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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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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가복음서  해석

5.1  누가복음서의  구조

A.  헌사  (1,1-4)  (cf.  사도행전)

B.  세례  요한과  예수  출생  이야기  (1,5-2장)

세례  요한  출생  예고  -  예수  출생  예고  -  두  어머니의  만남(마리아의  노래)

세례  요한  출생  (사가랴의  예언)  -  예수  출생

호적  조사  (베들레헴)  -  아기  예수의  정결  예식과  나사렛  귀향  -  소년  예수

C.  세례  요한의  활동과  예수의  준비기  (3,1-4,13)

세례  요한의  선포  (심판  +  윤리  +  메시아  선포)

예수의  수세/  족보/  시험  (cf.  마태)

D.  예수의  갈릴리  사역  시작  (4,14-9,50)

E.  예수의  예루살렘  향한  여행  (9,51-19,27)

F.  예수의  예루살렘  활동  (19,28-21,38)

G.  예수의  수난과  부활  (21,39-24,53)

5.2.  누가의  특징들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과  비교할  때)

(1)  1-2장  세례  요한과  예수의  출생  예고  및  출생기록

⟶  “마리아”의  역할  강조  (vs.  마태)

⟶  소년  예수의  “지혜”

(2)  세례  요한  투옥:  예수수세  이전,  세례  요한  처형  이야기  탈락  (3,19-20)

(3)  막  1,14f.  예수  등장에  대한  요약구(“하나님  나라의  도래,  회개”)  대신에,

⟶  눅  4,16-30  안식일  회당에서의  설교  (이사야)

(4)  첫  제자  소명  (눅  5,1-11,  cf.  막  1,16-20;  마  4,18-22)

⟶  제자  소명은  첫  기적  기사  이후  언급됨  +  제자  소명  자체가  기적과  결부  (고기)

⟶  베드로  (except  안드레)  +  세베대  아들  야고보,  요한

(5)  산상설교(마태)  대신에  ⟶  평지설교  (눅  6,17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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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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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생략부:  오천명  급식과(눅  9,10-17)  베드로  고백(9,18-20절)  사이(cf.  막 

6,45-8,26)

⟶  수면보행,  게네사렛  치유활동,  정결논쟁,  수로보니게  여인,  데가볼리  사역,  사천명 

급식,  벳새다  소경.

⟶  이유?

(7)  선한  사마리아인  (10,29-37),  15장  잃은  것에  대한  비유(양,  동전,  아들) 

⟶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관심

(8)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  최초의  ‘요약보도  전승’(summary  of  the  life  of  Jesus)

5.3.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  연속적  2부작

누가와  사도행전이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

다.  언어사용과  문체  면에서도  매우  일치한다.  다소의  차이점들은  자료의  차이에  근거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사도행전  서문

사도행전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LkEv와  밀접한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1)  두 

권  모두  동일한  데오빌로에게  헌정된  책이다.  (2)  행전은  “첫  번째  책”이라는  말로 

LkEv을  가리키고  있다.  (3)  요약적으로  첫  번째  책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나는 

첫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나는  거기에다가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지시를  내리

신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수록하였다”,  행  1,1f.).

(2)  계획적인  2부작  집필:  누가복음서와의  관계

두  권의  책이  동일인물의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들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권의  책이  각각  독립된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한  작가가  다른  작품을  썼듯이 

(세익스피어의  햄릿,  리어왕)  별개의  두  책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  제  1권

과  제  2권으로,  혹은  전편과  후편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연속된  두  권의  책은  1권

만  읽고  끝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저자가  본래  계획했던  바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

전을  연속적으로  읽어야  한다(마치  구약의  열왕기  상하권과  같이).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사람은,  이  책이  완전히  종결되었다기보다는  곧  속편

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눅  24,49에서  “약속하신  것을  보내겠다”는  말씀,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서  머물라”는  명령은,  독자로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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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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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올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능력을  받게  될  것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5.4.  누가복음서와  누가공동체

누가는  기독교를  외부세계에  순응시킨  자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즉  누가는  신자들로 

하여금  임박한  종말론적  기다림을  포기하게  만들고  대신  세계의  현  질서에  적응하여 

사회와  국가  안에서  평화롭게  살  것을  종용하는  인물로  여겨져  왔다.  H. 

