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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일대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
목원대·대전지방보훈청, 애니메이션 제작·상영 업무 협약
목원대학교가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서위렴 2세)의 일대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대전지방보훈청장과 함께 제작한다.
목원대 LINC 3.0 사업단은 대전지방보훈청과 이런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양 기관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일대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학습자료로 제작해 미래세대 보훈교육과 함께 호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이번 업무협약을 진행했다.
이들은 협약에 따라 ▲애니메이션 제작 및 상영회 추진에 필요한 인력, 장소, 재원 등에 대한 상호 협력 및 지원 ▲애니메이션 제작 및 상영회 등 행사 운영에 관한 사항 ▲미래세대 중심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한 학생 교육에 관한 사항 ▲보훈정신 계승 및 보훈문화 확산을 위한 각종 사업 및 활동 추진 등을 협력하게 된다.
이번 협약으로 목원대 LINC 3.0 사업단과 웹툰·애니메이션·게임 ICC 주관으로 애니메이션학과와 대전지방보훈청, 대전시와 협력을 통한 보훈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자료 공동 개발이라는 성과 창출이 예상된다.
또 문화예술융합 특성화 대학인 목원대 소속 대학생들이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 함께 참여해 실무능력을 높이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과 도출을 위해 대전지방보훈청과 목원대 LINC 3.0 사업단은 프로젝트 수행의 전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향후 개발된 애니메이션은 지상파 방송의 정규 프로그램에서 방영될 예정이며, 오는 9월쯤 오프라인 상영회도 계획됐다.
강만희 대전지방보훈청 청장은 “윌리엄 해밀턴 쇼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디지털에 친숙한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 특히 젊은 세대가 ‘보훈’을 쉽고 즐겁게 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의 다양한 기관 및 미래세대인 학생들과 협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철호 LINC 3.0 사업단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호국영웅을 대상으로 교육자료 제작을 위해 대전지방보훈청과 목원대 LINC 사업단이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목원대의 특화분야 전문성과 역량을 충분히 활용해 지역 내 보훈 문화 자원을 개발하고, 미래세대의 학습교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희학 총장은 “이번 협약은 우리 대학이 강점을 가진 문화예술융합 분야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및 상영회 개최 공동 협력은 물론 지역민을 대상으로 보훈 문화를 확산시키는 등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산‧학이 상호 협력해 성과를 공유하고 학생들에게 호국정신을 고취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목원대가 매년 추모예배를 통해 위대한 희생을 기리고 있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감리교대전신학원(목원대 전신)의 창립이사였던 윌리엄 얼 쇼 선교사(1890~1967·서위렴)의 아들로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다.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고,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 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당시 부모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이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저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앞으로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을 돕지 않고 기다리면서 대신 다른 사람이 한국인을 위해 희생하고 우리를 위해 희생한 뒤 평화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 우리가 한국에 제일 먼저 달려간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아주 공정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윤희중 목원대 명예교수 발굴 사료 중)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 지리에 밝고 한국말을 잘했던 덕에 해군 소속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복작전에서 정탐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윌리엄 얼 쇼 선교사는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5955명으로부터 1만4500달러를 모금해 1957년 목원대에 해밀턴기념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목원대 채플(대학교회)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기념 예배당, 기념 비석, 기념 흉상이 세워져 충청권 호국보훈 교육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은평구에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됐으며 2014년엔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설치됐다.
2대에 걸쳐 대한민국과 목원대를 위해 헌신한 윌리엄 쇼 부자(父子)는 현재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영면해 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을지 무공훈장에 추서됐고,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 훈장을 받았다.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지난해 4월 윌리엄 쇼 부자를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