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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서]

<마태복음서의 구조>

1. 출생 이야기 (1-2장): Cf. 모세

1.1. 족보와 부친 요셉 (1,1-25)

1,1-17

족보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자손), 다윗의 후손 (이스라엘의 메시아).
⟶ 

아브라함-다윗/다윗-포로기/포로기-예수 ⇒ 각 14대

네 명의 이방여인: 다말 (가나안), 라합 (여리고), 룻 (모압), 우리아의 아내 (헷).

1,18-25

요셉 이야기
예수는 요셉의 양자 (adoption).
두 개의 이름: 예수 + 임마누엘 (cf. 18,20; 28,20)

1.2. 동방박사들과 헤롯 대왕

2,1-12

동방박사: 예수 출생은 동방 점성술의 성취이자, 유대의 예언 성취.

2,13-18

헤롯 대왕의 유아 학살: 권력과의 갈등이 예수 삶의 첫 부분을 규정.

2,19-23

예수 가족의 귀향: 나사렛인으로서의 예수

2. 예수의 초기 활동 (3-4장)

2.1. 세례요한의 활동

3,1-6

세례요한의 광야 선포: 회개 + 하늘 나라 (cf. 하나님 나라)
⟶ 

세례 요한부터 이미 하늘 나라 선포 (cf. 막, 눅)

죄용서의 세례가 아님! (cf. 성만찬)

3,7-12

세례요한의 설교: “백성”이 아닌 [vs. LkEv], 바리새, 사두개파인들에 대한 공격.

3,13-17

세례요한의 예수 세례: 변증적 (예수의 허락), “하나님의 아들” 공개적 선포.

2.2. 시험 (4,1-11)

2.3. 예수의 공적 활동 시작

4,12-16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거주: 예언의 성취; 이방인의 구원.

4,17

예수 선포: 회개 + 하늘 나라 (= 세례요한 선포 3,2); “그때부터” (ajpoV  tovte) 16,21

4,18-22

제자 소명: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

4,23-25

백성에게 복음 전파: “온 시리아”에 소문 퍼짐

3. 산상설교 (5-7장)

3.1. 산상설교의 서문 (5,1-12): 8 복 + 1 복 “makavrioi”

3.2. 서론적 가르침 (5,13-20)

5,13-16

세상의 모범인 제자들: 소금 (-), 빛 (+)

5,17-20

유대교에 대한 완성과 우세 (SMt)
- 율법과 예언자들의 완성
⟶ 

율법과 예언자들을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심.

- “정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능가해야 하늘 나라 들어감.

3.3. 본격적 가르침: “더 나은 정의” (5,21-7,11)

5,21-48 反-명제: 토라 해석의 강화와 전통에 대한 예수의 주권

여섯 개의 反-명제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원수증오)
⟶ 

성내지 말 것 (형제간의 화해), 원수사랑의 계명이 틀을 이루고 있음.

6,1-18

경건: 진정한 경건과 사회적 통제에 대한 주권.
동일한 구조의 세 가지 권고: 자선행위, 기도, 금식.
주기도문 (6,9-13): 산상설교 중심; 6,14f.에서 화해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 (cf. 눅)

6,19-7,11 재물에 대한 훈계: 재물에 대한 주권

“mhv”로 시작되는 훈계들 (6,19.25ff; 7,1.6)
7,1-5 남에 대한 심판 금지를 통한 화해의 계명

3.4. 기본 주제 요약 (7,12)

황금률 ⟶  율법과 예언서의 요약; 5,17에 대한 재해석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
⇒ 이것이 율법과 에언자들 가르침의 본 뜻이다!

3.5. 산상설교의 마지막 (7,13-27)

7,13-14

구원의 문과, 멸망의 문

7,15-23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계: 세 번째의 경계 대상 그룹
⟶ 

(1) 유대 지도층 (5,20), (2) 이방인 (5,47; 6,7-32)

7,24-27

집 짓는 비유

3.6. 예수의 권위 (7,28-29)

무리가 예수의 가르침에 놀람.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

4. 예수의 행적 (8-9장)
(대개 5-7장은 words of messiah, 8-9장은 deeds of messiah로 구분된다.)