Conzelmann의  누가  신학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이후,  교회는  구약  예언자들과  예수

의  시대에  이어  제3의  시기를  대표하고,  신자들은  “종말”의  지연을  받아들이고,  세상

과  조화롭게  살라고  강변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과연  그런가?

누가에서  국가질서에  순응하라는  메시지가  반영되어  있음은  사실이다.  누가복음서의 

초입부에서부터  당시  국가질서의  중심지였던  “로마”가  중요한  무대로  암시된다:  눅 

2,1은  예수의  출생에  즈음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한  칙령이  내려졌음을  적

고  있다.  물론  그  칙령은  “로마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누가의  2부작,  즉  누

가-행전의  가장  끝부분은,  “로마에서”  바울이  복음을  자유롭게  선포했다고  마치고  있

다(누가-행전의  메시지가  로마에서  전파되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5.4.1.  합의  도출:  공동체를  위한  설득력  있는  신념  체계의  구축

누가는  설득력  있는  예수상과  바울상을  그려내고자  한다.  누가의  이러한  작업은  NT

의  다른  어떤  문서들에서의  예수상과  바울상을  비교하더라도  매우  설득력  있는  체계

를  보여준다.  누가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대조적인  명제들을  통합하는데,  이는  LkEv

의  도입부와  행전의  결말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LkEv의  도입부에서,  유대교적  전통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다.  반

면  행전의  결말부에서는  로마의  유대인  다수가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

제  이방인에게로  향하고,  이  이방인들이  (꽉  막힌  유대인들과는  달리)  복음을  듣게  될 

것이라고  기록된다(행  28,28).

LkEv의  도입부에서,  예수  시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세속적  권력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누가에서는  (마태에서와는  달리)  사탄이  “(세계  모든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내게  넘어왔으니,  내가  넘겨주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줄  수  있다”고  말한

다(눅  4,6).  여기서  로마  제국은  사탄의  자리로  이해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행전의 

끝부분에서  바울은  처벌을  면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다.  즉 

로마는  사탄적  실체에서  국가의  법질서에  대한  희망으로  전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의  기독교상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사회문화적인  갈등,  빈자와  부자 

사이의  사회경제적  차별,  정치권력에  대한  매우  부정적(사탄적)  이해와  반대로  그에 

대한  승인  사이에  놓여있는  사회정치적  긴장  관계들이  통합된다.  이러한  현저한  긴장

관계들은  우선적으로  누가가  입수한  상이한  전승  자료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

으며,  누가는  이런  차별적  입장을  반영하는  전승들을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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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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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누가의  현저한  공헌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역사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누가는  사도행

전의  기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즉  누가공동체는  그들의  역사가  기록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집단들이라

는  점이다.  따라서  누가공동체의  삶은  어느  국가,  어느  민족,  어느  왕의  삶보다도  못

하지  않은  것이요,  오히려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될  만한  것이다.  이  초기  공동체의  역

사는,  그것이  “성취의  역사”라는  점에서,  예수의  성스러운  역사와  맞먹는  수준의  것이

다.  이  성취의  역사  중심부에  예수가  위치하고  있고,  예수  앞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 

이후에는  교회의  역사가  따른다는  것이다.

누가는  방대한  전승자료들에  담겨진  커다란  긴장관계들을  조합하여  그의  2부작에  통

합하였다.  이를  통해  누가는,  팔레스틴에서  출발한  예수운동과  넓은  헬라-로마  지평

으로  확장된  기독교의  통합,  그리고  빈궁의  경건과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집단의  통

합,  누가공동체의  유대적  뿌리와  이방인을  향한  길의  통합,  정치적  질서를  위협하는 

집단이라는  의혹과,  반대로  일상  정치  질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여  “정상적인  삶”을 

누리기에  충분하다는  자부심의  통합  등,  우리는  누가에서  universal  perspective를 

발견할  수  있다.  누가공동체는  작은  종파로서,  세상의  “한  구석”(cf.  행  26,26)에서  발

생한  어둠에  묻힌  불투명한  역사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운동,  즉 

영적인  힘을  통해  전체  사회에  퍼져  나가고,  어떤  인종적,  계급적,  계층적,  성적  차이

도  넘어서  관철될  수  있는  운동을  이끄는  공동체라는  신념  체계를  구축한다.

