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도가 주는 영적.hwp
닫기짧은 기도와 심리적 치유와의 관계
박 노권(목회와 상담 교수)
I.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린 시기에 발달시킨 낮은 자아상으로 인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가졌던 충격적인 정서적 경험들의 후유증이 우리의 신체와 신경 계통에 긴장, 불안, 기타 각종 심리적 방어 체제 등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점점 증명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비록 심각한 상처를 경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우리는 모두 어릴 적에 정서적 연약함을 경험하고 그 결과로 인해 받은 상처 중 어떤 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어릴 적의 이러한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의 정서는 기억한다. 그래서 이전에 위험하거나 또는 손상을 받을 위험이 있거나 거부당했다고 느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그 이전에 가졌던 정서와 비슷한 정서가 표면에 나타난다.
만일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이러한 영향들을 인정하면서 부딪치지 않으면, 우리의 거짓 자아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우리가 교회 봉사를 시작하면, 새로운 환경에서 찾아지는 안전, 성공, 권력의 상징들이 멀지 않아 우리 욕구의 새로운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에 있는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인정하고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적 통찰력을 활용한 다양한 상담기법들을 통한 내적 치유의 가능성을 논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심리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기독교신앙 안에서 전통적으로 활용되어 온 자원을 통해 그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예배와 기도, 성경공부 등을 통해서, 그리고 또한 다양한 영성 훈련의 방법들을 통해 그동안 크리스천들에게 영적 유익과 심리적 유익을 주어 오며 사람들을 변화시켜 왔다. 물론 영성 훈련은 영적 유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지만, 영성생활 가운데 부수적으로 이루어지는 심리적인 치유들은 또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인적인 건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기독교적 자원 중에서도 특별히 짧은 기도를 통한 영성훈련의 방법을 본 글은 소개하고 이것이 갖는 심리적 치유효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거룩한 한 단어나 성서의 한 구절을 가지고 하는 짧은 기도의 반복은 단순하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짧은 단어를 반복해서 하는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주는 효과는 기독교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결과에서도 잘 볼 수가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먼저 짧은 기도의 배경과 그것의 영적 유익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그것이 줄 수 있는 심리적인 치유효과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전통적인 영성훈련으로서의 짧은 기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줄 수 있으며, 이것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유익을 생각함으로써 보다 폭넓게 짧은 기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II. 짧은 기도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
짧은 기도란 한 거룩한 단어나 성서의 한 구절을 반복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조용히 앉아서 계속하여 할 수도 있고, 「순례자의 길」이라고 종종 언급되는 19세기 러시아 농부의 영적 자서전에서 보듯이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짧은 기도의 반복은 여러 종교적 전통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유대교에서 랍비 나하만(Nachman of Bratslav)은 “Ribbono Shel Olam"(우주의 주인)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기도를 했다. 이슬람에서는 의식적 기도의 정확한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알라”를 반복하는 기도를 오래 동안 사용해 왔다. 반복하는 짧은 기도는 힌두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마하트마 간디는 신의 이름은 내 입술이 아니더라도, 항상 내 마음에 24시간 있으며, 이것은 삶의 의지가 되고 모든 시련을 이겨나가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이름의 반복은 신에게 가까이 가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힌두 전통에 따라, 신을 라마(Rama)라고 불렀지만, 이것은 어떤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 전통에서도 짧은 기도는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짧은 기도는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구심기도나 예수기도, 그리고 렉시오 디비나를 중심으로 이러한 기도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심기도(Centering prayer, 향심기도)
구심기도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고 활동하심에 동의하는 지향의 상징으로서 거룩한 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거룩한 단어는 하나님, 주님, 사랑, 예수, 아빠, 성부, 성령, 평화, 자비 등과 같은 짧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편하게 앉은 다음 눈을 감고 거룩한 단어를 의식 속에 떠올리고, 이 거룩한 단어를 의식 속에 가볍게 떠올리면서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기도 중에 분심이 들면, 즉 어떤 다른 생각이나 감각을 알아차리게 되면, 즉시 거룩한 단어로 되돌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구심기도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도 운동들 가운데 하나로 미국 성 요셉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토마스 키팅, 바실 페닝톤, 윌리엄 메닝거를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시작된 기도운동이다. 교회 안에서 관상(contemplation)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 구심기도는 단순하면서도 쉽게 사람들을 관상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오늘날 널리 소개되고 있다.