4.1. 유대인, 이방인, 여인들을 향한 행적

8,1-4

나병환자 ⇒ “유대인”
⟶ 

비밀엄수 명령을 어기지 않음 (cf. Mk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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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3

백부장

⇒ “이방인”

⟶ 

이스라엘은 하늘 나라에서 제외됨 (cf. 눅 7장)

8,14-17

베드로의 장모

⇒ “여인”

⟶ 

예수의 치유기적들 = 이사야 53,4의 성취

4.2. 추종자들을 통한 공동체의 형성

8,18-22

추종자들과의 두 개의 대화

⇒ 추종에 따르는 내적 갈등

⟶ 

고향, 가족과의 단절 (radical 제자도 ⟶  from Q)

8,23-27

풍랑에 대한 자연 기적

⇒ 추종에 따르는 외적 갈등

⟶ 

편집통한 상징부여: 제자들 “배”(공동체?)로 따라감; “적은 믿음” (cf. Mk, Lk)

4.3. 이방인과 유대인의 예수 거부

8,28-34

가다라의 귀신 들린 자 (이방 지역): 예수에게 떠날 것을 종용.

9,1-8

중풍병자 치유: 자기 마을, cf. 막 2,1ff. (가버나움):
⟶ 

유대 지도층(율법학자들)의 거부.

⟶ 

무리가 예수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

4.4. 예수의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 (식사법과 관련)

9,9-13

<바리새인들>의 공격: 세리들과의 식사
⟶ 

“나를 따르라”는 예수 명령에 따라 세리 마태가 따름.

9,14-17

<세례 요한 제자들>: 금식논쟁

4.5. 신앙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되는 기적 이야기들

9,18-26

혈루증 앓는 여인 구원(네 믿음이 구원. .)과 죽은 소녀 소생

9,27-34

두 소경의 치유 (믿음대로. .) SMt

5. 제자 파송 설교
제자들은 예수의 선포와 (5-7장), 기적활동에 (8-10장) 동참한다. 지역 공동체와 순회 전도의 대조는 “파

송과 수용”이란 틀 안에서 가시화된다고 할 수 있다.

5.1. 서문적 일화들

9,35-38

일꾼들을 요청: 공동체를 통한 파송

10,1-5a

열두 제자 선택: 구원사업에 관한 전권을 위임 (cf. 막 3 장; 눅 6 장).

5.2. 이스라엘 선교 (말씀 전승)

10,5b-23 임무: 선교대상 (유대), 설교, 치유, 차림새, 개별 마을들의 수용여부
10,16-23 박해: “이리 떼 가운데 양”

5.3. 제자직에 대한 가르침

10,24f.

제자와 스승

10,26-33 두려움의 극복: 그리스도를 시인
10,34-39 분쟁과 갈등

5.4.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

10,40

사절 파송에 대한 일반적 진술: 하나님 ⟶  예수 ⟶  제자

10,41f.

예언자, 의인, 작은 자에 대한 영접: 본 단락의 서문과 일치 (cf. 9,35-10,5a)
⟶ 

지역 공동체들에게 선교사들을 영접할 것을 권고

6. 갈등 (11-12장)
U. Luz: MtEv의 첫 부분은 11장에서 끝남. 그러나 11,12장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Cf. 11,25; 12,1은

“그 무렵에”로 시작됨. 11장에서의 예수에 대해 경쟁적 상대는 12장에서 적대적 상대로 이전됨. 경쟁자

와 적대자와는 대조적으로 예수의 추종자들은 계시를 받아들이고 (11,25-30) 하나님의 가족(familia dei)

으로 인정된다 (12,46-50).

6.1. 예수 사역에 대한 경쟁세력 (11,1-30) ⟶  Q

11,2-6

세례요한의 질문:
“오실 그 분?” <- “그리스도가 한 일들을 듣고서” (11,2 편집) = 예수 행적과 설교

11,7-19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

11,20-24 갈릴리의 도시들을 저주 (고라신, 가버나움): 많은 기적에도 불구하고 회개 없음.
11,25-30 대조법을 통한 계시의 말씀들: “이 일”(11,25)을 통해 앞 단락과의 대조.

- 감사의 말씀
- 아버지-아들 관계의 배타성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 대한 위로 <⟶  가벼운 예수의 짐 (예들: 12,1ff.).

6.2. 예수 사역에 대한 대적자들 (12,1-50)

12,1-14

두 개의 안식일 논쟁 ⟶  결과: 예수 처형의 음모

12,15-21 이방인들을 향하심: 이사야 예언의 성취
12,22-45 “이 세대”에 대한 비난

- 바알세불 논쟁
- 성령을 거스리는 죄
- 나무와 열매의 은유: 독사의 자식들!
- 표적 요구: 요나의 표적 ⟶  부활

12,46-50 “하나님의 가족” (↔ “이 세대”)

⟶ 

기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

7. 비유 (13장)

7.1. 비유의 이해와 공동체의 생성

13,3-9

씨뿌리는 자의 비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 가운데에도 차별성 존재 (cf. 막, 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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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

13,10-17 비유의 목적: 하나님 나라의 비밀들
13,18-23 비유의 해석

7.2. 공동체의 성장: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가지 비유

13,24-30 곡식과 원수들이 뿌린 가라지: 복합적 공동체
13,31-33 겨자씨와 누룩
13,34f.