5.4.2.  누가-행전의  정치관,  국가관

누가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은  국가조직에  관한  이해방식과  맞물려  있다.  이

는  전통적으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되어  왔는데,  첫째는,  국가와의  관계에  있

어서  “대외적인  변호적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둘째로,  “대내적인  변호적  자세”를  견

지하고  있다는  견해를  들  수  있다.

하나의  새로운  종교운동이  발생하게  되면,  그  운동을  이끄는  자들은  해당  종교와  외

부  세계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  특히  국가  권력에  대한  그  종교의  입장을  정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누가  역시  그의  기록들을  통해서  자기  공동

체에게  국가권력에  대한  입장을  밝혀  주고  있다.

누가는  세속  국가  및  정치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1)  국가의  역사와  예수의  역사는  함께  기록된다.

⟶  예수의  출생  -  아우구스도의  호적칙령(눅  2,1-7).

⟶  세례  요한의  등단의  역사  -  티베리우스  15년,  빌라도,  안티파스,  빌립,  루사니아

(분봉왕  칭호  정확),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

2)  로마제국의  인물들은  매우  호감  가는  자들로  묘사.

⟶  가버나움의  백부장  (눅  7장)

⟶  예수  십자가  처형  목격한  백부장  (눅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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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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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이방  신자  고넬료  (행  10,25-48)

⟶  총독  서기오  바울,  누가-행전에서  최고  신분의  신자  (행  13,4-12)

⟶  바울의  목숨을  구한  호민관  루시아  (행  23,26-30)

⟶  백부장  율리오  (행  27장)

(1)  대외적인  변호적  자세를  지지하는  입장(대외적  호교론)

누가가  대외적인  변호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의  테제는,  누

가는  기독교(누가  공동체)가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전혀  위험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  J.  Ernst, 

Das  Evangelium  nach  Lukas:  “국가는  교회를  적법한  종교로  인정해 

주고  선교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실제적  목적으로  호교론적  입장을  취했다”.

⟶  W.  Radl, 

Das  Lukas-Evangelium,  61:  “세계적인  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지배  세력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했다.  ...  누가에  대한  기회주의적이라

는  비난은,  완전히  그릇된  주장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신학을  표방하는  종교

는  전혀  살아남을  기회가  없으리라는  점을  누가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누가는  쿰란 

공동체와  같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수도생활을  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고  있었으며,  누가의  교회는  세상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입장은  독자층으로  공동체  외부의  사람들도  포함시키고  있음을  전제한다.  또  이 

입장은,  누가-행전에  나타나는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진술들을  해결할  수  없다.

(2)  대내적인  변호적  자세를  지지하는  입장(대내적  호교론)

누가가  대내적인  변호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  의하면,  누

가는  기독교인들에게  국가권력에  대한  존중을  변증하려고  했다.  물론  국가에  관련된 

개별적인  사항들은  비판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핵심적인  면에서  국가체계는  결코  악하

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입장의  대표적인  학자  R.  Maddox, 

The  Purpose  of  Luke-Acts(1982)에  의하면, 

“누가는  당시의  동료  크리스챤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과  소명의식의  본질을  보

여  주고자  했다.  크리스챤의  적절한  자세는  국가의  통제력과  가능한  한  평화롭게  사

는  것이요,  결코  영웅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p.  97).  이  입장은,  만일  누가의  주

된  독자층이  누가  공동체라고  전제한다면,  (공동체  외부의  독자층을  겨냥한)  “대외적

인  변호적  자세”를  지지하는  입장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입장은  누가의  정

치적  입장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부분적으로만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대안적  해석:  누가-행전의  정치적  합리주의(실용주의)

누가-행전을  연구하는  자들은  누구나  본문에서  다소간의  정치적  변증적  경향을  읽을 

수  있다:  기독교는  국가권력과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무해한  종교로  묘사된다.  교회의 

정치적  불신은  제거되어야  하고,  로마제국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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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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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점은  누가복음서의  서두에서  예수의  가족은,  예수의  출생과  함께,  황제의 

호적조사  명령에  따라  이동하고,  납세의무를  충실히  지키는  자들로  묘사된다.

