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심리학(4주).hwp
닫기종교심리학 4주차 “칼 융의 종교이해와 평가” / 박노권 교수
4주
1. 하나님에 대한 융의 탐구
융은 스위스 쯔빙글리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목사관에서 생활하면서 종교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체험들을 해가며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그 당시 보았던 기독교는 새롭게 각성하기 시작한 인간의 의식에 맞추어 여태까지의 교리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영적인 문제들 때문에 고통 당하는 신자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나간 시대에나 맞는 방식으로 신자들의 영혼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런 기독교에 맹렬히 반발하면서 새로운 기독교를 찾아 나섰고, 기독교를 새롭게 해석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사람들에게 처벌과 죽음만을 가져다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 속에서 떨게 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삶을 가져다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통합하여, 성숙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새로운 기독교를 찾았던 것이다.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 때문에 사람들을 거역할 수 없도록 사로잡으며, 사람들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어떤 이미지(image)였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 동안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을 때 처벌하고, 마지막 날 궁극적으로 심판하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을 경우 영벌에 처하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제시하였다. 그가 가진 완전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완전케하며, 그 완전성이 깨어졌을 경우 사람들을 치유시켜서 다시 완전하게 해주는 존재로 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그릴 때, 사람들은 이런 존재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런 존재에게는 복을 내려달라고 빌어야 할 뿐, 인격적이고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융은 하나님은 과연 누구인가, 사람들은 어떠한 존재를 가리켜서 하나님이라고 해왔는가,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하는 점을 찾고자 하였다. 이 작업을 위해서 융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와 경전들까지 뒤적여 그 동안 사람들이 하나님이라고 불러왔던 존재에 관해서 탐구하였다.
이것--하나님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은 왜 융이 그토록 하나님에 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였으며, 하나님에 관해서 그렇게 열심히 탐구했는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융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와 종교 및 종교체험 등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것들이 정신질환이나 그 치료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정신질환과 종교(또는 종교신앙)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내고, 올바른 신앙은 정신치료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 종교의 본질
융이 종교 현상을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론적인 것이며, 그의 의도는 종교 현상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니라, 종교 현상에서 발견되는 심리적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융은 신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 속에 있는 신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융의 종교론은 사변적이고 지적인 작업의 소산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른바 상상, 꿈, 환상 등의 무의식적 과정을 살펴본 경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융은 무의식과의 접촉이 정신 건강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며,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자신의 “뿌리와 만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자신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의 핵심이며 의미 그 자체인 무의식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한 만남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의미성밖에는 경험하지 못한다. 무의식과의 이런 관련성을 지속시켜 주며, 그것에 계속적인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 융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이며, 삶의 원천이며, 삶의 의미 자체인 것이다.
무의식에 대한 융의 이러한 경험,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그 산물들은 루돌프 오토가 「성스러움의 개념」(The Idea of the Holy)이라는 그의 저서 속에서 성스러움의 본질로서 묘사한 신성한 것(the numinous)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융은 믿었다. 무의식과 그 산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종교들이 외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religio(종교 religion의 라틴어 어원)라는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즉 신성한(numinous) 것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라는 것이다.
융은 누미노즘의 경험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조와 연결시켜 그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오늘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분석심리학의 입장에서 평가한다. 즉 기독교를 포함하여 오늘날의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고백(confessions)들은 그 뿌리를 따라가 보면 본래는 누미노즘에 대한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고, 또 한편으로 신앙은 누미노스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며 그로 인해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누미노스적인 대상에 대한 경험의 축적물로서의 신조들은 성문화되어 교리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경험의 내용은 신성시되고 동시에 대체로 엄격하고 때로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체계로 굳어진다. 그 본래의 경험을 실행하고 재현하면서 그것은 하나의 의식(ritual)이 되었고 불변하는 제도가 되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위 공식적인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로 자리잡은 종교가 반드시 누미노즘적 경험이 가지고 있던 생명력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오랜 세월동안 종교는 그 공식적인 틀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경험에 접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종교는 인간의 근원적인 경험을 제한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융은 제도화된 종교의 경직성을 경고한다. 그리고 종교를 근본적인 경험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자신은 정신적으로 병든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이므로, 자신의 종교에 대한 탐구는 어떤 특정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논의나 옹호가 아니라,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의 심리적 측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3. 종교와 자기실현과의 관계
융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은 종교경험을 가능케 해주는 원천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종교적일 수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종교적 태도는 인간 본성의 절대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상실하거나 또는 그 원천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단절되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특히 중년기 위기는 개성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진정한 종교적 경험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자기’를 만나고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됨으로 그러한 경험은 분열된 인간의 마음을 온전하게 치유하고 정신의 전일성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분석심리학은 마음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치료나 교육, 종교 더 나아가 인생 자체가 추구하는 목적은 바로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화 과정 자체가 종교적 과정이며 성숙을 향한 인생 여정에서 종교는 필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융은 자기실현에 앞서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신을 실현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기 지식(self-knowledge)은 자기 실현의 지름길이라고 하였다.