비유의 목적

7.3. 마지막 심판 때의 공동체: 제자들에 대한 비전 (秘傳)

13,36-43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해석
13,44-46 “보물”과 “진주” 비유
13,47-50 그물의 비유
⟶ 

그들은 울며 이를 간다 (13,42.50)

7.4. 비유 연설의 결론 (13,51f.)

“하늘 나라를 위해 훈련 받은 율법학자” ⟶  “새 것”과 “낡은 것” = 예수전통 + 유대전통

8. 공동체 건설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물러남 (철수) (13,53-16,20)
마태는 대개 마가의 구조를 따라서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베

드로의 고백은 마가에서처럼 기독론적 인식에 관한 의미가 아닌, 교회공동체 건설의 약속을 위한 전환

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제자들의 몰이해 주제는 생략되고, 제자들은 14,33에서 이미 “하나님의 아

들”임을 고백한다.

8.1. 고향, 헤롯 안티파스와의 갈등: 외진 곳으로 철수하심 (13,53-14,33)

13,53-58 고향의 배척 ⟶  기적을 행하지 않으심.
14,1-12

세례요한의 처형 ⟶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알림 ⟶  외진 곳으로 철수

14,13-21 오천 명 급식
14,22-33 수면 보행: 베드로 장면 삽입 (cf. 막 6,45ff.; 요 6,15ff.; 누가엔 無)

⟶ 

베드로의 “적은 믿음”

⟶ 

수면 보행 목격 후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고백.

8.2.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둘러싼 갈등: 페니키아로의 철수 (14,34-15,39)

14,34-36 사람들의 운집과 치유 기적 (요약구)
15,1-20

정한 것과 부정한 것 논쟁: 바리새인과의 갈등 심화 (15,13f.).

15,21-28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철수 (페니키아) ⟶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딸 치유
15,29-31 사람들의 운집과 치유 기적 (요약구)
15,32-39 사천 명 급식

8.3. 표적과 관련된 갈등: 가이사랴 빌립보로의 철수 (16,1-20)

16,1-4

두 번째 표적 요구 (cf. 12,38-40) ⟶  요나의 표적

16,5-12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누룩(= 가르침)에 대한 경고
⟶ 

제자들과의 갈등이 아니라 (cf. “적은 믿음”), 외부인들과의 갈등.

16,13-20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축복의 말씀 ⟶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 

죽음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것.

⟶ 

베드로에게 땅에서 매고, 푸는 특권의 이양 (cf. 18,18 “전체 공동체”에게)

9. 수난의 길 (I): 갈릴리에서의 시작 (16,21-17,27)
베드로의 고백은 중요한 분수령을 이룸 (“그 때부터”, 16,21; cf. 4,17). 이 시점부터 예수의 수난의 길이

시작됨. 제자들의 몰이해 주제는 축소되는 반면,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이 부각됨.

9.1. 수난의 길을 추종해야 하는 제자들

16,21-23 베드로의 항의: 반석 ⟶  걸림돌
16,24-28 수난에의 동참을 촉구: “제자들”에게만 (cf. 막 8장 - “제자들과 무리”).

⟶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임”.

9.2. 제자들의 깨달음 (17,1-13)

17,1-9

변모산상 ↔ 막 9,6.10의 제자들 몰이해 생략.

17,10-13 엘리야가 메시아에 앞서 옴: 세례 요한을 암시함을 깨달음.

9.3. 제자들의 권능 (17,14-27)

17,14-20 귀신축출 권능

귀신들린아이 일화에 이어 “겨자씨만한 믿음”에 “산을 옮길만한” 능력부여 ↔ 막

17,22-23 수난예고: 제자들의 몰이해 (마가) 대신, “슬픔” (17,23).
17,24-27 성전세 납부에 관한 자유: 베드로에 관한 세 번째 SMt (cf. 14,28ff; 16,17ff.).

10. 공동체를 향한 연설 (18,1-35)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조절하기 위한 본문들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비유로 끝남 (잃어

버린 양, 용서할 줄 모르는 종).

10.1. 기본적인 명제 (18,1-5)
⟶ 

갈등의 원인은 서열 다툼에 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 같이 될 것을 권고.

10.2. 작은 자에 대한 행동방침 (18,6-14)

18,6f.

작은 자에게 죄짓는 자에 대한 경고

18,8f.

자기훈련에 관한 권고 ⟶  스스로 불구가 되는 편이 죄 짓는 것보다 낫다.

