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SION OF ARCHITECTURE
목원건축, 세계를 디자인하고 건축의 미래를 열다
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승재
‘놀이’와 ‘공간’, 요즈음 교육현장에서 가장 회자되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개정 누리과정은 ‘놀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교육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초중고 교육현장에서는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학교공간혁신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고 이제는 유치원으로까지 사업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육공간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놀이와 공간이 이전과 어떠한 차이나 변화를 가지고 있을까요? 공간을 이야기하려면 그 안에 담기는 내용, 즉 인간의 행태를 이해하고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생각하기에 앞서 놀이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놀이에 대한 다양한 정의나 특성 등을 논하는 것보다 개편 누리과정에서 부각된 놀이의 의미가 이전과 어떠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듯합니다. (교육학자나 놀이 전문가는 아니기에 놀이에 대한 생각이 다소 주관적일 수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차이는 놀이 개념의 확장입니다. 놀이는 일반적으로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특별한 목적 없이 나타나는 능동적인 활동’을 의미합니다. 또는 ‘신체적 ·정신적 활동 중에서 식사·수면·호흡·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놀이라고 하면 항상 해맑게 웃고 떠드는 그리고 학습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려 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제한적인 행동으로 개념화시킨 것입니다. 날아가는 벌레나 일렁이는 꽃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거나 무작정 달리거나 기어가거나 구르거나 던지거나 그리고 냄새를 맡거나 비나 눈을 맞고 햇빛을 쬐고 바람을 느끼거나 심지어 식사·수면·호흡·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하는 것도 아이들의 놀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모든 정신적‧신체적 활동 또는 생활 자체를 놀이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놀이의 목적이 변화하였습니다. 놀이의 목적은 놀이 그 자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개정 누리과정에는 ‘유아가 놀이를 통해 배우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전히 놀이의 목적이 배움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차적으로 배움을 얻을 수 있다’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전히 그러한 것처럼 보이지만- 놀이는 배움이라는 목적을 벗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목적도 없는 아이들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진짜’ 놀이가 중요해 졌습니다. 놀이 학습(?)을 막 마친 선생님은 ‘우리 언제 놀아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당황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이 글을 읽고 유아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놀이가 되는 것은 진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셋째로 놀이의 맥락이 ‘비구조적’으로 배열됩니다. 이는 두 번째로 언급한 놀이의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놀이가 배움의 목적, 즉 학습내용과 관련을 맺게 되면 필연적으로 놀이의 과정은 구조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는 학습목표와 내용이 정해지면 이에 맞춰 놀이라는 형식이 결합되었습니다. 따라서 학습에는 맥락이 중요하기에 전후 놀이 구조를 뒤바꾸거나 변형, 생략, 추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놀이가 배움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아이들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놀이 활동이 가능해 집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흥미에 따라 쌓기 놀이를 먼저하고 그리기를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아이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의식적이지 않지만 스스로 놀이 과정을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놀이 과정은 재구조화됩니다. 또는 놀이와 결합한 학습내용이 재구조화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구조화시킨 대로 쌓기 놀이를 통해 공간 개념을 알아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아이는 쌓기 놀이를 통해 수 개념을 얻을 수(놀이-학습 재구조화)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들은 이전 교육현장에서도 고민했던 것들이기에 놀이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놀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려면 놀이에 대한 사고가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음을 개정 누리과정에서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놀이를 위한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우선 ‘놀이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공간혁신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우수 사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실내로 들어온 미끄럼틀과 놀이터, 박공 모양의 쉼터, 화려한 색상의 조명과 가구 등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예산이 한정적이거나 관련 내용을 다루는 지면에 한계가 있어 특정한 시점의 이미지들이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로 놀이공간에 대한 사고를 제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놀이에 대한 관점이 변화했다면 ‘놀이공간’에 대한 접근도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생활공간이 놀이공간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생활이 놀이이고 놀이가 곧 생활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놀이공간이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유치원은 놀이공간이어야 하는데 집이나 도시는 놀이공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유치원 안에서도 놀이공간이라고 하면 놀이터, 교실, 유희실과 같은 특정 공간을 떠올립니다. 놀이공간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정의된 행위가 일어나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식당도 화장실도 마당도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는 현관, 복도나 계단도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입니다. 