종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장치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수많은 종교적 상징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그는 세계 종교들은 정신 치료를 위한 위대한 상징 체계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의 상징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며, 동시에 그것은 분열되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하나로 통일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것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갱신의 삶을 다짐하곤 한다.
자기를 온전히 이룬 이를 융은 그리스도로 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상징이며 서양인에게 있어서 그는 가장 적절한 상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독교의 범주 안에서 신앙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연결되어 대극의 통일을 이루어 진정한 자기 상인 그리스도를 마음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하겠고, 그가 바로 개성화를 이룬 사람이다.
4. 상징의 심리학적 의미
개성화를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 중에서 상징은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개성화 혹은 자기 실현은 우리 안에 있는 대극적인 요소들을 통일된 상태로 이끌어 가려는 노력의 과정인데, 이때 이를 위한 정신의 원활한 움직임이 어떤 이유 때문에 장애를 받게되는 경우 정신은 침체되고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정신이 정체되어 있을 때 막혀 있는 심리적 에너지가 다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 다리를 놓아주어 정신이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상징이 해준다.
상징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으나 그 중에서 상징이 대상을 표현한다는 것과, 보이는 것 뒤에 숨어있는 심오한 의미를 나타낸다는 의미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함께 던진다”는 뜻을 가진 희랍어 ‘symballo'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상징이 두 개의 실재(reality)를 이어 주며 그 둘을 하나의 새로운 통일체 속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상징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며 그것은 언제나 계시나 직관의 통로에 의하여 무의식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상징의 생성에 대한 지식과 함께 중요한 것은 그것의 기능이다. 어원의 뜻이 의미하듯, 상징은 다리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무의식과 의식, 과거와 미래를 실현된 현실 속에 통합시키는 과정에 참여한다. 즉, 상징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대극의 합일을 원활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집단무의식의 내용들을 만날 수 있도록 중간매체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상징은 무의식과 의식,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을 통합시키는 정신의 전체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상징이 가지고 있는 통합성은 인간의 자아가 그 보다 더 큰 실재인 자기와 관련을 맺도록 해줌으로써 인간의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상징의 통합하는 속성을 융은 상징의 초월적 기능이라고 불렀다.
많은 집단적 상징들은 종교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들인 그리스도의 몸, 십자가와 같은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제도적인 종교들은 그들의 언어에서부터 세부적인 종교의식에 이르기까지 상징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진작시키고 신자로서의 온전성을 찾는데 있어서 상징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 삶이란 상징과 맺고 있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상징 파괴의 역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며 특히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기독교는 수많은 상징이 상실되고 파괴되는 경험을 했음을 융은 지적하고 그것이 개신교 신자들의 종교적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염려하였다.
프로이드와 달리, 종교를 일종의 정신 치료자로서, 영혼의 치유자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융은 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이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상징적 언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1951년에 쓴 어떤 편지 속에서 융은 독일의 신약성서 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을 비판하고 있다. 융이 생각하기에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개신교 합리주의의 결과로서 기독교의 상징주의를 더욱 더 불모 상태로 이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개신교는 더욱 더 따분하고 보잘 것 없는 종교로 되고 말 것”이라고 융은 말한다.