18,10

작은 자에 대한 멸시 경고

18,12-14 잃어버린 양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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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죄인 형제에 대한 행동방침 (18,15-35)

18,15-18 제명 절차: 3 단계 (개인적 충고 ⟶  증인 대동 ⟶  교회) (cf. 눅 17 장)

⟶ 

교회가 풀고 맺는 모든 권한 (cf. 16,19 “베드로”)

18,19f.

기도의 성취 약속

18,21f.

무제한적 용서 권고

18,23-35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용서는 “의무”이다! (SMt)

11. 수난의 길 (II):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19-20장)
제자들의 가족에 대한 관계, 재물과 권력에 관한 관계가 주제. 이에는 특수한 요청이 이어진다: 결혼 포

기, 재물 포기, 순교.

11.1. 제자직과 가족 (19,1-15)

19,3-9

이혼 금지: 공개적 가르침 (↔ 막 10장: 집안)

19,10-12 독신주의 긍정 평가: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지 않고, “제자들”.
19,13-15 어린이 축복

11.2. 제자직과 재물 (19,16-20,16)

19,16-22 부자청년 일화 (cf. 막 10 장; 눅 18 장 - “고관”): 이웃사랑 계명을 십계명에 첨가

⟶ 

재산 포기와 함께 따를 것: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 .” (마태 편집)

19,23-26 부자와 하나님 나라
19,27-30 예수 추종의 보상: 열두 제자의 심판권 (이스라엘) ↔ 마가
20,1-16

포도원 일꾼의 비유 (SMt): 크리스챤과 불완전한 추종자들 사이의 위치 변동?
⟶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

⇒ But, 평준화가 아닌가?

11.3. 제자직과 권력

20,17-19 (3 차) 수난예고: 유대 법정과 이방 법정의 구분
20,20-28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20,29-34 여리고의 두 소경 치유

12. 수난의 길 (III):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 (21-22장)
마가와 비교하여 두 가지 변환 (1) 두 개의 비유를 통한 예수의 권한 문제 확장 (2) 모든 다른 단락을

논쟁 장면으로 전환.

12.1.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 (21,1-22)

2,1-11

예루살렘 입성

21,12-17 성전 정화: 치유와 아이들의 찬양 ↔ 마가
21,18-22 무화과나무가 즉시 마름 (Mk에선 하루 후에; Lk에선 이 단락 없음)

12.2. 예수 권한에 대한 문제제기와 세 가지 비유 (21,23-22,14)

(對 대제사장들 + 장로들: 막, 눅에선 “율법학자들”이 포함됨)
21,23-27 예수 권한 문제제기
21,28-32 두 아들의 비유 (SMt): 세례요한과 예수의 길
21,33-46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이스라엘 종교지도층 ⟶  교회)
⟶ 

하나님 나라를 너희(유대지도층)에게서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심

22,1-14

혼인 잔치의 비유

12.3. 대적자들과의 논쟁들 (22,15-46)

22,15-22 가이사의 세금 논쟁 (바리새파 + 헤롯당원)
22,23-33 부활 논쟁 (사두개파)
22,34-40 가장 높은 계명 논쟁 (바리새파): Cf. 막 12,28ff. ⟶  대적자로서 질문 아님.
23,41-46 메시아 논쟁 (바리새파)

13. 종말론적인 말씀 (23-25장)

13.1.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를 향한 비난 (23장)
(연설의 청취자들은 “무리와 제자들”, 비난 당사자들은 부재중. ⟶  간접적 대상은 마태 공동체)

23,1-12

유대 지도층과 교회 공동체의 대조
⟶ 

율법학자, 바리새파가 가르침의 대표자들이나, 그들의 행실은 거부됨 (23,1-7).

⟶ 

공동체 안에서는 선생은 오직 예수 뿐, 나머지는 모두 학생 (형제들) (23,8-12)

23,13-3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에 대한 일곱 개의 저주

23,13

하늘나라 문을 막음

⇒ 외부인과의 관계

23,15

개종자들을 잘못 인도

⇒ 외부인과의 관계

23,16ff.

맹세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 율법문제

23,23ff.

율법의 중요한 측면의 간과

⇒ 율법문제

23,25f.

내적인 정결 간과

⇒ 율법문제

23,27f.

회칠한 무덤 (위선과 불법)

⇒ 대인 공격

23,29ff.

