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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금 신상 숭배 거부(3:1-30)
4162071 홍사덕
Ⅰ. 개요
전체적으로 내용 전개가 하나의 통일된 본문처럼 매끄러우며, 2장과 마찬가지로 내용의 중심에 느부갓네살 왕이 서있는 3장은 비교적 잘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장과는 다른 3장만의 독특한 점은 지금까지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다니엘’은 등장하지 않고, 그의 역할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세 친구들의 이름은 1-2장과는 달리 개명된 이름만이 언급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 친구들은 1-2장에서 등장했던 다니엘의 모습과 동일하게 우상숭배에 대한 비타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즉, 3장에서는 ‘하나님은 돈독한 신앙의 소유자들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내신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자들을 어떤 위기 속에서도 지켜주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내용이 3장의 신학적 핵심주제인 것이다.
3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발단은 느부갓네살이 ‘국가 전 지방으로 내린 조처’로 시작된다.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된 신상을 세우고, 국가 전 지방에 있는 ‘공무원’들이 공식적인 집회인 ‘낙성식’에 참석해 그 신상을 숭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는 국가의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로인해 느부갓네살의 일부 신하들은 비정상적이며 잔인한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 즉, ‘사드락’(하나냐), ‘메삭’(미사엘), ‘아벳느고’(아사랴)는 왕의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그 결과 비정상적이며 잔인한 방법인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 불 속 내부에는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 타지 않고 살아 걸어 다니고 있었으며, 율법을 준수하기위해 결단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전혀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결과 왕은 그들을 풀무 밖으로 다시 불러내게 되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렸다. 바로 3장은 그동안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다니엘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신앙적 활약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3장에서 등장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3장이 끝남과 동시에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다니엘서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3장에 대한 해석은 지금까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첫 번째, 전승된 유대인들의 옛 신앙의 전통들을 현재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히브리어 성서 본문에 대한 주석적 작업을 시도하면서 탄생되게 된 ‘미드라쉬’(Midrash)가 있다. 즉, 3장은 바벨론 포로기에 한 익명에 예언자가 활동하면서 선포했던 내용들을 설교적 이야기 풀어 낸 주석이라는 것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1-2) (참고 시 66:12)
헬레니즘 세계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방 종교들로 인한 핍박을 받아야 했고, 즉, 3장은 이러한 종교적 현실을 담고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적 숙고의 결정체인 것이며, 제2이사야의 예언에 기초하여 우상 숭배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공격을 행하고, 신상을 숭배하는 다신론적 이방종교의 세계를 강하게 조롱하고, 또 한 편으로는 신상 숭배의 유혹에 놓여있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옛 예언자의 글을 ‘미드라쉬’ 형식으로 풀어 낸 본문인 것이다. 따라서 3장은 ‘이방종교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유대인들은 어느 장소이든, 어느 때이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두 번째, 양식비평의 결과에 근거하여 ‘순교자 이야기’(martyr story)의 한 예로 간주하려는 견해다. ‘순교자 이야기’ 안에는 일반적으로 토라의 규율들을 어기도록 협박하는 이방 통치자들의 능력을 비웃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려는 기본적인 주제가 들어 있다. 