이렇듯 융의 생각에 있어서 상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에 저술한 그의 마지막 저서도 「인간과 상징」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꿈, 신화, 종교적 체험, 미술, 문학 등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성을 어떤 소설이나 논픽션 못지 않는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묘사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한없이 넓고 풍부한 세계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융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종교적 상징의 역할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현대의 합리주의적 전통에 선 과학문명의 발달은 상징이 가지고 있는 신비하고 비합리적인 측면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욕구를 자극하여 왔고 결과적으로 상징이 단순한 징표(sign)로 전락되어, 상징에 반응하는 인간의 본래적인 능력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오늘 세계는 삶의 중심을 잃고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상징은 유비(allegory)나 징표(sign)가 아니고 주로 의식을 초월한 어떤 내용에 대한 이미지임으로 그것은 그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이 자리하고 있을 때만 상징으로서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상징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설명할 수 없으며 바로 이것이 상징이 모든 사람에게 각각 독특한 의미를 반영해 주는 이유이다. 만일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모두 이성으로 접근이 가능해지면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깊은 함축성은 사라지고 징표가 되어 더 이상 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깊고 풍부한 의미들을 함축한 무수한 상징들이 메마른 징표로 전락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융의 지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5. 기독교에 대한 융의 태도
이미 예일대학교의 테리강연(1930, 종교와 심리학에 관한 강연)에서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천명한 융은 그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종교 일반과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자서전의 많은 곳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에 얽힌 이야기들과 1958년에 발표된 “욥에게 대답함”은 대표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 부정적인 경험들
융의 생활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자서전 「기억과 꿈과 회상들」(Memories, Dreams and Reflections)의 곳곳에 표현된 융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양면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융의 집안은 아버지를 비롯하여 어머니쪽 친척으로 6명과 숙부 두명이 목사였으므로 유아 시절부터 그의 생활에서 기독교는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이유중 하나는 교회가 평생을 목사로 살아온 그의 아버지에게 힘과 치유의 원천이 되어 주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융은 그가 학창시절동안 교회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사실을 토론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그의 아버지의 욕구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융은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융은 그 자신이 몹시 충격을 받았으며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는데,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가엽게도 ‘신학적 사고’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그의 아버지가 직접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버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처음 참여한 성만찬의 경험에 대한 기억은 참담할 정도였다. 그는 하나님의 실재와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흥분된 마음으로 성만찬에 참여했으나 결과는 실망이었고 그 이후로는 성만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융의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하나님은 실재하는 분이었는데, 제도화된 교회는 경직된 교리와 집단의식의 지나친 강조로 자유로운 종교 경험의 통로를 방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찾을 수 없었으며 교회 안에서는 개인의 의식이 분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집단에 동화되어 진정한 자기가 되는 길과 역행되는 길을 가도록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집단에도 호감을 갖지 않았으며 기독교도 하나의 집합체라는 의미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집단은 언제나 개인의 의식화를 막을 위험이 있으며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속에서 개인의 의식이 상실될 위험은 증가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한 개인이 진정한 자기 자신과 집단정신인 페르조나를 구별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다. 즉 자아가 페르조나에 동일시하면 할수록 자아는 팽창될 것이며 그것은 자기 자신과 어긋나는 것이다.
2) 긍정적인 평가
그러나 그가 교리와 의식을 가진 제도화된 종교에 대하여 비록 회의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하는가를 알고 있었기에 종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기독교는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충동들을 조절하도록 해 줌으로써 의식의 영역을 넓히고 성숙을 돕는데 기여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교리와 의식은 종교적 경험의 상징적 표현과 그 전달자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교회의 상징들은 무의식에 포함되어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여 수용할 수 있는 통로나 그릇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순간들을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것이다.
3) 악의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
기독교 신학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삼위일체 교리와 신정론에 대하여도 융은 자신의 심리학적 틀에 기초하여 새로운 심리학적 입장을 피력하였다. 테리강연과 “삼위일체 교리의 해석 시론”에서 그는 수많은 자료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의 무의식 층에 있는 원초적 유형으로부터 유래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사고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이 교리가 인간 정신의 온전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억압되어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인 악을 포함시켜 사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었다.
“욥에게 답함”에서도 악의 문제를 구약의 욥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왜 선한 하나님이 죄 없는 욥에게 그토록 혹독한 고난을 내리는가?), 이 질문은 모든 믿는 자들이 제기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의 문제를 융은 원형론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신은 원래 대극이 결합된 존재였으나 신의 선한 측면만이 강조되면서 자연히 또 다른 측면인 악은 타락한 천사가 짊어지게 되어 신의 존재와는 무관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즉 악이 무의식화 되면서 신의 그림자가 생겨난 것이다. 선한 신에게 동일시가 강요되면 될수록 신자들의 마음이 분열되고 대극이 형성되어 선한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신앙적 관행을 들어내는 모순이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억압하면 할수록 그 힘은 강해지고 결국에는 반 기독교적인 형태로 인간 공동체를 위협하게 될 것임을 역설한다. 개인뿐만이 아니고 사회나 어떤 집단이 그들의 그림자를 부인하고 억압하거나 또는 그림자가 부적절하게 표출될 통로가 주어질 때 종종 재난이 잇따르게 되는 경우를 본다. 실제로 인류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보다 더 잔인한 전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이러한 사실을 융은 교회가 그림자의 존재를 억압하거나 적절하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4) 평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융의 분석은 신학적인 논쟁을 위하여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많은 신학자들로부터 반발과 비난을 받았으나 또 한편에서는 그의 생각에 호감을 가지고 신학에 반영한 신학자들도 뒤따랐다. 비록 우리가 그의 신학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의 종교 전반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은 성숙하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귀중한 통찰을 주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특히, 융은 영성 성장을 전인성으로 향하는 모든 움직임에 필수적이고 중심적인 차원이라고 믿었다. 그는 인류의 종교적 욕구를 아주 보편적이고 강력한 것으로 보아서, 그것을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된 본능으로 여겼다. 융은 정당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성장과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의미뿐이다.” 오늘날의 많은 고통과 문제는 사람들이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보면서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고 우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하는 보편적인 확신과 사상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끼면 거의 믿기 어려운 고난도 참아낸다....이것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종교적 상징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융은 동양의 심원한 전통 속에 있는 풍부한 영성에 깊이 감동을 받았는데, 그는 이것이 서양의 종교적 전통을 균형잡고 보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치유와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종교의 비이성적, 신화적,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면들이다. 완전히 탈신화적인 종교는 풍부한 무의식의 자원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통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융에 의하면, 종교는 우리가 현실의 풍부하고도 비합리적인 측면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초점을 맞추는 사회와 모든 통계적인 일반화를 초월하는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어, 우리가 객관적인 ‘이성’과 외부 세계로부터 지나치게 영향받는 것을 바로잡아 준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로이드가 종교의 오래된 오만함을 보고 반발했다면, 융은 과학의 새로운 오만함을 보고 이에 반발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6. 융의 종교이해의 공헌과 한계