예언자들을 박해

⇒ 대인 공격

23,34-39 두 개의 심판 말씀

23,34-36 “이 세대”에 대한 심판
23,37-39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13.2. 종말의 사건들에 대한 예언 (24,1-31)

24,1-2

성전 멸망 예언

24,3

제자들의 두 가지 질문: 성전 멸망의 때 + 재림의 징조

24,4-22

첫 번째 질문 답변: 성전 멸망의 때
24,4-14

민족간의 전쟁과 공동체 내부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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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24,15-22 황페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것과 큰 환난

24,23-31 두 번째 질문 답변: 재림의 징조

24,23-28 거짓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의 거짓 표적들에 대한 경고
24,29-31 인자의 오심: 우주적 재림

13.3. 심판에 대한 교훈 (24,32-25,46): 제자들에 대한 비유적 가르침

24,32-36 무화과나무 비유

⟶ 

재림의 임박함과 아무도 모르는 때.

24,37-41 노아의 비유

⟶ 

재림의 갑작스런 도래

24,42-44 도적의 비유

⟶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름.

24,45-51 신실한 종 비유

⟶ 

재림의 때를 계산한 불신실한 종과 대조

25,1-13

열 처녀의 비유

⟶ 

재림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 (SMt)

25,14-30 달란트 비유

⟶ 

심판 때의 기준 (SMt?)

25,31-46 인자의 최후심판

⟶ 

“모든 민족”에 대한 심판 (또는 모든 이방 민족) (SMt)

- “네 형제 자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대로. .

14. 수난과 부활 (26-28장)
26,1-5

수난 이야기의 서문
⟶ 

예수 예언 이후, 비로소 처형에 대한 본격적 모의 ⇒ 예수 죽음의 주권이 예수 자신에게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주동 (마태에서 “사두개인들”은 매우 자주 생략됨).

26,6-13

베다니에서의 향유를 부음 ⟶  positive example

26,14-16 유다의 배신 ⟶  negative example
26,17-35 마지막 만찬: “죄의 용서” (언약의 피, 포도주) ↔ 마가, 누가

⟶ 

유다 배신의 예언

⟶ 

베드로와 제자들의 부인

26,36-46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26,47-56 체포

⟶ 

폭력 포기: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마태에만!)

⟶ 

예수의 주권: 당장 12 천사 군단 동원 가능하나, 예언을 성취해야 함.

26,57-68 의회 신문
26,69-75 베드로의 부인: 베드로의 갈릴리 말씨로 인해 밝혀짐 ⟶  후회
27,1-2

빌라도에게 넘겨짐 (“율법학자” 언급 생략)

27,3-10

유다의 최후 (SMt)

27,11-26 빌라도의 신문

⟶ 

이중적 무죄 선고: 빌라도의 아내 (19절), 빌라도 (24절)

⟶ 

“온 백성”: 예수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올 것이다.

27,27-31 총독 군인들의 조롱
27,32-54 십자가 죽음

⟶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아들” 조롱 (27,40.43) ⟶  백부장과 군인들의 고백 (54절)

⟶ 

성전 휘장의 찢김 (= 마가), 지진 (↔ 마가), 죽은 신자들의 부활과 현현 (↔ 마가).

27,55-61 예수 죽음 목격한 여인들과 예수 주검의 안장.
27,62-66 철저한 무덤 경비 (SMt) ⟶  Cf. 28,13 (헛소문 유포)
28,1-7

빈 무덤 ⟶  여인들의 침묵 보도 없음 (↔ 마가)

28,8-10

여인들에게 나타난 예수 (SMt)

28,11-15 무덤 경비병 매수: 헛소문 유포
28,16-80 갈릴리의 “산”에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남.

⟶ 

전 세계적인 선교 위탁과 (모든 족속을 제자로!)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 <임마누엘!>.

Five Books Model (J. P. Meier, “Matthew, Gospel of", ABD)

A. 서문 (1-2장)
B. 제 1 권 (3,1-7,29)

1. Narrative (3,1-4,25)
2. Discourse (5,1-7,29)

C. 제 2 권 (8,1-11,1)

1. Narrative (8,1-9,34)
2. Discourse (9,35-11,1)

D. 제 3 권 (11,2-13,52)

1. Narrative (11,2-12,50)
2. Discourse (13,1-52)

E. 제 4 권 (13,53-18,35)

1. Narrative (13,53-17,27)
2. Discourse (18,1-18,35)

F. 제 5 권 (19,1-25,46)

1. Narrative (19,1-23,39)
2. Discourse (24,1-25,46)

G. 절정: 죽음과 부활 (26-28장)

1. 수요일에서 목요일 저녁 (26,1-75)
2. 금요일 아침에서 토요일 (27,1-66)
3. 일요일에서 마지막까지 (28,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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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신학과 주석의 역사에 있어서 마태복음서의 중요성>

고대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마태복음서는 예수의 활동을 직접 목격했던 한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였다 (Augustinian theory, cf. Griesbach-Hypothesis, W. R. Farmer의