2. 예수기도
예수기도(Jesus prayer)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반복하는 기도로, 오늘날 잘 알려진 영성훈련을 위한 기도 방법이지만 창시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 이와 같은 기도를 사용한 것은 4세기 이집트 수도자들로 이들은 성서의 짧은 구절들을 반복 암송하였으며, 사막 교부들도 손노동을 하면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0:1)라는 시편 구절을 끊임없이 암송하는 기도방법을 사용했다. 예수기도와 구체적인 호흡법과의 관련된 기록은 13세기 그리스 전통에서 발견되고, 14세기 시나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이러한 짧은 기도에 대한 많은 글들이 1782년에 필로칼리아(Philokalia)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어로 수집되고 출판되었고, 19세기 초에 슬라보니아어와 러시아어로 번역이 되어 이러한 기도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기도의 중요한 요소는 무한한 은총과 능력을 지닌 거룩한 이름 “예수”에 대한 깊은 신심, 죄를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청함, 끊임없는 반복, 그리고 상상이나 추론 없이 내적 고요와 평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 단계가 있는데, 첫 째로, 예수기도를 입으로 소리 내어 암송하고, 둘째로, 이 기도가 점차 내면화 되면 정신기도(mental prayer)로 발전하며, 마지막 세 번째로, 정신기도에서 더 깊은 마음기도(prayer of the heart)로 내려간다. 마음기도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내리는 은총의 선물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수기도도 위에 언급한대로 한 구절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 방법에 대해 19세기 익명의 러시아 순례자는 이렇게 소개한다. ① 서두름 없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마음의 눈을 심장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라. ② 심장 박동에 따라 예수기도를 바친다. 한 번 박동에 “주”, 두 번 박동에 “예수”, 세 번 박동에 “그리스도여”, 네 번 박동에 “저에게”, 다섯 번 박동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③ 심장 박동에 따른 기도에 익숙해지면, 이제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면서 호흡에 맞추어 다음 단계의 예수기도를 바친다. 즉 들숨에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날숨에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자연스럽게 기도하라. ④ 기도 중에 절대로 분심이나 잡념에 현혹되어서도, 어떤 형태로든지 불러일으켜서도 안 된다.
예수기도는 하나님에게 말하는 기도이며, 그 목적은 분명한 인격체로 존재하면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단어를 반복하는 것은 만트라를 사용하는 명상의 형태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기도의 사용은 단순히 어떤 소리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3. 렉시오 디비나
위에서 언급한 기도방법과 마찬가지로 렉시오 디비나도 수도 전통에 영향을 받았고 단순하게 성서 구절을 암송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마음 깊이 경험하며 그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하는 영성훈련 방법이다. 이것은 성서말씀을 읽고(Lectio), 이 중에서 마음에 와서 닿는 한 구절을 선택하여 묵상(Meditatio)하고 기도(Oratio)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경험(관상, Contemplatio)에 이르는 점진적인 네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는 기독교 역사에서 특히 수도 전통에서 오래동안 활용되었지만, 성서를 마음으로 읽고 되새김으로써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렉시오 디비나 수행은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이 말씀에 대해 비판적, 조직적 독서 방법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전통은 소수의 수도회를 통해서만 간간히 이어져 왔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1965)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중요성이 언급되면서부터 최근에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서적과 논문들이 점차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영성수행의 방법으로서 이와 같이 선택된 하나의 단어나 문장을 가지고 이들을 계속 반복하여 기도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것은 지적이고 추론적인 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적이고 고요한 마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깊이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하는 관상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가운데 차이점이 있다면, 렉시오 디비나는 성서 구절을 가지고 묵상하는 반면, 구심기도와 그리스도교 묵상은 한 단어를 강조하고, 예수기도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성구만을 호흡에 따라 반복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렉시오 디비나에서 사용되는 성서 말씀이나 예수기도에서의 성구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구심기도에서 선택된 한 단어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반드시 넘어야 할 대상으로 설명된다. 그리스도교 묵상에서도 선택된 한 단어는 하나님과의 합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영성수행 방법에서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도의 반복은 수행자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영적 유익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이러한 짧은 기도의 수행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심리적 유익을 줄 수 있는가?