전통적인  두  가지  해석  방식은  모두  누가를  국가에  순응하는  인물로  이해하고,  누가-

행전이  전적으로  국가  권력을  미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그러나  누가의  정치

관에  대해  이처럼  변증론적  해석만을  가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도식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에  나오는  정치비판적,  국가비판적인  진술들은  모순적인  것으로  버려야만 

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정치적  합리주의  내지는  실용주의로  누가의  기록들을  설명할  수  있다. 

정치적인  실용주의는  현실적인,  생생한  국가관을  기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의  부정적인  측면  역시  침묵될  수  없었다.

⟶  로마제국  총독  벨릭스는  뇌물을  바라는  부패한  인물로  묘사된다(행  24,24-27). 

⟶  로마제국의  대리정권이나  마찬가지였던  헤롯  안티파스는  악한  권력자로  묘사된다: 

“그가  행한  이  모든  악행에  또  이런  악행을  저질렀으니,  이는  곧  요한을  옥에  가둔 

일이었다”(눅  3,19f.).  안티파스는  예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물이요,  예수는  그를  “여

우”라고  비난(눅  13,31-33:  SLk).

⟶  빌라도  역시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무고한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

하였다(눅  22,12:  SLk).  빌라도와  안티파스는  나란히  예수를  심문한  이들로,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눅  23,12:  SLk)  무고한  사람을  처형할  정치권력가들의 

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빌라도와  안티파스  모두  예수의  무죄를  인정하지만,  헤

롯은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면(눅  23,11),  빌라도는  무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처형

하도록  넘겨준다(눅  23,24f.).

위와  같은  예들에서는  정치적  지도자들에  대한  미화작업을  전혀  볼  수  없다.  누가는 

정치지도자들을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권력자들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가

는  이런  그들의  권력의  상한선을  긋고  싶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의  친-

국가적인  진술들과  함께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진술들  역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한계설정은  두  가지의  경우에  국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권력자들  자신에  대한  신격화.

둘째,  선포활동과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권력자들의  시도.

이와  같은  두  가지  경우,  누가는  정치질서에  대한  반대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고,  다

른  어떤  초기  기독교  기록가들보다도  자주  정치권력의  신격화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중  첫째  부분만을  확인하도록  한다.

[권력의  신격화에  대한  비판]

1.  예수의  시험  이야기

예수의  시험을  이끈  사탄은  세계  제국의  지배자로  등장한다.  로마제국  역시  그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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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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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달려  있으며,  자신에  대한  숭배를  요구하는  것(“내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면”, 

4,7)은  hybris를  잘  보여준다.  예수는  이에  대해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

만을  섬겨라”고  대응한다.

⟶  마태와  비교해서  두번째,  세번째  시험이  바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마태),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주겠다.  이것은  내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것이다”.

2.  헤롯  아그립바1세의  죽음

누가는  로마황제가  신격화된  예를  들어서  황제숭배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는다. 

누가는  가이우스  칼리굴라와  네로  등의  자기  신격화의  역사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

이지만,  이들의  이름은  거명조차하지  않는다.  그는  황제의  이름으로  단지  아우구스투

스(눅  2,1),  티베리우스(눅  3,1),  클라우디우스(행  18,2)  등만  기록하고  있다(선한  황제

들?).  누가는  공격대상의  전이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황제의  신격화를  비난하고자  할 

때,  그는  유대적  분봉왕의  예를  들어서  공격한다.  그리고  그  비판은  매우  강도  높다. 

3.  바울과  바나바  (반대적인  예)

행  14,11ff.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각각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신격화됨. 

⟶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  이  장면에서는  구체적으로  희생제물이  바쳐지는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우리는  여러분과  (제사를  드리는  이들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즉  인

간을  숭배하는  것은  미신임을  밝히고  있다.