Two-Gospel-Theory).
마태복음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 마태는 기독교 공동체의 윤리적 가르침을 매우 강조한다. 따라서 기독교적 humanism을 대표하는

복음서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 율법주의를 반영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2) 교회론적인 관점에서는, 마 16,18과 (“반석 위에 세운 교회”) 23,8-10의 “교회의 선생은 오직 예수”라

는 이상적인 공동체상이 강조되기도 한다.
(3) 유대교적 특징에 관하여서는, 한 편으로는 예수를 율법학자와 같은 토라의 해석자로 이해하기도 하

고, 다른 한 편으론 마태복음서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로부터 생성된 반-유대주의를 대변한다고 보기도

한다 (ex. 27,25: 예수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올 것이요”).

<마태공동체와 마태복음서>

마태복음서는 종종 “교회의 복음서”라고 명명된다. 복음서들 중, 마태에서만 교회를 의미하는 “ekklesia"

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16,18; 18,17), 복음서 구조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에 바로 뒤이어 “교회를 세우리라”는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마가에서는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제

자들이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마태에서는 수면보행 기적을 통해서 제자들이 이미

예수의 정체를 깨닫고 있다 (14,33). 마태는 베드로의 고백과 반석에 세운 교회 진술을 복음서의 중심에

기록함으로써 “교회론적인 복음서 기자”란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 만일 공동체의 건설이 가장 중심에 기

록되어 매우 중요하게 인정된다면, 마태복음서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이러한 교회론적 내지는 교회정치

적인 측면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태는 마가와는 다른 공동체 운영 방식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서의 최종 편집연대는 주후 80-100

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주후 66-70년의 유대-로마 전쟁에 시간적으로 매우 밀접한 마가와는 매우

다른 “정상적인” 평화기에 기록되었다. 기록 장소로는 시리아의 한 지역을 추정할 수 있다. “온 시리아

인들”이 예수께 나아 왔다는 마태의 편집적 작업은, 마태공동체가 시리아에 위치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cf. 4,24).

20세기의 복음서 연구는 1950년대를 전후로 크게 두 가지 중요한 국면을 맞았다. 하나는 20세기 중반

이전의 양식사 연구로, 복음서 기자들은 익명의 전승들에 대한 단순한 수집가이자 전달자요, 전승들에

매우 미미한 작업을 가한 자들로 인식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편집사 연구는 이러한 고전 양식사적

이해를 수정하였다. 편집사 연구자들에 의하면, 복음서 기자들은 각자 고유한 신학적 통찰력과 특징을

갖고 전승자료들을 매우 폭넓고 깊게 변환시킨 인물들로 부각되었다.
양식사 연구의 공헌은, 복음서들에 나타나는 많은 모순적인 진술들과, 수미일관하지 못한 본문들이, 다

양한 층의 전승들이 엮어진 결과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반면 편집사의 공헌은, 본문들의

의도, 즉 본문을 통한 기자의 메시지를 알게 해준다는 점이다. 즉 기자들은 복음서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되길 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복음서 기자들은, 전승에 대해 보수적 성향을

띠고 보존하고자 했던 편집자라는 평가와 (⟶  양식사), 반면 창조적이고 보다 자유로운 신학자였다는 평

가를 받는 (⟶  편집사) 긴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사회사적 내지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복음서를 읽는 방식은, 복음서 기자들이 보수적 편집자

도 아니요, 전승에 자유로운 신학자도 아닌, 공동체의 지도자, 또는 공동체의 실재적 이해와 행동 방식

들에 관계하는 공동체의 대변인이라는 점을 밝혀낸다. 즉 복음서 기자들은 주후 1세기의 교회 공동체의

실재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 문서들, 즉 공동체의 문서들을 기록한 사람들로 이해된다.
양면적이고, 심지어는 모순적인 진술들은 감수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삶 자체에 이미 어떤 형

식으로든 갈등과 대립이 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복음서 기자들은 특정한 집단을 이끄는 자들

로서, 공동체에게 내적, 외적인 도전 상황을 극복하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분명

한 지도력을 보여야만 했다.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들은 본문을 통해서, 구체적인 정황에 따른 다양한 행

동 방식의 제시, 화해와 위로 등의 다양한 메시지들을 주고자 노력했던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회

정치가?)

