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쇼 부자의 끝없는 한국 사랑과 목원대 사랑
故 윌리엄 얼 쇼 박사 추모예배와 故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비 제막식 열려
우리대학은 지난 20(일) 오후 5시 채플실에서 故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한국명 서위렴(徐煒廉), 1890-1967) 박사의 추모예배와 함께 그의 아들인 故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n Hamilton Shaw, 1922-1950) 대위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해군사관학교, 서울 은평구에서 故 윌리엄 쇼 부자의 유가족 7명을 한국에 초청하는 계기를 통해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윌리엄 쇼 부자의 지극한 한국 사랑과 목원대 사랑에 대한 은덕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한 취지로 준비된 것이다.
故 윌리엄 얼 쇼 박사는 1890년 8월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1921년 평양 광성보통학교 교사로 한국에 온 후 선교활동을 펼치던 중 한국 전쟁 시 주한미군에 자원 입대하여 군목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육군에 군목제도를 도입하였다.
1954년 목원대학교의 전신인 ‘감리교 대전신학원’을 설립할 당시 창립 이사(1954-1960)로 참여하였고, 목원대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의 교육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한국의 목회자 양성과 수련을 돕기 위하여 미국에서 모금한 헌금을 기초로 목원대학교에 목자관을 건립하여 목자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전국의 교역자들을 위한 수양관 건립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그의 아들인 해밀턴 쇼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7년 목원대학교에 기념예배당을 세웠다.
1962년 40여년 간의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후 미국으로 돌아가 1967년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의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윌리엄 얼 쇼 박사(선교사)의 외아들인 故 월리엄 해밀턴 쇼(Willian Hamilton Shaw 1922-1950)는 1922년 6월 평양에서 태어나 외국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평소 한국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할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해밀턴 쇼는 1944년 미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1948년부터 진해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민간인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함정 운용술을 가르쳤으며, 1948년 한국의 해안경비대 창설에도 기여하며 우리나라 국군의 태동에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미국 하버드 대학 철학박사 학위 과정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미 2차 세계대전 후 군복무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나라가 전쟁 중에 있는데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해군에 입대, 한국 전쟁에 자원 참전하였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정보장교로 근무하며 맥아더 장군을 도와 인천 상륙작전 성공에 큰 공을 세운 그는 1950년 9월 서울 탈환작전에 투입되어 서울의 녹번동에서 인민군과의 전투 중 28세의 나이로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의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으며, 1956년 대한민국 정부는 금성을지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그에게 추서하였다.
한국을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며 한국인을 형제로 생각했던 故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희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에 기념예배당과 전사기념비를 건립하기로 뜻을 모은다. 이에 미국의 친지들과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와 고향 사람들로부터 기금을 모으게 되었다.
또한 뜻있는 한국인들이 토지와 물자를 기증하는 등 각계의 정성으로 1956년 목원대학교의 옛 부지(중구 목동 소재)에 그를 기념하는 예배당이 세워졌고, 그가 전사한 자리인 서울 녹번동에 전사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윌리엄 얼 쇼 박사의 부인인 애들린 해밀턴 쇼(Adeline Hamilton Shaw, 1895-1971)는 1919년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와 숭덕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60년까지 교육에 헌신했으며, 1955년부터 대전에 정착하여 전쟁 미망인들을 위한 정착촌인 ‘성화장’을 지어 돌보기도 하였다. 1971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숨을 거둔 후 서울 양화진에 있는 남편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또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미망인인 화니타(Juanita)는 1943년 해밀턴 쇼와 결혼한 후 1956년 두 아들과 한국으로 온 후 서울 외국인학교 교사와 이화여대에서 사회사업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8년까지 12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가 사회봉사 사업을 펼쳐오다 은퇴하였으며, 남편의 곁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행사에 참석하게 되는 유가족은 총 7명으로, 해밀턴의 큰 자부인 캐롤 캐머런 쇼(Carole Cameron Shaw), 그녀의 두 아들인 윌리엄 캐머런 쇼(William Cameron Shaw)와 데이비드 캐머런 쇼(David Cameron Shaw), 차남 내외인 스티븐 로빈슨 쇼(Stephen Robinson Shaw)와 버지니아 코트(Virginia Korte), 해밀턴의 여동생의 딸인 엘리자베스 라이트(Elizabeth Wright)와 캐쓰린 라이트 배너(Kathleen Wright Banner)가 참석한다. 또한 윌리엄 얼 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군호(전 목원대 총장)씨 등 한국인 원로 제자 10여명이 함께 참여하여 그 가족들과의 상봉의 자리도 마련된다.
이번 행사에서는 윌리엄 쇼 부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추모예배와 함께 월리엄 쇼 대위 기념비 제막식을 갖는다. 특히, 이번에 목원대학교 채플 앞에 새로이 세워지는 ‘해밀턴 쇼 대위 전사기념비’는 그가 전사한 자리인 서울 녹번동에 세워졌던 기념비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이는 윌리엄 쇼 부자가 생전에 한국과 목원대에 보여준 뜻 깊은 사랑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기념예배당과 전사기념비를 나란히 마련하는 것이다. 이 기념비는 예전 서울 녹번동에 있다가 지역개발로 인하여 현재 서울 응암동 어린이공원으로 옮겨졌으며, 오는 22일 서울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있을 윌리엄 쇼 대위 동상 제막식에 맞춰 그 곳으로 이전하여 새로이 단장된다고 한다.
이 행사를 통하여 윌리엄 쇼 일가 유가족들로부터 수집한 각종 사진 자료와 한국의 과거와 현대, 목원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등을 담은 100여점의 사진을 전시하며, 윌리엄 쇼 부자와 관련된 자료로 화보집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