⟶  아직  살아  있는  인물에  대한  예배의식은  당시의  황제예배에서만  행해지던  일이었

다.  즉  누가는  이  장면을  통하여  권력에  대한  숭배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  앞  장면에서  아그립바1세가  사람들의  신격화  시도를  저지하지  않아서  죽음을  당했

다면,  루스드라  사건에서는  비록  바울과  바나바가  제사를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은  곧이어  돌에  맞아  거의  죽는  지경에  이른다(“바울이  죽은  줄  알고”,  14,19f.).

누가가  국가권력에  순응하는  자라는  견해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혀  옳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누가  외에  어느  누구도  국가  권력의  한계를  이렇게  분명히  긋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역으로,  누가  외에  어느  누구도  기독교를  국가  권력에  긍정적인  종교

로  묘사하지  않은  점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누가의  2부작을  통하여,  국가  권력에  대한  일방적인  저주와  비판

이나,  또는  일방적인  미화를  읽어낼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누가의  정교한  정치적 

합리주의  내지는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다. 

⟶  누가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의  정치적  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평화롭

게  살아야  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이  경우  국가의 

권력은  철저히  비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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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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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

공통점과  차이점

네  개의  복음서는  예수의  공생애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적  메시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정교한  분석의  차

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요한복음은  특히  영적인  차원을  훨씬  더  강조한다. 

(1)  시간적  차이

1)  성전정화  사건

->  공관:  뒤에  나옴  <->  요한:  공생애  초기  (가나  혼인  잔치  직후)

2)  예수  사역의  기간

->  공관복음서의  기록은  예수의  활동이  약  1년  동안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예수

의  예루살렘  유월절  여행이  단  한  차례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서는 

여러  차례의  유월절  여정이  서술된다.  따라서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공관복음서에서와

는  달리  예수의  사역은  여러  해(약  3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공간적  차이

1)  지리적  이동의  순서가  공관과  다르다.

2)  예수의  활동무대:  공관  –  갈릴리  근방  /  요한  –  갈릴리  +  예루살렘과  근방지역

3)  예루살렘  방문  횟수

->  공관에서는  예수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단  한  번  올라간다.  그곳에서  예

수님은  최후를  맞는다.  반면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여러  차례에  걸쳐(최소한  4번 

이상)  예루살렘으로  간다(요  2,13;  5,1;  7,10;  10,22;  11,55;  12,12ff.).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의  매우  격한  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3)  기독론적  이해  방식의  차이

요한복음은  높은  기독론적  확신을  보여준다(High  Christology).  예수는  곧  하나님  자

신이다.  하지만  공관복음에서는  그렇지  않다.

(4)  결론

요한복음서의  이질성은,  공관복음서  연구에서  요한을  제외하는  큰  이유가  된다.  특히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요한복음서의  가치는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은  신앙적,  신학적  차원에서  매우  수준  높은  책이다.  또한  공관복음서  셋도  엄밀히 

말하면  서로  상이한  예수상을  보여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를  보충하기  위해,  혹은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수

정하거나  교체하기  위해  작성되었는가?  요한복음서가  공관복음서  가운데  어느  것을 

알았다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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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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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관복음서와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  개념  정의

→  18세기  라이마루스라는  학자에서  시작된  연구  분야로,  교회전통이나  개인이  주관적으로  상

상하는  예수의  이미지와  무관하게,  이용가능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본래적  예수의  삶과  가르

침을  추적,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

예수를  어떤  당시의  인물  유형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최근  연구의  두  가지  흐름

1.  비-종말론적  인물로서의  예수:  견유학파적  인물(Cynic  Jesus)

예수는  종말론자가  아니다(종말론적  가르침은  비역사적인  요인!).  오히려  예수는  헬레니즘적  견

유학파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즉  예수는  역설적  삶의  방식을  채택한  유대적  견유철학적  인

물이다.  유대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유대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이다.

->  예수  세미나  학회(Jesus  Seminar):  J.  D.  Crossan,  역사적  예수(1991);  B.  L.  Mack  등.