1. 합의 도출: 공동체를 위한 설득력 있는 신념 체계의 구축

공동체 내에서 권위를 지닌 자는, 오로지 공동체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람으로, 공동체 내부로 혹은 외

부로 향한 공동체의 합의사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공동체 지도자로서 복음서 기자는, 공

동체의 신념들과 공동체의 전승들에 부합하는 예수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서 기

자는 전승의 “수집가”, “전달자”, “보수적 편집자”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수에 관해 전해져 내려온 기

본적인 신념체계를 공동체 안에 잘 보존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때로는, 예를 들어 상호 모순적인 전승

들을 포괄적으로 통합해야만 한다. 전승자료들을 무차별적으로 삭제하거나 버리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

다.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는 일관성이 결여된 전승들을 가능한 통합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공동체 내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혹은 합의의 도출을 목적할 수도 있다).
그러면 마태복음서로 돌아가 보자. 왜 마태는 새롭게 복음서를 기록했나? 마가복음서가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왜 그는 마가에 대한 교정작업에 들어갔을까? 분명한 것은, 마가의 예수상은, 마태공동체의 합의

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부적합하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방적 기독교 분위기를 내포하는 마가복

음서를 놓고, 마태는 두 개의 유대-기독교적 전승자료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이다

(Q, M). 즉 마가, Q, M에 각각 담겨 있는 비일관적인 예수의 전승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예수상”을 구

축하는 것이 마태의 임무였다.
유대-기독교적인 Q, 즉 어록자료에는 反-토라적 전승이 등장하지 않으며, 예수는 전혀 토라를 문제 삼

지 않는다 (안식일, 정결법, “율법의 한 획도 감하지 못한다” [눅 16,17]). Q에서 이방인은 긍정적으로 묘

사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스라엘에 대조적인 집단으로,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야 하며, 계획적인 이

방 선교 전략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중도적인 유대-기독교관을 표방하는 Q가 바로 마태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마태는

이와 같은 중도적 유대-기독교적 전승에 맞게 이방-기독교적 마가 전승과, 엄격한 (배타적) 유대 성향을

지닌 마태의 특수 전승들(M 또는 SMt)을 통합한다.
예수의 정체에 대한 귀신들의 고백들은 상당히 제거되고 대신 구약성경 말씀(가르침)이 인용되고 있다

(예언의 성취). 이는 지하 세계의 귀신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약성서가 참다운 방법으로 예수의 고귀

한 정체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cf. 8,17; 12,17-21 etc.).
마가의 기적 이야기들은 마태에서는 매우 축소 보도되고, 대신 예수의 말씀이 우위를 점한다. 가령 산상

설교 보도가 끝난 후에야 일련의 기적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8-9장). 마태복음서에서는 5개의 장황한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곧 예수는 위대한 선생으로 묘사되며, 동시에 마지막 때의 심판자로 묘사된다.
이방-기독교적 마가복음서 전승에 대한 수정과 함께, 마태는 보수적 유대 성향이 강한 특수 전승을 받

아들인다. M과 관련해서 그는 10,5f.에서처럼 이스라엘 내로 철저히 제한된 선교명령을 그대로 수용하지

만,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를 “모든 민족들”에게로 확장함으로써 선교 범위를 수정한다 (28,18ff.).

이는 이승에서의 예수의 명령이, 부활 이후에는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태의 유대적 편향은 자명한 것이나, 그 편향의 정도는 “중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 예수는 분명한 “다윗의 자손”으로 이스라엘의 왕위를 잇

는 자로 이해된다. 또한 통치자 예수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닌 범세계적 지배자로 묘사된다.
마태복음서에는 “성취” 주제가 수시로 강조된다. 이 성취의 주제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첫째

는, 유대인들의 기다림에 대한 성취를 의미하는 성서인용 방식 (유대적 방식), 둘째는 이방민족의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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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에 대한 성취의 방식이다. 후자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영접하러 오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이렇게

이중 인종적 성취에 대한 구분은 마태공동체의 인종적 구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2. 공동체 외부관계의 설정: “현명한 유대인의 왕”에 의한 세계 통치

마태 당시는, 유대-로마 전쟁이 오래 전에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메시아적 인물이 나타나리

라는 기대감이 편만해 있었다. 이 메시아적 인물은 동방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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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79년 네로의 부활 소문: 아라비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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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시안의 두려움: 유대의 다윗 왕족이 하나라도 살아 남지 않길 원함 (유세비우스, hist.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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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안: 예수의 형제 유다의 손자들을 다윗의 자손이라 하여 소환 (Hegesi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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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시므온은 다윗의 후손이란 이유로 처형됨.

이처럼 전쟁 후에도 (유대적) 메시아 출현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질 않았다. 이에 마태는 메시아 기대

에 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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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석의 예: 요세푸스 - 플라비안 왕조 (베스파시안) = 메시아/ Bar Kochba, 쿰란공동체, 세례

요한파.