이러한 ‘순교자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전통을 포기하도록 강요를 당하는 순간’에 1)‘순교자는 목숨을 바쳐 신앙의 절개를 지키든지’(마카베오하 6장의 ‘엘르아잘의 순교 이야기’, 마카베오하 7장의 ‘일곱 아들과 어머니의 순교 이야기’), 아니면 2)‘죽음을 각오하고 순교자가 살해를 당하기 직전에 기적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는’ 두 가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 중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이 땅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다니엘서 3장의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다니엘서 3장의 ‘풀무불 이야기’가 제2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가 이사야 예언의 말씀에 대한 주석적 설교를 위해 첨가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3장을 오히려 ‘순교자 이야기’로 보는 것이 올바른 평가이며, 목숨을 걸고 순교를 각오한 충성된 자들과 타협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자들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구하시고, 그들을 영예롭게 높이셨다는 ‘구원받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3장에 ‘순교자 이야기’의 모티브를 갖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정확히 확정지을 수 없지만, 어쨌든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매우 극심했던 시기에 탄생된 ‘순교적인 신앙의 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Ⅱ.구조
3장은 전반적으로 2장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왕의 명령’이 가장 처음에 등장하며, 2장에서도 ‘왕은 자세히 꿈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채 자신이 꾼 꿈을 해석하라고 명령했던 것처럼 3장에서도 왕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강력한 통치의 상징물인 금신상을 건립하여 낙성식을 준비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두 번째, 이러한 왕의 명령은 사건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고 있으며, 사건들이 진행되는데 있어서 위기를 일으키며 2장과 마찬 가지로, 왕의 명령은 바벨론의 세 명의 유대 통치자들이 불로 태워져야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왕의 명령‘은 많은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연속적인 ’왕의 명령‘에 따라 3장에서도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바로 아람어 부사 ’이에/그래서‘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세 번째 ’왕의 의한 찬양‘은 사건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왕의 신앙 고백적 찬양 시는 사건 전개과정 속에서 최고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바로 2장과 마찬가지로 3장의 본문 또한 가고자하는 ’최후의 목적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결말‘은 ’두 장‘ 모두 분명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으며, 2-3장 모두 마찬가지로 ’높은 정치적 지위‘를 얻게 되었고, ’인물들의 지위‘가 더욱 높아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2장과 3장의 구조적 유사성〉
사건의 진행순서 |
2장 |
3장 |
형식적 특징 |
왕의 명령 |
꿈의 해석 |
신상 건립과 낙성식 준비 |
사건의 출발 |
사건들의 진행 |
현자들의 등장→꿈 해석의 불가능→죽음의 위기(살해) |
세 친구들의 등장→왕의 명령에 불복종→죽음의 위기(풀무불) |
사건의 진행과정 |
왕의 신앙고백 |
“모든 신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7) |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3:29) |
사건 진행의 핵심 |
주인공들의 지위 향상 |
다니엘: 바벨론의 제2인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 세 친구들: 매우 높은 정치적 지위 |
세 친구들: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아짐 |
사건보도의 결말 |
전반적으로 3장의 등장하는 ‘느부갓네살’과 ‘세 명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갈등 구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대결은 이야기의 중반부에서부터 시작되며(12ff.절) 주요 등장인물인 느부갓네살은 세 가지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1)그의 이름만 언급됨, 2)그의 이름 뒤에 왕의 칭호가 첨부됨, 3)왕이라는 칭호만 독립적으로 등장함, 반면에 이러한 ‘느부갓네살’을 상대하는 세 명의 유대사람, 다니엘의 세 친구의 이름은 열두 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인 ‘어떤 갈대아 사람들’(8-12절), ‘군대 중 용사 몇 사람’(20-23절), ‘모사들’(24절) 등 이들은 사건 진행의 부수적인 역할만 감당하고 있다. 이처럼 3장은 2장과 동일한 방법으로 ‘직접화법’을 이야기 전개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문학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3장은 도입부분(1-2절)과 종결부분(30절)이 다른 본문들로부터 매우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다. 도입 부분은 ‘왕의 명령’으로 시작된 금 신상 숭배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지만 종결부분은 이러한 ‘갈등의 결과’를 보도하고 있으며, 대결에서 승리한 ‘세 명의 유대인’들은 더욱 높은 정치적 지위를 얻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입부분’과 ‘종결부분’ 사이에는 ‘왕’과 ‘유다 출신 정치인들’ 즉,‘다니엘의 세 친구’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대결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총 4개의 장면들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첫 번째 장면(3-12절)은 ‘낙성식 거행과 금 신상에 절하는 것을 거절한 세 명의 유대인들에 대한 고발’을 다루고 있다. 왕의 명령으로 인해 금 신상은 바벨론 도의 ‘두라’(Doura)평지에 세워졌으며, 왕국의 모든 대표자들은 낙성식에 참석해야만 했다. 여기서 3절의 ‘이에’는 ‘왕의 명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건이 진행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하고 있다. 