견유철학의  일반적  특징

기이한  외모  특징:  외투,  봇짐,  지팡이,  맨발,  장발,  턱수염  등.

견유학파  창시자:  소아시아  반도  북단  시노페(Sinope)  출신의  Diogenes(400-325  B.C.E.).

기원  1세기  스토아  철학과  함께  그리스-로마  세계에  현저하게  대두된  움직임.

(1)  자족  사상,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

단순한  생활,  구걸을  통해  생존.

견유학파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을  강조.

의도적으로  기본적  예의범절과  인습을  조롱하였다.

->  Cynics라는  말은 

kuvwn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Diogenes

를  “개”라고  부른  데에서  연유한다.  그가  이렇게  불린  것은,  공공장소에서도  거리낌  없이  배변 

행위를  하는  등의  기이한  행동을  했기  때문.

(2)  자유로운  언설

무뚝뚝하고  당돌하게  말했으며  권세  있는  자나  부유한  자들에게  일말의  존경심도  갖지  않았다.

->  예를  들어,  알렉산더  대왕이  Diogenes를  만나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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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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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답했다.  “햇볕을  가로막지  말고  비켜  달라”(키케로의  글).

(3)  격언과  상징적  행동

(4)  그들은  소명이나,  제자들을  모집하지  않았다.

Crossan은  견유철학의  특징을  크게  <가난>과  <자유>라고  하면서  예수상을  이런  철학자들에 

영향을  받은  인물,  즉  유대적  견유철학자로  파악한다.

<비판>

갈릴리에  견유철학적  활동은  없었다.

복음서에는,  견유철학자들의  특징과는  달리  예수에  대한  외모  묘사는  없다.

->  반면  세례  요한에  대한  외모  묘사는  있다.

여행을  하는  데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지팡이나  전대나  빵이나  돈이나  두  벌  속옷을  가

지지  말라(눅  9,3). 

->  예수  운동은  견유철학  운동과는  다름. 

->  공통분모는  떠돌이  생활,  구걸.  하지만  예수  운동의  이  특징이  꼭  견유철학파에서  온  것일 

수는  없다.

2.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

예수를  “유대적  종말  운동”  안에서  보고자  하는  방향:  예수  운동을  유대  사회의  가장자리가  아

니라  유대  사회의  ‘중심부’에  위치시킴.  즉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을  갈망했던  갱신운동으로 

보는  입장.

2.1.  E.  P.  Sanders:  이스라엘  회복을  선포한  종말론적  예언자

E.  P.  Sanders, 

Jesus  and  Judaism(1985);  The  Historical  Figure  of  Jesus(1995).

<18  facts  of  the  life  of  Jesus>

1.  예수는  헤롯  대왕이  죽은  기원전  4년  경에  출생.

2.  예수는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과  성년의  초기  시절을  지냈다.

3.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4.  예수는  제자들을  소명했다.

5.  예수는  제자들을  12이라고  불렀다.

6.  예수의  활동은  이스라엘  내부에  국한되었다.

7.  예수는  갈릴리의  농촌,  작은  마을들에서  가르쳤다.

8.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9.  예수는  약  30세가  되었을  때쯤  유월절  행사  참여  차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10.  예수는  성전과  관련된  논쟁을  했으며,  성전  안에서  난동을  일으켰다.

11.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12.  예수는  유대  고위층,  특히  대제사장에  의해  체포되었다.

13.  예수는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  로마에  의해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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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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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예수의  제자들은  도망하였다.

15.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를  보았다(다소  불확실).

16.  제자들은  예수가  그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17.  이런  소망에  따라  제자들은  공동체,  혹은  집단  운동을  형성했고,  예수가  하나님의  메시아

임을  믿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전도했다.

18.  적어도  몇몇  유대인들이  이  예수  운동의  적어도  일부를  박해하였다.

샌더스는  특히  예수와  성전의  갈등을  중요시한다.  예수의  성전  난동  사건은  유대민족의  회복을 

상징한다.  즉  성전의  파괴에  대한  상징적  행위이다.  이  사건은  철저한  종말론적  행위이다.