융이 보여준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심오한 사고는 프로이드에게서 보았던 성적인 본능에 지배받는 인간이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인간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에게 무의식은 더 이상 극복해야할 갈등이나 충동의 저장소가 아니라 성적, 도덕적 갈등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경험과는 관계없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집단무의식의 개념이야말로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집중적으로 가져야 할 곳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개념은 융 심리학의 중심개념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오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도 불구하고(특히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비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종교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이다. 그는 종교가 교리나 신조에 앞서서 본질적으로 경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지시켜 주었고 진정한 종교경험의 의미와 역할 및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서 상징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며 특히 종교적 상징은 신앙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임을 부각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헌은 성숙을 향한 삶의 길은 외적인 것, 집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 비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참된 것을 추구하는 길임을 인식시켜 주었다는 것에 있다.
특히 융은 종교의 역동성을 주장하였으며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끼치는 강력한 영향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융은 강력한 힘을 가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최고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가지고 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이 최고의 가치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그들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며, 그 삶을 의미 있게 해 주는데, 만일 이렇게 뚜렷한 인생관이 없을 때 사람들의 삶은 병들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병적인 현상들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융의 이러한 지적들은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를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의 주장 가운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도 있다.
1) 첫째로,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힘으로만 보았다는 것이다.
종교체험자들은 그들의 체험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체험하는 반면, 신경증 환자들은 그들의 체험 속에서 비인격적인 원형적 이미지를 체험하고 있다. 개성화 과정에서 융의 환자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은 사각형과 원으로 되어 있는 일종의 만달라상 등, 자기를 나타내는 원형적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들을 보고서는 깊은 정서적 체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윌리암 제임스가 「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에 모아 놓은 많은 종교체험담들이나 여러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존재로 체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체험 속에서 “그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보다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사각형과 원으로 되어 있는 비인격적인 원형상이 아니다. 종교체험 후에 체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서 헌신의 삶을 살기에 충분한 인격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융의 환자와 종교체험자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그러면 개성화 과정에서 체험하게 되는 존재와 종교체험에서 체험하게 되는 존재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융과, 다른 종교체험자들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 이미지는 그가 하고 있는 종교체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융이 말하고 있는 자기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 본질에서 엄청나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화 과정과 종교체험에서 궁극적인 실재를 체험하는 양상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체험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이미지 또는 신앙은 체험자의 체험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많은 체험자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처음에 그들은 그들의 체험 속에 신의 현존이 나타날 때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 내 곁에 신이 임재하셨구나!”하는 현존감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때 체험자에게 그 존재는 다만 절대자일 뿐이다. 그가 “그리스도이다, 불타이다”라고 구분 짓는 것은 체험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다. 물론, 체험자의 체험이 점점 깊어질수록 체험자는 그의 체험 속에 나타나는 존재가 처음의 막연했던 절대자에서부터 그가 믿고 있는 신앙의 대상으로 뚜렷이 바뀌기는 한다. 처음에는 다만 절대자의 현존 앞에서 그 현존에 사로잡히고 있을 뿐이다. 그 현존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그러므로 그가 가진 신앙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미지(또는 신앙)와 종교체험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교체험과 개성화과정에서의 자기 체험 내용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역시 그 두 체험 사이의 하나님의 이미지 또는 절대 존재 관념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말하자면, 이 두 체험은 모두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체험이나 개성화 과정은 모두 인간 영혼의 아픔이라는 상황에서 출발하여 절대자를 만나서 그 절대자의 빛을 통하여 분열되어 있던 자신의 영혼을 통합하는 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융이 정신 치료자와 신학자들은 영적인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동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동감한다. 사실, 현대 사회에는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정신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정신 치료자들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종교생활 가운데서 가장 깊은 체험인 종교체험은 이 두 영역이 서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영혼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혼자 있게 해서는 안되고 그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융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목사와 상담하기를 거부하는 교양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철학자에게는 더욱더 가지 않는다. 철학이란 그저 차가운 것이며, 그들의 문제가 지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삶과 이 세상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같이 나눌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영적 고뇌의 문제와 가장 깊이 관계하고 있는 사람은 의사라기보다는 사제와 목사이다. 그러나 목회자와 상담할 때 그 문제가 심리적인 것이라면, 그는 환자를 설득할 수가 없다. 대체로 그에게는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는 병의 심리적 요인을 식별해 내지 못하며, 그의 판단에는 권위가 없다..... 반면에, 우리는 의사에게 영혼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다. 영적인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의사가 아니라 목회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이야말로 정신치료자와 목회자가 힘을 합쳐 영혼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이다.
