느냐에 따라 방법론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 다양한 입장들을 보기 위해서는 투르나이젠(신학쪽), 힐트너(사
회과학쪽), 틸리히(중용)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 특히 다원주의 상황
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오늘날 실천신학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돈 브라우닝과 토마스 오든을 비교분석 해볼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4 실천 신학 방법론
I. 여러 학자들의 견해
1. 투르나이젠: 복음적 영혼 돌봄
투르나이젠(Edward Thruneysen, 1888-1974)은 쉴라이에르마허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큰 실천신학자이며, 칼 바르트의 동료로 복음적 신학
자이며, 루터개혁교회 전통의 목회적 돌봄에 대해 복음적 입장에서 글
을 쓴 사람이다. 그의 중요한 저서로는 「목회학원론」(Die Lehre Von der
Seelsorge)와 「목회학실천론」(Seelsorge in Vollzug)16)이 있다. 그는 여기
에서 Seelsorge(영혼 돌봄)라는 고전적 이미지를 현대 세계에 맞게 생
동감 있게 전달했지만, 정신요법 안에 함축적으로 존재하는 신학적 가
정은 무시하고, 목회적 돌봄은 오직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함으로
극단적 경향을 띤다.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두 영역의 사고(성과 속, 신학과 심리학의 분리)
교회는 영혼의 치료를 위해 절대적으로 적절한 곳이라고 주장하지만
세계 안에서 세계를 위한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교회 안
에서의 대화와 세속적인 대화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 이유는 그의
인간 영혼 이해가 신학적 인간학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하는 존재이므로 교회 안에서의 말씀을 통해서만 치
유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혹자는 “과연 하나님의 사랑
은 말(설교)로만 전해져야 하는가? 또는 복음의 공공연한 선포 없이
구체적인 상호인격적 관계를 통해서는 사랑이 전해질 수 없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물론 전자이며, 이 둘의 과정
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인의 목회적
돌봄은 심리학에 스며있는 근본적으로 낯선 철학적 전제들로부터 비판
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적 돌봄은 철저히 성서에 근거
해야하며, 정신요법은 “매우 위험한 독”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리
스도의 계시 밖에서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실천 신학 개론 25
것이며, 계시의 절대 권위에 대한 인정,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배제가 투르나이젠의 기본 입장이다.
2) 대화적 설교
오늘날 심리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 자들은 보통 “목회적 돌봄은 상
호 인격적으로 그리고 종종 언어의 선포 없이도, 수용하는 보다 큰 실
재를 전해준다. 왜냐하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치료라는 것은 설
교에서 분명히 명시적으로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수용을 함축적으로 전
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투르나이젠은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 목회적 돌봄은 오직 설교의 형태로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목회는 “회중을 향한 설교 속에서
일반적으로 선포된 메시지를 개인과 나누는 특별한 대화”에 관심을 갖
는 것이다. 따라서 상담을 결국 설교라는 범주에 귀착시킨다.17) 왜냐하
면 목회적 대화(말씀, 기도, 선포)는 심판과 위로를 선언할 뿐이며, 이
것이 죄의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은 내면
적 갈등을 밝히는 중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18) 그럼으로 그의 방법론은 하나님은 교
회 안과 밖 어디서나 일하신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교회를 세상과 격리
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19)
즉 언어적 대화(설교)와 교회의 교인 자격 여부에다가 실천신학의 기
능과 역할을 국한시켜 버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3) 공감의 상실
소외된 이웃의 깊은 자리에까지 함께 하는 공감(empathy)은, 신학적
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유한하고 소외된 인간의 깊은 자리에까지 함
께 하는 하나님의 성육신 하는 사랑의 유비 안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20) 이러한 공감은 고통받는 이웃의 내적 왜곡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인데(세속적인 인간 이해의 배경에서), 투르나이젠은 상담
자가 그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공감을 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26 실천 신학 방법론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밖에서부터 계시로 주어져
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평 가
투르나이젠은 실천신학을 확고하게 성서, 전통 및 복음의 연속적인
설교의 구조 속에다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분석에서는 실천신학은 성서
신학과 역사신학에 종속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천신학
이 서야하는 기반은 이 두 분야의 기반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교회의 성원이 되는 것이 목회의 전제 조건이거나 없어서는 안될 목표
라는 투르나이젠의 주장은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 밖
에서도 일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투르나이젠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위해서, 실천신학의 잠재적인 범위를 구술적 대화와
교인 자격에 대한 집착의 범주에다가 너무 좁게 제한시키고 있다.