III. 짧은 기도가 주는 심리적 치유 효과
짧은 기도를 활용하는 영성수행의 방법들은 묵상이라는 차원에서 명상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즉 짧은 기도의 반복은 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과의 합일을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고, 명상 역시 자기를 초월하여 깊은 내면의 세계를 만나려고 하는 것으로 외부의 자극을 벗어나고 내면의 세계로 몰입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짧은 기도가 줄 수 있는 유익을 기독교전통에서 찾아볼 뿐만 아니라, 명상이 주는 심리적 유익에 관한 연구들을 참고로 하여 짧은 기도가 줄 수 있는 치유효과에 대해 좀 더 논해보고자 한다.
1. 일반적인 심리적 유익
렉시오 디비나의 치유 효과에 대해 언급한 베이커(Baker)는 이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적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스트레스, 불안, 그리고 다른 신체적 증상을 완화시키는 등의 심리학적 유익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지적, 행동적 변화나 개인무의식의 깊은 영역에 접근 할 때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으며, 특히 의식에 무의식의 요소들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능력에서 큰 가치가 있는데, 이때 개인적 정체성, 정서적 태도, 그리고 삶의 목적과 복지감을 재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고 말한다.
예수기도는 순례자의 길의 익명의 저자가 “내가 마음으로 기도할 때,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즐겁고 굉장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들, 풀, 새들, 공기, 빛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처럼 보이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찬미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대한 관계를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나는 나의 방황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염려로 가득 했던 이전처럼 걷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나의 길을 즐겁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친절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해한다면, 나는 단지 ‘예수기도는 얼마나 달콤한가!’를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면 분노는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다 잊게 됩니다"라고 고백한 그 익명의 저자처럼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를 예수의 사랑과 연민 안에서 새롭게 보도록 만들어 준다.
사막의 교부들로부터 배운 영적 교훈을 전하면서, 카시안은 시편으로부터의 짧은 기도(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나를 속히 도우소서, 시70:1)를 추천했는데, 그는 이 짧은 기도가 우리 각 사람과 모든 환경에서 필요했고 유용했음을 입증했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여러 곳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절망과 무미건조함과 두려움에서 우리의 마음을 들어올리고, 탐욕과 분노와 잘못된 교만을 막아주고, 먹고 자는 것에 대한 부적절한 욕망을 통제해주고, 기억력과 활발한 상상력에 집중 못하는 것을 극복하게 해주고, 그리고 힘을 주고 영적 유익을 갖게 하는데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실험 연구에서는 만트라(짧은 기도)를 이완반응을 가져오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데 사용하는 단어로서 사용하면서(이때 각자가 자신의 영적 전통에서부터 단어를 선택하도록 함), 실험 전과 실험 후에 의미 있는 개선이 있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즉 인식된 스트레스, 불면증, 불안, 무력감, 그리고 분노에 있어서 감소가 있었고, 통제의 감정과 전체적인 삶의 만족에서 증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짧은 기도를 통한 영성훈련에 대한 연구 결과는 대부분 명상이 줄 수 있는 심리적 치유효과와 일반적으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갖는 것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보다 큰 존재의 구조(명상에서는 내면 깊이에 있는 진정한 자기,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리학적 측면에서, 명상과 짧은 기도는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을 통해 개인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베이커는 여기에 부정적 감정을 없애는 것, 자기기만을 피하고 자아의 통합과 전인성을 추구하는 것,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와 통찰력,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마음을 여는 것, 제한적인 자기개념, 두려움, 망상, 과거와 옛 조건들로부터 자유하는 것, 이전 무의식 내용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는 것, 통찰력을 날카롭게 하고 정서를 안정되게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짧은 기도를 반복하여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신치료에서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을 수행의 결과로서 얻을 수 있음을 볼 수가 있다.
2.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
이와 같이 짧은 기도의 치유적 효과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음을 보면서, 여기서는 특별히 일상생활에서 늘 부딪치게 되는 문제인 우리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짧은 기도의 반복 수행이 줄 수 있는 치유적 효과를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 갖고 있는 상처로 인해 좌절감과 분노 등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짧은 기도를 매일매일 긴 시간 되풀이하면 그것이 가슴속으로 들어가 혼자서 그 기도가 자연히 되풀이 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잠재의식의 기억 속에 저장되면, 이 새로운 테이프는 이미 저장된 분노의 테이프를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평상시 잘못된 일을 만났을 때 분노하려고 하던 마음은 새롭게 저장된 테이프의 소리를 들으면서 분노의 마음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렉시오 디비나에서의 성서 구절을 반복하며 하는 기도를 통해 생기는 치유효과에 대해 허성준은 이렇게 말한다.