왕의 명령으로 왕국의 모든 고위 관직자들은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고(3절), 이때 왕의 명령을 전하는 한 전령관이 등장하여 그들에게 ‘악기소리를 들을 때 신상에 엎드릴 것’과 ‘만일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당하게 될 무서운 형벌’까지도 전해주었다.(4-6절) 그리고 곧 악기소리를 듣자 왕국의 대표들은 전령관의 말에 따라 신상에게 절하였다.(7절) 여기까지는 왕의 명령에 의해 건립된 신상으로 인한 갈등이 보이지 않고 있으나, 어느 ‘갈대아 사람들’의 등장과 함께 신상에 절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왕에게 고발함과 동시에 갈등이 시작된다.(8-12절) 여기서 고발은 ‘직접화법’으로 되어있으며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킬만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고발은 두 번째 장면의 사건 전개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장면(13-18절)은 고발당한 ‘세 명의 유대인들’과 ‘왕’ 사이에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사건의 새로운 전개를 알리는 문학적 표시로 아람어 부사 ‘이에/그래서’는 13절에서 두 번에 걸쳐 등장하고 있으며, 한 신하의 유대인 고발에 대한 왕의 반응을 이끌고 있다. 왕은 신하들의 고발을 듣고 진노하였고, 이로 인해 신상에 절하지 않은 세 명의 유대인을 체포해 올 것을 명령하였는데, 여기서 왕은 두 가지 문제를 중심적으로 그들을 심문하였다. 첫째, ‘고발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과 둘째, ‘다시 한 번 신상에게 절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14-15절) 그러나 세 명의 유대인들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였으며, 왕의 협박도 그들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16-18절)
세 번째 장면(19-25절)은 ‘왕의 명령을 거부한 세 명의 유대인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그들은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이전의 장면들과 동일하게 아람어 부사 ‘이에/그래서’로 시작하며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왕은 진노하여 신하들에게 평소보다 풀무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왕의 명령을 거부한 세 명의 유대인을 불에 집어넣도록 명령하였다.(19-21절) 신하들은 왕의 명령에 의해 그들을 풀무불 속으로 던져 넣었고, 그 과정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22-23절) 여기서 풀무불 속에 던져진 세 명의 유대인들의 모습은 직접화법으로 되어있지 않고, 오로지 간접적인 화법으로만 묘사되어있으며 왕의 진술을 통해서만 아직 세 사람이 살아있음을 알리고 있다.(24-25절)
네 번째 장면(26-29절)은 왕의 심경변화로 인해 유대인들을 풀무불로부터 살려 낼 것을 명령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왕은 풀무불에서 유대인들이 살아난 것을 목격하고, 풀무 안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기적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왕의 명령에 따라 세 명의 유대인들은 풀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어느 한 곳도 상하지 않은 채로 구조될 수 있었다.(26-27절) 이 광경을 목격한 왕은 ‘세 명의 유대인들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찬양하였고, 신하들에게 특별 조서를 내려 그들의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에게는 중한 벌을 내릴 것을 선포했다.(28-29절)
Ⅲ.주석
1)금 신상을 건립하고, 낙성식을 준비하라는 왕의 명령(3:1-2)
1절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기원전605-562년)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다.”는 진술로 시작되고 있는데, 그 신상이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3장이 독립적이었던 초기 전승 단계에서는 아마도 자세한 내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니엘서 저자에 의해 그 내용들이 삭제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칠십인역(LXX)에서는 이러한 신상을 만든 연대를 느부갓네살의 ‘18년째 되는 해’, 즉, ‘왕이 인도에서부터 에티오피아를 정복한 이후’에 신상을 만든 것이라고 그 이유까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왕이 이러한 신상을 만든 사건을 ‘유다 왕국의 멸망(기원전 587년)’과 관련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바벨론의 세력 확장과 정복을 기념하며 왕국의 영원성을 기원하는 의미도 아울러 갖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들이 자신의 신상을 만드는 일이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던 만큼,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 또한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볼 때 거대한 상을 만든 것은 엄연한 사실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왕이 반드시 느부갓네살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은 상들은 금이 아니라, 돌로 만들었으며, 왕이 그 상들을 종교적 목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초상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명예와 통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종교적 목적으로 거대한 신상을 만든 