2. 힐트너 : 기능 중심적 목회신학
힐트너(Seward Hiltner)21)는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신학자였으며, 기
능 중심(operation-centered)의 목회학으로 유명하다. 그는 신학적인 통
찰력을 그가 경험한 실제적인 목회 대화와 임상관련의 실험에서 추론
해 낸다. 특히 보이슨(Anton Boisen)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는 “살아
있는 인간 자료”(living human documents)들을 중요한 실천신학 연구
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것을 그의 방법론의 전제로 삼는다. 또한 그는
로저스 심리학의 영향을 받았고22), 여기에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과
에릭 프롬 등의 이론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사회
학, 정신의학, 임상심리학 등에서 얻은 프락시스를 실천신학의 프락시
스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즉, 인간의 경험을 실제적이고 구
체적으로 신학적 문제에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의 주요 저
서인 「목회신학원론」(Preface to Pastoral Theology, 1968)과 「목회상
담」(Pastoral Counseling, 1976)에서 잘 나타난다.
실천 신학 개론 27
이처럼 힐트너는 실천신학에 대하여 연역적인 접근방법보다는, 경험
으로부터 원리를 향해 가는 귀납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천적 기능의 이해를 위해서 규범을 정립하는 여타의 신학적인
규범 대신에, 힐트너는 실천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어떠한 신학적 통찰
들을 산출해 줄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23) 기독교 신앙 속에서 발견
되는 질문이나 대답들을 세속적인 학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이러한 힐트너의 접근 방법에 대해, 돈 브라우닝은 틸리히의 상호 관계
방법론(correlational method)을 뛰어넘는 트레이시(David Tracy)의 수
정된 상호 관계 방법론(revised correlational method)에 가까운 것이라
고 평한다.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다.
1) 실용주의적 입장
그의 입장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나 태도에 있어서, 목회상담과 다
른 일반 상담가에 의한 상담과는 별로 차이가 없다. 장소나 종교적 자
원을 사용하느냐 않느냐 등의 차이이다”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즉 그
는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심리학이나 정신요법의 지혜를 기꺼이 빌
리고자 한다.
그의 목회상담 정의는 “사람들이 그들의 내적 갈등의 이해를 얻는
과정을 통하여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목사가 그들을 돕는 시
도”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실용주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윌리암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철저히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약점은 치료과정의 가정에 대해 신학적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목사들은 그들이 상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의 문제는 어떻게? 라는 고민”인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그는 목회상담
을 출발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상담의 기술, 상담록(verbatim)의 분석,
접근 방법에 대한 토의로 대부분이 채워진다.
2) 선포의 상실
기독교 복음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신 것이
다.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계시에 응답하는 것
28 실천 신학 방법론
이 신앙의 길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투르나이젠이 목회적 돌
봄을 선포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었다면, 힐트너는 선포의 행위를 상
담관계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상담에서는 말하기보다는 듣는다. 설교에서는 말을 한다. 그러
나 이것은 접근 방법의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단지 상황적인 차이이
다”라고 주장한다. 즉 힐트너에게 있어서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
님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적으로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상담에서 그들이 받고자 하는 도움인 것이라
고 그는 해석한다.
3) 종교자원의 실용주의적 이용
기도, 성서, 교리, 성례전 등 모든 종교적 자원은 상담에서 중요한 역
할을 한다고 그는 말을 하지만, 이것은 이들의 본래적인 목적이 아니라
단지 이들의 기능적인 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도
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백하고 우리의 간구를 아뢰
는 것이지만, 그는 이것이 기능상 스트레스와 긴장의 상황 안에서 나타
나는 인간의 영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즉 기도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하나님에게 얘기하거나 듣는 것보다는 사람의 심리
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다. 인간 상황에 의해 구성되는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유용할
때 성서는 자문 역할을 하는 것이지, 성서가 인간 상황의 이해를 구성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4) 자유 경건주의
다양한 신학적 방법론의 모형은 역사적으로 볼 때 무게 중심이 어디
에 있느냐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카톨릭은 전통, 개신교는
성서, 합리주의자는 이성, 경건주의자는 경험에 강조점을 둔다. 이렇게
볼 때 힐트너는 경험에 무게를 둔다. 실제로 그는 1940년대부터 칼 로
저스의 영향 아래에서 상담록 상담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이런 사례
실천 신학 개론 29
분석을 통해 신학적 결론을 끌어내는 데에 적용을 했다. 그러므로 그
는 자유스러운 실용주의적 경건주의자라고 불려질 수 있다.