마태의 재해석 작업 (cf. 마가: 수난받는 인자, 고난의 메시아)
(1) 유대적 메시아 기대감을 이방적 기대와 연결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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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기독교적 신앙의 근거를 이방 출신의 동방 박사들의 “천문학적” 증거에서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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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영아 학살: 베스파시안은 다윗의 족속들을 모두 죽이고자 함 (유세비우스).

이 일화에서 나타나는 메시아에 대한 다른 이해방식
a. 다윗 가문이란 “출신”이 문제된 것이 아니라, 출생의 “장소”와 “시간”이 문제 됨.
b. 로마 지배자가 악역을 맡지 않고, 유대 지배자가 악역 (But, 파라오[이방인]의 역할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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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 비판?

(2)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로 성서인용 강조.
(3) 메시아성에 대한 새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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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이란 말이 빈번히 나오긴 하지만, 이 용어는 매우 자주 “치유행위”와 관련되어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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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자”로서의 이미지 부각 (ex. 산상설교): “더 나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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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군사적, 反-폭력적, “평화적인 현명한 왕”으로 새 해석: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 (마 21,5 =

슥 9,9)
Ex. 시리아의 스토아 철학자 Mara Bar Sarapion (주후 73년): 소크라테스-피타고라스-현명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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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율법! = 산상설교?

3. 전통 종교와의 관계 설정: 유대교와의 관계를 통한 공동체의 자기 이해

(1) 마태공동체는 조직적 측면에서는 이미 유대교와 분리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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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그들의 회당” (4,23; 9,35 etc.), "너희의 회당“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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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공동체: ekklesia로 자칭.

(2) 그 밖의 요인들, 특히 mentality에 있어서는 아직 완전히 독립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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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과 교회는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같은 토대를 갖고 있다. 즉 “토라”는 회당뿐만이 아

니라, 마태공동체에게도 중요한 기본 요소. 차이점은 “토라의 해석”에 관한 것이지 “토라 자체”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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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율법학자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 (13,52; 23,34; cf.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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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학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예수의 전면적인 대적자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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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공동체는 유대교로부터의 “구원사적인” 분리를 주장함이 아니라, “윤리적 차별화”를 주장.

4. 공동체 내부결속: 유대적-, 이방적-멤버들의 통합

산상설교의 서문적인 가르침인 “소금과 빛”의 은유 말씀은 (5,13ff.), 마태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매우 높

은 수준의 자격을 보여준다. 즉 “더 나은 정의”를 행하는 자들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요청한다.
비교우위적인 도덕적 요청은, 그 능가해야 할 대상으로 이중적 그룹을 제시 ⟶  유대 (지도층) + 이방인
<산상설교에서의 예>

이방인

유대인

형제 자매에게만 인사하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방인들도 그렇게 한다 (5,47 )
근심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6,32 )

너희 의로운 행실이 율법사나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 . (5,20)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 ?
세리도 그만큼은 한다 (5,46)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 (6,5)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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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태의 이중적 성취 주제, 이중적 선교 전략과도 일치한다.

(마태는 인종적인 복합공동체: 시리아 지역에 본래 윤리적 성향이 강한 유대적 교회가 있었고, 여기에

이방인들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합세? )
외부인들을 능가하는 높은 윤리의식의 강조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즉 율법 강화로 표현

되는 “더 나은 정의”의 가르침은, 주변 세계로부터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별짓기에는 적절했지만, 공동체

내부적 결속력을 저해할 수 있었다. 윤리적 규범들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이를 지

킬 수 있는 멤버들은 더 줄어가기만 했을 것이고 내부적 갈등은 심화되었을 수 있다.
따라서 마태기자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들로부터 오는 갈등을 경감하고자 최후의 “심판사상”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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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외적 갈등에 대한 반작용이 아닌 내부 갈등 조절을 위한 최후 “심판사상”!

(1) 심판사상과 관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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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내부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공존하는 것을 “잠정적으로” 허용함.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곡식과 함께 자라는 가라지의 비유를 들 수 있다 (13,24-30). 가라지는 마지막 때까

지 남겨 두었다가 심판 때 먼저 뽑아서 불태움 (cf. 혼인 잔치의 비유, 22,1-14, 특히 11-14 절).

(2) 심판사상과 용서
a. 주기도문: 산상설교에서 주기도문은 중심에 위치해 있고, 주기도문은 “남에 대한 용서”를 강조.
b.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는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묘사됨(26,28). 반면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

서”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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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적인 세례에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성만찬을 통해서 “죄의 용서”가 지속적으로 선포됨으로 공동

체 안에서 “죄용서”는 강조됨.
⇒ 신자들 상호간의 죄용서를 통한 화해의 강조는, 공동체 내부에 문제가 없는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심판” 때까지 서로 관용을 베풀며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현실을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