자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드’(Nabonid)였으나, 이 경우도 역시 신상은 금으로 만들지 않았고, 본문의 보도하는 내용과 같은 거대한 신상은 아니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에 두 개의 금 신상이 존재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바벨론의 문서 중에 금으로 만들어진 신상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을 시키려하기도 하는데, 즉,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세운 제우스 신상이 본문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3장에 신상 건립사건이 안티오코스 4세 시대의 ‘유대인 박해 사건’을 염두하고 있는 내용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즉, 안티오코스 4세와는 달리 느부갓네살은 조직적이며 지속적으로 유대인을 박해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3장의 본문은 신상의 “고는 육십 규빗이고 광은 여섯 규빗”이라고 ‘금 신상의 크기를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는데, 신상의 높이는 27.4m이고, 폭은 2.74m 곧, 높이는 폭의 10배인 것을 알 수 있다. 신상은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워졌고, ‘두라’는 ‘둘레’, ‘주위’ 등을 의미하는데, 이 두라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여러 가설들 중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가설에 의하면 수도 바벨론 인근 남동쪽에 ‘두라’라는 이름을 지닌 작은 언덕이 있는데, 왕이 그곳에 신상을 세웠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설이 있다.
2절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만든 신상에 국가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낙성식에 전국 고위관료들, 즉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의 모든 관원’이 참석하게 하였다. 왕의 명령에 의해서 참석을 강요당한 관리들은 실질적으로 왕국을 다스리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에 열거된 관직명은 네 집단으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첫 번째 집단으로 ‘방백과 수령과 도백’은 개별적으로 담당한 특정 지역과 집단의 최고 행정 책임자들이라고 볼 수 있고, ‘방백’은 바벨론 각 도성의 최고 책임자이고, ‘수령’은 도시 바벨론을 다스리는 관리이며, ‘도백’은 각 도성의 최고 민간 행정관료이다. 두 번째 집단으로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는 사법 업무에 종사하는 자들로 ‘재판관’은 중요한 재판의 ‘결정권자’이며 재무관은 고대 페르시아어 ‘다타 바라’에서 온 말로 ‘율법을 맡아 보호하는 자’이며 오늘날의 법무관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모사’는 법률 전문가 또는 재판관을 뜻한다. 세 번째 집단으로 ‘법률사’는 재판 업무를 관리하는 자를 지칭하는 뜻이 아니라, ‘우두머리’란 뜻으로 군사 업무를 담당한 ‘국방의 최고 책임자’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집단은 ‘각 도의 모든 관원’이들은 각 도성에서 국가의 업무를 담당하는 일반적인 행정 관료들이다. 이처럼 본문에 열거된 바벨론의 모든 관료들이 참석한 낙성예식은 왕의 절대권한을 시험할 수 있는 자리임과 동시에 백성 전체를 종교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2)세 유대인들의 신상 숭배 거부(3:3-29)
(1)제 1장면: 낙성식 거행과 신상 숭배 거부자의 고발(3-12절)
3-4절 바벨론의 모든 관료들은 낙성예식에 모두 참석하였고, 3절은 2절과 동일하게 왕의 명령에 불순종한 왕국 관료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2절에서도 열거한 모든 관료들의 명칭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된 모든 관료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 앞에 서서’ 경의를 표시함으로 충성을 맹세하려고 했으며, 신상 앞에 모여 있는 자들에게 ‘반포하는 자’가 나서서 왕의 명령을 선포함으로써 축제가 시작되었다. 또한 4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국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함께 낙성예식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나라들’은 바벨론의 속국을 의미하며 ‘각 방언하는 자들’은 바벨론의 영토에 살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6절 ‘반포하는 자’의 구체적인 선포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그는 금 신상에게 절하기 위해 그 앞에 모여 있는 거대한 무리들에게 먼저 낙성식의 진행과정을 설명하였는데, 그는 회중들에게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들이 울려퍼지게 될 때 신상에게 절해야 한다는 내용을 설명하였다. 악기는 고대로부터 종교적 축제 예식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본문에 열거된 악기들은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본문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악기들의 목록이 열거된 것은 여기에는 ‘풍자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곧, 이 악기들이 함께 울리게 될 때는 엄청난 괴음과 시끄러운 잡음이 울리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안에는 타락한 우상숭배를 조롱하려는 신학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포하는 자의 선포 메시지 속에는 위협과 협박 또한 함께 담겨있었다. 