5) 평 가
힐트너에게 있어서 실천신학은 심층심리학, 사회학적 이론 및 그룹다
이나믹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기능 중심의
분야에서 초래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이해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틸리히와 투르나이젠에게 있어서 계시가 생동적인 문제였다면,
힐트너를 비롯한 미국적인 목회학의 전통에서는 이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미국적 목회학은 심리학적 사례 연구들이나 임상
적인 목회의 관계들로부터 스스로의 ‘신학적’ 결과들을 유출시키는 것
으로 만족해 왔다. 그 결과는 파생적인 것이나 기능적인 것이었다. 그
안에서 신학은 때때로 실제적인 문제들의 기능을 돕는 데에 기능을 발
휘할 뿐이었다.24)
그러나 교회의 존재는 신학적인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교회
의 목회자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그들이 효율적인 대화자, 조직자 및
목사라기보다는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힐트너의 실천적인 규범의 정의 속에는 감옥 속에서의 본
회퍼의 유명한 자문 “내게 되돌아오는 질문은 기독교는 무엇이며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는 참으로 무엇인가?”에서 보여주는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비판 같은 것이 설자리가 없다.
3. 틸리히: 중용, 문화의 신학
정신요법, 실존주의, 그리고 신학의 가까운 관계는 틸리히의 책, The
Courage to Be, Theology of Culture, Systematic Theology I, II 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평생의 관심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신학적 분
석이었다. 그는 신학이 답해야만 하는 현대예술, 철학, 정신요법, 그리
고 역사가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해 잘 분석해 보여준다. 특히 정신분
30 실천 신학 방법론
석은 인간의 곤궁과 기독교인의 삶의 실재를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상
징체계와 구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그는 본다. 그의 이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상호관련의 해석학
그는 “신학은 실존주의와 정신분석으로부터, 30년이나 50년 전에는
꿈꿀 수도 없던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비록 이들은 자신들이 주었다
는 이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신학자들은 이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25)라고 말을 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정신요법은 인간의 상황에 대
해 얘기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틸리히의 방법
론은 문화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을 계시에서의 대답과 연결시키는 상호
관련의 방법 위에 세운다. 여기서 신학의 과제는 질문을 구성하는 문
화에 귀를 기울이고, 종교적 상징주의를 인간의 실존적 질문들과 연결
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법론에 충실한다면, 인간은 결코 제기하지 않는 질문
에 대해서는 답을 들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하나님의 의미 있
는 계시도 전적으로 우리의 질문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듣던지 안 듣던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전통적인 계시의 개
념이 약화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일방적인 비대화적
경향을 갖는다. 신학은 정신요법적 방법으로부터 은혜의 의미를 배워
야한다고 하지만, 정신분석은 과연 기독교의 증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이것에 대해서 그는 언급하지 않는다.
2) 육체 없는 그리스도(Logos Asarkos)
틸리히의 그리스도는 육체 없는 그리스도(Logos Asarkos), 즉 비역
사적인 개념이다. 아무리 그의 작업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신약성서의
증언이나, 초대 교부들의 핵심사상인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의 신학에서는 빠져버리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비록 예수가 우리의
인간 소외의 깊이(고독, 유혹, 유한성, 죽음에 대한 불안등)에 진실로
참여했다는 그의 주장이 옳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실천 신학 개론 31
계셨다(고후5:19)” 즉 여기에서 인간의 상황에 참여하는 하나님을 만난
다는 신약 교회의 명백한 증언들을 피한다. 전통적인 교회의 신학을
심리화된 예수로 대치시키고 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과 의지에 의존한다. 심지어 “그리
스도도 그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면 그리스도가 아니
다”26)라고 말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학적으로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지 그가 우리를 존재에의 새로운 길(a new way of being)로
이끄는 기능을 한다는 정도이다.27) 그러나 성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로
운 존재(구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3) 존재론적 환원주의
이것은 계시를 일반적 존재의 교리로, 신앙을 용기의 존재론으로, 하
나님을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비인격적 견해로 흡수하려는 것이다.