샌더스는  예수를  유대사회의  일부로  본다.  그는  종래의  연구가  지나치게  예수를  유대교  외부의 

인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수는  유대교  안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했다.  이는  예

수  운동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당시의  젤롯당이나  바리새인들도  역시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

했다.  다만  각자가  취했던  회복의  방식이  달랐다.

가령  젤롯당과  같은  혁명적  집단들은  물리적  힘에  의한  정치적  회복을  원했다.

하지만  예수  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임재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통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했다.

이들  중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공시킨  것은  예수  운동과  바리새  운동이다.  바리새파는  랍비적 

유대교를  건설함으로써  종교적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을  회복했고,  예수  운동은  새로운  이스라엘

을  형성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을  미래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2.2.  G.  Theissen:  사회  변혁을  외친  종말론적  예언자

G.  Theissen,  역사적  예수(1997);  갈릴리  사람의  그림자(소설).

1. 예수  운동의  사회적  구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2. (1)  예수  자신:  추종자들에게  윤리적,  종교적  계명을  전수

3. (2)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인물들:  예수를  삶의  모델로  삼은  자들

4. (3) 동조자들: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아니다. 이들은  예수를 추종하지  않고 자기지

역에  머물면서  예수와  제자들을  support했던  자들(음식,  숙소  등의  물질적  원조).

5. 타이센은  예수  자신이  지역  공동체를  건설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예수는  단지  급진적인  방

랑운동을  전개했을  뿐이다.

->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인물들과  동조자들이  중심이  된  지역  공동체,  이  양자가  예수  운동의 

두  개의  축이다:  사도들  vs.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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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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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관복음서와  기독교  외부문서의  예수  보도

(1)  요세푸스의  세례요한  보도(유대고대사  18,116-119)  (ca.  95)

유대인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헤롯  부대의  패배가  세례자라고  불리던  요한의  목

을  벤  데  대한  하나님의  올바른  징벌이라고  여겨졌다.  요한은  선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을  향하여  덕행에  힘쓰고  [인간]  상호간에  정의와,  하나님  앞에  경건을 

실천하고  나서,  세례를  받으러  오라고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그를  처

형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례는  그에게[=하나님께?]  올바르게  용납될 

수  있었다.  즉  세례는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의  정화를  위해

서만  이용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정의로운  삶을  통해  이미  정결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매혹적인  설교에  고취된  다른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나아오게  되자, 

헤롯은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요한의  어떠한  말이라도  따를  듯이  보이는  이  사

람들이  그의  말에  자극되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

서  헤롯은  나중에  곤란한  경우에  빠지게  되는  것보다  적절한  시점에  미리  요한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요한은  이런  헤롯의  의심으로  인해  앞서  언급했던  마카이루스에  있는  감옥에  감

금되었다가  처형당했다.  유대인들은  헤롯의  군대가  패배한  것을  요한의  죽음에  대

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다.

세례요한상:  헬라적인  도덕주의자,  철학자로  묘사

-  선한  사람(agathos  aner)

-  덕행,  정의와  경건의  덕목

세례  이해:  죄의  용서와  무관,  육신정화  위함,  영혼은  이미  정화됨(도덕적  삶으로).

-  세례의  마술적  이해에  대한  부정

세례요한  처형:  정치적인  위험,  위정자의  불안에  기인.

-  처형장소

헤롯패배에  대한  원인을  세례요한  처형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봄.

(2)  요세푸스의  증언  (유대고대사  18,63-64)  (ca.  95)

이  때에  예수라는  한  현인이  있었다.  굳이  그를  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

이다.  그는  놀라운  기적들을  행했으며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유대인들뿐만이  아니라  헬라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

에  모여들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우리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고소로  빌라도가  그에게  십자가형을  내렸지만,  이전의 

그의  제자들은  멈추질  않았다.  수많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언자들이  예언하

고,  많은  놀라운  일들이  그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는  3  일째  되던  날  그들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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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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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다시  나타났다.  그를  따라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는  족속은  아직도  사라지

지  않고  있다.

기독교적인  삽입구로  여겨지는  단락,  왜?

예수상:  “현인”(헬라적  선생)

시대착오:  예수의  제자  중  헬라인들.