그는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를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즉, ‘반포하는 자’의 말속에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왕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진행된 낙성식은 백성들을 위한 진정한 축제가 아니라, 왕 개인의 영광을 위해 강요된 억지 축제일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6절에서는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신하들을 처벌하려는 수단’으로 ‘풀무불’이 소개되고 있다. 단순한 방법이 아닌 용광로에 녹여 죽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6절에 소개된 ‘풀무’는 아카드 시대에 것으로 발굴된 2층 구조의 용광로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러한 추측으로 미루어볼 때 용광로 위쪽에서 아래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옆쪽 입구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절 ‘반포하는 자’의 위협적인 선포가 끝난 후 다양한 악기들이 울리자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였다. 공포와 억압의 상황에서 왕의 명령에 불복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4절과 비교해볼 때 신상에게 절하기 위해 모인 백성 앞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모든 백성’이 낙성식에 참석하여 왕이 만든 신상에 절을 했다는 것은 이 단어는 전국의 모든 백성들이 왕의 이러한 금 신상 숭배 정책과 통치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느부갓네살’의 세운 ‘금 신상’ 이란 표현은 이미 2,3,5절에서 관용적으로 언급되어졌으며, 신상을 건립한 목적은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곧, 자신의 통치권력을 더욱 공고히하며 자국민뿐만 아니라 정복국가의 백성들에게도 충성을 강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절 낙성식이 진행되는 동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바로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참소하다”를 직역하면 ‘그들이 조각을 먹었다.’인데, 바로 궁중 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파벌 싸움과 관련된 정치적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 단어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고발할 때 사용하던 관용어로 살벌한 파벌정치의 현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갈대아 사람은 1-2장에서 ‘현자 계층’으로 소개되었던 반면에, 여기에서는 유대인들과 대결하는 집단으로써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집단은 낙성예식에 초대된 통치자 집단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7절’의 ‘모든 백성’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위해서 사용된 단어는 일반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바로 바벨론의 엘리트 계층 출신으로 어느 정도 세력을 가지고 왕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대인들이 낙성식이 거행되는 도중에 유대인들을 왕에게 고발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낙성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분명한 고발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차원적인 동기로 인한 고발이 아니었으며 갈대아인들은 오히려 왕으로부터 낙성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로 보인다.
9절-12절 갈대아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고발한 내용은 왕이 ‘반포하는 자’의 입을 빌어서 ‘선포했던 칙령’(5-6절)을 ‘거의 문자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차이점’은 그것을 신상에게 절해야 하는 ‘대상의 범위’가 ‘무릇 사람마다’로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신상에게 절하고 왕에게 충성 맹세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대상이 ‘낙성식’에 참석한 특정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모든 일반 백성들에게로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고발인들은 먼저 왕에게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고 왕의 명령을 회상시킨 후에 피고발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면서 고발인들은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들이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임을 밝히고, 그들은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을 섬기지 아니한” 자들이라며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은 ‘왕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한 행위’이며 ‘왕이 섬기는 신을 모독한 행동’이라고 고발하였다. 또한 이들이 고발한 이유는 ‘두 가지 명목’으로 고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정치적 이유’와 두 번째, ‘종교적 이유’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특히 ‘정치적 이유’이며,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행동이 왕에게 정치적 반역으로 간주되어 ‘종교적 이유’보다 앞서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