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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교수의 문화재 사랑

작성자김** 등록일2009.11.27 조회수2638

김정동 교수의 문화재 사랑
근대 건축물의 흔적을 찾아서
운명처럼 근대건축물을 찾아다니는 김정동 교수는 대학에서 건축사학을 가르치며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는 김정동 교수는 언제 어디서고 오래된 건축물과 문헌들을 소중한 보물처럼 생각한다. 김정동 교수는 ""등록문화재"" 의 시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한국근대건축사를 연구하다 보면 맞닥뜨려지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무수한 건축물에 관한 문제이다. 여러 나라에 여러 통로로 반출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의 건축물들이 일본으로 옮겨지게 됐다.

김정동 교수는 1993년 도교대학 객원 연구원으로 일본에 가게 되어 그곳에 남아있는 우리 근대사 자료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일본이 약탈해간 우리 것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하던 중 도교경제대학의 오쿠라 문서와 데라우치 문서에서 오쿠라가 경복궁의 자선당을 자신의 미술관 경내에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자선당은 왕이 정사를 돌보는 근정전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궁""이라 불렸다. 아침 해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으로 와위를 이을 왕세자가 거처하는 귀한 곳이었다. 세종 때 지어진 전각으로 경복궁 내의 전각 중에 긴 역사를 자랑하는 전각이기도 했다.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경복궁을 파괴하는 작업을 교묘히 진행하며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전각을 뜯어냈다. 그 중 자선당은 오쿠라 재벌의 창업주인 오쿠라 기하치로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다.

자선당 주춧돌을 발견한 김정동 교수는 이 사실을 국내에 공개하고, 유구가 반환될 수 있도록 여론을 모으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백방으로 뛰어다닌 지 2년만인 1996년에 그 결실을 맺게 됐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80년이 걸렸던 자선당 유구는 언제까지일지 몰랐던 타지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문화재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빛나는 김정동 교수는 “외국으로 간 우리의 문화재가 반환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고, 또한 지금 있는 문화재의 보존, 반환된 문화재에 대한 꾸준한 보존 작업은 더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제도적 방편으로 등록문화재"" 조항이 생기게 됐다. 이제 그 연수가 더해졌으므로 많은 등록문화재 지정이 속속들이 이루어졌다. 김정동 교수는 ""등록문화재"" 의 시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