예수처형에  대한  정확한  보도  -  사법절차에  대한  정확한  인식.

예수운동의  지속성(비교:  행  5장의  가말리엘  연설)

(3)  랍비문서  bSanh  43a(ca.  210)

유월절  축제의  전야에  예수는  “매달렸다”.  40일  전에  이미  이  영웅은  소환되었었

다.  그는  “마술”을  부림으로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하고  속였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를  변호할  말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

도  변호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유월절  전야에  메달았다  ...  랍비들은  다음

과  같이  가르쳤다:  예수는  5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태,  나카이, 

네세르,  부니  그리고  토다였다.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처형방법:  투석형.  십자가형은  로마의  전형적인  사형방법.

후대:  돌을  던져  죽이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무”에  매달았다.

고대의  마술사와  종교운동가(개혁자!-이들도  기적수행이  필수적이었다)의  차이 

(1)  기적자체에  목적 

(2)  “사회의  은밀한  곳”이냐  “공개적인  포교활동”이냐의  차이(일반적으로  마술사는  부정적, 

기적수행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었음  -  요세푸스의  기록).  따라서  기적수행능력이  사회-

종교  변화운동이냐  아니냐의  차이.

(3)  금전수취의  유무(예:  행  8장  -  빌립과  시몬)

(4)  마라  바르  사라피온(Mara  bar  Sarapion)  -  시리아의  스토아  철학자(ca.  73)

아테네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그들은  그  대가

로  기아와  페스트를  받았다.  피타고라스를  화형에  처한  사미르인들의  땅  또한  순

식간에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다.  또  유대인들은  그들의  영명한  왕을  죽였으므로 

“그  당시”  영토를  빼았기지  않았느냐?

이것은  이  세  사람의  현인들을  대신한  하나님의  복수였다.  아테네인들은  기아로 

죽어갔고,  사미르인들은  바다로  뒤덮여  버렸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죽음을  당하고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으며  영원히  페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있으므로  죽은  것이  아니다.  피타고라스는  헤라  조상(彫

像)이  있기  떄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또  그  영명한  왕  역시  그가  준  새로운  율법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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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공관복음>  강의안  (담당:  박찬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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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

유대-로마  전쟁  직후에  기록.

예수  죽음의  원인을  유대인에게만  둠.

멸망의  원인을  예수  처형에서  찾음:  마  22,6ff.  한  임금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였다.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태웠다.

<로마의  기록들>

(5)  플리니우스2세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하는  서신(편지  10.96  ca.  110-120)

그들은  보통  정해진  날  동트기  전에  모입니다.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신으로  모시

고  함께  번갈아가며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한  가지  맹세로  의무지워진  이들입

니다.  그들은  어떤  범죄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적질,  강도질,  간음, 

횡령  등에  대한  거부를  (가르칩니다).

플리니우스  2세.  본도  지역  총독이었음. 

그가  쓴  10권의  서신모음이  보존되어있음. 

기독교인들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자,  이에  대해  황제의  조언을  구하려고  편지를  씀.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황제에게  보고.  황제의  답변:  유보(과거  기독교인은  사면)

(6)  타키투스(연대기  ann  15,44,3)  (ca.  116)

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Chrestus)라는  이름에서  생겼다.  그리스도

는  티베리우스  황제  때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을  당했다.  이  저주받을  미신

은  잠시  동안  주춤하는가  했더니,  후에  다시  일어나서  그의  출현한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로마에까지도  유포되었다.  로마에서  이  세상의  모든  기괴하고  꼴사나운  일

들이  벌어지고  행해졌다.

예수의  이름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요세푸스와  불일치.  “잠시  주춤”도  다름.

(7)  수에톤(클라우디우스  25,4)  (ca.  117-122)  (황제의  생애  中)

그는(클라우디우스)  그리스도에  의해  선동된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

글라우디오  황제(41-54)  49년에  내려진  칙령에  대한  기록.

무슨  내용?  -  소요를  일으킨  것이  기독교  유대인들이라고  함.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  예수는  로마에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선동?

비교:  행  18,1ff.  “그  뒤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  사도행전의  보도는  다소  과장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