정신요법과의 대화를 위해 효과적인 것으로 처음에는 보였지만 결국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틸리히는 신앙을 예수 그리
스도의 사건 없이 말하고자 한다.28)
4) 평 가
틸리히의 신학체계는 인간의 상황과 기독교의 영원한 메시지를 오가
며 상관시킨다는 기본 틀이다. 상황이란 개인 아닌 집단이 그 속에 휩
싸여 사는 단순한 심리학적 사회학적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
간 실존의 자기 해석으로서 인간의 실존을 과학, 예술, 경제, 정치, 윤
리 등 모든 형태 속의 존재로 보고, 이 창조적인 실존이 지닌 궁극적
물음과 모호성 모두를 말한다. 그리고 그 상황의 문제와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을 신학의 과제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변증
신학은 단순히 기독교 진리를 변호하려는 소극적 신학이 아니라 인간
실존상황 속에 내포된 문제에 대하여 영원한 진리를 근거로 대답하려
는 신학이다.
그의 방법론은 상황에 대한 복음의 실천적 응답이라는 점에서 실천
32 실천 신학 방법론
신학에 중요한 방법론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틸리히는
상황을 신학의 자원(source)으로서가 아니라 매체로 보며, 실제적 상관
이라기 보다는 상황이 지닌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는 단순한 평행적 관
계로 보고 있다. 즉, 그의 상관구도는 그 관계가 상호관련이라기 보다
는 단순한 병렬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지닌 방법
론의 한계이다.
참고로,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론이 제기되었는데, 그것은 트레이시에
의해 이루어졌다. 성과 속,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삶
과의 만남은 단순히 묻고 대답하는 관계만이 아닌 서로 서로를 분석하
고, 이해하고, 보완하고, 어우러져 창조해 가는 관계 형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판적 모색을 통한 상호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며, 단
순한 상호관련만이 아니라 상호 비판적 상관관계(Mutually Critical
Correlation)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레이시의 입장을 실천신학
적 입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밝힌 학자가 돈 브라우닝이므로 이에 대
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4. 그 밖의 여러 학자들
1) 루돌프 보렌(Rudolf Bohren)
그는 바르트의 영향아래에 있었지만 신정통주의의 방법론을 뛰어넘
어 보다 개방적으로 나아간다. 그의 책 「신학총론」에서 그는 실천신학
의 특성과 그 전개의 방법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29) 그에 의하면, 실
천신학은 세 가지 핵심적인 실천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가 교회를
비판하며 교회의 정체성을 점검하는 일이다. 즉, 교회가 말씀대로 서
있는가? 교회의 모습이 성서가 제시하는 바 그대로인가를 학문적으로
규명하며, 말씀이 바르게 적용되는가, 신학이 바르게 일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일이다. 둘째는 교회를 향하여 신학이 정리한 내용을 바르게
전달하고 실천케 하는 의미에서 교회를 위한 명령의 학문이다. 셋째는
실천을 통하여 교회와 세계 속에서 실험되고 점검된 신학의 실제적 적
합성 여부를 신학작업에 다시 제시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실천 신학 개론 33
2) 크라우제(Gerlerd Krause)
그는 실천신학이 관심해야할 네 가지를 지적한다.30) 1)신학과 교회는
실천신학의 대상, 방법, 위치를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 2)교회와 신앙
의 실제적 요소를 역사와 교의학에 몰입 시켜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3)학문성과 신학의 실천 가능성은 동일하다는 것 4)실천신학과 사회적
행동과학을 연결시키는 문제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유주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
도 실천신학 형성의 방법론에서 인문과학과의 연계성 문제에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실천신학의 독자적 학문적 이론
형성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실천신학을 목회자의 실제 기능에 국한시
키는 일은 극복되어야 하며 교회전체 목회, 세상 속의 신앙의 실제가
그 대상인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신정통주의의 한계를 넘으면서 목
회신학이 단순한 목회의 범주를 넘어서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3) 캠벨(Alstair Campbell)