배설하거나 씹거나 마시고 냄새를 맡는 것, 마당에 핀 꽃을 바라보고 만져보는 것, 복도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친구들을 관찰하는 것, 아침과 오후의 햇살이 다르게 비춰지는 공간에 놓여 있는 것, 나무 바닥과 돌바닥을 구르며 느껴지는 감촉의 다름을 느끼는 것도 놀이라고 한다면 유치원에 등원하면서 하원할 때까지 경험하는 공간들이 모두 놀이공간입니다. 즉 놀이공간이란 공간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놀이공간은 놀이터처럼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때론 집과 같이 아늑하고 안정적이며 마을처럼 소통을 유발하고 자연과 함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둘째, 놀이공간의 목적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놀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교실은 배움을 위한 공간이고 놀이터나 유희실은 놀이를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실 내 흥미영역에도 대근육 활동, 역할, 언어, 조형, 음률, 과학, 수 조작 영역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놀이공간들이 분절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들은 건축가처럼 이 공간들을 계획하고 꾸미고 관리하는데 전문가일 겁니다. 그러나 관리의 편의상 실이나 영역에 명칭을 부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간이 아이들의 놀이 행위를 통제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영역들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다만 블록 쌓기 영역에서도 수 조작 놀이를, 과학 놀이를, 언어나 음률 놀이를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어떠한 상태로 어떠한 환경에 접속하고 있는지에 따라 공간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이지 단순히 명명에 의해 공간의 목적이 결정되지 않는 것임을 이해할 때 놀이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놀이공간은 ‘탈구조화’되어야 합니다. 공간의 구조란 무엇일까요? 구조란 ‘부분이나 요소가 어떤 전체를 짜 이룬’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각 부분들은 ‘관계’를 통해서 전체를 형성합니다. 공간구조에서 관계란 각 공간 간의 연결 상태 또는 이동 경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당]-[현관]-[복도]-[교실]의 공간구조에서는 교실에서 마당으로 이동하기까지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만약 교실에서 마당으로 직접 나가는 문을 설치한다면 두 공간의 이동 경로는 1단계로 줄어듭니다. 또는 교실과 복도 사이에 폴딩 도어를 설치하였다면 [복도]-[교실]의 공간구조가 필요에 따라 [복도‧교실] 통합된 공간으로 됩니다. 이렇게 기존 공간구조를 재구조화함으로써 접근성이나 활용성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공간구조는 공간과 그 안의 행위(건축 용어로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관계에 따라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만일 앞의 예시에서 복도에서 학습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복도는 교실이 되고 원래의 교실은 복도와 마당 사이에 있는 현관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역으로 활용에 의해 공간구조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공간혁신사업에서는 ‘공간재구조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과거의 경직된 공간 구조로는 유연해진 교육활동을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간구조를 다시(再) 변화시켜 공간 활용의 잠재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좁은 실내에서 이동 가능한 가구를 도입하는 것은 다양한 교육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축가가 공간 재구조화 설계를 했더라도 만일 한번 재구조화된 공간이 그대로 영속된다면 다시 경직된 구조로 정착되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탈구조화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놀이 행태가 비구조적으로 되면 탈구조적인 공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유연한 생각과 활동에 의해 놀이공간은 지속적으로 재구조화, 즉 탈구조화 됩니다.
교육부나 각 교육청에서 공간혁신사업과 관련한 자료나 우수 사례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나 교육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 내용을 재편집하는 것보다 ‘놀이공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놀이’와 ‘공간’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형성되어서 아이들이 진짜 놀이를 할 수 있는 진짜 놀이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특별한 ‘놀이공간’이란 없습니다. 공간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들에겐 ‘공간놀이’만 있을 뿐입니다.”
[함께 보고 싶은 유치원]
※ 인터넷(Google)에서 영문 건물명으로 검색하시면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1. 후지 유치원(Fuji Kindergarten)
위 치 : 도쿄
건축가 : Takaharu+Yui Tezuka (TEZUKA ARCHITECTS)
http://www.tezuka-arch.com/english/works/education/fujiyochien/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유치원 건물입니다. 모든 공간들이 거대한 원형 마당을 중심으로 열려 있어 하나의 마을을 이룹니다. 건물 지붕과 함께 놀이공간들이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 공간은 유연한 가구 배치를 통해 통합되어 있습니다.
2. D1 유치원(D1 Kindergarten and Nursery)
위 치 : 구마모토현
건축가 : HIBINO SEKKEI(youji no shiro)
https://e-ensha.com/en-d1-kindergarten-and-nursery/
https://www.archdaily.com/645730/d1-kindergarten-and-nursery-hibinosekkei-youji-no-shiro
건물 가운데 중정이 있고 바닥이 주변 필로티(벽체 없이 기둥만 있는 하부 공간)와 연장되어 마치 내외부가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중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비가 내리면 중정은 작은 연못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외의 공간들도 유연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개방된 평면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 하쿠시 보육원(Hakusui Nursery School)
위 치 : 치바현 사쿠라시
건축가 : Kentaro Yamazaki
https://ykdw.org/works/hakusui-nursery-school/
https://www.archdaily.com/623479/hakusui-nursery-school-yamazaki-kentaro-design-workshop
기능적인 공간을 제외하고 실들의 구별이 없이 거대한 공간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경사지형을 이용한 높이 차이로 인하여 각 공간들은 독립적인 영역성을 확보하기도 합니다. 커다란 남북측 창을 통해 환기가 이루어지고 남쪽으로 경사진 지붕을 이용하여 빗물을 모아 지붕의 열을 식히거나 연못으로 물을 흘려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