간단한 성경 구절을 반복하며 기도하다보면 우리의 생각도 마음도 단순해지고,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자연히 집중력이 생겨 정신 통일이 쉽고 마음이 고요해져 내적 고요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분노와 같은 우리 안의 부정적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게 하며,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말씀을 천천히 반추하는 동안 내적 통찰력이 생겨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말씀의 영적 의미가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며, 이때 눈물겨운 통회나 신체적, 정신적 치유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짐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심한 안절부절못함, 육체적 고통,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정서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이것을 다루는 하나의 방법은 일이 분 동안 그 고통스런 감정 위에 쉬면서 그 고통이 우리의 기도어가 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고통스런 정서들이나 심지어 어떤 육체적 고통도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에 소멸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데, 옛날의 어떤 슬픔이 그때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표현하도록 느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반복되는 짧은 기도는 뒤엉킨 것처럼 보이는 감정이나 사고의 형태로 그 정서들이 표출되도록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끝내지 못한 것을 정리하게 하는 정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반복되는 짧은 기도를 하는 동안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사고들이 계속 폭포처럼 쏟아져 괴로움을 당하게 되면, 선택한 단어나 성서 구절을 애써서 상상에 떠올리려고 하거나, 정신에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힘겹도록 그 단어를 되풀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정신 속으로 스며드는 어떠한 다른 사고들을 다루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그것들을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앉아 짧은 기도를 수행할 수 없다면, 그것을 소리 내어 반복하면서 산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가 있고, 계속해서 글로 쓰는 것도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깊어지면서 우리의 인격 속에 숨어있던 어두운 면을 인정할 능력이 우리 안에 생기게 된다. 다시 말해 내적 평화로부터 오는 안도감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우리 인격의 어두운 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더욱 갖게 되는 것이다. 좋은 정신치료자는 환자가 자신의 고통스런 내면을 상대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겸손과 신뢰가 깊어지면 인격의 어두운 면을 더 쉽게 인정하게 된다. 조용한 가운데 하는 짧은 기도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기도로 해서 흘러나오는 깊은 평화가 우리의 정서적 장애를 털어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인격의 어두운 부분이 우리의 자아 성찰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것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짧은 기도를 통하여 침묵 중에 하나님의 현존을 계속해서 재확인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반대를 받거나 비난의 대상이 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비난을 받거나 멸시를 당하더라도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울 만큼 겸손해지고, 비난이나 멸시로 인해 자책감이나 복수심 같은 것으로 시달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받는 상처를 더욱 무겁게 하는 깊은 무의식의 짐을 덜어내기 때문이다.
3. 일상생활에서의 변화
과거의 쓰라린 정서적 경험에 근거를 둔 행동에서 나오는 뿌리 깊은 습관을 바꾸려면 일상생활 중에 짧은 기도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상담자와의 면담이 없어도 되고, 어려운 이론을 알지 못해도 되는 단순한 방법이지만, 정기적으로 꾸준히 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짧은 기도의 반복은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택해 관상의 단계로 가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도 있지만, 바쁜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틈틈이 수행할 수가 있다. 즉 버스를 기다리거나, 걸어가면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도, 또는 예기치 않았던 스트레스나 유혹을 대처할 때도 간단하게 수행할 수가 있고, 아프거나 잠이 들 때, 아이들을 돌볼 때, 사소한 강박적 행동을 극복하고자 할 때도 반복적으로 계속 이러한 짧은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루의 조그만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에아스와란은 이렇게 말한다.