캠벨은 쉴라이에르마허, 투르나이젠 등에게서 보여지는 교회유지의
단순기능의 범주에 머물렀던 실천신학의 형태를 단순한 ‘목회적 의학
도표’(A Pastoral Medicine Chart)라고 비판하면서, 교회 지향적 기능
과 학문적 사고를 일치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는 실천신학 형성의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구조(교회, 선교활동) 연
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구원이란 범주 속에서 증거, 봉사, 사
랑의 공동체(케리그마,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일에 대한 방법연구이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결국 기독교인의
현실적 삶의 형태가 세속사회 구조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목
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교회와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삶의 변혁과 새
상황 창조의 작업을 실천신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31)
4) 오글트리(Thomas Ogletree)
그는 실천신학의 방법론 설정을 위한 기본 틀을 비판적 사고와 실제
34 실천 신학 방법론
적 삶의 내용과의 대치, 즉 이론과 실제와의 관계로 보고 있다. 이 두
요소의 실천적 연관성을 회복하는 것이 실천신학의 핵심이며 실제적
과제로 보고 있다. 그는 실천신학이 세 차원--의미, 행동, 자아--을 포
함해야 한다고 본다.32) 첫째로, 의미의 차원은 세계 속에 우리 존재에
대한 이해를 확정하고 해석해 주는 일로서 존재의 의미와 전통을 연결
시켜 주는 일을 통해서 진리를 실천적 관심으로 삼는 일이다. 둘째로,
행동의 차원은 교회를 세우고 선교의 수행을 뜻하며, 기독교신앙의 구
체화, 활성화를 목표로 삼는다. 이 행동 차원의 중심적 관심은 연관성
혹은 유용성에 둔다. 셋째로, 자아 차원은 인간의 자아형성을 위한 실
천신학의 역할과 기능을 뜻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과 인격 속에 기
독교신앙의 구현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핵심은 참다운 존재되
는 일이며, 궁극의 관심은 통합성(Integrity)이다. 실천신학은 이상과 같
은 제 차원의 실천적 통합이다. 인식(knowing), 행동(doing), 존재(being)
의 통일에서 복음의 실현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신학과 변
수로서의 상황 혹은 실제문제와의 상호연관성을 현대신학의 기본 도구
로 인정하였다.
5) 폴링과 밀러(J. N. Poling and D. E. Miller)
이들도 실천신학의 학문적 전개는 살아있는 기독교 공동체로서의 교
회를 근간으로 한다는 데에는 동일하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기본적
으로 두 개의 기능을 지닌다. 그 하나가 신학이라는 이름의 신학적 해
석 기능이요, 둘째는 해석에 기초한 실천 기능이다. 신학은 살아있는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속적인 활동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행
동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게 한다. 이러한 신학의 해석적 기능은 반성
과 안내를 통해 해석과 행동기능을 발휘하고 이끌어 가는 실천성을 지
닌다.
교회가 지닌 해석과 실천은 교회가 처한 상황 가운데서 진행되기 마
련이다. 변화해 가는 상황 속에서 거기에 적응하는 해석으로서의 신학
과, 그것의 적응으로서의 실천 기능은 항상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천 신학 개론 35
이와 같은 실천적 기능은 교회의 ‘목회’기능을 통해서 구체화되며 실
천되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실천신학은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과학적
변화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에 의한 접근이 요청되며 또 시행되고 있다.
종교의 다원화와 그 이해의 변화에 따른 접근 방식, 세계의 가족화와
첨단 기술의 발전이 몰고 오는 세계인의 의식과 지각의 변동에 대한
신학적 대응, 국가적 이기주의와 문화적인 혼란과 퇴폐성의 도전에 대
한 응전들은 교회의 전통적 한계를 넘어 세계를 향한 복음의 현실화라
는 해석학적 기능을 모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천신학은,
1) 기독교의 의미를 당시의 상황에서 바로 포착(신학적 의미)하고
2) 그것이 주는 오늘의 보편적 의미를 찾고
3) 성서의 본문이 지닌 보편적 의미를 찾고
4) 보편적 의미가 오늘의 특정 상황에 주는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고,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복음의 실천을 추진
하게 된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