2) 둘째로, 실제의 하나님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미지에 관해서만 알뿐이라고 주장하여 하나님을 무의식의 영역에 국한시킨 것이다. 그러나 성서와 신비체험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서 그 체험자들을 좀 더 높은 단계의 삶으로 이끌어 가는 분이다.
종교적 경험이 후퇴를 의미하느냐 아니면 전진을 의미하느냐, 환상이냐 계시냐, 신경 질환적인 것이냐 치유적인 것이냐, 억압적이냐 해방적이냐, 죄책을 동기로 하느냐 아니면 성장을 동기로 하느냐, 강박적인 것이냐 목적을 향한 것이냐, 도피적이냐 공격적이냐, 자아 중심이냐 아니면 확대된 관계를 통해서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어져 왔다. 이러한 두 갈래의 노선에서 프로이드와 융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다.
프로이드는 과학자로서 신비적 신앙을 의심했다면, 융은 신비가로서 영혼의 더 큰 신비와 의미를 해석하는 데 과학적 이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누가 더 종교의 편에 서 있는 가라는 질문에 대해 융을 종교의 편에 선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이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던 것처럼, 융은 분명히 종교를 두둔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는 종교를 심리학적 주관주의의 늪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대주의로 축소시키고 말았다는 비판을 결코 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이르는 길 |
|
암치료를 위해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긍정적인 시각화를 위하여 그린 로리의 만다라 |
|
로리가 그린 마지막 만다라로 죽음 가까이에 있던 그녀의 부활을 반영하고 있다. |
|
얀트라(Sri Yantra)라고 부르는 만다라 숫자 여섯은 성적으로 양극의 화합으로 전체성을 상징한다. 이는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이미지로서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져서 상호 침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로 향한 삼각형은 수용적인 여성성을 대변하고 위로 향한 삼각형은 능동적인 남성성의 원칙을 대변한다. 이러한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지면서 여섯모를 가지고 있는 별이 만들어진다. 힌두교들은 얀트라가 삶 속에 있는 모든 형태들의 상호관계를 시사한다고 믿었다. |
|
티벳의 이 만다라는 사원의 평면도와 비슷하다. 성스러운 중심은 네 개의 문이 있는 벽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이 네 개의 문에는 무시무시한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 각 대문에서 자신의 일부인 집착, 욕심, 두려움등을 대변하는 무시무시한 문지기를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게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만다라는 정신적인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성장을 지원하는 일종의 내면세계의 지도라 할 수 있다. |
|
|
집단 무의식에서부터의 원형(archetypes)에 대한 예술적 표현 잘 알려진 유명한 이 세 작품은 동일한 신화적 인물--비너스, 사랑의 여신--을 묘사한다. 첫 번째 것은 B.C. 150년경에 만들어졌고, 두 번째 것은 15세기, 그리고 세 번째 것은 19세기의 작품이다. 이 그림들은 차이점은 있지만 유사성이 매우 많다. 융에 의하면, 신화적 인물들을 원형 또는 집단 무의식안에 저장된 사고형태를 반영한다. 원형들은 오랜 세대를 걸쳐서 내려온 이미지로서 저장되었기 때문에, 세대를 걸쳐서 예술적 상상력에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융은 믿는다. 융에 따르면, 위의 그림은 여성에 대한 원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