걸을 때 특히 상쾌하게 걸을 때는 만트라(“예수” “사랑” 같이 한 단어의 짧은 기도)를 반복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발걸음의 리듬, 만트라의 리듬, 그리고 호흡의 리듬, 이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호흡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긴장하거나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은 빠르고 불규칙적이게 호흡을 한다. 침착하고 사랑하고 편안한 사람들은 작은 아이처럼, 부드럽게 천천히 그리고 깊이 호흡을 한다. 상쾌한 걸음은 당신의 호흡 리듬이 깊고 고르게 하고, 만트라는 당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일 할때... 만트라(짧은 기도)를 반복하면서 5-10분간 상쾌한 걸음을 해보라. 그리고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 느낌을 갖는지 보라.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을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거짓 자아의 무의식적 가치 체계와 거기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바꾸는데 충분치 않을 수 있는데, 반복되는 짧은 기도는 내 마음 깊이에서 무의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시도록 맡기기 때문에, 심리적인 치유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반복하는 짧은 기도의 유익은 어떤 특별한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행동과 태도를 수정한다는 심리학적 발견과도 비교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한 특별한 단어나 구절에 노출되면 그들은 쉽게 다른 단어들을 인식하게 된다. 즉 "간호원“과 같은 단어에 대한 생각은 이와 관련된 ”의사“라는 단어가 미리 주어졌을 때 쉽게 일어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단어들에 대한 생각도 미리 주어진 유사한 단어들에 의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한 단어를 조용히 반복하는 것은 두뇌 영역을 활성화시켜서 후의 기억들이 생기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짧은 기도의 반복은 연관된 영적 감정, 태도, 그리고 신념을 더욱 뚜렷하게 의식에 떠오르도록 할 수 있고, 매일의 삶에서 영적인 선택을 더욱 쉽게 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짧은 기도(거룩한 단어)는 사람의 가장 고귀한 개념과 열망 즉 그의 궁극적 관심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이것과 관련된 영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삶에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촉진시킴으로 마음에 평화를 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계속되는 기도의 반복을 통하여 이것이 우리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짧은 기도는 매일의 도전들을 다루는 도구로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짧은 기도는 불안을 다루고, 마음이 동요될 때 인내로 반응하고, 감사하게 하거나, 힘이 소진되었을 때 신경 에너지를 회복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고, 우울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목적을 위해 두려움이나 분노, 탐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있는 에너지를 변형시키고 이용할 수 있으며, 중독과 싸우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에아스롸란은 “아마도 당신은 담배를 끊으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갑자기 무언가가 담배를 기억나게 할 것이고, 담배에 대한 욕구가 마음 안에 일어날 것이다.... 만일 이때 만트라(짧은 기도)를 반복하면서 잠시 동안 그 욕구를 잡아두고 있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욕구가 가라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서, 당신은 만트라가 그러한 욕구를 감소시킨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키팅은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한다.
거룩한 단어(짧은 기도)는 일단 잘 습관화되면, 보통 떠오르는 일상적 사고들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 되며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사고들 중에서 관심을 끄는 사고들을 막아주는 방법이 된다. 이것은 그 사고들과 직접 부딪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현존하시며 내 안에서 활동하시게 하는 당신의 지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당신 의지가 동의(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를 거듭하고, 이것이 습관이 됨으로써, 당신은 불요불급한 사고의 흐름들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담배에 대한 갈망과 싸우거나 다른 해로운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주의를 빼앗는데 사용되는 짧은 기도의 반복은 신체적인 건강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말하자면 주의(attention)를 바꾸는 것은 병의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어책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의 집중이 고통을 주는 자극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면, 문제 있는 반응들은 최소화되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해서 하는 짧은 기도(거룩한 이름)의 사용은 British Medical Journal에 의해 “현존하는 심장혈관의 리듬을 현저하고도 강력하게 증가하게 한다”고 보고되기도 하였다. 여러 연구 문헌들에서도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이것이 병과 사망률의 감소를 가져왔음을 보고한다. 이와 같이 짧은 기도의 반복은 영적인 유익뿐만 아니라 심리적 그리고 신체적인 치유의 효과까지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나오는 말
다른 대부분의 영성훈련들과 비교해서, 짧은 기도(거룩한 이름)의 반복은 아주 단순하고, 어렵지 않으며, 돈이 들거나 시간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조용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루에 20분 정도씩 깊은 관상에 이르는 기도로 활용할 수도 있고, 또한 평범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또는 수술이나 이혼과 같은 상황의 고통과 위기에 처했을 때도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도구로 이 짧은 기도는 손쉽게 활용될 수가 있다.
이미 짧은 기도가 주는 영적 유익에 대해서는 기독교 역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심리적 치유효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크리스천의 삶에서 이러한 더욱 널리 활용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무엇인가를 바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중심을 잃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가며, 복잡한 사회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기 쉬운데, 이러한 짧은 기도의 반복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갈 수 있는 영적, 심리적 힘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설교나 심방, 상담을 활용해왔지만, 우리 기독교 전통에서 주어진 이와 같은 귀중한 유산들을 재발견해서 또한 활용한다면 교인들을 영적 심리적 관점에서 돌보는 데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이제는 외적인 성장에 치중했던 그동안의 방향을 바꾸어서 이제 내적으로 갈등을 겪고 고통을 받는 교인들을 돕는 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내면을 깊이 바라보게 돕는 영성훈련 방법들은 교인들을 더욱 성숙하게 이끄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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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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