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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서 온 스승의 문자메시지

작성자이** 등록일2006.05.19 조회수5396

천국서 온 스승의 문자메시지
“벌써 천국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가까워. 내가 가까이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들 말어….” 목원대 故심재호교수
지난 12일 밤 10시 52분. 대전의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와 학생 10여명은 문자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발신인은 오랜 암 투병 끝에 사흘 전 눈을 감은 고(故) 심재호 교수. 학생들에겐 ‘천국에서 온 문자메시지’였다. 휴대전화 액정 위 다섯 줄의 짧은 글이었지만 제자들은 심 교수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젖었고, 휴대전화를 통해 같은 학과 학생들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4학년 서유리(여,22)씨는“메시지를 받고‘교수님 제자로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했다.

“병원에 실려 가기 전까지도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님께서 마음 아파할까 봐 장례식장에선 울지도 못했는데…. 이제야 울어 보네요.”

스승의 날인 15일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씩 들고 모였다. 학교가 아니라 심교수가 모셔진 대전 시립 납골당. 위패 앞에 놓여진 카네이션은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전하는 추모 답장이었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일찍 생을 마감한 것도 가슴 아팠지만, 남다른 학문적 열정과 제자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돋보였던 심 교수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했다. 과 학회장 최재혁(24,3학년)씨는“제자들의 기분이라도 가라앉아 있는 것 같으면 캠퍼스 잔디밭에서 야외 수업을 하곤 했다."며 “전공과목 중 가장 딱딱한 복지정책학 강의였지만, 우리에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심 교수는 친형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그를‘딸기코’,‘어린왕자’,‘피터팬 같은 별명으로 불렀다. 운동하는 학생들 곁에서 응원하며 음료수를 사다 줬고, 강의실에서나 MT장소에 따라가서도 스스럼없이 애창곡이었던 국내 록 그룹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불렀다. 강의 중 떠드는 학생에겐“내 안에 너 있다. 나랑 떠들자”며 농담을 던졌다.

심 교수는 사회 활동도 활발했다. 대전 지역 최대 시민단체인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활동했고, 충남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보건복지부 예산자문위원으로도 일했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해 초. ‘시한부’선고도 그의 활발한 사회참여는 막지 못했다. 특히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사람들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돕도록 한 대전시 정책인 ‘복지만두레’의 이론 수립부터 입안, 실행, 평가까지를 그가 주도했다.

심 교수가 강의를 중단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3학년 정용세(23)씨는 “두 시간 연속 강의였는데 한 시간을 마친 뒤 ‘몸이 안 좋아 수업을 더 할 수 없겠다""며 학생들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사회복지학과장 권중돈 교수는“심 교수는 그렇게 병이 악화됐으면서도 2학기 강의를 끝까지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제자들에게 미안해했다“고 전했다.

‘천국에서 온 문자 메시지’의 비밀은 스승의 날인 15일에야 풀렸다. 심 교수의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했던 이영신(여,33)씨는“장례를 마친 뒤인 12일 투병 중에도 문자를 주고 받던 교수님 휴대전하로 ‘평안히 가셨을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그 날 저녁 답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답장을 보낸 것은 심 교수의 부인 장은정(40)씨. 그는 ”남편의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를 보고 평소 자주 통화하며 위안 받았던 이 선생에게 남편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고 했다. 심 교수의 제자 사랑이 사후(死後)에도 부인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됐던 셈이다.

과 학회장 최재혁씨는 “사모님을 통해 전달됐지만 교수님의 문자 메시지는 눈은 감지만 늘 제자들 곁에 있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도 행동으로 복지를 실천하고 가르쳤던 교수님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6년 5월 16일 화요일 대전 =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